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1 강원도 양양군

2 중국의 지역명

중국 후베이 성에 위치한 곳, 한자도 襄陽으로 1번과 같다. 코에이삼국지 시리즈를 하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공교롭게 강원도 강릉시 역시 양양군 아래 있다. 더욱이 여기도 한자까지 같다(...). 삼국지 한반도설 사실 형주는 한반도입니다

교통의 중심지로 초(楚)나라가 전국시대에 이르러 영성(강릉)에서 천도한 이래 2천년 가까이 호북성 일대의 중심지였다. 후한 말기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13주 중 하나인 형주의 주도(이전에는 무릉군 한수현)로 삼국지 독자에는 친숙한 도시다. 하지만 이후 삼국시대 말 주도가 강릉이 되면서 형주성 = 강릉성이 되었고.. 이하는 형주 항목 참조.

여하간, 양양은 육조시대 이래 남쪽 한족 왕조들의 군사적 요충지인 형주 가운데서도 군사적 요충지였다. 특히 장강-회수 유역 사이에서 북방민족을 방어했던 남송 시대에 양양은 침략하는 입장에선 심히 곤란한 성이었는데, 성곽은 튼튼하며 주변엔 깊은 해자가 파여져 있어서 기마대가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당시 은 물론이고, 세계최강이었던 나라 군세도 여기서 막혀 남송 공략에 애를 먹었지만 결국 이슬람 기술자를 초빙하여 개발한 회회포를 이용하여 6년을 포위한 끝에 결국 함락시킬 수 있었다.[1] 그리고 이 양양 공방전의 패배는 남송의 멸망으로 직결되었다.

김용사조영웅전신조협려에서도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곽정황용 부부가 몽골에서 남하하여 정착한 땅이며, 곽부, 곽양, 곽파로 3남매가 태어나 자란 뜻깊은 곳. 곽정은 실존인물인 절도사 여문덕[2]을 도와 이곳에서 몽골의 남하를 30여년에 걸쳐 방어해냈으나, 결국 쿠빌라이 칸 시절 양양성이 함락되면서 곽양을 제외한 일가가 순사하였다.

원나라, 명시대에는 시대의 흐름에 의해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능력이 사라지면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내부 변방지대화 하여 치안이 혼란하고 도적이 번성하는 골아픈 지역으로 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청나라때 주변 지역만큼 경제가 회복되면서 지금도 호북성에서는 상당히 큰 도시며, 1949년에 강 건너 옆 도시인 번성과 합쳐져서 양번시(襄樊市)가 되었다가 2010년 상양시(襄阳市)로 명칭이 바뀌었다. 관우조인, 서황, 방덕 등의 형주 공방전이 번성에서 일어난거야 유명한 이야기.

3 중국의 前 쇼트트랙 선수 양양(A)

자세한 내용은 양양(A)를 참조.

4 중국의 前 쇼트트랙 선수 양양(S)

양양(S) 문서를 참조.
  1. 덕분에 딴 이름이 무려 양양포이다. 회회포는 프랑스포를 의미하는 불랑기포처럼 굳이 직역하면 이슬람포라고나 할까..
  2.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여문덕을 너무 푸대접해서 눈물이 나올지경인데, 소설에서 여문덕은 소심한 탐관오리 같은 인물로 묘사되나, 실제 정사에서는 곽정 패밀리가 한 업적 모두가 여문덕과 동생 여문환의 업적이다. 여문환이 정사와는 정반대로 묘사 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결국 원나라에 항복, 양양성이 함락된것이 치명타가 되어서 남송이 망한 것 때문에 폄하한 것 같은데...솔직히 아무지원없이 4년간을 버티다가 모두 굶어죽을 상황이 되자 백성들을 위해 항복한건데 취급이 너무 심해서 눈물이난다. 몽골 답지않게 양양 주변지역을 중국 배 5000척과 이슬람인 기술자들과 사천 등지에서 노획한 무기 및 그곳에서 잡아온 중국인 보조병들까지 끌고와서 그냥 요새화를 시켜버리고 보급선을 끊어버리는 행동을 한 것이 크다. 당시 남송 정부는 범문호가 지휘하는 10만의 병력을 지원하기도 하고 수천 단위의 병력을 양양성과 연결 시키기 위한 과정중에서 잃는 등 노오력을 했으나 요새화를 한 몽골군에게 격퇴당했다. 원에 항복한 여문환이 인근 성주들에게 항복을 종용해 많은 성들을 무혈입성한 것은 무시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