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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燃燈會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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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에 등불을 밝히는 불교식 축제. 신라 진흥왕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전통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

2 역사

첫 시작은 신라 진흥왕 12년 팔관회와 함께 국가적인 행사로 열렸다. 당시 신라는 이차돈 순교 이래 불교가 국교였고, 심지어 왕족과 석가모니 가문을 동일시할 정도로 불교빠였다.

이런 전통은 고려시대까지 계속되어, 태조 왕건유훈 훈요 10조에서 후대 왕들도 팔관회와 연등회를 계속 이어갈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다만 유교적인 정책을 펼친 성종(고려) 때는 이러한 행사는 그냥 돈놀음이다라며 훈요10조를 무시하고 폐지시켜 버리고 한 차례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는데 다다음 왕인 현종(고려) 때에 가서 부활했다.

조선이 건국되자마자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같이 해오던 팔관회는 폐지됐지만 연등회는 규모는 줄어들지언정 완전히 폐지되지 않아서, 조선시대에 불교가 완전히 맥이 끊길 정도로 탄압당했다는 것은 연구에 의해 반박이 되고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4월 8일을 연등(煙燈)이라 하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이날이 석가여래(釋迦如來)가 탄생한 날이라 한다. 봄에는 아이들이 종이를 오려서 기(旗)를 만들고 물고기 껍질을 벗겨 북을 만들어 떼를 지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등불 켜는 기구를 구걸하는데, 이를 호기(呼旗)라 한다. 이날이 되면 집집마다 장대를 세워 등불을 걸었으며, 부호들은 크게 채색한 등대(燈台)를 세웠는데, 층층이 달린 그 많은 등불은 마치 하늘에 별이 펼쳐진 것과 같아서 도인(都人)들은 밤새도록 구경하였고, 무뢰한 젊은이들은 이것을 건드리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지금은 불교를 숭상치 않으므로 혹 연등놀이를 한다 해도 옛날에 번성하던 것과는 같지 않다."

무뢰한들이 연등을 건드리는 걸 낙으로 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즉, 조선에서도 연등행사는 신라나 고려 때만큼 번성하지는 못해 규모는 작아졌지만 이어져 오고는 있었으며, 그 유래 또한 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의 경우는 고종 8년에 탈고된 이유원의 '임하필기'중 '문헌지장편'을 보면

"4월 8일에는 등불을 밝힌다.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깃발을 만들고 물고기의 껍질을 벗겨 북을 만들어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등불을 켜는 데 쓸 경비를 걸립(乞粒)을 하는데, 이를 이름하여 호기(呼旗)라고 한다. 이날이 되면 집집마다 깃대를 세우고 여기에 등불을 단다."

라고 나와있다. 조선 후기, 말기에도 역시 연등행사가 존재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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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계천 연등놀이.

3 현재

현대 대한민국까지 연등회 행사는 이어지고 있다. 구로순복음교회에서 석가탄신일 축하라고 하면서 역사왜곡과 거짓말을 잔뜩 섞은 연등행사를 중지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 논란이 일었다. 물론 맨날 밤새도록 켜놓는 교회 십자가 뻘건불부터 끄라고 까였지만...

하지만 최근 들어와서는 석가탄신일에 연등회를 하지 않고 그 전 주말에 연등회를 개최한다.[1] 수백년간 부처님오신날에 하던 전통이라면서 정작 초파일이 아닌 그 전에 하니까 전통하고도 맞지 않을뿐더러, 연등회는 당연히 석가탄신일에 할거라고 생각하는 비 불자들이 갑자기 교통통제가 되니까 초파일 놔두고 왜 오늘 하냐며 짜증내는 일도 매번 일어난다.

4 행사정보

석가탄신일 전주 금 토 일 3일간 본행사가 진행된다.
본행사 정보는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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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를 들어 2016년의 경우 석가탄신일이 토요일(5.14)이었는데, 연등회는 그 전주 토~일요일(5.7~8)에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