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다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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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口多聞(1892.8.17 ~ 1942.6.6). 구 일본해군의 제독.

1 상세

도쿄 출생. 이름의 기원은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아명인 다몽마루(多聞丸)(이쪽의 기원은 비사문천의 의역인 다문천)에서 이름을 따 명명했다고 한다.소싯적에는 툭하면 싸우는 열혈남아였다고 한다. 또한 한끼에 다섯명 분의 밥을 먹는 대식가이기도 했다. 심지어 진주만 작전 이후 야마토급 전함에서 열린 지휘관급 회식에 프랑스 요리 풀코스가 나왔는데도 식후 감상이 "정말로 훌륭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양은 부족했지요."였다고.

해군병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하여 제1차 세계대전 때 구미파견 함대에 소속되었다. 수뢰, 포술담당 장교였으나 그의 전문영역은 잠수함인 덕에 대전 당시에는 독일 U보트의 회항요원으로도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후 경순양함 이스즈와 전함 이세의 함장을 지냈고, 태평양 전쟁 당시 항공전대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특정한 계파에 속하지 않았기에 야마모토의 눈에 들지 못했고, 그 때문에 실력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아 출세길이 막혔다는 소리도 있지만, 사실 장성까지 진급하는데 걸린 시간은 나구모 주이치보다도 빠르고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비교해도 겨우 1년 밖에 더 걸리지 않는 등 여타 엘리트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1] 최종계급은 미드웨이에서의 전사로 인한 중장 특진이지만, 이게 아니었어도 미드웨이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았다면 무난히 중장으로 진급했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

영국의 해군 제독 호레이쇼 넬슨을 존경해 함대 운용에 있어서도 넬슨을 본받아 매우 공격적인 성향으로 유명했다. '상황파악이 안되고 뭐가 뭔지 모르겠으면 일단 공격하고 보자'는 주의였다는 모양. 부하들에게도 '지휘가 혼란한 상황에서 잘 모르겠으면 그냥 맹렬히 공격해라. 그러면 나의 지휘와 일치할 것이다.'라며 공격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진주만과 미드웨이의 일화 때문에 나구모와 곧잘 비교되곤 하는데, 나구모가 전력보존을 중시하는 신중파라면 야마구치는 일단 적을 두들기고 보는 닥공파.

히류와 소류가 소속된 제2항공전대의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 파일럿들에게 지독한 훈련을 시켰고, 덕분에 제2항공전대의 파일럿들은 실전경험이 없음에도 에이스급 파일럿들로 육성되었다. 다만 이 훈련과정에서 파일럿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갔기 때문에 파일럿들에게 '미치광이 다몬', '사람잡는 다몬'이라 불리기도 했다. 반면 특유의 맹장 기질로 인해 파일럿들을 제외한 부하와 동료들로부터는 신뢰가 두터웠다는 모양.

2 이력

2.1 진주만 공습

태평양 전쟁 당시 나구모 주이치 제독의 제1항공함대 소속 제2항공전대 사령관으로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다.
전과 자체는 대단한 것이었으나 당초 목표는 진주만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고, 이에 야마구치는 나구모에게 '2차 공격 준비 완료'라는 신호를 보내 빙 둘러서 계속 공격할 것을 재촉. 그의 휘하에 있던 장교들 역시 3차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야마구치는 "아마도 나구모는 공격하지 않으려 할 걸?"이라며 나구모의 속내를 읽어내고는 직접 공격요청을 넣지는 않았다.[2]

나구모는 자신들이 가져온 폭탄과 어뢰들을 정박중인 미함대를 폭격하는데 9할 이상 사용해버렸는데 언제 미군 항공모함과 맞닥뜨릴지 알 수가 없었고, 미군 잠수함이 탐지되고 있던 상황인지라 철퇴를 결정한 것. 거기다가 함대결전사상의 입장에서 미국 태평양 함대의 전함을 모두 항해불능으로 만들었으니, 목표도 90%는 이룬 것 등을 들어 철수를 결정한다.

2.2 미드웨이 해전

원래 야마구치 본인 역시 미드웨이 공략은 강하게 원하던 바였으나 그가 희망하던 시기는 겨울 무렵이었고, 준비 부족을 이유로 6월 공략에 반대한다. 하지만 결국 묵살당하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

아군 정찰기가 미군의 함모를 발견한 시점에서 "병장을 교체[3]하지말고 최대한 빨리 출격시켜서 미 항모를 공격하자"는 건의를 했으나 나구모에게 각하당했다. 나구모가 이 건의를 듣지 않은 이유는 미드웨이 비행장의 미군기들로부터 함대를 보호하느라 출격한 전투기들의 연료가 바닥난 시점이라 공격대에 호위 전투기를 붙일 수 없다는 점. 또한 미드웨이섬을 폭격하기위해 출격한 1차공격대가 이제 막 귀환했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야마구치의 공격대 출격 건의는 적합하지 않은 무장으로 인한 공격의 비효율은 넘어가도, 출격하는 공격대를 이렇다할 전투기 호위없이 방치하고 방금 귀환한 공격대가 연료부족으로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는 약 200여명의 정예 파일럿의 손실을 깔끔히 무시하자는 소리였던 것. 후대에 이 판단은 전투기의 호위 없이 출격한 공격대가 미군측 전투기를 뚫고서 미항모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을지, 미항모에게 타격을 입혔다 치더라도[4] 수백의 함재기와 파일럿이 손실된 상황에서 작전 목표였던 미드웨이 섬의 공략이 가능했을지가 의문시되고 있다.

어쨌든 결국 정찰기의 보고와는 달리 미군 항공모함의 공격은 훨씬 빠른 시각에 이뤄졌고, 일본군은 나구모의 제1항공함대 소속의 4척의 항공모함 중 3척이 5분만에 날아가는 참패를 겪는다. 이 와중에도 그가 지휘하던 항공모함 히류만은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2척 이상의 미국 항공모함과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퇴각을 생각한 나구모와 달리 미 항모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야마구치는 자신이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해 공격을 계속해서 미 해군 항모 USS 요크타운을 대파시키는 수훈을 세우나[5][6] 나머지 항모인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역습으로 히류도 공격당해 병사들을 퇴함시키고 그는 함장인 가쿠 대좌와 함께 히류 호와 운명을 함께하며 생을 마친다.[7]

3 평가

당시 일본군에서 항공모함을 주력으로 한 기동부대와 항공전력의 강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선진적인 지휘관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항공전에 대한 지식 자체는 그리 해박하지 못했다는 모양. 기동부대의 사령관이 된 뒤로 언제나 부하들에게 '이러면 되나?'라는 식으로 일일이 물어보며 지휘를 내렸다고 한다. 체면치례 신경 안 쓰고 부하들에게 물어봐가면서라도 제대로 된 지휘를 하려 한 자세 자체는 높이 살만 하다.[8]

상술한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는 지옥 훈련 탓에 파일럿들의 실력은 뛰어났으나 휴식을 주지 않았고, 중일전쟁 당시에도 폭격기들을 호위 없이 저공폭격을 강행시켰다가 큰 피해가 발생해 당시부터 파일럿들에게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함재기 운용 개념도 마치 함포를 쏘는 것마냥 일단 닥치고 날리고보자는 식으로 파일럿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던지라 파일럿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영 좋지 않았던 모양. 괜히 사람 잡는 다몬이라 불린 것이 아니다. 덕분에 병기와는 달리 한번 잃고나면 보충이 어려운 인적자원을 경시하는 성향이 강했던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이렇듯 유능한 장군임은 인정받지만 의외로 평가가 많이 갈리는데, 미래의 해전에서 중역이 될 기동부대의 육성에 힘썼지만 동시에 그 기동부대의 핵심인 파일럿들에 대한 처우는 정작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이 그 핵심적인 이유들.

4 미디어

진주만 기습 공격을 다룬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도 등장한다.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 주재하에 연합함대 기함 함상에서 열린 막료 회의 때, 제2항공전대의 항속 능력을 문제삼는 나구모 주이치 중장에게 "좋소! 우리 항공전대는 하와이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족하오. 공격을 완료하거든 우리는 바다 위를 떠돌며, 당신의 부대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미끼가 되리다!" 라고 일갈한다. 이 말을 들은 나구모 제독이 발끈해서 벌떡 일어나자, 그에 질세라 역시 벌떡 일어서서 서로를 노려보면서 험악한 분위기를 띄운다(야마모토 제독이 조용히 일어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기습 후에는 3차 공격을 위해 큰 목소리로 함재기 발함을 지시하다가, 나구모의 기함에서 귀환 신호기가 올라가는 걸 보고 황당해한다. 다혈질이었던 사람 됨됨이가 미디어에도 충실히 반영된 셈.

드리프터즈에선 안 죽고 이세계로 표류했는데, 연재판에선 안 나온다. 단행본에는 등장.

일본에서 제작한 전쟁 영화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에서도 등장한다. 아베 히로시가 분하여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주며 해군 내에서의 개혁적 사상을 갖고 있는 해군 제독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속에서는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상당히 친분관계가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가공전기에서는 주인공 보정의 소유자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가 나름 일본군 내에서는 판단력도 훌륭하고 열혈남아였던 점, 미군에게도 인정받았던 점. 그리고 역시 능력있는 축에 드는 오자와 지사부로못 생겼다는 점[9] 등 때문인 듯.

가공전기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현대에서 타임슬립한 주인공 쿠루스의 설득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살아남는다. 그후 미군과 싸워 여러차례 이기지만 결국 오자와가 거의 전함대를 말아먹고 전사하자 야마토와 시나노[10]로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려는 에놀라 게이라도 막으려 한다. 결국 에놀라 게이를 격추시키지만 쿠루스를 타임슬립시킨 존재인 요그 소토스가 개입해 에놀라 게이가 부활하여 야마토에 핵폭탄을 투하해버린다.

칸코레 갤러리에선 한때 따봉마루(...)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위의 초상화에 따봉을 합성한 짤이 꾸준글로 올라오곤 했었다.
  1. 오히려 첫 아내를 잃고 홀아비가 되어 자식들(첫 아내인 토시코와는 아들이 둘 있었고, 삼남을 출산하던 와중에 사망)을 홀로 돌보느라 난처해 하는 야마구치 다몬에게 재혼을 권유한 게 당시 해군 작전본부 기술부장인 야마모토 이소로쿠이다. 개인적인 일까지 충고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관계였던 사람인데도 눈에 들지 못해서 출세길이 막혔다는 건 전형적인 헛소문.
  2. 같은 시각 연합함대 본부에서도 참모들이 진주만을 재차 공격해야한다고 주장했으나, 야마모토 이소로쿠 역시(…) '나구모는 공격하지 않을거다'라며 명령을 내리지 않고 현장의 판단을 우선했다.
  3. 일본군의 공격기 대부분이 함대를 공격하기 위한 어뢰가 아니라 비행장을 폭격하기 위한 육상 폭격용 폭탄을 장비하고 있었다.
  4. 타격이라는 것도 당시 일본의 육상 폭격용 폭탄으로는 미항모를 격침시키는 것까지는 힘들고 갑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기능을 상실시키는 정도.
  5. 세번째 공격을 준비할 때 녹초가 된 조종사들에게 "이렇게 사람을 막 부리는 나를 용서해주게나."하면서 담배를 권했다는 일화가 있다.
  6. 다만, 공격 명령은 차석 지휘관인 아베 코우키 제8전대 사령관이 내린 것으로, 나머지 함선이 퇴각하는 동안 시간벌이를 위한 공격명령이다. 야마구치 다몬은 자의적으로 공격을 한 게 아니라 명령에 따른 것.
  7. 단 이 침몰은 공격 직후 침몰이 아니라 수시간에 걸쳐 매우 천천히 침몰했다고 한다.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으나 사실상 자살이기 때문에 평가가 엇갈리게 되는 최후다.
  8. 애초에 잠수함과 전함을 맡아왔던 그가 항공전에서까지 해박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군인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분야가 있는 셈인데, 자기보다 항공전에서 좀 더 전문적인 부하들을 믿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 또한 제독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괜한 고집으로 비전문적인 결정을 내려 아군을 사지로 내몬 군인들도 역사 속에선 수두룩하다. 지휘관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을 부리는 자리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9.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오자와 지사부로는 외모가 영 별로(...)여서 당대엔 오니가와라(鬼瓦)란 별명까지 있었다.
  10. 역사와 달리 침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