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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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어 - Edirne
그리스어 - Aδριανούπολις
불가리아어 - Одрин

터키의 대도시 이스탄불 서쪽, 그리스불가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도시로 과거의 이름은 아드리아노폴리스.

고대에는 트라키아인의 땅으로 우스쿠다마(Uskudama)로 불리우다가 기원전 2세기 경 로마에 합병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발칸 지배의 거점으로 성곽을 지었고, 황제의 이름을 따서 하드리아노폴리스로 불리우게 되었다. '아드리아노플'은 영어식 명칭.

이후로도 발칸 반도의 중요 도시로서 기능해왔다. 378년 바로 이곳에서 벌어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동로마 황제 발렌스가 고트족과의 싸움에서 군단이 전멸당하고 자신도 전사하는 불운을 맞이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쇠락을 상징하는 사건.

거점도시로서의 아드리아노플의 위상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에도 이어져, 제국의 제2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다.[1] 동로마 황제들이 즐겨 머물던 곳이었으며 콘스탄티노플에 변고가 생겼을 경우 이곳으로 피난하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며,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에게도 현재 에디르네로 개명당한 이후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전 한동안 수도 역할을 했으며 전략적, 경제적 핵심지였던 비중 있는 도시였다.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불안한 지역이 어떻게 동로마-오스만 양대 제국의 핵심 도시 역할을 할 수 있었냐는 의문이 들 만큼 이 지역에서는 전투가 잦았고, 함락당한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이유는 유럽 방면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이 도시를 함락시키거나 무력화할 필요성이 있으며, 동로마 제국 스스로도 아드리아노플이 포함된 트라키아 지방 동남부지역은 시작부터 콘스탄티노플의 3중성벽까지 제대로 방어하기 힘들 정도로 지형의 혜택을 못받는다고 단언할 정도로 지형방어효과가 없는데, 그나마 방어거점으로 활약한 것이 아드리아노플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럽 방면에서 아드리아노플이 함락되면 다음에는 콘스탄티노플 차례가 되므로 공격군이나 방어군이나 여기서 한번 거하게 싸워야 할 이유가 성립된다. 그래서 21세기까지 대규모 전투만 해도 16번이나 벌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노플의 관문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요하면서도 엄청나게 싸움이 많은 도시가 되었다는 역설적인 배경을 가지게 된게 이 때문이다.

1361년[2]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는데, 이후 콘스탄티노플 정복 전까지 이곳이 일시적으로 수도가 되기도 했으며[3], 발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가도에 있는 도시로서 매우 중요시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오스만 제국이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이 도시는 다시 한번 주기적으로 전쟁에 휩쓸리며 3만명의 소도시로 쇠락해버렸다.

그래도 터키가 건국된 후, 제2차 발칸 전쟁이 끝나자 이 도시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서 인구도 회복되어 21세기 기준으로는 인구 14만의 소도시이다. 그리고 그리스와 접한 국경도시라는 이점을 살려서 지금도 이스탄불의 서쪽 육상관문 및 검역소의 역할을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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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국경은 에브로스 강을 따라 설정되어 있는데, 에디르네 부근에서는 국경이 강을 벗어나 그리스 쪽 육상에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철도를 통해 그리스에서 불가리아로 가려면 에디르네 인근의 터키령을 지나야 했는데, 1971년에 우회철로가 개통되었다.

아무래도 현 터키에서 가장 서방에 위치한 도시며,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에 따라 고대 로마,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의 유적이 산재했으며[4], 국경도시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겐 평범한 유럽도시 같다는 인상이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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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만 경제적 측면이나 도시의 규모면에서의 제2의 도시는 테살로니키였다. 여기는 제국 말기가 되면 통치의 편의를 위해 말만 같은 나라지 그냥 따로 노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테살로니키가 오스만에 최종적으로 함락된건 콘스탄티노플 함락 22년전인 1431년의 일이었지만.
  2. 다만 시기가 분명치 않아서, 가장 이르면 1361년이고 가장 늦게 보는 경우 1369년.
  3. 아나톨리아 반도의 부르사와 함께 공동 수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이 동로마 제국 영토인 관계로 국토가 크게 둘로 나뉘어 있어, 수도를 에디르네와 부르사 두 군데에 두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
  4. 셀리미예 모스크같은 경우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