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우리카드 위비 No.3 | |
안준찬 | |
생년월일 | 1986년 10월 27일 |
출신학교 | 연무고 - 명지대 |
포지션 | 레프트 |
신체사이즈 | 신장 190cm, 체중 82kg |
소속팀 | 서울 우리캐피탈 드림식스 (2008~2012) 아산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2012~2013) 아산 우리카드 한새 (2013~2014) 신협 상무 (2014~2016) 서울 우리카드 위비 (2016~ ) |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現 서울 우리카드 위비의 레프트.
2008년 창단 당시 입단한 선수 중, 유이하게 박상하와 같이 남아 있는 선수다. 증거
이승현의 경우, 중간에 은퇴하다가 재입단한 사례이고, 박상하는 상무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팀의 선택을 받아 그 팀의 역사를 다 같이 했던 유일한 선수며 안준찬의 경우 원래 2008-2009 시즌 2라운드 4순위 지명을 받아 LIG손해보험에 입단하였으나 황동일과의 트레이드 조건으로 우리캐피탈로 이적했기 때문에 LIG손해보험의 유니폼을 입은 시기는 단 10여 일 정도에 불과하다.
프로 데뷔 시즌이던 2009-10 시즌부터 당당히 주전에 이름을 올리며 맹활약하였으나 2009년 11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단 5경기만에 시즌 아웃되었고, 그의 빈자리는 최귀엽과 김현수, 손석범, 강영준 등이 책임졌다.
부상 후 비시즌 동안 꾸준한 재활을 통해 부상이 회복되어 2010-11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되찾아 팀 내 최다 356득점[2]을 올리며 신영석과 당시 신인이었던 김정환과 함께 삼각편대를 책임졌다. 참고로 당시 용병으로 있던 이스라엘 출신 숀 파이가는 기량 미달로 중도 퇴출되었던 탓에 그의 활약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모기업인 우리캐피탈이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어 구단이 KOVO 관리 하에 운영되었던 2011-12 시즌에는 김정환과 신인 최홍석에게 밀려 주전과 벤치를 오갔고, 러시앤캐시가 네이밍 스폰서를 맡은 2012-13 시즌에는 단 1년만 팀을 지휘했던 김호철 감독 밑에서 지난 시즌보다 출전 기회를 많이 받아 245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했다.
2013-14 시즌에는 다시 주전과 벤치를 오갔지만 121득점에 그치는 등 지난 시즌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2013-14 시즌 종료 후 상무에 입대했다. 그가 상무에 입대한 2년 동안 우리카드는 매우 안습한 행보를 걷게 되었는데 특히 2014-15 시즌에는 3승 33패라는 구단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내며 고꾸라졌고, 2015-16 시즌에도 용병 교체와 답이 없는 세터진 등 조직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며 최하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김상우 감독은 그가 2016년 1월 상무에서 전역하여 우리카드로 복귀하자마자 곧바로 주전으로 기용하였다. 당시 주전이던 최홍석도 부상당한 상황[3]이었기에 안준찬의 활약이 상당히 절실했던 것. 그는 우리카드 복귀 후 팀이 안정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밝혔지만, 그가 합류한 이후에는 이미 팀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기에 이렇다 할 반전을 꾀하지 못하고 7승 29패로 시즌을 마감하고 만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3차 협상까지 가는 진통 끝에 연봉 1억 1,000만 원에 FA 계약을 맺고 팀에 잔류했다.
참고로 배구계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였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항목이 상당히 늦게 개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