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푸앵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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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es-Henri Poincaré
쥘-앙리 푸엥카레
(1854년 4월 29일 ~ 1912년 7월 17일)

1 개요

뉴턴, 라이프니츠, 오일러, 가우스 등과 같이 수학과 물리학의 전 방면에서 동시에 위업을 달성한 최후의 만능과학자 (the last universalist)이다. 오늘날에는 물리-수학은 엄격히 방법론이 분리되어 있기 떄문에 이렇게 두 방면에서 동시에 대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는 있지만 현대에는 물리학자가 수학의 일부에만 능할 뿐, 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즈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위튼같은 경우를 들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위튼은 아주 예외적으로 물리-수학이 겹치는 좁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지 뉴턴이나 라이프니츠, 푸앵카레와 같은 만능과학자들처럼 물리 전체와 수학 전 방면에서 두루두루 업적을 남긴 사람이 아니다.

그는 수학에서는 위상수학(토폴로지), 대수기하학의 아버지이며, 물리에서는 상대론, 천체역학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도 확률론, 미분방정식, 열역학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2 생애

프랑스 로렌주의 낭시 출생.

프랑스 이공계의 최고명문 에콜 폴리테크닉 수석입학, 차석졸업에 빛나는 천재이다. 일부 위인전이나 수학전문학원의 찌라시에서 그가 고등학교 졸업시험(바카롤레아)의 일부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을 두고, "학창시절 공부를 잘 못해도 대가가 될 수 있다" 혹은 "천재는 정규 교육과정에는 잘 맞지 않는다. [1] "는 식으로 왜곡하곤 하는데,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으 그가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볼 당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져서 그가 살고 있던 로렌 주가 그 유명한 알자스-로렌주로서 전쟁의 한 복판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조한 성적을 냈을 뿐, 그는 학창시절 내내 두각을 나타냈다. 그렇지 않았다면 프랑스 전국에서 날고기는 수재들이 모이는 에콜 폴리테크닉 입학시험에서 1등을 할수 없었을 것이다.

에콜 폴리테크닉과 에콜 데민(광산전문학교) [2]을 졸업하고, 소르본 대학에서 미분방정식에 관한 연구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광산감독 공무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캉 (Caen) 대학에서 수학강사로 임용되어 학계에 진입했다. 이당시부터 독일의 펠릭스 클리인과 편지로 교류하며 대수학을 연구했고, 그 업적으로 소르본대학 교수로 임용된다. 그는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물리도 상당히 능해서 소르본대학에서도 물리의 모든분야를 강의했고, 이에 관한 여러 논문을 남겼다.

이렇게 20대 후반부터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때부터 파리에서 사망할 떄까지 소르본 대학 교수, 에콜 폴리테크닉 교수를 역임했다. 워낙 학력이 뛰어났고, 어릴때부터 학벌로도 프랑스 학계의 정석 출세코스[3] 만을 밟아왔기 때문에 퀴리부인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는 거의 없다. 특별한 정치성향은 없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 편에서 서서 경찰즉이 제시한 증거를 과학적 소견으로 뒤집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58세에 사망했다.

3 기타

  • 저서 <과학의 가치>에서 수학자들을 연구전개방법에 따라 "논리파"와 "직관파"로 분류하고, 수학적 재능과 함께 이러한 경향도 타고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책에서는 본인은 어떤 부류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직관파에 속한다.
  • 에콜 폴리테크닉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고등사범학교(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입시에서는 5등을 했다. 이 등수도 상당히 높은 등수이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던듯, 수석을 한 에콜폴리테크닉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한국에서 알려진 바와는 달리, 대부분의 수학-물리의 대가들은 어릴때부터 공부 엄청나게 잘하고, 정규교육과정인 학교에서 최우등생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다. 고등학교 중퇴생이라고 알려져서 본의아니게 한국에서 학습지진아로 오해되는 아인슈타인같은 경우, 독일의 인문계 고교인 김나지움의 입학경쟁이나 학력수준을 한국으로 환산해 비교한다면 그는 학습지진아가 아니라 과학고등학교 부적응 중퇴생으로 보는게 비유가 맞다. 이렇게 한국에서 이상한 도시전설이 유행하는 이유는,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입시위주의 교육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어떤 학자의 특정일화와 결합하면서 생겨난 대중의 정신승리 및 현실도피에 기인한 바이다.
  • 이밖에도 1차대전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레몽 푸앵카레의 친사촌이다. 즉 푸앵카레의 둘째 큰아버지의 맏아들이 레몽 푸앵카레이다.
  1.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런 도시전설이 자신이 아이큐210라고 주장하며, 정규학업과정을 회피하고, 계속 외국 명문대의 박사과정에서 청강생으로 공부했다고 주장하는 김모씨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냈다.
  2. 왜 이런 학교를 갔나 의아해하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 학교는 에콜폴리테크닉 졸업생을 대상으로 광산계 고급공무원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로서, 한국으로 치면 고급공무원 연수원 정도의 개념이다. 당시는 석유가 아니라 석탄이나 철광석이 국부의 척도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광산을 감독하는 일이 국가요직이었다.
  3.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과학고-서포카- 해외명문대유학 박사- 박사후과정-서포가 교수의 경력을 밟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