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마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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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년 7월 26일 ~ 1924년 7월 13일)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 이라고도 부른다.

1 소개

현대 주류경제학파인 신고전학파의 시초이다. 경제학유학에 비유하자면, 애덤 스미스공자에 해당하고 앨프리드 마셜은 맹자 내지는 주자 정도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럼 버나드 맨더빌관자인가? 그만큼 현대 경제학에 있어서 공헌이 굉장히 크며, 경제학의 두 갈래인 미시경제학거시경제학의 상당수 이론이 그에게서부터 출발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리적인 경제학을 완성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수준에서도 나오는 수요공급의 법칙[1], 수요 및 관련의 개념은 이 사람이 만들었다. 더 나아가 한계이론을 정립했는데 이것이 경제학의 가장 큰 혁명 중 하나로 불리는 한계혁명이다. 이 한계혁명으로 인해 노동가치이론은 완벽히 비주류로 전락하게 되고, 이 노동가치이론을 근간으로 한 마르크스경제학 역시 그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경제학은 수학이 아니라 인간생활에 직접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자신의 저서들에서 수리적 내용을 별로 쓰지 않았다. 때문에 후대 경제학자들에게서 "다 알면서 왜 안가르쳐 줘서 우리를 뺑이치게 만들었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다만, 학문적 이유에서건 교육적 이유에서건 수학을 안 쓰는 경제학자의 사례는 이후에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존 메이너드 케인즈.[2]

그의 경제학 이론의 전제조건은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인데 이를 통해 수백, 수천가지가 넘을 수 밖에 없는 경제학적 변수들을 모조리 배제하여 소수 몇가지의 변수로만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이 세테리스 파리부스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는지라 제도주의 학파 등의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 주류경제학계에서도 세테리스 파리부스는 제한적으로만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세테리스 파리부스가 경제 이론을 전개하는데 있어 매우 편리성과 유용성이 높기에 미시경제학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사용하는 전제이다.

그는 이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바탕으로 경제학에 '기간'개념을 도입했는데, 그가 최초로 도입한 기간의 개념은 다음과 같았다.

  • 시장 기간(market period): 생산된 재화의 양을 주어진 것으로 본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빠르게 반응한다.
  • 단기간(short period): 경제의 생산능력을 주어진 것으로 본다. 실업률, 생산량, 원자재 공급량, 가격 등이 움직일 수 있으며, 한계수익과 한계효용이 일치하는 점에서 균형이 이루어진다.
  • 장기간(long period): 생산능력을 결정짓는 공장 등의 자본재의 양이 변화할 수 있다.
  • 긴 장기간(very long period): 인구의 추세, 기술의 발전, 문화 등이 변화할 수 있다.

그의 직속후계라고 볼 수 있는 한계효용학파가 아무래도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를 신자유주의의 원흉으로 보는 이들도 많지만, 오히려 그는 휴머니즘 철학을 기반으로 경제학을 연구했다. 자신의 연구실 문에 "런던의 빈민굴에 가보지 않은 자는 이 문을 두드리지 말라"는 글을 붙여 놓았으며, 그가 남긴 명언으로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 있다. 경제학도의 자세를 일갈한 말이며, 이후 각종 다양한 학문과 분야에서 응용 및 회자되며 학자 혹은 삶의 태도에 대한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명언으로 남아있다. 현실에서는 경제학 전공자들은 머리만 있고, 비전공자들은 가슴만 있다고 까이지

2 주요 저서

  • <경제학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1890)
  • <산업과 무역 Industry and Trade>(1919)
  • <화폐, 신용과 상업 Money, Credit and Commerce>(1923)

3 관련 항목

  1. 이 사람의 영향으로 인해서 수요와 공급 그래프를 그릴때 가격이 수량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서도 가격은 Y축에 수량은 X축에 그린다.
  2. 이 사람은 수학을 전공했음에도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수학을 쓰지 않았다. 이 사람의 이론은 훗날 존 힉스폴 새뮤얼슨 등이 수학적으로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