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
@영명@ | 이명 : @이명@ | |||
@학명@ @명명자@ @명명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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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 파일:솜.png식물계 | |||
문 | @문@ | |||
강 | @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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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 @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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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 @종@ |
동구밖 과수원길에 활짝 펴있는 바로 그 꽃.
한국에서 자라는 낙엽수이자 활엽수. 우리가 흔히들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이 "아까시나무"인데, 사실 다른 식물이다. 진짜 아카시아는 미모사아과고, 아까시나무는 콩과이다. 종(種) 이름(pseudoacacia)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가짜 아카시아(False Acacia)'이고, 이것이 그대로 영어권 국가에서 이름으로 종종 쓰인다. 일본명도 동일한 의미의 "니세-아카시아"다. "아까시나무"라는 한국어 이름은 아카시아라는 말을 변형시켜 새로 만든 이름으로 가시가 많다는 특성을 살려서 지은 것이다.[1] 그런데 뭔가 외계어 내지 일본어 같다 실제로 그런 것이 일본어에서 들어오면서 pseudoacacia가 처음에 "아까시아나무"로 잘못 불리게 되어 외래어 표기법에도 맞지 않게 되자 pseudoacasia를 "아까시나무"로 새 한글 이름을 지으면 가시가 많다는 특징도 살리고 진짜 아카시아와 발음도 구별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명명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흔히 쓰인다는 이유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카시아를 아까시 나무를 흔히 이르는 말로 인정을 해버려서 비난을 받기도 한다.
본래 한국에는 없던 나무로, 북미가 원산지다. 1900년대 초에 용산구 육군본부 자리와 경인선(京仁線) 철도변에 처음 도입되었는데,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독일 총영사 크루프의 추천에 따라 심은 것. 경성제국대학의 불어 교사 E. 마텔은 나무의 번식력이 왕성하여 산에는 심지 말 것을 건의했으나, 총독부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심은 나무, 베어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골칫거리라는 부정적 편견을 받고 있는 나무이다. 특히 땅속 줄기, 잔뿌리가 산소(무덤)를 침범하는 것은 조상 숭배가 강했던 우리 나라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던 부분이었다.[2][3]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6.25 전쟁 이후에도 산림 녹화(綠化)를 위해 대량으로 심어졌다. 심지어 난지도에 공원을 조성할 때도 가장 먼저 심어진 나무가 바로 아까시 나무였다. 이외에도 아까시나무에는 장점이 많다. 꽃 모양과 꼬투리에서 알수 있듯 콩과 식물이라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질소를 고정시켜, 비료를 안 줘도 되고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황폐화된 민둥산의 토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최적인 셈. 심으면 주변 식물들도 덩달아 잘 자란다고 한다. 5월경에 피는 꽃의 향기도 좋고, 심은 지 4년이 지나면 따로 꿀을 채취하기도 한다. 장작은 오랫동안 타고 화력이 강하며 연기가 적어 땔감으로도 아주 좋다. (일제시대, 전후에 산에 많이 심은 이유도 부족한 연료를 채우기 위한 연료림 목적이었다.) 잎은 영양가가 높아 가축 사료로도 좋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목재로도 쓸만한 편. 높이 10m 이상에 굵기가 30~50cm 정도에 달하고, 질기고 단단하여 내구성이 좋아 토목(공사장 방벽 받침목 등), 건축용 등으로 쓸 수 있다. 다만 마르면 너무 단단해지는 데다가 뒤틀리고 갈라져서 가공성이 안 좋아서 가구 등 고급 목재로는 활용하기 어려울 뿐이다. 90년대 국내에서 찌고 말려 갈라짐을 막는 방법을 개발하긴 했는데, 가공비 탓에 원가가 싼 열대산 나무에 이기지 못해 가구용으로는 쓰지 않는다.
게다가 기존 생태계를 해친다는 이미지와 달리 다른 나무가 잘 자라기 쉬운 일반 토양에서는 거꾸로 다른 나무의 번식력에 밀려 사라진다고 한다. 현재 남산에서도 소나무에 밀려 아카시아 나무가 사라지는 추세. 전래된지가 100여년에 불과한 데다가 수명도 100년 정도로 짧고, 그나마 한국의 토양에는 맞지 않아 50년을 못 넘긴다. 밑둥 지름이 50cm 넘게 되면 속부터 썩어 비어간다. 60여년 된 나무 밑둥이 1미터 정도 되므로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인데, 뿌리가 얕고 약해서 나무가 커질수록 비바람에 잘 넘어지는 것도 오래 된 나무가 없는 이유이다. 그나마 경북에 100년생 아까시나무가 두 그루 있는 정도.
미국식 바비큐를 할 때 훈제요리를 만드는 재료로 쓰면 썩 좋다. 같은 북미산 콩과 식물로 훈연재의 왕이라 불리는 히코리 나무와 비슷한 향을 내는데, 소, 돼지, 가금류 등에 두루 잘 어울린다. 아까시나무는 국내에서 구하기가 아주 쉬우며 산에 가면 넘어진 나무도 많고, 해로운 나무로 인식하고 있어서 심지어 톱질해 잘라와도 욕을 먹지 않는다.[4]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미처럼 가시가 있으니 주의. 이 가시는 등산화 밑바닥을 뚫는 등 장미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하다. 또한 자전거 바퀴에도 쉽게 박힌다. 개량종으로 산림청에서 만든 민둥아까시나무[5]가 있는데 한국에서 최초로 개량해 국내에서 쓰라고 만들어 놨더니 국내에선 푸대접이고 미국에선 사료용으로 잘 쓰고 있는 건 아이러니.
전술했다시피 이 나무에서 꿀을 따는데 그 양이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꿀빠네 대한민국 꿀 전체 생산량의 70%이상을 차지한다. 헌데 2000년대를 기준으로 해서 전국의 아까시나무들이 원인불명[6]의 황화현상으로 죽어가고 있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양봉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2013년 6월경 방영된 EBS 극한직업에 의하면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고. 아까시나무의 꽃은 남부부터 개화해 5~7월까지 피우기 때문에 이 때 한 곳에 자리잡고 5일~2주간 꿀을 모은 뒤 새벽에 더 높은 지방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내레이터의 표현에 의하면 현대의 유목민.[7] 이 이동 양봉업자들 덕에 SBS에서는 궁금한 이야기 Y에서 괴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한 시골 마을의 폐교를 개조해서 거주하던 부부의 마당에 하루아침에 벌통이 수십 개나 놓이는 일이 있었는데, 주인 부부 입장에서는 자고 일어났는데(보통 새벽에 벌통을 놓으니까) 벌이 마당에 잔뜩 날아다니니 무서울 수밖에(…). 결국 벌통 주인이 와서 사과하고 꿀 1통 주기는 했지만.[8]
2015년 5월, 광릉에서 기록만으로 남아있던 100년산 아까시나무 133그루를 발견했다.- ↑ 동남과 서남 방언에는 가시를 까시라고 부른다. 또 나이드신 분들중엔 아가씨나무라고 부르는 경우도 가끔 있고, 아! 까시(가시)나무라는 농담도 있으니 어원이라는게 참 묘하다.
- ↑ 뿌리가 옆으로 길게 기어 무덤 등을 침범하는데, 수직으로는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점은 대나무와도 같은데 뿌리가 죽지 않는 이상은 계속 순이 올라와 자라게 된다.
- ↑ 근사미라는 콩과 식물을 뿌리째 말려 죽이는 농약이 나와 있다. 나무 밑둥 부근에 도끼나 톱으로 상처를 내고 원액을 부어주면 끝. 다만 근사미는 3년이상 자라 수피(껍질)가 단단해지면 흡수율이 떨어져 약효가 반감된다. 따라서 오래된 잡목을 고사시킬 때는 완전히 베어낸 뒤 부어주고 뿌리가 뻗어 새순이 올라 올 수 있으므로 밑둥 주변에까지 고루 뿌려주는 것이 좋다.
- ↑ 성목 아까시 나무를 베어내면 가지치기 효과로 인해 주변으로 뻗은 뿌리에서 올라온 순들이 더욱 왕성하게 자란다. 70~80년대에 사전지식이 없이 숲이나 무덤 주변의 아까시 나무 제거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도 그것이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된 사람들은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고(요즘의 공공근로와 달리 당시의 사업은 무상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욕까진 아니고 장난섞인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 ↑ 가지에 가시가 없고 꽃이 피지 않으며 수관이 둥근 것이 특징이다.
- ↑ 수명이 다 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가장 신빙성 있다.
- ↑ 이 말이 틀리지도 않는 게 좋은 자리(아까시가 많고 전봇대나 농약이 없으며 평평한 곳) 찾아 자기 동물들(꿀벌) 데리고 철맞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 ↑ 벌통 주인인 양봉업자가 말하기를 꽃을 찾아서 이동하다 야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폐교 건물로 들어왔는데,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벌통을 마당에 두고 간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