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페렐만

사진에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포스의 압박.(...)
사진 출처 및 저작권 관련은 여기를 참조할 것
생몰1966년 6월 13일~

1 소개

Григорий Яковлевич Перельман. 그리고리 야코블레비치 페렐만(Grigori Yakovlevich Perelman)은 러시아수학자다.

푸앵카레 추측증명한 수학자. '모든 것을 거절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지인들이 부르는 애칭은 그리샤.[1]

2 젊은 시절

14살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으로 금메달을 수상하며 소련 수학계의 미래로도 불렸던 비범한 천재. 16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레닌그라드 대학교[2]에 입학했으며 졸업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테클로프 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이후 페렐만의 재능을 알아본 스탠포드와 프린스턴에서 페렐만의 교수 영입을 요청했으나 거절하고 이후 계속해서 스테클로프 수학연구소에서 강연 같은 거 없이 연구직으로 근무하게 된다.[3]

3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다

그가 36세 되던 해인 2002년 11월, 정식 논문 저널도 아닌 인터넷 저널인 arXiv[4]에 논문을 올렸는데, 이 논문이 수학계를 말 그대로 뒤집어놨다. 바로 푸앵카레 추측(Poincaré conjecture)을 증명한 것. 그런데 그 당시 수학자들은 처음 이 논문의 제목을 보고 "이게 진짜 푸앵카레 추측이야?" 할 정도로 푸앵카레 추측과 동떨어진 제목이였다고 한다. [5] 푸앵카레 추측 논문의 내용이 너무나도 함축적[6]이라서 수상을 위해 논문 검토를 하는 사람들이 어떨 때는 한 문장 이해하는데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었단다.

푸앵카레 추측프랑스의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7] 인 앙리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é)가 제시한 추측으로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데, 그 문제 중 현재 증명된 문제는 푸앵카레 추측 단 하나뿐이다.

푸앵카레 추측을 간단히 정리하면

3차원 공간에서 닫힌 곡선(폐곡선)이 하나의 점으로 모일 수 있다면 그 공간은 구로 변형될 수 있다.

이 짧고 간결한 문구를 100년 가까이 아무도 완벽하게 증명해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게 푸앵카레가 어디 이거 풀어봐라~ 하면서 낸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저술 끄트머리에 남겨놓은 문장이다. 이 한 문장으로 여럿 골로 갔다(...). 페르마도 그렇고 수학자는 다 뒷부분에 문제를 놓는다. 실제 푸앵카레는 이 추측을 남겨놓은 책의 마지막에 "이 책은 우리를 머나먼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라고 적었는데 진짜로 멀리까지 와버렸다. 여하튼, 앤드류 와일즈가 페르마의 대정리를 증명한 이후로는 수학계 최대의 난제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EBS에서 나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수학적인 내용으로는 NHK에서 나온 게 더 세밀하다. 이 방송을 기반으로 만든 책이 "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이라는 책이다.

페렐만이 등장할 때까지 수학자들은 이 추측에 대해서 단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했는데, 한 가지는 이것의 반례를 찾아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것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어떤 수학자는 푸앵카레의 추측의 반례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다가 빡쳐서 컴퓨터에 눈을 뜨며 4색정리로 눈을 돌리고, 실제로 증명하게 된다. 이 사람이 바로 그 논란이 된 컴퓨터 증명의 주인공. 그러니까 페렐만 이전까지는 세계적인 수학자들마저도 이 푸앵카레 추측 자체가 구라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나 이론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고 자료와 해석이 축적되면서 사라지는 경향이기도 하다.[8]

페렐만은 기존의 수학자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었다. 정확히 말하면 푸앵카레 추측은 위상기하학의 분야이다. 근데 페렐만은 미분기하학과 물리학으로 이 문제를 푼 것. 이 때문에 페렐만이 푼 방식을 대놓고 비난하는 보수적인 수학자들도 있다. 그래도 그런 그들조차도 페렐만이 해결한 것을 부정하진 못하고 예전에 쓰던 방식대로 풀겠다고 여전히 옛 방식으로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고... 보수적인 수학자들이 이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게, 학계의 주류가 위상기하학인데 이젠 비주류가 되어버린 미분기하학으로 이 난제를 풀었다. 그러니까 공부는 이것저것 고루고루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로 페렐만은 위상기하학에 관심조차 없었다고 한다(...). 수학자들 뒷목 잡는 소리가 들린다 구체적인 것은 서술하기가 좀 곤란하지만 굽은 공간을 어찌어찌 조작해서 구를 만들고[9] 그것으로부터 이 추측을 증명했다고 한다.

페렐만이 arXiv에 게재한 논문의 첫 버전은 단 3페이지였는데, 이것 때문에 예일대컬럼비아대에서 4개의 태스크포스가 구성되어 이 논문을 무려 3년간 검증해야했다(...). 이때 나온 보고서만 수백쪽이라고 한다. 이 짧은 논문 때문에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가 나온 건 페렐만의 버릇 때문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페렐만은 어릴 적부터 짧고 간결한 풀이를 선호했다고 한다. 뉴욕대에서 나왔던 일화로는 페렐만이 논문을 제출했는데 지도교수가 "풀이가 너무 간결하다"며 다시 써왔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자, 그의 표정은 마치 "거기서 뭘 더 추가하느냐?"라는 듯한 표정이었다고.[10]

여하튼 페렐만은 이 위대한 업적으로 수학계의 일약 스타가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뛰어난 수학자들이 모인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제시한 밀레니엄 문제다. 대부분이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버림으로써 따라오는 엄청난 명성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4 싫어요

맨 위에 언급했다시피, 이 사람은 모든 것을 거절했다. 일단 이 사람을 이른바 대중적인 스타로 만든 계기는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필즈상 거절. 이후에도 유럽 수학회에서 주는 상도 거절하고, 밀레니엄 상도 거절했다.

게다가 이 사람은 필즈상 수상 직후에 그나마 알고 지내던 수학계 동료들과도 연락을 끊고 완전히 잠적했다. 이후 자살을 했다는 둥, 생활비가 없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서 버섯을 캐어 먹는다는 둥(...). 나중에는 사과를 하나 사는데도 고민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수준이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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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와 산책중인 페렐만

유명인이면 으레 그렇듯 억측이 난무했지만, 그는 어머니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좁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의 연금보조로 살아간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인에 의하면 사람들과 거의 마주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곤 하는데 손에는 항상 스도쿠가 들려 있다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선단체 측은 차라리 100만 달러를 받고 자신들에게 기부하라고 설득까지 했으나 그는 불쾌하다는 듯이 거절했다.

더더욱 세계적으로 그에 대하여 호기심이 가득해지면서 전세계 여러 방송사들이나 언론이 그를 취재하고자 러시아를 찾아갔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2007년 일본 NHK 측이 러시아로 와서 몇 주 동안 대기했으나 그를 전혀 만나지 못했다. 결국 페렐만의 은사를 설득하여 그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여러 번 시도 끝에 통화가 이뤄진 페렐만은 오로지 은사에게만 전화로 대화를 했으며 다른 이가 받으면 즉시 끊는다고 말하는 통에 목소리조차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은사조차도 만나길 거부하고 "앞으론 당신도 전화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끊어버렸다. 전화통화 전 이 은사는 페렐만을 백퍼센트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며 자신했지만 이 상황을 겪고 너무나도 참담해 보였다.

이 은사가 인터뷰하길, "25년 전에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뭔가가 달라진 모양입니다..." 2009년에는 한국 EBS 측에서도 그를 만나고자 현지 취재 갔으나 그가 살던 아파트 관리인은 그 동안 전세계 내로라하는 방송사나 언론이 찾아와 끈질기게 별별 방법을 다 썼으나 그 누구도 그를 만나지도 그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역시 EBS 측도 어머니를 통하여 "일절 만날 일도, 그 어떤 대화도 안 할 테니 헛수고 말고 돌아가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2011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자격을 또 거부한 것으로 또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정회원 후보 제출 명단을 넘기도록 본인 동의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바로 정회원이 될만한 수준의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정회원이 되는건 문제가 없었다.

페렐만과 비슷한 전례를 남길뻔한 물리학자가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리처드 파인만. 노벨상 수상소식을 듣고 자신이 아는 기자에게 연락해 자신은 유명해지기를 원치 않는다며 노벨상을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물은 바 있다. 기자의 대답은 "그런 짓 하면 훨씬 더 유명해질걸요." 그 대답을 듣고 파인만은 노벨상을 수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페렐만한테도 이렇게 말해서 받게 하지[11] 애초에 파인만은 안 유명해질수 없지 않았나

4.1 싫다는 이유

뉴요커(New Yorker) 지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수학 커뮤니티의 도덕적 기준에 실망했다."고 한다. 1982년 필즈상 수상자인 중국계 미국인 수학자 야우싱퉁(丘成桐)[12]이 실제로 페렐만의 논문을 경시하고 동료 중국인 수학자들의 논문에 손을 들어주는 등의 일로 마음고생한 듯. 야우싱퉁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하에 중국 과학기술계 인력의 세계 진출을 선도하는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위의 일화도 그러한 인맥 관리[13]로 인한 사건으로 보인다. 도덕적으로 진솔한 수학자들조차 정직하지 않은 수학자들을 보고도 눈감아주는 커뮤니티에 실망했다고.

야우싱퉁이 이 페렐만의 증명에도 한번 태클을 건 적이 있다. 심지어, 페렐만의 풀이에 대해 "요령을 제시했다"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자기 인맥에 속한 두 명의 수학자를 시켜 풀이 증명의 마무리 작업을 시키고는 "이들이 진정으로 풀이를 증명했다"는 식의 치졸한 언플을 구사하기까지 했다. 졸렬 이것이 뉴요커 잡지를 비롯한 여러 수학자들을 눈살찌푸리게 만들었다. 이에 뉴요커는 야우싱퉁의 업적에 관심이 있다면서 접근을 했고, 야우싱퉁은 신나서 장장 20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4개월 후 야우싱퉁을 기회주의자로 묘사하는 글이 페렐만의 목에 걸린 필즈상 메달을 낚아채는 그림과 함께 실리자 명성에 흠이 간 야우싱퉁은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했다.[14] 그러자 뉴요커는 완전한 사실에 입각한 거라고 맞받아쳤다. 뭐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끝난 듯? 하여간 야우싱퉁[15]은 뉴욕 타임즈에서 수학계의 황제라고 묘사될 만큼 실력은 뛰어나지만 명성에 매우 집착하는 스타일인 듯하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 “In Perelman’s work, many key ideas of the proofs are sketched or outlined, but complete details of the proofs are often missing,” 즉 "좀 중요한 부분들이 애매하게 써 있었다"고 하면서 동료 수학자 차오화이둥(曹怀东)과 주시핑(朱熹平)이 그 부분을 채웠다는 내용을 내보냈다. 허나 이 역시 중국 과학기술계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좀 과장되게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안 좋은 시선을 많이 받은 것이다. 거기다 나중에 차오, 쭈 둘이 채운 내용마저도 과거에 예일대의 브루스 클레이너가 페렐만의 증명에 보탠 내용과 똑같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됐다. 하여간 골자는 야우싱퉁이 자기의 명성을 위해 페렐만의 업적을 뺏을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인맥과 국가로 묶인 친목질을 하고 그걸 언플한게 잘못이라는 것.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나와있다.

4.2 좋아요

밀레니엄 문제를 낸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는 그의 이런 기행에 대해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 눈치다. 그들의 목적은 수학 분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음으로써 뛰어난 학생들이 수학자가 되게 하는 것인데, 페렐만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5 근황

페렐만의 한 동료의 말에 의하면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걸 보면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페렐만의 친구들의 말로는 수학 자체를 거론하는 것을 싫어할 정도라니 종합해 보면 지금 수학 연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다만 2009년 EBS 다큐 프라임에서 취재를 갔을 당시 아직까지 연구를 진행중이라는 암시가 있었다. 프로그램 상에서 페렐만이 사는 아파트의 관리인이 "페렐만의 어머니로부터 그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충돌 관련 연구를 한다고 들었다"라고 언급했다. 아마도 CERN에서 LHC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푸앵카레 추측을 풀어낸 뒤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거절하면서 "내가 우주의 비밀을 쫓고 있는데 100만 달러를 쫓겠는가"허생전라고 일갈했다는 루머가 있기에 이로 미루어보면 연구를 계속하고 있을 개연성은 있다.

7월 25일 뉴스에 따르면 스웨덴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노벨상을 노리는 거라는 개그성 멘트도 있지만 노벨상에는 순수 수학자를 위한 상은 없다. 경제학상 정도가 수학자가 도전해 볼만한 분야. 다만,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고, 만일 유한 시간 내에 해석적인 해를 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증명에 성공한다면 이건 노벨물리학상을 받고도 남을 업적이긴 하다. 노벨상을 준다고 하더라도 페렐만은 또 거절하겠지.
  1. 그리고리의 러시아어 애칭이 그냥 그리샤Гриша다.
  2.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소련 붕괴 이후 이름을 되찾았다
  3. 참고로 소련-러시아의 필즈 메달리스트들은 1970년 수상자인 세르게이 노비코프와 페렐만 외에는 모두 1990년대 소련 해체를 기점으로 러시아를 떴다.(필즈상 받고 스카우트되기도 하고, 대학원 시절부터 유학하다 말뚝 박은 후 받기도 했다) 페렐만 다음의 러시아인 수상자인 2010년 수상자 스타니슬라프 스미르노프 역시 소련 시절 IMO 금메달리스트였지만 소련 해체 후 미국에서 유학하고 제네바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4. 그리스어로 "어카이브"라고 읽는다.
  5. 이 공식을 일반화하면 서스턴의 기하화추측을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푸앵카레 추측도 증명할 수 있다.
  6. 최종적으로 갱신된 판본마저 고작 7장만으로 구성된 논문이다. 원래는 3장이었다!
  7. 사실상 마지막으로 그 당시의 수학과 과학을 전부 배운 수학자라고 한다. 20세기 들어 수학과 과학의 양이 방대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모두 배웠다는 것은 대단한 천재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8. 다만 리만 가설의 경우 약간 다른데 리만 가설을 토대로 쌓인 논문이 상상을 초월한 양이다보니 만약 리만 가설이 거짓이라고 밝혀진다면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무너진 만큼의 여파가 밀려온다. 그래서 몇몇 수학자들은 "리만 가설이 참인 이유"까지 대가면서 참이 아니냐고 주장한다는 듯.
  9. 서스턴의 공간기하화 추측.
  10. NHK 다큐멘터리를 보면 지도교수가 꼭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그 많은 소리 중에서 어떤 소리를 어떻게 빼야할지 정확히 말해주세요. 딱 적당한 음만 있을 뿐이에요" ...천재들은 어쩔 수 없나 보다.
  11. 물론 페렐만은 유명해지기 싫어서가 아니리 수학계 커뮤니티 자체에 반감을 느낀 것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파인만과는 다른 경우다.
  12. 칼라비-야우 다양체로 유명하며, 현재는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9년에 칭화대 수학과학센터 주임으로 초빙되어 겸임하는 중.
  13. 소위 중국인들이 말하는 꽌시(관계).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걸 너무 노골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문제.
  14. 현재는 기사에 그림이 내려간 상태이다.
  15. 기하해석학 분야를 창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