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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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新自由主義, Neo liberalism[1]. 구체적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2] 보통 시장의 순기능만을 강조하고, 자유무역과 규제 철폐를 옹호하는 정치적 이념 혹은 기조를 일컫는다.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웠던 1950년대~196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기에 이어 나타났으며, 1980년대에 영국대처미국레이건 정권이 대표적으로 이 이념을 사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공황 이후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케인스주의가 오일쇼크영국병, 스태그플레이션 등을 통해 약발이 다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계가 나타나자, 그 경제적 대안으로 대략 70년대쯤부터 급부상했다. 그로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약 30여년에 걸쳐 구미 선진국의 경제적 재흥을 이끌어내 끝내 공산주의 진영의 GG 선언과 자본주의 국가로의 변신을 이끌어낼 정도로 각광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IMF의 빠른 극복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으나,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이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철학에 해당하는 이데올로기과학에 해당하는 경제 이론은 명백히 다르다. 가령 소위 신자유주의가 대두했다는 70년대에는 정부실패가 드러났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퍼졌다고 하는데 물론 오일쇼크에 따른 필립스곡선의 붕괴와 그에 따른 정부실패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새고전학파의 합리적 기대 혁명이 반향을 받아서 케인즈 학파가 미시적 기초가 없다는 식으로 까여 케인즈를 잠시나마 매장시키고[3] 시카고 학파의 위상이 커진게 크다. 이렇게 매장된 케인즈주의는 90년대에 맨큐 등이 절치부심하고 합리적 기대나 미시경제학적 기초를 케인즈적 세계관이 나타나는 근거로 써먹는데 이용함으로써 새케인즈학파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특히 세대가 내려갈수록 딱히 케인지언이고 새고전파고 그런거 크게 신경 안 쓴다.[4] 참고로 케인지언은 2차대전 종전 이래 대체로 수적으로는 늘상 경제학계에서 다수를 점해왔다. 오히려 당시 소위 시카고학파라는 사람들이 양적 열세를 상대적인 질적 우위[5]로 커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주류 경제학계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학파 빼고 정치가들은 신보수주의라는 용어를 더 선호해왔고, 신자유주의는 보통 비판하는 측에서 많이 쓰기에 주류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이 용어를 굳이 꺼내들 필요가 없는 것. 자본주의보다 시장경제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쨌든 순기능과 역기능 양면 모두 외면할 수 없을 정도의 실효를 드러내왔기에 사실상 이념/사상 분야에 있어 21세기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새고전학파 = 신자유주의'로 놓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거시경제발달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나온 오류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는 정치학 등지에서 사용되는 용어이지, 절대 경제학 용어가 아니다. 흔히 신자유주의로 알려진 프리드먼은 사실 신자유주의와 정반대되는 주장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가령,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알려진 감세 정책은 케인지언이 밀던 대표적인 재정정책이다. 케인지언은 통화정책 보다는 재정 정책이 경기 부양에 더 효과적으로 보았다.[6]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리드먼은 재정정책(감세 정책)은 별 효력이 없다고 보았으며, 통화정책이야말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거기에 신자유주의가 대두됐다는 7,80년대에 프리드먼은 고전학파 내에서도 많은 비판이 이뤄져, 권좌를 후학들에게 내준 상태였다. 예를 들어, 70년대를 풍미했던 새고전학파는 합리적 기대 이론을 바탕으로 했지만, 프리드먼은 합리적 기대와 정반대되는 적응적 기대 이론을 주장했다. 거기에 80년대에 등장한 실물 경기 변동 이론은 '재정정책은 경제에 별 효과가 없다'는 프리드먼과는 달리, 재정정책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파악했다. 한편, 새고전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배로는 정부의 감세정책은 별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레이거노믹스의 주요한 골자인 감세 정책을, 배로는 전면 비판한 셈이다![7] 70년대 이후에 거시경제학에서는 합리적 기대이론, 실물 경기 변동 이론, 뉴케인지언 등 수많은 이론이 나왔다.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은, 저 수많은 학설들의 차이를 보지 않고, 단순히 같은 테두리로 묶었다는 점에서 큰 오류가 있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 '저 학자는 신자유주의다'는 표현은, 물리학으로 치면 '아인슈타인은 고전 물리학을 비판했으니 좌파이고, 뉴튼은 고전적이니 우파이다'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2 주요 정책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경제를 통제하는 것은 오만이며, 오히려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황마저도 자연스럽고 주기적인 것이므로 일부러 억제할 필요가 없다. 만약 인위적인 경제 통제를 감행한다면 시장가격의 왜곡(ex: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따라서 파시스트와 같은 파국을 낳게 된다. - 하이에크[8]

이를 이해하려면 인간 이성에 대한 하이에크의 견해를 알아보아야 한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 더 정확히는 관료들의 가격통제와 생산량 결정 등은 절대로 이상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 정치적인 영향력에 휘둘리는 건 차치하더라도, 무수한 변수와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시장을 통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 반면 자유시장(Free Market)은 그러한 인위적 통제가 아닌 자생적 질서로서 인간들의 불완전한 이성으로도 잘 돌아갈 수 있다. 가령,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관료들이 어떤 품목의 가격과 통제량을 결정하려면 그에 영향을 받는 말 그대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와 변수들을 감안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해서 나타난 부작용이 대표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들의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 반면 자유시장 체제 아래에서 경제 주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을 내리고, 반대라면 올리면 되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내려가면 더 소비를 하고, 반대로 올라가면 소비를 줄이거나 대체제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으로도 아무 문제없이 할 수 있는 당연한 일들이다. 시장 가격으로 표현되는 정보 시스템이 바로 이것.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이니 어쩌니 말들이 많지만 최소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바라는 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뭐, 극좌 정당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일반 대중들한테도 무시당하고 학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뭣보다 하이에크는 공산주의가 득세했을 때 프리드먼과 함께 졸라게 싸웠던 양반이라는 점을 감안하자.[9]

  • 정부의 기능
경제적으로는 19세기와 같은 자유방임 시장 경제를 선호한다. 비효율적으로 성장과 분배가 일어나는 이유를 시장의 부재나 정부의 개입으로 여기므로 국영화된 사업들도 모두 민영화되어 시장 기능에 맡기고, 시장의 영역이 아니었던 부분의 경우(예로 공교육[10]은 시장을 만들어야한다고 본다. 또한 정부가 큰 폭의 재정적자를 내면서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작은 정부를 주창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 기능의 약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위해 규칙을 준수하는지 감시하고 지키지 않는 이를 처벌하는 권위적인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 안전망을 폐기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원조괴뢰 취급받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조차 저소득층에 대한 부의 소득세, 시장에서 퇴출당한 근로자들을 위한 소득제도를 주장했다. 가령, 이런 발상에 근거하여 공공경제학자들은 임금보조제도나 근로소득보전세제 등의 사회적으로도 덜 비효율적이면서 저소득층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개발해왔다. 오히려 사회안전망의 국가적 포기를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광신도에 불과하다.
  • 세금제도
소득에 왜곡을 일으키는 누진세에는 반대하며, 지속적인 혁신과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 자본에 대한 세금을 폐지하거나 줄여야한다고 본다.
  • 각종 혜택과 보조금 축소
신자유주의에서는 사회 통합을 중요시 여기며 소수가 특권을 누리거나 보호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본다.[11] 따라서 노동조합의 활동은 제한되고[12] 소수민족이나 특정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폐지된다.
  • 규제 축소
신규 투자자/기업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줄여야한다고 본다.
  • 재산권 보호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데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고 보며, 특히 지적 재산권에 대해서 더 강한 보호제도를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 외환시장 개입 금지
정부가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환율을 조정하면 수출이나 수입 양쪽 중 한쪽은 피해를 입으므로 수요와 공급에 맡겨야한다고 본다. 단, 급격한 환율변동을 막기 위한 개입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개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본다.
  • 자유무역과 국제관계
시장의 완전 개방, 자본 이동의 자율화와 관세 철폐를 이상으로 여긴다. 한편, 국제사회에서는 국내와 같이 합의된 일관적인 제도나 이를 강제할 기관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국제적인 투자와 진출을 보장하는 각종 조약과 무역협정, 그리고 이를 관할하는 기구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3 다른 사상/이론과의 관계

'신(新)'자가 붙어 있어 자유주의와 유사할 것 같지만 다르다. 단, 국가권력(그리고 그 권력을 독점한 집단)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점에선 고전적인 자유주의 비슷한 점이 있으며, 그리고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그 중심원리로 삼는 점에선 경제적 자유주의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아닌 실상에서는 경제 환경의 보장과 정책적 추진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크게 중시되며 국가간 무역을 넘어서는 권역간 무역 측면에선 오히려 특정한 경제 블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경향에 불과할 뿐 신자유주의를 칭하는 지식인들이 모여서 서로 연구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다만 후술할 시카고 학파나 오스트리아 학파들이 경제학 연구를 하거나 자유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보수성향 지식인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뭐라뭐라 하는 걸 신자유주의로 묶는 것에 불과하다.[13]

다만 간혹 가다가 자칭 신자유주의자가 이러저러한 주장을 하는데, 그 주장을 뜯어보면 시장과 경쟁을 좋아하면서도 애국심이 넘쳐나는 등 앞뒤가 안 맞아서 듣는 사람이 벙찌게 되는 경우는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국가주의자인 사람이 뭣도 모르고 "나는 자유주의자요" "나는 신자유주의자요" "나는 시장주의자요"하면서 나서서 생기는 촌극이다. 대한민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데, 아무래도 재벌 및 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 때문에 "시장의 순기능을 지지한다"면서 그와 동시에 "그 시장을 움직이는 대기업의 독주 또는 정부의 통제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모순화법의 달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주의 문서에도 나와 있다. 국가가 재벌이라는 명쾌한 방증임을 왜 모르느냐

경제이론으로는 오스트리아 학파(빈 학파)와 시카고 학파의 거시경제학 중 새고전주의 경제학과 연관이 깊다. 보통 신자유주의의 기반이 되는 근거를 새고전주의 경제학이 많이 제공하는 편이고, 신자유주의에 연관된 경제학자들이 보통 새고전주의에 속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자유주의는 국가 정책에 관한 이념이고, 새고전주의는 거시경제이론이므로 둘은 엄밀히 다르다. 정치 사상과 경제 이론의 차이이다.

실제로도 새고전주의 경제학자이면서 신자유주의에는 부정적인 경제학자들 역시 존재한다. 한편 자주 언급되는 밀턴 프리드먼은 새고전주의가 아니라 그 이전 세대에 해당하는 통화주의(monetarism) 경제학자다. 하지만 한국에선 보통 둘을 같은 의미로 자주 쓴다. 그래서인지 사실 이 양반이 정부의 경제적 개입뿐만 아니라 정치적 개입도 부정적으로 봤던 건 왠지 무시되는 듯. 또한 오스트리아학파와 새고전주의 학파는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변동에 대한 대응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프리드먼은 죽기 전 일본의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책으로 '일본은행이 계속해서 채권을 사들여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높여서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며 양적완화 개념의 선구자가 되었다. 물론 이는 미국통화사에서 대공황 시 연준의 소극적 통화정책으로 인한 통화량 (M2) 감소와 디플레이션을 비판한 이래, 그의 고유한 입장이다. 게다가 부의 소득세에서 알 수 있듯이 복지정책을 하려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하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프리드먼은 평생동안 연준폐지론자였고, 부의 소득세 정책 역시 다른 모든 복지정책을 부의 소득세로 통합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으니 프리드먼을 단순하게 "그 양반도 복지국가에 찬성했다"라는 식의 드립은 옳지 않다.

이 외에도 신자유주의는 평등보다 능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하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본다고 여겨진다. 이에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엘리트 중심 사회가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와 대립한다는 비판도 있다. 애초에 신자유주의가 과학적인 경제 이론보다는 포괄적인 정치 이념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점으로, 경쟁과 적자생존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자칭 신자유주의자들도 존재하는 실정이다.

4 신자유주의 등장의 역사적 배경

의외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1938년 뤼스토프가 어느 회의에서 말하면서 처음 나타났다. 그는 애덤 스미스식 자유방임주의가 실패했다고 하면서 강력한 국가개입을 옹호하는 자신의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 지칭했는데 그의 기준에서 본다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원조 '신자유주의'의 논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학파하고 뤼스토프는 그 회의에서도 그렇고 평소에도 많이 논쟁을 벌였다.

두번째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와 엮인 집단은 서독의 질서자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경제정책 측면에서 자유방임을 추구하여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을 시도한 반면 사회복지에 관해서도 그럭저럭 신경을 쓴 자유주의의 일파에 속했다. 초기 질서자유주의자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라고 지칭하기도 했으나 정작 오웨켄 등의 거물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을 거부했고 이것은 오늘날 주류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세번째로 시카고 학파나 오스트리아 학파, 혹은 마거릿 대처나 레이건 등과 엮인 신자유주의가 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자유주의다. 여기서는 세번째 케이스를 일반적으로 다룬다.

4.1 냉전 초기(~70년대)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배경은 소위 ' 학파'라고 하는 1920년대 독일-오스트리아계 학자들이 정리했다. 그러나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과 뒤이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들의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 대공황의 해법으로 각광받은 것은 소위 케인스주의로 불리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일시적인) 통제와 개입을 정당화하는 접근법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차대전에서 각국은 1차대전을 능가하는 총력전에 돌입하게 되었고, 국가의 통제가 당연시 될 수밖에 없는 전시경제의 특징은 전후인 1950년대60년대 세계경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시기의 세계 경제에 문제가 많았다면 국가 개입을 죄악시하는 이들의 주장이 먹힐 구석이 있었겠지만, 50~60년대는 세계가 나름대로 전후 성장과 호황을 맞이한 시기였고, 세계의 경찰로서의 미국의 지위 역시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특히 미국 가계의 수입이 크게 늘면서, 지금까지도 미국적인 것하면 연상되는 것들이 이 시기에 정립되었다. 하얗게 칠한 교외의 2층 주택, 바비큐 그릴과 잔디깎기, 스프링클러가 갖춰진 아담한 정원, 포드 머스탱,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같은 중산층의 신화가 바로 이 50~60년대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바이오쇼크폴아웃 시리즈에서 패러디되고 있는 바로 그것. 국가가 개입해서 잘 돌아가고 있는데, 굳이 다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이것이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때 프리드먼 옹이 신자유주의로 전환해보자고 바람을 넣었지만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경제가 그렇게 호황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당장 60년대 초 재임한 존 케네디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깠던 논리가 엄청난 실업률, 경제침체였고 이러한 도발적인 공세가 국민 지지를 얻음으로써 대통령 당선까지 됐다. 게다가 케네디는 당선 후 "공약 전에 아이젠하워를 너무 심하게 까서 미안했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도 심각하더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거대한 정부', 즉 국가주의 구조 하에서 경제가 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단 경제정책 뿐 아니라 일단 냉전과 전후복구라는 특수성, 그리고 특히 주요 산유국인 중동 세계가 아직 단결하지 못하고 서방 세계에 기댈 만큼 사정이 혼란해 있던 덕이 컸다. 서유럽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공산주의 진영에 대적하는 최전선으로서 미국의 가장 직접적인 쇼미더머니 대상이었고 이는 동아시아의 보루인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베트남전을 통한 전쟁 특수도 누렸고, 무엇보다 중동에서 값싸게 매각하는 오일이야말로 미국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호기적인 상황은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일제히 무너지고 만다.

4.2 신자유주의의 부상(70년대 말 ~ 80년대)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역설적이게도 세계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세계 경제에는 혼돈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일본의 공업 생산이 빠르게 회복되고, 이들 나라 공산품에 대한 미국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금 1/35온스로 고정되어 있던 미화 1달러의 가치가 액면가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속전속결로 점쳐졌던 베트남전이 예상을 뒤엎고 지지부진해져가면서 미국정치적/경제적 위상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고, 미국은 결국 1973년 달러화의 금 태환을 전면적으로 중지하기에 이른다. 때마침 수차례에 걸쳐 일어난 중동전쟁의 산물로 오일 쇼크가 일어나면서 세계 경제는 빠르게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편 오스트리아 학파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50년대를 시작으로 고전학파의 이론을 정리해서 케인즈에 맞섰으며,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지언 해법, 즉 불황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정부가 대규모 재정정책을 사용하고 금리 인하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추구하는 방식이 비효율을 발생시키며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쨌거나 현대의 신자유주의의 시초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에게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그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이에크의 경우 유대계 인물로 나치 전체주의의 감각을 온몸으로 경험한 점도 있다. 그는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공교육에 대해 반대하는 정도였다. 이들의 사상은 정부가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개입해서 리스크를 초래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정부와 중앙은행이 모두 나서서 대기업을 밀어주는 체제는 아니었다.[14] 즉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폭주하게 된 것은 후대에 의한 것이지, 그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지울 수 없다.

이런 경제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정부의 규제 철폐와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정책이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걸쳐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공화당 행정부가,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보수당 행정부가 채용하면서 신자유주의는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 신자유주의의 기수들은 영국병을 치유하겠다는 논리로 20여년에 걸친 평화가 끝났음에도 단꿈에서 깨지 못하고 있던 노동에 전면적인 공격을 가한다. 파업은 무력을 앞세운 정부의 강경 진압에 끝장났다. 실제로 대처는 석탄 광부들의 파업에 군대를 동원했다. 당시 영국의 광부 노조도 거의 게릴라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공격적이었으니, 서로 주고받으며 험악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화빌리 엘리어트》가 이 시기 영국을 다뤘다.

어쨌든 공공부문이 대거 민간에 매각되고 막대한 실업자가 발생했으며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대거 철폐되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급전직하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강경하게 대응해야 했을 노동계급은 의외로 이에 맞서 싸울 힘을 잃은지 오래였다. 20여년의 평화에 찌든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필사의 각오로 덤벼드는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맞설 힘을 잃었고, 68운동으로 노동조합 및 공산당/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보수성을 똑똑히 목도한 지식인과 학생들은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거부하면서 왕따 신세가 된다.

4.3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개막(90년대~00년대)

이와 동시에, 미국영국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정부는 세계적인 산업구조의 재편에 돌입한다. "네마리 용"이라고 불리운 동아시아 국가중 대만,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공업 중심지로 성장하고 홍콩,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경제가 자유롭고 무역,금융 중심지로 성장한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미국유럽에 집중되어 있던 중화학공업이 대거 이들 신진 공업국으로 이전하였고, 기존의 선진국들의 산업은 본격적으로 금융업을 중심으로 재편성되면서 미국유럽의 상품자본주의는 완전히 종말을 맞이하게 되고, 그 대신 대공황 이후 파탄났던 본격적인 금융자본주의의 시대가 다시 개막하게 된다.[15][16]

그 외에도 MBA가 본격 유망 코스로 자리잡게 된 것도 이 때부터이고, 공부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이 전부 통계학을 기반으로 한 금융공학에 올인하며 월 스트리트로 진출하는 것도 이 때부터의 일이다. 국가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한 것이다.

또 다른 신자유주의적 변환의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금융시장의 세계화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IMF 위기 이후 한국에서 일어났던 외국 자본에 의해서 국내 기업이 대거 인수합병 되는 현상이 세계구 차원에서는 1980년대부터 일어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쿠데타(칠레, 1973) 때부터[17]로 정권을 잡았고 경제 브레인을 필요로 했던 피노체트와 그 피노체트 밑에서 완성된 이론을 실험할 기회를 찾은 시카고 보이즈 등의 합작품에서 시작됐다.[18] 이게 나름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면서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남미 전체로, 그리고 전세계로 확산됐다.

이 현상의 대략의 테크는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공공부문이 매각되며, 은행의 기업 평가 기준이 엄격해진다 ->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는 기업이 늘어난다 -> 외국계 자본이 이 기업[19]들을 헐값에 인수한다 -> 인수 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1인당 매출액 값을 부풀린다 -> 인수한 기업체를 다시 높은 가격에 매각한다.

이러한 추세에 영합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각종 헤지펀드들이고, 그 중심에는 그 유명한 조지 소로스가 있다. 90년대에 그가 행한 전설적인 활약(?)들은 일본과 영국을 뒤흔들고 90년대 말 신흥 공업국들의 경제 혼란 와중에 많은 수익을 올려 일본에서 '요괴 소로스'라고까지 불리울 만큼 단기투자의 횡행에 공헌한 바가 컸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합의 아래, 이들은 세계구급 경제기구인 IMF세계은행을 앞세워 이런 정책을 개발도상국에 강요하였다.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력한 것은 1970년대를 정점으로 실물 부문의 생산력이 떨어지면서, 이 손실을 대체하기 위해 금융 부문으로 자본의 대 이탈이 일어났고, 이 금융부문의 수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세계 정치/경제/사회를 재편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5 분파

한계와 비판론의 신자유주의의 의지드립 부분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의 반대자들이 유사한 주장을 하는 부류들을 한데 묶어서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과정에서 부르는 일종의 멸칭적 성격이 있다고 한다.[20]

실상은 좀 크게 보면 신보수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그리고 좀 더 파고 들어가면 자유지상주의자 내에서도 경제학적 이데올로기로 따지면 시카고의 새고전학파 등과 오스트리아 학파 등으로 제각기 다르다. 이들 내의 주장의 격차도 살피고 들어가면 너무 크다. 흡사 아시아라고 해서 중동과 동아시아, 인도를 같은 부류로 둘 수 없듯이, 얘들을 한 부류로 묶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부 여당이 시장친화와 기업친화를 혼용하고 그걸 정치적으로 남용했기에 저런 비판이 통하겠지만 미국의 경우는 시장친화와 기업친화라는 구호가 명백히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신자유주의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신보수주의나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접근을 지나치게 한국의 관점에서 접근한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보통 신자유주의라고 지칭되는 여러 이론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주요 네임드를 나열한 것이다.저 아래에서 나오는 학파(?) 소속의 학자들끼리도 특정 이슈에서는 박터지게 싸운다는 걸 생각하면 신자유주의 자체가 굉장히 나이브한 분류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 진단을 보고 노동시장을 위주로 시장자유도 개선과 사회안전망 정비 병행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국내외에 적지 않은데, 개중에는 그 이른바 시카고 학파 계열에 소속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령 게리 베커나 프레스콧 등도 그러한 소리를 했다. 한국이 아닌 해외 경제에 관해서도 라구람 라잔같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공공 유아어린이집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1. 경제학 이론: 다만, 경제학 이론(정확히는 신고전파를 위시한 주류 이론의 경우)은 그 자체로만 두고본다면 그냥 과학 이론일 뿐,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관련성이 있을지언정 아래 열거한 경제학자들이 무조건 신자유주의 이야기들을 따른다는 것이 아님을 유의하자.

- (구) 시카고 학파 중 거시경제학자들 혹은 좀 더 넓게 지칭하자면 이른바 담수파 거시경제학자들[21] - 통화론자[22], 실물경기변동이론[23],
- 공공선택이론[24][25]
- 기타 - 공급중시학파[26][27][28]
- 참고: 아담 스미스를 위시한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29]은 상관이 없다. 이들을 엮어버리면 경제학 전체가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오류가 발생한다.

2. 행정학 내 이데올로기 - 신공공관리, 약칭 NPM[30]

3. 기타 이데올로기

- 신보수주의 - 레이건, 대처 등[31], 흔히 말하는 네오콘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 오스트리아 학파 - 문서 참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32]
- 자유지상주의 - 문서 참고, 신보수주의와 자유지상주의는 엄밀히 말해 다르다. 참고로 자유지상주의는 좌파(노엄 촘스키등 )부터 민주당[33], 공화당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다만, 보통 자유지상주의자라고 한다면 미국 제3의 정당인 자유당이나 공화당[34]을 떠올리는 게 많긴 하다. 다만, 자유지상주의는 공화당에서 컬트적인 소수일 뿐이다. 근래 세를 불리긴 했다.

4. 애매한 사람들

- 그레고리 맨큐, 앨런 그린스펀[35]
- 이명박 전 대통령[36]
- 윤서인[37]

6 한계와 비판론

파일:Attachment/신자유주의/becauseofamerica.jpg [38]

  • 신자유주의 내부의 모순과 윤리적 문제, 의지드립
신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자유의 영역이 너무도 불분명하고 결국 이 "자유"가 정부의 통제가 적으나마 필수적으로 존재해야한다는 모순적인 문제가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를 "제한된 자유"라고 비판하거나 "근본적으로 리버럴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가?" 라는 비판을 하게 된다. 또한 신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공정한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면 "거의 제한을 받지 않고 성장해온 선진국들의 산업과 개발도상국의 산업이 같은 규제(환경이나 저작권)를 받으며 경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들 수 있다.[39] 또한 평소에는 자유경쟁을 내세우며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건 그들의 의지 탓이지 경제제도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정부가 도울 필요 없다고 했던 사람들이, 정작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에는 구제금융을 구걸했던 의지드립도 비판거리.구걸천재 박수를 드려요 남들에겐 약육강식을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패자부활전을 주장하는 의지의 승리 물론 이 의지드립의 경우는 공화당 의원들이나 신자유주의를 주장한다고 하는 학계에서는 구제금융을 반대했으니 일부의 문제긴 하지만(실제로도 구제금융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보단 천민자본주의에 가깝다.). 주로 사기업들이나 보수 성향 언론에서 호가호위하는 식으로 빌붙어 신자유주의의 브랜드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데서 주로 이런 문제가 생긴다. 덕분에 자유지상주의 성향 학자들은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사기업들이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 고 깐다.[40]
실제로 세계금융위기가 닥쳐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고 AIG마저 파산 직전에 내몰리게 되자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혹자는 리먼이 파산하게 되자 신자유주의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견하기까지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징이 된 조지 소로스 본인도, 리만 브라더스 파산 이전인 2008년 1월에 이미 "글로벌화와 규제 완화라는 미국식 경제 모델이 도를 지나쳤다. 그것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 이제 그런 경제 이념은 끝났다."는 말을 남겼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이들의 이중성을 비판했으며 이 외에도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 역사 개략"이나 제이미 펙 외 저 "신자유주의화 하는 공간", 울리히 벡의 "위험 사회",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 저) 등[41]이 있다.
  • 빈부격차 심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으로 인해 세계적으로나 국가 내부적으로나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좌파가 앞장서서 신자유주의를 적대한다.(단, 90년대 영국 노동당처럼 신자유주의 노선을 받아들인 예도 있다. 이 외에도 영국의 우파들 중 일부는 오히려 대처가 전통을 파괴하고 계층 질서를 허문다해서 대처를 싫어했다. 동시에 같은 이유로 좌파들 중 일부도 대처를 그런 점에서 좋게 본 케이스도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공정함과는 반대로 대기업과 자본가(그리고 서구권에서는 백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을 폈다는 주장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42] 다만, 80년대 이후 빈부격차 확대는 신자유주의 개혁 외에도 IT 혁명으로 많은 이들을 고용하기보다 고급의 소수인력을 고용하는 경향이 늘어난 경향도 비슷하게 기여했다.
  •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체제 실시를 위해서는 민영화와 같은 대대적인 정책을 실시해야만 하는데, 민주주의 제도상에서 엄연히 보장되어 있는 파업이나 데모 등 다수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책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억압적인 정부가 필요한 것이다. 공황같은 사태에서 국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경제 통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는 그 순간에는 국민 여론보다 정부의 단호함이 더 중요시된다. 적절한 타이밍으로는 해일/폭풍과 같은 재해를 입은 경우나, 갑작스런 정부 교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정책을 받아들였을 때의 예상 피해계층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수 없는 상황인 때가 많다. 그게 안될때에는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서 캐나다의 경우, 금융/기업인들이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기위해서 정부의 적자를 부풀리는 식으로 홍보하며 무디스에 자국의 신용등급을 깎아달라는 요청을 한적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대처는 계급 의식을 허물기 위한 수단으로 재산 민주주의라 하여 주식 시장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개방(매물은 민영화된 기업)하고 공공 주택을 국민에게 분배(이것도 민영화다)한 바 있다. 물론 그 결과 고질적인 영국병이 완화되고 시장이 활력을 띄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근본적 해결인지는 미지수이며, 사회 계서제에 대한 복종이나 노조의 제한을 주창하는 행동은 현대 민주주의적 가치와 상당히 상충되는, 어떻게 본다면 위험한 방향으로 악용될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하겠다.
정치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토대인 야경국가주의와 정반대에 있는 경찰국가주의국가, 쉽게 말해 독재국가들이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기대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좋은 예로 피노체트 휘하의 칠레가 있다. 단, 칠레의 사례는 피노체트 정권 수립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의 국가 실험 수준으로 진행시킨 것으로, 신자유주의자, 반신자유주의자 사이에서 그 해석이 분분하다. 칠레는 초기에는 정책 설계를 잘 못한데다 남미 외채위기로 경제가 파탄에 빠졌지만, 차후 정책을 수정한 끝에 그 유용성을 훗날의 민주화 정권에게도 인정받아 오늘날 남미 최부국이 되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할 여지가 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애초에 보다 규제를 없애고 자유로워지자고 하는 슬로건 속에 필연적으로 정부의 제한이 있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것을 '제한된 자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실제 사례
일부 국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심각해지면서 구 공산당이 재집권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헝가리, 몰도바) 비록 공산당이 재집권하지는 않았으나 가장 막장화된 나라의 예를 들자면 보리스 옐친 시기의 러시아를 들 수 있겠는데 빈약한 러시아의 경제기반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민영화 정책을 시행했다가 되려 폭등하는 물가, 빈부격차 극심화, 독점재벌 등장과 각종 부정부패(다만 부정부패 문제는 소련 시절에도 심각한 문제였다), 늘어나는 사회범죄와 출산율 저하와 평균수명 단축으로 인한 인구 감소등의 부작용을 겪었으며 극우정당과 극좌정당이 약진해 정치혼란도 극심했다. 이 상황은 푸틴 정부 때 세계유가가 폭등해 고유가가 되고나서야 석유팔이 어느정도 해소되었다.[43] 정확히 말하자면 "무리한 민영화" 보다는 "제대로 계획되지 못한 체제 전환". 러시아는 소련 붕괴 직후나 지금이나 얼마나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잘 갖추어졌는지에 대해 측정하는 세계의 여러 민간기구 및 연구소의 지표에서 최하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서방 국가에 비하면 형편없는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애초에 시장경제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치가 횡행하는 나라이니 말 다했다. 애초에 국가수반과 그 측근이 GDP의 10%를 짬짜미하고 있는 나라를 두고 신자유주의 운운하니, 신자유주의 타령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케이스인 듯[44] 한편 중화인민공화국 같은 경우, 90년대 흑묘백묘론으로 상징되는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러시아와 대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거뒀다고 평가된다. 다만 중국의 경우, 전통 신자유주의 이론과는 다르게 정부에서 경제에 대한 개입을 맹렬히 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중국의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과거 계획경제적 영향이 굉장히 강하여 비록 개방을 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다른 시장경제국가들에 비하면 시장자유도가 낮은 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21세기 들어 WTO에 가입했으며, 공기업의 비중이 무지막지하고 정부가 각종 정치적, 아니면 부정부패 등을 이유로 경제에 간섭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다.

신자유주의를 단순 시장 자유화라고 논한다면 영미권이야 당연히 시장 자유화가 진전된 동네에 해당하지만 의외로 북유럽 국가들 역시 시장자유화가 상당히 진전된 축에 속한다.[45] 그리고 이 외에도 시장 자유화가 상당히 진전된 국가로 칠레를 들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전같지는 않지만[46] 아옌데 당시만 해도 1인당 gdp가 남미 평균의 절반에 불과했던 칠레의 경우 피노체트 집권 후반기부터 시작해서 민주화 이후 콘세르타시온 집권기 거의 내내 남미에서 최고 수준의 고성장을 구가했다.[47] 이 나라의 시장자유도도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 비판에 대한 첨언
다만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이 흔히 신자유주의자라고 지칭되는 이들, 가령 밀튼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 등은 제각기 생각하는 경향도 달랐고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라 부르려 하지도 않았다. 프리드먼이나 하이에크는 스스로를 자유지상주의자라 칭했고, 로널드 레이건이나 마거릿 대처 등은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듣자 '신보수주의자라 해줄래?'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무시당했다. 특히 신자유주의자 소리를 듣는 네임드 인사들 중에는 알고보면 케인지안 혹은 케인지안의 정책을 사용하는 케이스도 꽤 있다. 맨큐그린스펀 등이 이런 오해의 피해자에 속한다. 어찌보면 완전히 다른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도매금으로 묶어서 싸잡아 비판하는 격인데 이런 류의 비판은 허수아비치기라는 오류를 범한다 할 수 있다.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나 신자유주의학파라고 알려진 시카고 학파의 밀턴 프리드먼이나 라구람 라잔같은 이들도 주구장창해왔다.</ref>
거기에 더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따지고 보면 좌파판 색깔론의 재탕에 보다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현재 실정이다.[48] 인터넷 등지를 보면 대체로 '시장, 민영화, (경제 환경의) 개방=악'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주장들이 판친다. 이 항목만 봐도 알겠지만 신자유주의란게 누군가 구체적인 인물들이 나름대로의 사상 체계에 기반을 깔고 이론적 논점을 펴 가면서 주창한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 이념이 아니라, 학계, 정계, 재계에서 비롯하여 사회 전반까지 70년대 부터 2000년대 까지 크게 보자면 친시장, 반규제란 노선으로 묶을 수 있는 다양한 조류와 경향들을 묶어 싸잡아 부른 것에 가깝기 때문에 주장이나, 비판이나 허공에 뜬 양 애매한 부분이 넘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애초에 존재도 불분명한 신자유주의를 까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엮이는 수많은 정치적(신보수주의),경제적(자유무역주의 등)노선을 제각각 까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49]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론적으로 말하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정착된 나라는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경제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들과 현실의 정치적 구도가 만났고, 비판만을 위한 정치적 수사가 들어가기 시작한 데다가 대중의 용어에 대한 혼란까지 겹치면 이러한 결과는 필연적이다. 많은 좌파들(특히 온건, 중도 좌파들)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을 꺼려해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언어의 편의성 혹은 정치적 수사의 유리함을 위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여러 집단, 이념을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통칭해서 비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의도적, 비의도적 개념의 혼선이 시작된다. 사실 많은 좌파들은 '신자유주의 비판'을 많은 경우 '자본주의 비판'으로 바꿔서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꼭 사회주의를 지지할 필요까지는 없고, 사민주의자 역시 자본주의의 '지양'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자본주의 비판'으로 바꾸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혹은 자본주의의 극단적 흐름으로 한정하거나, 구체적인 정책을 지목해서 비판을 하는 것도 엄밀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경우 좌파,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진영에서 비판해온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은 특정한 경제이론을 가진 학자들을 의미하는 것 이전에 특정한 정치적 계급 집단,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지지하는[50] 학자들을 지칭하곤 하기 때문이다.

7 국내의 신자유주의

자유주의라든가 '세계화' 등, 지금 기준으로 보기에 신자유주의를 이루는 요소라 할 만한 정책은 이미 IMF 한참 이전부터-연원의 연원을 따라가면 이미 구한말 시기부터-있어왔지만(사실 이건 신자유주의보다는 세계통합주의 쪽에 더 가깝다), 본격적인 정책적 이념으로서의 신자유주의 도입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국민의 정부 때부터라는게 정설. 정확하게는 김영삼 정부 말기부터이지만 이때는 레임덕에 시달렸을 때라 실질적으로는 김대중 정부부터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그 이전의 경제 정책은 어떤 '사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여러 경제 이념을 짜깁기하고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면이 강했으나,[51] 김대중 정부부터는 확고하게 신자유주의라고 일컬을 만한 토대 위에서 경제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었다.[52] 이러한 시각은 보수는 물론 진보 언론에서도 나와 이를 근거로 민주당 정권을 까기도 했다.정작 보수 성향의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민주당과 정작 보수 성향의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민주당을 까는 보수. 뭥미? 경향신문 칼럼 장하준 교수 등도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정책 기조로 자리잡기 시작한 시점을 국민의 정부로 진단하고 있다. 다만 김대중 정부 시기를 신케인즈학파의 경제론(경기사정이 좋지않을 때 정부가 손놓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적극적인 시장개입은 안되며, 결국 일정부분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적당한 시장개입을 해야한다)에 따른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긴 하다. 어찌됐든 김대중 정부 시기 생산적 복지정책이 실시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 이 부분 또한 여전히 논쟁거리다.

첨언하자면, 한국은 여전히 시장 자유도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경우 그렇게 높은 나라는 아니다. 다른 영역은 선진국들 평균, 혹은 그 이상을 찍지만 정부의 부패나 각종 규제,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평균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2014년 5월 3일 작고한 노동경제학의 대부인 게리 베커도 노동시장이 한국 경제의 능률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한 바 있다. #

물론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것은 일정부분 반강제적인 측면도 있었는데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 IMF 외환위기 극복이란 명분하에 해고를 비롯한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많은 부작용[53]에도 불구하고 결과론적으로 외환위기 극복에 유의미했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다.

신자유주의가 민주당 정부 10년간 별다른 비판(사실 이를 비판하는 인사가 있기는 했어도 당시 기용된 "모피아"라고 불리는 경제관료들을 제압할 정도는 아니었다) 없이 도입되고 받아들여지면서, 진보 좌파 진영에서는 민주당계 정부에 책임을 물었다.(이것은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부상이 민주당 정부의 집권기간에 맞물려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 그들이 맞서야 했던 정부가 민주당 정부였던 것.)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 FTA 추진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진수로 평가받아 보수진영에겐 칭찬받고, 진보진영에게는 비난받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덕분에 이명박 정권에서 한미 FTA가 실현 단계에 이르자, 야당이 된 민주당에서 도리어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오만가지 압력을 불사하면서까지 신자유주의를 결국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54]

여담으로 한국의 FTA 전략은 꽤나 대국적인 전략이었다. 1차로 칠레(한칠레 FTA)나 싱가포르 같은 소국과 FTA를 추진해서 관련 숙련도를 높이고, 2차로 EU, 미국, 중국, 아세안, 인도와 같은 대규모 경제권과 추진해서 본격적으로 경제에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3차로 구소련 지역 중앙아시아 국가들 같은 몇몇 개도국과 체결해서 안정적인 자원 수급을 하는 전략이었다.

민주당 정부의 옹호 측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의 불가피성을 미국 등 세계적 흐름과 외환위기의 압력, 전경련과 보수 언론이 주도한 "샌드위치 경제론"에서 찾고, 비판 측에서는 FTA를 노사모 등 지지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노무현 정권에게 상당한 책임을 묻는다.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라 중도 보수"라는 비판도 이런 맥락의 비판이다.

이후 정권교체와 함께 한나라당은 FTA 추진과 민영화에 역점을 두었으며[55]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당선 초기 연설에선 대놓고 '작은 정부'와 '신자유주의'를 정책기조로 삼을 것임을 밝혔다.[56] 그 결과 인천국제공항KTX의 민영화, 감세 문제를 두고 대립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2011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연이어 패배한 후 2012년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선거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대폭 제거, 신자유주의를 상당히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7] 이를 대변해주는 2012년 대선 정국 최대의 키워드가 바로 경제민주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새누리당내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고안한 인사들은 예상대로 대선 이후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2013년 상반기 남양유업 대리점 사건을 기점으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점화되기는 했으나 이후에 점차 흐지부지되어서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다. 어느 순간 경제민주화는 쏙 들어가고 대신 나온게 규제를 죽입시다 규제는 나의 원수 경제활성화, 창조경제. 그 이전에 각 행정부마다 뭔가 '창조', '혁신', '개혁' 이런 단어를 좋아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 행정부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하지만 2016년에 기독자유당은 신자유주의를 나타내고 있다.(?) 머 어쩌라는건지..

8 관련 문서(가나다 순)

  1. 'New' liberalism이 아니다. 이쪽은 자유주의로 번역된다.
  2. 취소선 되어 있지만 틀린것 만은 아닌게 이것에 대한 뚜렷한 정의, 기준, 실체가 없다 .
  3. 케인즈학파적 세계관이 (미시)경제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 주 골자였고 이에 대해 기존의 케인즈 학파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4. 가령 하버드에도 로머 등 시장 친화적인 거물급 학자가 존재하고, 새고전파의 거점인 시카고 대학의 학부 교수진들은 개중 다수가 케인지언 성향인 프린스턴 출신이다.
  5. 70, 80년대 시카고대학 경제학과는 학부 교수진 14명 중 9~10명 가량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였을 정도로 리즈시절을 누렸다.
  6. http://faculty.washington.edu/cnelson/Chap11.pdf Keynes contended that monetary policy was powerless to boost the economy out of a depression because it depended on reducing interest rates, and in a depression interest rates were already close to zero. Increased government spending, on the other hand, would not only boost demand directly but would also set off a chain reaction of increased demand from workers and suppliers whose incomes had been increased by the government's expenditure. Similarly, a tax cut would put more disposable income in the wallets of consumers, and that too would boost demand. Keynes contended, then, that the appropriate fiscal policy during periods of high unemployment was to run a budget deficit. These ideas flew in the face of the conventional wisdom that budget deficits were always bad.
  7. 물론 리카디언 등가를 인정하더라도, 일정 조건에서는 감세 정책이 분명 효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케인지언 쪽에서 감세 정책을 옹호하면서 나온 지적이다. 실제로 배로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감세 정책의 효과가 아니라, 감세 정책의 무력함이다.
  8. 그런데 하이에크는 비록 시카고학파에 우호적이었으나 이런 견해는 주류 경제학의 일부인 시카고학파와는 근본을 달리한다.
  9. 조금 더 자세한 예시를 들어보자. 국제 에너지 가격의 추이를 살펴보면, 45년에서 70년까지는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70년대 들어서 그 유명한 오일 쇼크가 발생하면서 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이제 경제주체들은 각자 최적의 효율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석유 가격이 올라감에 따라 석유 메이저들은 새로운 유전을 찾거나 다른 에너지원을 개발하는데 투자하여 가격 상승에 대응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업들 역시 효율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투자하며, 소비자들은 이를 테면 자동차를 살 때도 연비 효율이 높은 자동차를 선호하여 구매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석유 가격이 급등을 대처하고 그 충격을 흡수하는 과정은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자유시장 체제에서 경제 행위를 변화한 주체들 하나하나의 입장에서 보면 가격 신호에 따랐을 뿐 전혀 어렵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반면 시장을 통제하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과연 어떨까. 관료들이 이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자유시장 체제보다 더 효율적인 균형(자원의 배분)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하이에크는 이를 흔히 구리 가격의 예시를 들어 즐겨 설명했다. 사실 구리든 석유든 가격변동에 따라 다른 분야에 파급효과가 큰 대상이면 뭘 끼워넣든 상관없다.
  10. 이런 주장이 흔히 보이는데, 정말로 극단적인 반(反)정부론자(혹은 하이에크처럼 개인적 경험에 의한 특수한 케이스)가 아닌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주의의 학문적 기반이 된 주류경제학에서 공교육의 전면적인 민영화를 주장하는 경우는 없다. 경제학적으로 교육, 특히 그중에서도 보편적인 공교육은 시장에 맡기면 필요한 만큼 공급되지 않는 재화라는 사실이 무수한 실증을 통해 이미 밝혀진 바 있다(양의 외부효과. 교육은 분명 개인의 소득향상을 위한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의 경제와 후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어떤 개인이 아무리 돈이 많아봤자 자국에 의사가 한 명도 없으면 제대로 된 보건서비스를 제공받기는 난망할 것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앞장선다는 세계은행이나 IMF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든 구제금융의 조건이든 간에 공교육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세계은행 같은 경우는 공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최근의 시장을 중시한다 싶으면 신자유주의 운운하는 세태를 볼 때 이런 주장은 허수아비 치기에 가깝다. 물론 세부적인 정책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라든지 대학 서열화 문제라든지...
  11. 여기서 다른 자유주의와 의견이 갈리는데, 사회적/문화적 자유주의에서 출신이나 개인적 특징은(결과론적인 틀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보호되어야하는 가치라면, 신자유주의에선 이는 경쟁이라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역차별/개입이므로 보호를 없애야한다고 본다.사실 그보다는 많은 경제학자들은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면 인종적/사회적/문화적 차별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Gary Becker의 차별 이론이 바로 그것. 예를 들어서, 어떤 사회에서 특정한 계층(흑인이라든지 여자라든지)이 능력(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차별을 받아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당연히 임금도 내려가게 되는데, 고용주들은 당연히 똑같은 숙련도를 가진 인력들을 더 싼값에 고용하려는 강한 유인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들을 고용하게 되고, 결국 임금이 올라가며 차별은 철폐된다. 만약 수치로 나타나는 차별(임금의 격차라든지)이 있다면 그것은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정 인종이나 지역의 공교육이 제 기능을 못한다든지, 여성들이 임신-출산의 문제로 경력단절의 디버프를 겪고 있다든지. 물론 이것은 민간 섹터의 노동시장에서 한정된 얘기고 대학이라든지 공공부문이라든지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대학 문제에서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무조건 소수자 특권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로인한 부작용(특혜를 받은 특정그룹의 학업포기율이 평균보다 몇 배는 높다든지)을 경계하고 대안(보편적인 공교육의 강화)을 추구한다.
  12.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대규모 시위나 파업은 물리력이나 정치력을 동원해 기존의 규칙을 어기거나 파괴하는 것으로 본다. 다수의 요구가 언제나 올바른 요구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며, 규칙을 지키면서 합당한 대가를 얻은 사람에게는 피해를 준다고 여긴다. 오직 협상이나 시장을 통한 거래만이 옳다고 본다.
  13. 흡사, 중동 문화권, 인도 문화권, 동남아 문화권, 중국 문화권을 싸잡아 아시아 문화권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유사하다.
  14. 오히려 프리드먼의 경우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사기업들이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15. 문맥을 끊지 않기 위해 첨부하는 주석: 미국의 산업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장된게, 산업별로 GDP 비중(2010년)을 보면 금융(8%), 부동산(12%), 제조업(12%), 사업체(12%), 의료(9%) 정도다. 즉, 제조업이 완전 쇠퇴했다고 해석하는건 옳지않다. 제조업 비중만 놓고 보면, 1980년대(20%대)보단 낮아졌지만 실제론 계속해서 성장했으므로, 부동산과 금융에 대한 제한이 풀린 이후 급격히 성장한 금융/부동산 영역, 그리고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IT부문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뎠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제조업 비중이 오히려 커진 주요 국가는 중국과 대한민국 정도밖에 없다. 만약 제조업 비중이 낮아진것만 가지고 제조업이 몰락했다고 한다면 1980년대에 GDP의 30%를 차지하던 제조업이 현재 15%로 떨어진 일본은 제조업의 붕괴라도 된단 말인가? - 물론 건축업 비중은 급락하긴 했지만. 한편 여기서 가리키는 상품자본주의의 상품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상품(commodity)이 아니라 재화(good)에 가깝다.
  16. 여러 선진국 중에 금융산업 비중이 미국만큼 높은 나라는 얼마 없다. 유럽이라고 했는데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금융산업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룩셈부르크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유별나게 금융업이 발달한(비중이 높은) 나라는 미국을 필두로 한 영미권 국가들(영국, 미국, 아일랜드, 호주, 캐나다) 과 스위스,홍콩,싱가포르 정도 뿐.
  17. 엄밀히 말하면 CIA는 쿠데타를 방관했지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18. 대기업이 시장 친화로 큰 게 아니라, 시장 친화체제에서 순응한 애들이 오늘날의 대기업이 된 거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시장 친화나 구조조정이 확실하게 이루어진 곳에서는 롤스로이스 등이 매각되거나 대우가 박살나는 등의 경향이 있었으며, 구조조정을 한 칠레는 오늘날 남미 최부국이 되었지만, 구조조정을 못한 아르헨티나는 망했다.
  19. 혹은 매각되는 공공부문
  20.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대체로 시장이나 기업에 관련된 것들 중에서 좌익들이 보기에 싫어하는 것들 전부.
  21. 시카고, 미네소타, 로체스터 등 미 중부 5대호 등지에서 활동하는 학파다. 반대로 케인지언이 지배적인 하버드, 프린스턴 등 동부쪽은 해수파라 한다.
  22. 밀튼 프리드먼 등
  23. 에드워드 프레스콧
  24. 제임스 뷰캐넌 등
  25. 정치 환경 속에서 관료, 정치인, 유권자들의 이기성을 상정한 학파다. 뷰캐넌은 유권자들의 이기심, 관료나 정치인들의 사익 추구 등으로 인해 예산이 과잉팽창되어 정부 실패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26. 사실 위에서 언급한 부류에 비하면 학파로서의 조건을 가장 갖추지 못한 동네다. 대체로 컨셉이 '학파?' '유파?' 그거 뭔가요 하는 컨셉이라.
  27. 래퍼, 마틴 펠드스타인 등,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따르면 펠드스타인 등의 일부 학자들이나 대다수의 신예 경제학자들은 통화론자나 케인지언 여부 따위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28. 일부 오스트리아 학파를 제외하면 현대에 주류로 존재하는 경제 학파들은 대체로 케인지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시카고 학파 조차도!
  29. 그들의 자유방임이론이 신자유주의의 뿌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고전파 경제학자의 대표주자 스미스는 (토건, 국방, 치안 등) 중요한 분야에 있어 정부의 적절한 개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영화와 시장화를 주장하는 현대의 신자유주의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또한 정경유착 및 악덕 상인들을 비판하고 부의 집중을 경계했던 스미스의 성향을 볼때 이들을 신자유주의로 보기는 어렵다.
  30. 행정학에서 민영화, 균형예산, 성과관리, 경쟁 등을 강조하는 사조다.
  31. 레이건은 어디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듣고서는 그게 뭔데? 그냥 신보수주의라고 하면 안 돼? 라는 식의 주장을 한바 있다.
  32. 하지만 정작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 학계의 주류와도 다른 주장을 많이 펼쳤다. 오히려 활동한 것만 놓고 본다면 시카고 대학 교수로 활동한 게 더 크다. 하이에크는 시카고 학파이기도 하다. 다만, 하이에크는 스스로를 경제학자보다는 사회학자로 여기다시피 한 바 있고, 그의 연구 방법론은 여전히 시카고를 위시한 주류 경제학과는 다르다.
  33. 경제적 보수주의, 사회적 자유주의를 취하는 건 맞지만, 환경규제나 총기규제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다.
  34. 오스트리아 학파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재야대통령 소리까지 듣는 론 폴,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대표적이다.
  35. 둘 다 케인즈 학파에 가깝지만 신자유주의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다. 다만, 맨큐는 부시 밑에서 보좌관으로 일했고 더 나아가 시장중심주의를 늘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단지 통화정책에 있어 정책의 유효성을 강조했을 뿐이다. 그린스펀은 잘못된 통화정책이 위기에 일조한 바 있다. 즉, 케인즈적 통화정책까지 신자유주의로 본다면 신자유주의자에 속할 수 있다.
  36. 신자유주의자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띈 정책과 아닌 정책이모두 있어서 애매하다. 법인세 및 종부세의 감세, 몇 차례의 이루어지지 못한 민영화 시도(MB정부는 민영화를 이룬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나 여러 FTA 추진, 비지니스프렌들리 기조의 규제완화 등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고, 4대강 사업과 고환율 정책 등은 케인즈주의적인 정책이었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케인즈적 관리주의 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몇 차례의 민영화 시도가 실패한건 국민의 반대도 컸다는게 함정이지만.(...) 더군다나 서울시장 재임 중 도입했던 시내버스 준공영제만 보아도 신자유주의자라고 하기에는...
  37. 이 인간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기회주의자, 속물에 가깝다. 근래 들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감명을 받았는지 대부분 시사적 표현을 보면 이쪽 관점에서 풀이를 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있다. 그러나 때때로 물가가 비싸다느니, 기업이 표절을 일삼으며 양심을 지키지 않는다느니 신자유주의자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통제되지 않는 시장에 비판적인 시각역시 혼재해 있어 애매하다. 일각에선 윤서인처럼 내로남불식으로 기업의 움직임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은 국가가 반드시 개입하길 원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길 원하는 그 자체야 말로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의 진짜 본질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한 뒤 소비자의 선택 운운하며 기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건 잘못됐다는 둥의 주장은 아무리 들어도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고찰한번 제대로 안해봤다는 뜻 밖에 안된다.
  38. 절묘하게도 저 짤방의 주인공인 노엘 갤러거는 신자유주의를 원수삼다시피한 인물이다. 고향인 맨체스터가 대처리즘에 박살났고, 노조 강경 진압에 노동자 가정이던 집안도 와장창됐기 때문.
  39. 단,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현실 경제에서 개도국 기업과 선진국 기업은 무조건 경쟁만 하는 것도 아니며 분업을 하는 케이스도 많다. 개도국 기업이나 선진국 기업이 처한 환경도 굉장히 다르다. 가령 인건비 부담의 차이는 개도국이 더한 반면, 시장 접근성은 선진국이 더하다. 케바케. 거기에 결정적으로 개도국 기업들이 우리 선진국의 질좋은 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해요 라며 징징댈 동안 선진국 기업들은 우리 싼 값에 인력써서 물량공세피는 개도국 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해요 라며 징징대고 있다. 이건 기업 뿐만 아니라 인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40. 밀튼 프리드먼의 발언이다.
  41. 다만 나오미 클라인이나 장하준 교수의 저서에 대해서는 사실이나 방법론적 측면에서 무수한 오류가 발견된다.
  42.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오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부 독재세력이 자기들 지지기반 유지를 위해 대기업 구조조정을 거부했다.
  43. 단, 원자재에 과도하게 의존된 경제구조와 여전한 빈부격차 등으로 완전하게 해결되었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44. 이 말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한 폄하라고 보기보다 러시아가 말로는 시장경제 따위를 외쳤어도 실제 적용은 개판으로 했다는 의미다. 의외로 개도국 중에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다른 사례로 아르헨티나. 시카고 보이즈를 동원해 경제를 운용했는데 실제 경제 자유도 개선은 말레이시아만도 못했다고 한다.
  45. 헤리티지 재단 지수를 메기면 최상위권은 영미권과 북유럽+독일권, 그리고 홍콩, 싱가폴 같은 구역이 나눠먹고 있다. 그나마 예외인 동네가 노르웨이.
  46. 우루과이에 밀려 1인당 gdp위를 뺏기고 콩라인이 되었다.
  47. 물론 빈부격차 등의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건 칠레만의 문제도 아니고 남미 전반의 문제다.
  48. 이러한 우려는 한미 FTA를 체결하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표한 바 있다.
  49. 이전 글에서는 파시즘을 운운했는데 원조 파시즘은 반자본주의, 통제경제를 표방했다. 군사독재는 파시즘의 동의어도 아니고 이런 군사독재 국가 중에서도 80년대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루어진 경제 자유도 개선 분위기 속에서 평균을 넘어서 진짜 경제 자유도 개선을 이룩한 동네는 칠레 등을 빼면 드물다.
  50. 이 말이 꼭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은 아니다
  51. 김영삼 정부 때에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외국인 주식시장 규제 완화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긴 했으나 동시에 케인즈주의적인 정책도 같이 병용되곤 하였다. 사실 지금도 비슷하지않나
  52. 이전 글에서는 대중 경제론을 제시했으나 대중 경제론의 내용은 DJ가 영국 유학을 하기 이전 진보경제학자들의 영향을 받다시피한 서적이다. 민주당 전/현직 정치인들 중에서 김대중은 어떤 의미로 대처빠에 가까웠다. 민주당이 유럽 가면 중도보수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 참여정부나 줄푸세를 외쳤던 MB정부 때도 예외없이 늘었던 각종 규제가 DJ 때는 오히려 대폭 완화되거나 없어졌다.
  53. 비정규직 양산과 2003년 카드대란, 양극화 문제, 부동산 폭등 등
  54. 다만 노무현 대통령 본인은 이런 평가에 좀 억울한 면을 비치기도 했다. 진보에선 자길 신자유주의자라고 부르고, 보수에선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는 것. 실제론 사회자유주의자에 가까웠다고 보는게 맞을듯. 실제 참여정부가 내세운 이념이기도 했고.
  55.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 자체보다는 그 요소들 중 시장확대와 규제철폐를 집중적으로 따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줄푸세"(세금은 줄이고(감세),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법치주의)가 이를 잘 요약했다고 볼 수 있다.
  56.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도 그랬거니와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정책적 측면에서 민주당보다 훨씬 더 시장친화적인 면이 떨어졌다. 특히 MB정부는 더 관치 우호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준구 교수도 이런 주장을 했으며, 4대강은 관치의 대표적인 실례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오히려 정부실패의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는 공기업의 경영 방만 역시 MB대에 커졌으며(수자원공사 같은 경우 4대강 사업의 비용을 일부 떠맡은 거지만) 민영화는 다른 의미로 4대강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메우려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후술할 기업들은 알짜라서 돈을 많이 받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MB는 굳이 말하면 대기업 친화적인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대기업 프렌들리와 시장 프렌들리는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57. 18대 대선에 나오는 세 명의 주요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해볼 때 복지 방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도 '무상'이라는 용어를 찾기 쉬워졌을 정도. 심지어는 보수란 단어까지 당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때문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일부 진보인사들에게 비판을 받았듯이 새누리당은 당시 일부 보수인사들에게 보수의 색깔을 버리려한다며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