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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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Leip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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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시의 문장
위치Lage_der_kreisfreien_Stadt_Leipzig_in_Deutschland.png
국가독일
작센
인구544,479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시장Burkhard Jung (사민당)
시간대UTC+1 (서머타임 준수)
한국과의 시차-7시간

1 개요

Leipzig
Heldenstadt (영웅의 도시) [1]

독일의 도시이자 작센 주 최대의 도시. 베를린 남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엘스터 강을 접하고 있다. 신성 로마 제국 이후 무역 도시로 번창하였으며, 바흐, 멘델스존, 슈만 등의 걸출한 음악가들이 활동한 음악,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며 주도 드레스덴과 함께 작센 주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에 속하면서 그 명성이 퇴색되기도 하였으나, 1990년 독일통일 이후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 유명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거점 도시이자 RB 라이프치히라는 축구 팀의 거점도시이기도 하다.

통일 이후에는 자동차 공업이 발달하고 있으며, BMW포르쉐가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차렸다. 포르쉐는 카이엔, 마칸, 파나메라를 라이프치히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BMW는 i3, i8, X1, 1시리즈, 2시리즈를 라이프치히에서 생산 중이다.

라이프치히 전투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독일 현대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다.

1989년 12월 11일 라이프치히, "우리는 하나의, 그리고 새로운 독일을 원한다!" 라고 쓰여져 있다.

동독 붕괴 당시 여기서 첫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소위 '월요 시위' (독일어 : Montagsdemonstrationen)로 불린다. 1980년대 초부터 라이프치히 중심가에 위치한 루터교 니콜라이 교회 (Nikolaikirche)에서 담임목사 크리스티안 퓌러(!) [2]의 주도로 열리고 있었던 기도회가 1989년 9월에 들어서서 반정부 성격을 띠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동독 당국이 강경 진압[3]을 하기 시작하자 10월 9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시위가 동독 정부의 예상과 달리 라이프치히를 넘어서서 드레스덴, 카를 마르크스 슈타트, 동베를린 등 주요도시에 까지 번지기 시작해 동독 당국의 통제 밖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동독 정부는 당황해 지도자였던 에리히 호네커를 축출했다. 얼마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독일통일의 첫 시발점이 되었으니 이 변혁의 시발점이 된 시위가 처음 일어난 라이프치히가 얼마나 독일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2 역사

드레스덴과 마찬가지로 본래 슬라브 족의 거주지로 건설되었으며 명칭은 슬라브 어로 '보리수가 서 있는 곳'을 뜻하는 Lipsk에서 따왔다.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015년으로 2015년으로 정확히 천년(!)이 된다. 1409년 라이프치히 대학교가 설립되고 나서 라이프치히는 법학과 출판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영향으로 분단 이전 독일 제국 대법원이 베를린이 아닌 라이프치히에 위치해 있었으며 출판업의 경우 동독 시절을 포함한 오늘날까지도 라이프치히 도서 박람회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가 이 근처에서 벌어졌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에 들어서면서 라이프치히는 독일뿐만 아니라 중부 유럽의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독일에서 가장 큰 중앙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때 라이프치히의 경제가 발전하고 이 같은 경제 발전이 음악에 대한 후원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전에도 바흐가 이 곳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었지만.... 어쨌든 이 당시 라이프치히는 독일 음악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된다. 개요에 언급한 대로 독일 음악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들이 이 도시를 거쳐갔으며 특히 펠릭스 멘델스존이 1843년 이 곳에 설립한 음악원은 현존하는 독일 음악 대학 중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라이프치히도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으나, 그 피해는 말 그대로 녹아버린 이웃 도시에 비하면 미미했다. 전쟁 이후 동독에 속하게 되면서 라이프치히의 무역업, 운수업은 시망 상태가 되어 버렸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물들도 피해를 적게 입었으면서도 동독 당국에 의해 철거를 당하게 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래도 동독 내에서는 중요한 산업 도시 중 하나로 계속 남아 있기는 했었다.

개요에서 서술한 대로 1989년 9월 동독 정권을 무너뜨린 비폭력 시위가 이곳에서 일어났으며, 통일 이후에는 도시 재정비 사업과 산업 재건 정책으로 과거의 명성을 어느정도 되찾아가고 있다.
추가 바람.

3 특징

중앙역이 상당히 크다. 1915년 당시 독일 최대 역으로 손꼽혔으며 분단 이전 라이프치히의 번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금은 중앙역에 상당한 규모의 쇼핑몰이 들어서 있으며 여기서 2013년에 완공된 지하 S반인 'City Tunnel'노선이 시가지를 따라 연결되어 있다.

이곳이 독일 통일의 시발점이 된 '월요 시위'가 일어난 곳이라 도시 곳곳에 그 당시 해당장소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어와 영어로 작성되어 있으니 독일어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 안내판을 읽으면서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그나마 구 동독 지역에서 잘사는 동네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썩어버린 건물들이 은근히 많다. 심지어 중앙역 주변과 시가지 내에도 관리가 안되고 흉물스럽게 버려져있는 건물들이 꽤 존재한다. 4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은 갈길이 먼 양독일 사이의 경제적 통합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는듯. 그래도 1989년 당시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진 거다. 그 당시에는 일부가 아니라 아예 도시 전체가 그랬으니까.

나머지는 추가 바람.

4 볼거리

  • 니콜라이 교회 (Nikolaikirche)

1165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후 고딕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었다. 1539년 개신교회로 바뀌었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하고 오래된 교회로 보이겠으나 사실 이곳은 바로 소위 월요 시위의 촉발점이 된 기도회가 시작된 곳으로 1989년 9월 바로 이곳에서 시민들이 비폭력 시위를 벌이기 시작함으로서 1년간의 독일 통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독일인들한테는 곧 통일의 성지인 셈. 안에는 당시 쓰였던 피켓 구호와 팜플렛, 현수막들이 전시되어있다. 아직도 개신교회의 기능을 하는 곳이니 예배 시간에는 사진찍는 것에 대해 주의할 것.

  • 토마스 교회 (Thomaskirche)

12세기에 처음 지어져 이후 루터교 교회로 이용되고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바로 이 토마스 교회에서 1723년부터 타계한 해인 1750년까지 합창단 감독으로 일했으며 이곳에 그의 묘소가 있다. 교회 한켠에는 바흐가 생전에 쓰던 악기들이 일부 전시되어 있으니 클래식 덕후라면 한번 찾아가도 괜찮을 듯 하다.

  • 아우어바흐 켈러 (Auerbachs Keller)

15세기부터 운영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괴테파우스트 (!)에도 등장할 만큼 매우 유서깊은 레스토랑이다. Mädlerpassage라는 쇼핑가 지하에 위치해있으며 지하 입구 위에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레스토랑 내부는 일부가 양조장처럼 꾸며져 있으며 파우스트 작품 속의 내용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감자 수프와 작센 주 향토요리가 추천된다. 동상 주변에 관광객들이 매우 많으니 유념할 것.

  • 구시청(Altes Rathaus)

라이프치히 중심가에 위치해있다. 1566년 세워져 1905년까지 시청으로서 기능하였으며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앞이 광장이며 여기서 때때로 길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시청 건물 밑에는 기념품 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중앙에 지하 S반역이 위치해 있어 이것을 타고 중앙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 파울리눔(Paulinum)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위치해 있다. 본래 이곳은 Paulinerkirche란 이름의 교회가 위치해 있었으나 동독 시절이던 1968년 시 당국이 격렬한 반대를 묵살하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 철거해버린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이 교회에 대한 재건이 논의되었고 2009년 라이프치히 대학교 소속의 교회로 기존 디자인과 현대적 디자인을 조합해 재건되었다. 구 시가지에 있는 건물들 중 얼마 안되는 최신식 건물 중 하나이다.

  • 라이프치히 전승 기념비(Völkerschlachtdenkmal)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의 승리 100주년 기념하여 1913년 라이프치히 교외에 세워졌다.

  • 멘델스존 하우스 (Mendelssohn-Haus)

멘델스존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일하던 시절부터 타계할때까지 머무르던 집이다. 동독 시절 방치되어 있다가 1997년 타계 15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했다.

추가바람

  1.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로 이어진 1989년의 동독 혁명이 이곳에서 처음 일어난 것을 기념하며 붙여진 별명이다.
  2. Christian Führer, 성이 독일을 말아먹은 어떤 인간 말종직책과 같지만 그 인간과는 전혀 다른 훌륭한 분인 것을 상기하자. 안타깝게도 2014년 6월 30일 71세를 일기로 작고하셨다.
  3. 사실 동독 당국은 단순 강경 진압을 넘어서서 불과 3달전 중국에서 벌어졌던 천안문 6.4 항쟁 당시의 유혈 진압을 참고할 생각까지 했다! 다행히도 이 안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해 거부되었고, 동독 공산당도 천하의 개쌍놈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흐지부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