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피나

1 대(大) 아그리피나

로마 시대의 인물로서 아그리파아우구스투스의 딸인 율리아 사이의 결혼에서 태어났다. 풀네임은 율리아 아그리피나. 게르마니쿠스[1]와 결혼해 황후 자리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되던 여자였다. 아우구스투스의 직계 자손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성격에 문제가 없었고[2] 남편과의 금슬도 좋았고 집안도 잘 꾸리고 애들도 잘 키웠다. 내조에도 착실해 로마 시대 여인들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게르마니쿠스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남편을 도왔다. 다만 지나치게 대가 세고 고집이 강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로서의 자부심은 지나친 수준이었으며, 여자는 집에서 자녀 양육에 전념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과는 다르게 정치에 직접 개입하려 했다.

그는 게르마니쿠스와의 사이에서 6명이나 되는 자녀를 낳았다. 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 칼리굴라, 소(小)아그리피나, 율리아 드루실라, 율리아 리비아.

그러나 게르마니쿠스가 객지에서 횡사하면서 그녀의 인생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게르마니쿠스가 시리아에 파견되었을 때, 그는 시리아 총독인 피소와 심각한 불화를 겪는다. 아그리피나 역시 피소의 아내인 플랑키아도 쌍으로 충돌해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 와중에 게르마니쿠스가 원인모를 열병[3]에 걸려 죽어버린다. 죽으면서 게르마니쿠스는 아내와 지인들에게 복수해달라는 말을 남긴다.[4]

증오를 품고 돌아온 아그리피나는 이 일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게르마니쿠스를 경계한 티베리우스의 짓이라 강하게 믿었고[5], 이는 그녀를 음모와 증오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사사건건 티베리우스를 비방했고, 결국 군단병들을 매수[6]해 반역을 도모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녀의 아들인 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는 유폐당했고, 아그리피나는 벤토테네 섬에 유배당했다. 그녀는 결국 곡기를 끊어 굶어죽는 길을 선택했다. 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 역시 죽었다.

결국 그녀의 아들인 칼리굴라가 제위를 이어받았고, 그에게 제위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아그리피나는 무척 성급했다. 제위계승의 정통성, 여론의 지지가 게르마니쿠스 가문에 있었는데도, 아그리피나는 티베리우스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그에게 정면으로 맞서 싸우려다 화를 부르고 말았다.

2 소(小) 아그리피나

로마 시대의 인물로서, 1과 게르마니쿠스의 딸이다. 네로 황제의 어머니이자, 칼리굴라의 동복누이. 클라우디우스의 후처. 어머니와 이름이 같아 어머니는 대(大) 아그리피나, 그녀는 소(小) 아그리피나라고도 불린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그의 어머니인 대(大)아그리피나와 똑같았다. 칼리굴라의 동복누이들이 칼리굴라가 일으킨 난리 전후에 전부 죽어[7], 아그리피나는 살아남은 게르마니쿠스의 유일한 핏줄이 되었다. 아그리피나 역시 칼리굴라에 대한 역모에 연루되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으나, 칼리굴라가 비명횡사한 덕택에 제위를 이은 클라우디우스에 의해 풀려나게 된다. 아그리피나는 당시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결혼한 상태였고, 그와의 사이에서 아들 네로를 낳는다.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어린 아들과 함께 사실상 잊혀진 존재로 있었다.

그런데 클라우디우스의 아내 메살리나가 불륜과 반역죄로 체포당해 사형당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클라우디우스는 새 아내가 필요했고, 율리우스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는 약점을 갖고 있던 그에게 아그리피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치적인 이유 탓에 클라우디우스는 아그리피나와 상당히 무리하면서까지 결혼했다.

권력욕이 강했던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만들려 했다. 사실 네로가 황제가 된 건 어머니 아그리피나 덕이다. 그녀는 아들 네로에게 철학자 세네카와 근위대장 브루스를 붙여줬고, 클라우디우스를 구슬려 그의 딸 옥타비아와 네로의 결혼을 주선했으며, 클라우디우스가 죽은 후 근위대를 움직여 반쯤 쿠데타나 다름없는 형태로 네로를 제위에 앉힌다. 덧붙여, 클라우디우스는 아그리피나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지만 네로는 나중에 스스로 실권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실권을 놓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대적하게 되었다. 그는 포파이아를 사랑해 아내인 옥타비아를 내치려 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그리피나와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아들과 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지자 결국 브리타니쿠스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시키기로 한다. 이 때 그녀는 네로에 반대해 옥타비아와 브리타니쿠스를 내세워 민중 앞에 호소하기까지 했다.

아그리피나가 브리타니쿠스를 후원한 것의 정확한 의도는 확실치 않다. 이것이 진짜로 네로를 실각시키고 브리타니쿠스를 황제로 만들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말 안듣는 네로를 위협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것인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네로보다는 브리타니쿠스의 정치적인 입장은 더 강력하였고 때문에 이는 네로에게 있어 매우 심각한 위협이었다. 공포에 질린 네로는 자신의 하수인을 보내 브리타니쿠스를 암살한다.

이후에도 아그리피나가 계속해서 이혼을 반대하자 네로는 어머니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를 위해 아그리피나의 경계심을 흐트러트리려고, 네로는 우선 자신의 어머니와 화해한다는 명목으로 선상으로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 때 네로와 아그리피나는 서로 포옹하는 등 다정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러나 그날 밤 네로는 자신의 측근들과 빠져나온 뒤 배를 침몰시켰는데, 수영실력이 출중했던 그녀는 헤엄쳐 돌아왔고 공포심에 사로잡힌 네로는 자신의 근위대를 아그리피나의 자택에 보내 살해를 지시하고 만다. 이 때 아그리피나는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고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병사에게 배를 보여주며 황제가 들어있던 배를 찌르라고 일갈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어쨌거나 로마인들은 여자가 정치에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네로의 모친 살해에 대해 관대하게 넘어갔다. 여담으로, 네로가 자기 품을 벗어나려 하는게 싫어서 아그리피나가 네로를 유혹했을 거란 소문이 네로 집권 시기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응?

사족으로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 즉 현재의 쾰른은 아그리피나가 실권을 잡고 있을 때 지어졌다. 라인 강변에 식민지[8]를 건설할 때,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아그리피나가 자신의 조부인 아그리파를 기린다는 명목 하에 아그리피넨시스(아그리파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여버렸다.

그러나 아그리파와 아그리피나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걸 고려하자면 사실상 아그리피나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거나 마찬가지다. 당시 로마 시대에 여자가 정치에 참여하거나 공공 기록에 이름이 남겨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거기다 도시 이름에 자기 이름을 썼으니 당시로선 엄청난 월권행위였다.

3 북천의 사슬의 등장인물.

크로이바넨 왕국의 대여사제로, 사상 최강의 흑마법사이다. 홍염의 성좌를 타고났으며, 이플릭셔스, 우르간 등 굵직굵직한 마령들의 주인. 클로드 버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인물로 홍염의 성좌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북천의 사슬 외전에서 아그리피나는 한 지방 귀족의 노예로 잡혀가 마령에게 먹힐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그 성의 마령들을 모조리 지배해버려서 귀족들을 몰살시키고 크로노스 버젤과 같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강력한 마령 지배력을 통해 크로이바넨의 전권을 장악, 봉마석을 만드는 법을 개발하고 사제왕들을 만들어낸다. 자신 또한 사제왕이 되어 영생을 부여받게 되고, 지배자인 왕과 달리 죽지 않는 그녀의 권위가 크로이바넨에서는 더욱 강해져 버린다. 그녀는 사실상 크로이바넨 왕국의 왕이었다.

이렇게 보면 엄청 유능할 거 같지만...어머니로서는 무능. 나쁜 어머니까진 아니지만 육아만큼은 문외한이라 거의 방치 수준으로 대한 적도 많다[9]. 클로드는 아그리피나와 자신의 아버지인 크로노스 버젤를 비교하면서 요리 실력이라든가 각종 가사일, 자식 교육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아그리피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좋은 부모였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아그리피나가 클로드를 사랑하지 않은 것도, 학대한 것도 아니므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크로노스와 같이 지내게 된 후로도 클로드는 아그리피나를 종종 그리워했다.

능력이 출중한 남자들을 자신의 정부로 삼아 그들의 출세를 도와주곤 하는데, 그들에 대한 아그리피나의 감정은 남녀간의 애정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와 비슷한 마음이었기 때문에 정부였던 이들 중엔 불만을 가진 이도 많았다. 작중에서 이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진 이로 루스카브다리야 벨라스가 있다. 클로드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기 힘든 건 아그리피나의 이런 면모 때문.

본편에선 아그리피나가 지배하는 크로이바넨을 지겹게 생각한 반역 아제시들과 와스테 윌린에 의해 '성궤의 날'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랑비에 섬에서 물밀듯이 쏟아져 오는 익셀바움 군과 거의 단신으로 맞섰으나 살해당했다.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그녀가 죽자 마자 크로이바넨은 정말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었다.

두 소설, 나아가 아울의 세계관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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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루스카브의 배신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나 루스카브가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이해했기 때문에 죽기 전, 절대로 자신의 죽음의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주술을 루스카브에게 걸었다. 그러나 이플릭셔스는 본능적으로 이를 알아채고 루스카브에게 "당신에게서 피비린내가 난다"는 요지의 말을 해서 루스카브가 이플릭셔스의 셔틀로(...) 전락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리고 원래 아그리피나는 북천(크로이바넨 북부)의 마법진과 남천(랑비에 섬)의 마법진을 연결시켜 크로이바넨의 마령들을 랑비에 섬으로 보내버리려고 했다. 루스카브는 아예 이 마법진을 이용해 이 세계의 마령들을 한데 모아 몽땅 다른 세상으로 날려버릴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북천의 사슬 후반에 상티마를 잔으로 삼아 달의 속성을 지닌 마령을 봉인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상황은 루스카브아울의 세계관 항목을 참고.
  1. 드루수스의 아들이자 티베리우스의 양자로 제위 계승 예정자였다.
  2. 아래와 같이 게르마니쿠스 사후 티베리우스에 대한 증오로 다소 과격한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미심쩍은 일(거기다 당대에는 독살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었다)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볼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막장들과 성격 파탄자로 가득 찬 그 콩가루 집안에서 이 정도의 정상적인 성격은 놀라운 비정상이다(...). 참고로 남편인 게르마니쿠스 역시 아우구스투스 가문에서는 역시 놀라울 정도(...)로 정상인이었다. 원정 나갔을 때 악천후에 배가 침몰하자 자기 탓이라며 뛰어내리려 했다는, 어찌 보면 좀 똘끼(...)가 느껴지는 일화도 있지만 인물 평론에서 상당히 시니컬했던 로마인들 중 저 일화를 거론해서 게르마니쿠스를 깐 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게르마니쿠스가 부리는 사람들에 대해 진정 인격적으로 챙기는 그 당대 고귀한 로마인에게선 정말 보기 드문 교과서적인 윗사람 꼴이었기에 저런 일화도 가능했던 것이다.
  3. 현대에는 말라리아일 것이라는게 정설.
  4. 그 때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소가 독살했다고 믿었다. 심지어 게르마니쿠스 본인도...
  5. 다른 것보다 게르마니쿠스의 죽음에 대한 사후처리가 무척 부실하게 이루어졌던 것이 아그리피나의 의심을 키웠다.
  6. 게르마니쿠스는 라인 강 지역의 군단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다.
  7. 아그리피나를 제외한 여자들은 칼리굴라와의 근친상간 의혹이 있다. 또한 아그리피나도 사실 그런 유혹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말도 있다고.
  8. '콜로니아'는 영어로 식민지를 의미한다. 로마 시대에는 속주에 콜로니아를 지어 로마 시민들을 이주시켰다. 즉 로마 지배의 전진기지이다.
  9. 작가 블로그의 언급에 따르면 만약 아그리피나가 겨울성의 열쇠사이러스 대공왕과 결혼해서 저주를 받은 아킨토스 프리엔을 낳더라도 애들은 원래 보름달 마다 변신하는 줄 아는 수준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