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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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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제국 최대 강역

로마 제국의 분할로 만들어진 국가로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한 후 그의 두 아들이 제위를 승계하면서 로마 제국은 사실상 둘로 분열되었다. 아르카디우스는 제국 동부를, 호노리우스는 제국 서부를 맡게 되었다. '사실상'인 이유는, 공식적으로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이라는 별개의 국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할 이전부터 경제력이나 군사력 면에서 우위를 점했던 제국 동부와는 달리 제국 서부는 경제력도 볼품 없었고 게르만족의 침공에 항상 시달려야 했다. 제국 분할 이후 50여년 간 서로마는 스틸리코아이티우스 같은 걸출한 사령관들의 노력으로 어떻게건 지탱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죽고 난 후 무력한 황제들이 연달아 등장하고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오레스테스 등의 실권자가 황제를 쥐락펴락하였으며 결국 서로마는 무력하게 멸망했다.

2 스틸리코와 아이티우스

호노리우스의 재위 동안(395~423) 전반 13년은 최고사령관(마기스테르 우트리우스크 밀리타이) 스틸리코가 전권을 쥐었다. 반달, 프랑크, 알레만니 등 게르만 부족들은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 제국 영내로 이주하였고, 이것이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상실로 이어지면서 제국에 치명타가 되었다. 라인강 방어선이 허무하게 돌파당한 이유는 스틸리코가 이탈리아 방위를 위해 라인강에 주둔하고 있던 제국군을 빼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스틸리코의 숙청과 게르만족 병사에 대한 학살, 그리고 고트족의 침입으로 제국 중심부가 혼란에 빠지면서 갈리아의 제국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파국으로 이어진다. 408년 스틸리코가 숙청된 뒤, 410년 서고트족에게 첫 번째 '로마 약탈[1]을 당했는데, 기원전 390년의 그것에서 무려 800년만의 재앙이었다. 그리고 천년 뒤, 로마는 비슷한 상황에 또 빠지고 만다(...)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죽은 뒤 425년에 조카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즉위했다. 451~452년에는 유명한 훈 족의 아틸라가 침공해 갈리아와 북이탈리아를 휘젓기도 했으나 이 공격은 아이티우스가 여러 게르만 부족과 연합해 저지했다. 그러나 아이티우스는 보니파키우스와 항상 갈등을 겪었고,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런데 발렌티니아누스 3세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에게 암살당했다. 아이티우스도 죽고 발렌티니아누스 3세도 죽자, 455년 반달족이 두번째 '로마 약탈'을 자행했다. 이때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도 허무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3 최후의 순간

아이티우스 사후 로마 제국의 세력도. 이미 서로마잉글랜드에서 철수하였고 반달족에게 북아프리카를 빼앗긴다. 게다가 이베리아 반도갈리아 곳곳에 야만족 세력이 눌러 앉게 되었고, 그 바람에 서로마의 영토는 누더기로 변해버렸다.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살해된 뒤 마지막 20년은 스틸리코나 아이티우스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어떻게든 지탱해나가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사실상 게르만의 입김을 받는 9명의 황제가 연달아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무력하게 몰락해 가는 시절이었다. 다만 이걸 외세에 의해 망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게르만 출신이었던 이들 대부분은 오도아케르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로마인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로마 제국의 간신들이지, 외세는 아니었다.

이 무렵을 전후해 서로마 제국은 갈리아,[2] 브리타니아[3], 히스파니아[4], 북아프리카의 '변경'에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앵글로색슨족, 서고트족, 수에비족, 반달족 등이 잇따라 침공해 정착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이탈리아 일대만 다스리는 수준까지 축소됐다. 물론 최후의 순간까지도 갈리아 땅의 상당부분[5]과 스페인 지역의 해안가를 포함해 수백만의 인구를 유지했기에 내부 개혁과 안정에 성공하면 재기가 가능했겠지만 문제는 그 재기 자체를 할 능력이 없어졌다는 것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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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기 476년, 게르만 족 용병 대장인 오도아케르와 제국의 실권자인 오레스테스가 분쟁을 일으킨 끝에 오레스테스가 오도아케르의 물리력에 제거되고, 오레스테스가 세운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퇴위당하면서 멸망했다. 로마 국가 및 제정 로마의 건국자 & 창시자들과 최후의 황제가 이름이 같았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6] 건국 1229년만[7], 제국을 선포한 지 482년의 멸망이었다.

4 신성 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2기
제국 서부의 멸망 이후 300여년이 지난 800년, 교황 레오 3세카롤루스 대제에게 서로마 황제의 제위를 수여한다. 비록 서로마가 망하기는 했으나 교황은 여전히 정통 로마 황제인 동로마 제국 황제에게 종속된 위치였다. 동로마 제국은 정치적으로도 당시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 구두굽 부분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교황과 동로마 황제&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사이의 충돌은 교황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정치적 보호를 필요로 하였고 그러한 이유로 카롤루스에게 명목상의 '황제' 지위를 준 것이다. 카롤루스 사후 영토가 분열되었으나 150여년 후 오토 1세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로마 제국'을 칭하게 된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대의명분에 불과하지만.


이 제국은 이후 황권의 약화와 대공위시대 등의 부침을 겪다가 합스부르크 가에 의해 부흥하기도 하지만, 16세기 종교개혁과 그로 인한 30년 전쟁, 베스트팔렌 조약 등을 거치며 볼테르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고 깔 정도의 지경에 이른다. 결국 신성 로마 제국은 무너지고, 오스트리아가 된다.
  1. 옛 서적이나 외국 서적에서는 로마 '겁탈'이라고도 한다. ang?
  2. 일단 408년에 라인강이 돌파당한 이후, 프랑크, 알레만니, 부르군트족이 갈리아에 정착했고, 이후 로마를 약탈한 서고트족이 아퀴타니아 지방에 정착한다. 노비오드넘(수와송)을 중심으로 한 북서부 갈리아는 여전히 로마의 통제 하에 있었고, 서로마가 멸망한 후인 486년에 프랑크족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3. 383년부터 현재의 웨일즈 지역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 407년 마지막 로마군이 반역자 콘스탄티누스 3세와 함께 갈리아로 떠나고, 호노리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에 대한 사실상 포기 선언을 내리면서 브리타니아는 로마 제국에서 반강제로 독립하게 된다.
  4. 수에비족이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정착하였고, 반달족이 한때 이 지역에 정착하였으나 아퀴타니아 지방에서 밀고 들어온 서고트족에게 쫓겨나고 아프리카로 다시 이주한다.
  5. 이 지역의 로마 세력은 서로마가 망한 뒤에도 상당 기간을 유지하였다.
  6. 이 우연 역시 형제인 동로마 제국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여 콘스탄티노플 시대를 연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이름이 같은 콘스탄티누스 11세 때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한다.
  7. 사실 이 건국년도에는 논란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