스파르타쿠스단

스파르타쿠스단(團), (독일어)Spartakusbund, (영어)Spartacus League

1 개요

로자 룩셈부르크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세운 독일의 극좌 혁명 단체. 1914년에 세워진 '인터내셔널 그룹(Gruppe Internationale)'에서 비롯되어 1916년에는 스파르타쿠스단이 되었고, 1918년, 독일 공산당이 된다. 스파르타쿠스단이라는 명칭은 고대 로마 시기 노예들의 반란을 주도했던 스파르타쿠스에서 유래했다.

2 역사

중심 인물은 카를 리프크네히트[1],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프란츠 메링(Franz Mehring) 등 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적 행보에 반감을 품고 탈당한 사람들이다. 1차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나, 스파르타쿠스단으로 불리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전쟁이 참호전 양상을 띠면서 지지부진해지고 이에 따라 사회민주당 내에서도 반전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1916년부터이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 사회민주당은 '전쟁 발발시 전면적 파업과 국제적 연대를 통해서 전쟁을 저지한다'는 기존 당론을 뒤엎고, 정부의 전쟁 공채 발행에 찬성한다. 이에 반발하여 급진파들은 '제국주의 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탈당하였다. 이들은 전쟁의 즉시 중지, 전면적 계급투쟁, 사회주의 혁명,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를 주장했다.

1918년 11월 혁명으로 독일 제국이 무너지자, 리프크네히트는 11월 9일 자유사회주의공화국(Freie Sozialistische Republik)의 수립을 선포[2]하였다. 1919년 1월, 스파르타쿠스단 봉기를 통해 혁명을 시도했으나,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에 의해 동원된 정규군과 우익 준군사단체인 자유군단(Freikorps)에게 무참하게 진압당했다. 이 진압을 주도한 사람은 사회민주당 소속의 국방장관 구스타프 노스케(Gustav Noske)였다. 1월 15일 저녁, 봉기의 주요 지도자에 속했던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는 체포되어, 당일 밤에 재판 없이 바로 처형되었다. 진압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은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스펠데 중앙묘지(Zentralfriedhof Friedrichsfelde)에 안치되었다. 1919년 이후 베를린에서는 매년 1월 둘째 주 일요일에 L-L 데모(L-L Demo; Liebknecht-Luxemburg Demonstration)가 열려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3 스파르타쿠스단 봉기 이후

스파르타쿠스단의 후신인 독일 공산당은 나치당과 더불어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과 몰락에 크게 일조하였다.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히틀러가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 일어나자 공산당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썼고, 공산당은 3월 6일 금지당한다. 3월 24일, 수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이어서 7월 14일, 나치당만이 독일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당이라고 선언되면서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공산당 당원들이 체포, 투옥 되거나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독 지역에서는 공산당이 재건되어 다시 활동하였으나, 195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정당해산 판결을 받는다. 동독 지역에서는 1946년, 소련 점령군 당국에 의해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강제로 합쳐져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이 새로 만들어진다. 형식상으로는 대등한 관계의 통합이었으나, 공산주의 정책에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는 사회민주당 출신 인사들은 곧 내쳐져서, 1949년에 정식으로 동독 정부가 수립될 즈음,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완벽한 공산주의 정당이 되어버린다.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1949년부터, 동독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1989년까지 동독을 지배한다. 동서독은 이듬해 통일 된다.

4 여담

  • 동독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 중 한 명이었던 에리히 호네커도 10살 때인 1922년, 스파르타쿠스단의 어린이 조직에 참가한 적이 있다.
  1. 독일 사민당의 창당을 이끈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아들이다.
  2. 이미 2시간 전에 사회민주당의 필리프 샤이데만이 공화국(즉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