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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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Invalides (Hôtel des Invalides) [1]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건축물.

처음에는 루이 14세 시대인 1671년에 착공하여 1706년에 완공한 부상병 간호 시설이었다. 1670년 11월에 루이 14세가 노병들과 불우한 퇴역군인들을 위한 시설을 건립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시초.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리베랄 브뤼앙(Libéral Bruant)이 건축을 맡았다.

1800년 9월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역사적 영웅인 튀렌 자작[1]의 시신을 앵발리드의 돔 교회로 옮겨 안치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래 영묘로서 쓰이기 시작했다. 원래 튀렌 자작의 시신은 역대 프랑스 왕들의 무덤인 생 드니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역대 국왕과 왕비의 무덤을 파괴한 과격한 혁명파들도 그의 시신만은 보전해 주고자 파리 식물원에 따로 옮겨놓은 상태였다. 1808년에는 루이 14세 시기의 명장인 보방(Vauban) 후작의 심장이 안치되기도 했다.

이후 세인트헬레나에서 숨을 거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시신이 1840년 12월 15일에 거국적인 국장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자, 이 곳으로 이장하여 전용 영묘로 삼게 되어 20년이 넘는 공사 끝에 1861년 4월 2일에 나폴레옹 1세의 시신이 지금처럼 안치되게 되었다.

그로부터 제롬 보나파르트, 조제프 보나파르트 등 나폴레옹 1세의 형제들과 페르디낭 포슈 등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지휘한 장군들이 안장되었으며, 라 마르세예즈의 작곡가이자 군인인 루제 드 릴의 시신도 1차 대전기에 시신이 이곳으로 이장되어 나폴레옹 가족과 프랑스의 군사적 영웅들의 영묘로서 사용되고 있다. 1940년에는 오스트리아 에 있던 나폴레옹 2세의 시신도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앵발리드로 이장되어 사후에나마 그의 아버지와 함께하게 되었다.[2]

그래서 오늘날엔 팡테옹과 함께 대표적인 파리의 위인 추모시설이 되었다. 가 보면 나폴레옹 1세의 적갈색 관은 대놓고 이 건물의 주인공처럼 위엄찬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앵발리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군사 박물관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군사 박물관 앵발리드를 비롯한 박물관들과 앵발리드 돔 교회가 한 데 있고, 그 돔 교회 안에 나폴레옹 1세의 무덤이 있는 것. 한국으로 치면 현충원전쟁기념관을 합쳐서 거대한 건물에 같이 넣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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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프랑스 침공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후, 1940년 6월 28일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6월 28일 새벽 5시 30분에 파리를 방문하여 겨우 3시간 동안 머물렀는데, 이것이 그의 평생 단 한 번의 파리 방문이었다. 이 때 히틀러는 앵발리드를 들러 말없이 나폴레옹 1세의 관을 지켜보았다고 하는데,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에 따르면 히틀러는 특히 앵발리드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이후 같은 해 12월 15일에는 나폴레옹 2세의 시신을 앵발리드로 이장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12월 18일에는 소련 침공 계획을 작성하라는 총통 명령 21호를 군부에 하달한다. 나폴레옹의 원한 달래기? 그러나 그는 나폴레옹의 운명을 피하고자 모스크바 점령을 미루고 우크라이나로 진격한 결과, 나폴레옹보다 더한 운명을 맞이했다.
  1. 그의 작위명을 따 흔히 튀렌, 튀렌느라고 언급되는 루이 14세 시대의 명장. Henri de la Tour d'Auvergne, Vicomte de Turenne. 1611~1675.
  2. 단, 나폴레옹 2세의 심장과 창자는 아직도 에 있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