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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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美合衆國 聯邦大法院)

미국 연방 대법원은 미국 최고의 사법 기관으로 헌법 및 하위법률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하는 곳으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한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미국사회가 급변할 수 있으며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각축장이기도 하다. 연방대법관의 힘은 막강하며 종신직위로 대법관의 인준 및 임명과정은 미국에서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인증과정이기도 하다.

2 구성

  • Justice라는 간지폭풍급의 존칭이 말해주듯 미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Chief Justice) 과 8명의 대법관(Associate Justice)으로 구성된 미국 사법부의 최고 법원이다.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고 상원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며, 스스로 사임, 은퇴하거나 범죄행위로 인해 탄핵받지 않는 한[1] 헌법에 의해 종신임기를 보장받는다[2].
  • 대법관 9명의 전원합의체로 1년에 수만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우리나라 대법원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법원까지 올라온 사건을 13명의 대법원 판사 중 대법원장을 제외한 12명이 3명씩 4개의 소부(小部)로 나뉘어 진행하고, 여기에서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니면 전원합의체를 통해 재판하지만,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8천에서 1만건 정도 올라오는 상고를 대법관별로 심사하여 4명 이상이 찬성해야 상고가 허가되는 철저한 상고허가제를 채택하고 있어 1년에 재판이 80~100건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사실상 2심이 끝이다. 라는 표현은 잘못된것으로 미국은 기본적으로 연방국가로 주법원이 별도로 존재하며 주법원체계와 연방법원체계는 별개로 존재한다. 미국의 연방법원 체계는 연방지방법원-연방항소법원-연방대법원 체계이고, 여기서 처리하는것은 연방법 문제와 이와 관련된 소송을 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일반범죄는 주법률 체계에 따라 3심제를 하게된다. 연방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은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건이 올라오게 된다. 하지만 사실상 1심이 끝인 일본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과 비교하자면 대법원보다는 헌법재판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2.1 '9명의 현자' 연방 대법관 9인

▲ 2016년 2월 보수성향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망해서 현재는 8명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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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의 대법관 성향을 분석한 그래프. 빨간색은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며 파란색은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다.
  • 현재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4],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5]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성 대법관은 5명, 여성 대법관은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의 소속 정당에 따라 구분해보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4명씩으로 동수이다.
  • 성향으로 분류하면 보수성향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으로 3명, 진보성향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 이렇게 넷이다. 로버츠 법원의 실세 앤서니 케네디[6]는 대법관 같은 경우 중도 또는 중도보수로 분리된다.
  • 2016년 2월 13일(현지시각)에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이 갑자기 별세하여 (부고 기사) 공석이 생기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권을 가지고 있는 걸 고려해 보면 법원이 진보 성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을 듯. 하지만 공화당은 스컬리아 부고 기사가 뜨자마자 오바마가 누굴 지명하던 간에 청문회도 없을 것이며, 투표도 없을 것이다. 2016년이 대통령 선거해이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이 뽑도록 해야 됨이라고 강수를 두고 있기 때문에 8명 대법관 체제로 무려 300일간이나 지속될 가능성도 없지 않게 되었다. 지명부터 최종 투표까지 가장 오래 걸린 지명은 150여일로, 이걸 훨씬 뛰어넘는 사상 초유의 의무 방해가 되는 것이다. 법원이 오랫동안 진보 성향으로 갈 것에 대한 보수파의 두려움과 다급함이 느껴지는 부분. 이러다가 버니 샌더스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된다면? 미국인의 과반인 56%는 "상원은 대통령 선거 여부에 상관 없이 헌법에 명시된 의무를 해야 한다" (즉, 청문회 및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63%가 청문회 및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 3월 14일에 로이터즈에 의하면 오바마는 Sri Srinivasan, Merrick Garland, Paul Watford 중 하나를 지명할 것이라고 한다. 공식적인 후보 지명 발표는 이번 주 내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SCOTUSBlog 구독자의 55% 가량이 오바마가 Sri Srinivasan을 지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동부일광절약시(UTC-04) 기준 3월 16일 11시에 오바마가 공식적으로 후보를 지명하였다. 최종적으로 지명된 후보는 DC항소법원에서 19년간 판사로 재직한 (2013년부터는 최고 판사(Chief Judge)로 재직) 메릭 갈랜드(Merrick Brian Garland)이다. 오래전부터 가장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 여겨졌지만 오바마가 히스패닉계열인 소토마요르와 여성인 엘레나 케이건에게 넘어갔었다. DC항소법원 판사 임명 당시에도 법관으로서의 자질은 당적을 막론하고 뛰어나다고 여겨졌기에 청문회는 없을 것이라고 고집부리는 공화당 측은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게 되었다. SCOTUSBlog의 블로거 운영자들도 "갈랜드의 법관으로서의 자질은 의심이 없다. 만약 공화당 측에서 끝까지 반대한다면 이유는 오바마가 2016년에 지명한 것 단 한 가지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3 역사적인 판결

  • 1953년 공화당 소속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미국 연방대법원에 필요한 정치, 경제, 사회적 입장을 나타내 왔다.'며 임명[7]받은 검사출신에 공화당원인 얼 워렌은 대법원장이 되자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진보적이고 역사적인 판결을 이끌었다.
    • 인종 차별 문제의 개선 -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에서 공립학교에서의 그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던 분리화되 평등(Seperate But equal)의 인종 분리는 만장일치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종전의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을 폐기하였다.
    • 범죄 혐의자의 인권 개선 - 미란다 사건

4 대법관의 성향과 '정치적인 법원' 논란

  • 소위 대법원의 '성향'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말이 많은 편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진보'로 대법관의 성향을 분리하는 건 부정확한 분리법이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자주 함으로써 소위 '정치적' 성향에 따른 분류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본인이 리드하는 법원이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여부와 자신의 법원[8]의 유산(legacy)에 대해 신경을 쓰는 편이다 보니 이런 건 당연하다. 자신의 이름이 걸려있는 법원인데 연방 대법원도 정치적 집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의견이 달가울 리가 없을 터. 이는 "난 보수적이고, 내가 무조건 맞음. 대중이 반대하던 뭐던 내 법 철학이 맞는데 뭔 상관임?"식으로 대놓고 일관하는 앤토닌 스컬리아와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태도.[9]
    • 이거에 대한 항변으로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법원에서 올라오는 케이스의 반 정도는 만장일치로 결정나는 편이며, 확실한 다수라고 볼 수 있는 8-1이나 7-2로 결정난 사건까지 집어넣으면 약 70% 가량의 사건이 커버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래봤자 그런 것들은 보수/진보 성향 및 이념의 영향을 덜 받는 케이스들이니까 그렇지"라며 반박당하는 상황 (자세한 건 분열된 법원/정치적인 법원 관련 링크 참조.).
  • 또한 우리는 행정부나 입법부와는 다르다라고 항변하지만, 미국 언론이나 미국인들이 눈에 불을 키고 집중하는 케이스들은 정치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사건들이고[10], 이런 사건들은 십중팔구 성향에 따른 5대 4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진보 성향 넷 + 케네디 또는 보수 성향 넷 + 케네디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건 Roberts Court(로버츠 법원)가 아니라 Kennedy Court(케네디 법원)임" "이건 그냥 케네디 1인 체제ㅋㅋㅋ"라고 비아냥댄다.)로 결정난다.
  •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본인은 'swing vote(부동표)'라 불리는 걸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근데 보수-진보 넷이서 팽팽히 맞설 때 케네디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냐에 따라서 다수/소수가 결정나는 게 밥먹듯이 일어나는 마당에 swing vote라고 불리는 건 어찌보면 필연이다. 이 패턴은 메릭 갈랜드 또는 2016년 11월에 당선되는 대통령이 지명한 법관이 대법원에 가기 전까진 계속 될 것이다. 보수 셋, 진보 넷인 상황이지만, 케네디가 어디로 가냐에 따라 진보 측이 이기거나 4-4로 항소법원 판결이 번복되지 않거나[11]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어느 법원에서 올라온 판례냐에 따라서, 그리고 케네디가 어느 편을 들어주냐에 따라서 보수 진보 측이 울거나 웃을 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 가령 2016년 3월에 결정된 Friedrichs v. California Teachers Association은 4-4로 결정이 났다. 캘리포니아 주 선생님들은 매년마다 노동조합비를 의무로 내야 한다 (노동조합 회원이던 아니던). 단, 1977년에 결정난 Abood v. Michigan Board of Education이라는 판례에 의거하여 노동조합 회원이 아닐 경우 노동조합비는 월급협상하는 데에만 쓰일 수 있으며, 정치적인 영역에 (가령 노동조합에 친화적인 후보를 지원하는데 쓴다던지) 쓸 수는 없다 (대법원 측은 이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다.). 레베카 프리드릭스를 비롯한 9명의 선생님들은 이 비용 내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넣은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주 법으로 월급협상에 있어서는 모든 선생님을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조합원이던 아니던). 즉 프리드릭스 측이 승리했다면 노동조합이 월급협상할 힘도 줄게 되는 상당한 반노동조합 성향의 판결이 나게 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여기선 4-4 판결로 인해서 제9항소법원의 판결이 그대로 서게 되었고, 노동조합 측은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대법관들의 성향을 본다면 긴즈버그, 브라이어, 소토마요르, 케이건은 California Teachers Ass'n의 편을, 로버츠 대법원장, 스컬리아, 케네디, 토머스, 얼리토 다섯은 프리드릭스 측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컬리아 대법관이 갑자기 별세해버렸고, 결국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다수의견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해서 4-4가 되어버렸을 거라는 추측이 유력한 편이다. 패한 프리드릭스 측의 변호사는 재구술변론을 청원하긴 했지만, 이게 수리될 확률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6월 28일에 재구술변론 청원이 기각됨으로써 이 케이스는 종결되었다.
    • 반면 United States v. Texas (2016)의 경우 오바마 정부 측이 패배해서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이기 때문에, 여기서 4-4로 결정이 난다면 오바마 정부의 이민행정명령 위헌판결을 받아내길 바랬던 보수성향의 주 정부들이 승리하게 된다. 결국 다수 의견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4-4로 주 정부들이 승리하게 되었다. 오바마 정부는 재구술변론 청원을 접수했다. 대법원은 스컬리아의 사망으로 남겨진 빈 자리를 채우기 전까지는 검토하지 않을 생각인건지 청원 수리 및 기각 여부를 결정짓지 않은 상황이다.
    • 4-4로 비긴 경우 패한 측은 다시 구술변론을 할 것을 청원할 수 있다. 4-4 결정이 난지 25일 내로 청원하면 된다. 하지만 이 청원이 수리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법상 패한 측에 선 4명과 이긴 측에 선 대법관 최소 1명이 사건을 재검토하는데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8명 중 5명의 대법관의 찬성표를 얻는 건 쉽지 않다.
  • 언론이 특정한 사건의 대법원 구술변론에 대해 집필할 때 유난히 케네디 대법관이 어느 편에 더 질문을 많이 던졌고,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의 여부에 집중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보수주의 대법관 중 나머지 셋과는 달리 강경보수로 분리는 되지 않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12]에게 집중이 가는 경우도 있다.
  • 뒤집어 말하면 "나머지 6명 또는 7명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뻔하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죠"라는 소리다. 언론도 언론이지만, '뜨거운 감자'인 사건의 경우 패턴이 뻔히 보이다 보니 일어나는 폐해로, 정치적 집단이라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2015년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합헌 판정(Obergefell v. Hodges)을 내릴 때와 오바마케어 연방정부 보조금의 합법성[14]을 심리한 사건에서도 이러한 정치적 싸움이 두드러졌다. 다수의견 판결문과 더불어 반대 소수의견서가 함께 공개되었는데, 말이 판사들의 판결문이지 정치계의 독설로 가득찬 논설로 보일 지경. 특히 스컬리아의 동성결혼 관련 소수의견은 심하게 표현하면 트롤링 수준이다. (오바마케어 사건에서 쓴 반대의견도 시쳇말로 트롤링 수준 맞다.) 반대편에 선 네 명의 대법관이 각각 반대의견을 쓴 보기 힘든 사례이기도 했다. 클레런스 토마스는 노예였던 흑인도 존엄성(dignity)이 있었다는 이해하기 힘든 생각을 반대의견에 써서 물의를 빚었다. 토머스는 결혼의 존엄성을 이유로 다른 인종과의 결혼을 금지한 버지니아 법을 위헌 판결 내린 사건인 Loving v. Virginia 사건 때문에 지금 부인(부인은 백인이다)과 결혼할 수 있었던 주제에 결혼의 존엄성을 이유로 동성결혼 합헌한 의견에 반대했다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나마 점잖은 반대의견은 대법원장의 반대의견과 각 주가 결정하도록 놔 두어야 한다는 얼리토 대법관의 반대의견 정도. 근데 로버츠는 일부다처제도 합법화가 될 것이다, 옛날부터 유지되어 온 결혼의 정의가 다섯 명의 변호사가 바꾸어 버렸다, 민주적인 절차에 붙여져야 했다[15]는 식의 징징글이자 독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반대의견이다.[16][17][18] 웃긴 건 대법원이 정치적인 집단으로 보이길 바라지 않는다면서 법관들 사이의 화합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정치적으로 민감한 케이스에서는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 스컬리아와 반대의견 둘은 트롤링 수준이긴 했지만 스컬리아가 쓴 의견 답게 답게 화려한 문체들(...)은 꽤 있었다 (예: "Ask the nearest hippie" (근처에 있는 히피에서 물어봐라 (...)이거 멍미), "pure applesauce" (말도 안 되는 개소리. Applesauce는 baloney, 즉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등). 한 밴드는 트롤링 수준까지 간 스컬리아의 두 반대의견을 비꼬는 의미로 스컬리아의 반대의견에 나온 표현들로 노래를 만들기까지 했다. 감상은 여기서 가능하다.

4.1 이유

연방대법원이 정치적인 집단이라 여겨지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소위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이슈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청문회가 그 중 하나이다. 미국은 낙태를 전면불법화 시키는 법을 제정할 수가 없는데, 이는 1973년 Roe v Wade 사건의 판결 때문이다. 4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미국 상원에서는 대법관 청문회가 진행될 때마다 "Roe v Wade를 뒤집으실 겁니까?"라는 질문이 꼭 튀어나온다. 그럼 지명받은 자는 "사건이 법원으로 올라온다면 그 때 판결을 내릴 것이며, 지금은 그거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 다른 뜨거운 감자로 넘어가다가 나중에 또 저게 튀어나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라이스 대학 100주년 기념 이벤트에 초대받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청문회가 좀 더 의미 있는 청문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상원의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서 투표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보니 지명 인준 절차도 정치판 싸움이 되고, 그로 인해 연방대법원 또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공화당 상원의원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이 점을 지적하면서 "성향을 보기 이전에 대법관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먼저 봐야한다고 말하였다.[19]

또 한 가지 큰 이유는 대법관들의 로클럭을 고르는 방식이다. 진보성향(보수성향)의 대법관들은 민주당(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로클럭을 했었던 로클럭을 고용하다보니 자신의 성향에 맞는 관점으로만 사건을 보게 되는 것이다. 2010년 9월에 쓰여진 이 기사에 의하면, 2010년 6월까지 재임했던 대법관들 중

  • 가장 강경보수라 여겨지는 클레런스 토마스 대법관은 20여년 동안 고용한 로클럭 84명 모두가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로클럭을 했었다.
  • 또 다른 강경보수 성향인 앤토닌 스컬리아 대법관은 2005년 이래로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로클럭을 한 이를 고용하지 않았다.
  • 스티븐스 (2010년 6월에 은퇴), 긴즈버그, 소토마요르 대법관에 의해 고용된 로클럭 중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의 비율은 12~35% 정도였다고 한다.
  • 진보성향의 브라이어 대법관은 성향에 관계없이 로클럭을 고용한 유일한 대법관이다(보수:진보 로클럭 비율이 50:50).

이는 1980년대의 대법원과는 차이가 크다. 1969년부터 1986년까지 대법원장을 역임한 워런 버거 대법원장 같은 경우 브라이어 대법관처럼 보수/진보 성향의 로클럭을 50:50으로 고용했다. 중도보수 성향의 제7항소법원 재판관인 리처드 포스너 판사는 진보성향의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 밑에서 로클럭을 했었다. 어느 성향의 판사의 밑에서 로클럭을 했었는가(=로클럭이 진보성향인가 보수성향인가)가 중요한 리트머스 테스트가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5 재판의 진행

  • 연방대법원이 사건을 수리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소위 circuit split이 생길 때이다. Circuit split이란, 두 개 이상의 연방항소법원이 정 반대의 판결을 내리는 경우를 의미한다. 연방 법에 대한 두 가지 반대되는 판결이 나올 시의 법적 혼란을 종결지어야 하는 사건이 연방대법원에 상고된 경우에 수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 동성결혼 금지법의 위헌을 가린 Obergefell v Hodges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제4,7,9,10항소법원 및 여러 미국 법원들이 미국 대 윈저 사건을 바탕으로 위헌판결을 우수수 쏟아내고 있을 때 올라온 상고는 모두 다 기각되었다가, 제6항소법원이 합헌판결을 내려서 circuit split이 생기고 나서야 상고한 케이스를 받아들였다.
  • 이처럼 낮은 확률을 뚫고 상고이유서(writ of certiorari, 줄여서 certiorari 또는 cert라고 한다)가 수리되면, 반대편 당사자는 물론 각종 단체나 개인들도 상고이유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참고인 의견서(amicus briefs, 줄여서 briefs)를 제출한다.
  • 연방대법원의 구술변론 일정은 대개 1년 단위로 미리 정해지고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해마다 10월의 첫 월요일에 개정하여 다음해 6월말까지 재판이 계속 이어지고(구술변론은 4월 말 기점으로 끝나며, 남은 기간에는 판결선고 및 다음 개정기에 어떤 사건을 들을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집중한다.), 7월부터 9월까지 휴정기를 가진다.
    • 보통 개정기에는 매주 월, 화, 수요일에 하루 10시, 11시 두차례의 구술변론이 열린다. 각 사건당 1시간[20]의 구술변론 시간이 주어지고 필요에 따라서는 오후 기일을 열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에는[21] 합의(Conference)가 이루어지며, 한 달에 한 번 정도(10월~4월)의 구술변론이 없는 재판기일(Non-argument session)을 잡아서 판결선고나 간단한 결정사건 등을 처리하기도 한다.
    • 휴정기가 다가오는 5월, 특히 6월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구술변론이 없는 재판기일을 잡아서 판결선고를 하며, 6월 중순부터는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재판기일을 추가해서 판결선고를 하기도 한다. 또한 구술변론이 없는 재판기일이 월요일인 경우에는 어떤 사건의 상고를 수리하고 기각할 것인지 발표한다. 상고의 수리/기각 결정 여부는 발표되는 월요일 직전의 목요일에 이루어진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 10시에 개정시각이 되면 법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자인 마샬[22]이 연미복을 입고 일어서서 "존경하는 미국 연방 대법원장과 대법관님들이 입장하십니다. Oyez! Oyez! Oyez! 재판이 곧 열리니 이 영예로운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부디 이 나라와 이 법원을 지켜주소서!"라고 외치며 시작한다. Oyez!는 프랑스 고어로서 "들으시오!" 라는 뜻이다. 연방 대법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커버하는 웹사이트 중 하나의 이름이 oyez.org이다.
  • 그리고 1시간 동안의 구술변론을 한 이후 매주 금요일(구술변론이 다 끝난 이후로는 매주 목요일)에 합의를 하는데, 대법관 한명당 한번씩만 의견을 말한다.[23]다수의견이 정해지면 다수의견을 낸 사람중에서 상서열자가 집필자를 지정한다.[24]
  • 법정 내에서는 전자기기의 사용이 통제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판결의 경우 언론사 인턴들이 판결문 주문을 가지고 법정에서부터 바깥까지 질주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아래 사진은 2015년 6월 26일 동성결혼 합헌 판결 직후의 모습이다.#, 발표 순간(동영상)

5.1 법무부 법무차관(Solicitor General)

  • 연방대법원의 변론은 변론자격을 허가받은 변호사들(Supreme Court Bar)만 할 수 있고 그것도 1년에 80~100건 밖에 안열리기 때문에 전세계의 변호사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는 미국의 변호사들중에서 대법원에서 변론 할 수 있는 것은 '당대 최고의 법률가' 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변론기회를 갖는 사람이 바로 법무부의 법무차관(Solicitor General)이다. 법무부 송무차관실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사건에서 국가를 대리하여 변론을 한다. 그러니 당대 최고의 법률가를 송무차관에 앉혀놓는 것은 기본이며 송무차관을 마치면 대법관으로 고고씽~ 하는것이 기본 공식이다.
    • 연방대법원과 법무차관의 관계 중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연방대법원에서 상고로 올라온 몇 사건에 대해서는 법무부 법무차관에게 의견을 묻는다는 점이다. 이를 CVSG(Call for the Views of the Solicitor General)라고 한다. 반드시 법무차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지만, 상고 여부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이 법무차관의 의견서이다.

6 대법관 목록

6.1 현재

  • 존 로버츠(대법원장) - 현직 연방대법원장. 꽤 보수성향이지만 나머지 셋이 원체 보수여서 그나마 덜 보수로 분류된다. 다른 보수성향에 비해서 더 부드럽고 협상에 더 적극적이기도 하다. (반면 토머스와 스컬리아는 이념적 순수성을 더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협상을 하지 않으려 든다. 협상을 해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차선의 결과를 얻으려 했던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본인이 잘못 결정된 판례를 뒤집고자 할 때는 확 뒤집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뒤집어나가는 걸 선호한다.[25] 이전의 판례를 존중하는 stare decisis를 최대한 따르려는 대법관으로, 이게 존중되지 않으면 보통법 체계의 안정성이 깨지게 된다고 ("jolt to the legal system"라는 표현을 썼다 (4분 35초 전후에).)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 보수가 아닌 말 그대로 과거 및 전통을 존중하는 보수주의적인 대법관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배스킨라빈스에서도 자신이 익숙한 초콜렛 칩 맛 아이스크림만 고수해서 먹을 정도로 자신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걸 불편해했다고 친구가 밝힌 적도 있으니 뭐(...). 초콜렛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초콜렛을 담아두는 그릇이 빌 때마다 채워두는 것이 대법원장 비서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현직 연방 대법관 중 진보의견의 기둥으로 평가되는 인물.
  • 스티븐 브라이어 - 전반적으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헌법 수정 조항 4조(불합리한 수색 및 사생활 침해를 금지하는 조항)에 관련된 이슈에서는 오히려 보수파와 뜻을 같이 하기도 한다. Maryland v. King에서도 보수성향 대법관 셋과(로버츠, 토머스, 얼리토) 같이 메릴랜드 주의 편을 들어주었다.[26] 오히려 스컬리아가 나머지 진보대법관과 함께 반대편에 섰다. 시민들이 민주적인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쪽으로 법을 해석해야 한다는 소위 "Active Liberty" 철학을 가진 대법관이어서 의회가 통과시킨 법을 무효화시키는 판결을 내리는 걸 최대한 지양하는 대법관이기도 하다.
  • 앤서니 케네디 - 흔히 경제문제는 보수, 사회문제는 진보적인 판결을 내린다고 평가받는 이름만 로버츠 코트의 캐스팅 보트. 사실상 실세 2015년 6월, 동성결혼을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시키는 판결에서도 역시 캐스팅 보트를 행사.[27] 중도보수로 분류되지만 국제법 참고에 더 적극적인 대법관이어서 보수성향에게 비판을 받는 대법관이기도 하다.
  • 클래런스 토머스 -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법관 중 가장 강경보수로 평가되는 인물. 대법관 임명 과정 중에 스캔들 때문에 곤혹을 겪음 (Anita Hill 성추문). 이 성추문 때문에 가장 아슬아슬하게 통과된 대법관으로 남아있다 (52대 48로 지명 통과. 그 다음은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으로, 58대 42이다.). 유일하게 재판연구관을 뽑을 때 비교적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외의 로스쿨 출신들을 많이 뽑는 편이다.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밑에서 일한 학생들만 로클럭으로 뽑기로 유명하다.
  • 새뮤얼 얼리토 - 판사로서의 지적 능력은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연방제3항소법원 판사 재직 당시 강한 자(정부 및 경찰)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준 패턴 때문에 청문회 때 문제가 되었다. 또한 성차별주의자 및 인종차별주의자들 동문 집단인 Concerned Alumni of Princeton의[28] 멤버였다는 게 밝혀져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본인은 공화당 정부에 있는 직업에 지원을 했고 멤버라는 걸 밝히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당시엔 그렇게 했다고 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그래서 그런지 두번째로 많은 반대표가 나왔다 (58-42).
  • 소니아 소토마요르 - Affirmative action이 없었다면 자신은 여기에 없었을 거라면서 이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국민투표로 affirmative action을 폐지한 referendum을 무효화시켜야 한다고 올라온 소송(Schuette v. BAMN)에서 자신의 뜻대로 안 되었을 때도 (소토마요로와 긴즈버그는 무효화시킬 것을 주장, 나머지 여섯은 무효화 되면 안 된다고 주장. 브라이어는 보통 affirmative action에 호의적인 입장이지만 이건 민중의 뜻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섰다. 케이건은 오바마 정부 때 송무차관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어서 심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강렬한 어조로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었다.[29] 인터뷰에서 Schuette 케이스에 썼던 반대의견은 Fisher v. University of Texas Austin 라운드 1에서 쓰기로 한반대의견(본래는 5-3으로 affirmative action 정책이 위헌 판결 났을 거라고 했다. 보수성향+케네디 vs 긴즈버그, 브라이어, 소토마요르. 케이건은 법무차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으므로 심리에 참여 불가.)을 여기서 썼다고 한다. Fisher 라운드 1은 좀 더 rigorous한 테스팅을 적용해서 다시 심리하라는 의견을 내고 연방항소법원으로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소토마요르의 격렬한 반대의견을 읽고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지겠다 싶다고 생각한 다수파 대법관들이 결국 물러나서 협상한 게 저 결과였다고 소토마요르가 밝혔었다. 브라이어와 캐스팅 보트인 케네디가 협상을 주도했다고 한다. #
  • 엘레나 케이건 -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더불어서 화합을 주도하는 대법관 중 하나라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케이건 대법관은 대체로 만장일치인 의견을 집필하곤 한다곤 하고, 다수의견으로부터 집중을 분산시키거나 다수의견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보충의견을 쓰는 걸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기도 하다. 대법관 중 위트 있는 의견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닥터 수스의 우화를 반대의견에 인용하기도 하였으며, 스파이더맨 로열티 관련 소송이었던 Kimble v. Marvel Enterprise 다수의견에서도 스파이더맨 관련 노래를 인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화책 덕후로 알려진 케이건의 덕력이 여기서 제대로 터져주었다. # # 다수의견 원문 위트에 있어서는 스컬리아 대법관 못지 않다는 평. 또한 세대 차이 때문에 새로운 테크놀로지나 비디오 게임 등에 덜 익숙한 다른 대법관들과는 달리 이에 대한 이해도 뛰어난 편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주 비디오 게임 규제법 관련 사건이었던 Brown v. Entertainment Merchant Association 사건에서도 스컬리아 대법관이 "모털 컴뱃이 뭥미"하는 동안에 케이건 대법관은 구술변론에서도 이 게임 얘기가 나왔을 적에 문제없었다고 한다. 또한 가장 서열이 낮은 대법관이기 때문에, 대법관 9명이서 같은 방을 쓰면서 일할 때 누군가 노크하면, 모두가 막내인 케이건을 쳐다보면서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투표 세는 것, 합의 내용 기록하는 것도 다 케이건 대법관 몫이다. 1994년부터 2006년 1월까지 (9월에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기 전까지 2006년 1월에 얼리토 지명이 통과되기 전까지) 멤버십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브라이어는 이 일을 11년간이나 꼬박 맡아서 해야 했다. (...) 케이건 대법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지명하고 지명이 통과되는대로 이 일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느 나라든지 막내 직원이 힘든건 마찬가지인가보다....대법원 카페테리아에 Frozen yogurt 기기가 들어온 것도 케이건이 frozen yogurt 덕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문회에서 상원의원들과 코미디 쇼(?)를 찍기도 하였다 카더라.

6.2 과거

  • 존 마셜 - 4대 연방대법원장. 역대 연방대법원장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인물. Marbury v Madison 판례를 통해서 대법원의 위상을 높였기 때문이다.
  • 로저 터니[30] - 존 마셜 대법원장의 후임자. 악명 높은 드레드 스콧 사건의 다수의견을 썼다. 자신은 남북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서 이런 의견을 썼다고는 하지만 결국엔 이게 남북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의견 하나 때문에 터니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법관하면 무조건 언급된다.
  • 존 마셜 할란 - 악명 높은 Plessy v. Ferguson 사건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져서 "The Great Dissenter"라는 별명을 가진 대법관이었다. 손자인 존 마셜 할란 2세도 연방대법관으로 재직하였다.
  • 조셉 스토리 - 주니어 대법관[31]으로 가장 오랫동안 있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이 기록을 스티븐 브라이어(얼리토 대법관이 2006년 3월 1일 이후에 대법원에 합류했더라면)가 갈아치울 수 있었다고 한다. 최장기록과는 29일 차이였다고 한다. 이런 기록 갱신은 하기 싫다구요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 미국의 27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연방대법원장을 지내기도 한 인물.흔히 말하는 먼치킨 연방대법원장 일을 하면서 "난 내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기억 못하겠음" 드립도 쳤다고 한다.
  • 윌리엄 O. 더글라스 - 역대 연방대법관 중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이며, 또한 가장 리버럴한,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판결을 내린 인물. 특히 표현의 자유 이슈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쪽으로 표를 던졌다. 인생사를 보면 개천에서 용난, 존경스러운 자수성가[32] 케이스이기도 하고, 결혼을 네번이나 한 특이한 인물.[33] 또 재판연구관(판사보좌관)들을 힘들게 했던 대법관이기도 했다. 종종 재판연구관들에게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게 참 엿 같았다고 한다. [34] 또한 "Trees have standing"이라는 주옥같은 명언을 남긴 대법관도 이 대법관. 리타이어 하고도 계속 대법관 일을 하겠다고 땡깡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더글라스 밑에서 일하던 비서와 보좌관들을 더글라스의 자리를 이어받은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에게 배치시키고 나서야 은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화려한(...) 사생활 때문에 도덕적 문제가 있다면서 상원이 몇 번 탄핵을 시도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루이스 브랜다이스 - 최초의 유대계 대법관.
  • 제임스 맥레이놀즈 - 피어스 버틀러, 윌리스 반 데반터, 조지 서덜랜드와 더불어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반대해온 대법관 넷을 지칭한 "The Four Horsemen" 중 한 명이다[35]. 근데 이 양반이 왜 유명하냐면 성격이 개같고 대놓고 인종차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성차별도 대 놓고 했다. 판결문 발표해야 하는데 반대의견을 태프트에게 제출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냥 간다고 휴가 가버려서 태프트 뒷목잡게 만들었으며, 유태인들을 지독하게 싫어했다.[36] 서열 때문에 브랜다이스 옆에 앉아야 함을 깨달았을 때 죽어도 찍지 않겠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결국 그 해엔 대법관들끼리 사진을 안 찍었다고 한다. 유대계 대법관인 루이스 브랜다이스와 벤자민 카르도조와는 일절 얘기도 하지 않았고 저들이 집필한 의견에 서명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시계 찬 남성들은 여성스럽다고(...) 싫어했고, 흑인 변호사나 여성 변호사가 변론에 나오면 "저기 여성이 있군" 하면서 의자 180도 돌려버리는 등 대놓고 혐오했다고 한다. 동료 대법관이 은퇴하면 같이 일해서 즐거웠고, 은퇴 이후도 행복하게 잘 보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는 게 전통이다. 브랜다이스가 은퇴 선언을 했었을 적에 맥레이놀즈는 그 편지에 자기 이름을 서명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합의실에 있는 금연 사인도 이 양반의 주장 때문에 걸렸다고 한다. 악명 높은 Dred Scott 사건의 다수의견을 썼던 로저 터니 대법원장과 함께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법관하면 반드시 나오는 이름 중 하나이다.
  • 오웬 로버츠 - FDR의 뉴딜 정책 관련된 사건들이 대법원에 자주 올라오던 시절 찰스 에반즈 휴즈 대법원장과 함께 중도 성향에 있었던 대법관 중 하나였다. 반뉴딜 성향의 대법관 넷 "The Four Horsemen"에게 설득당하면서 5-4로 계속 뉴딜 정책이 저지를 당하자 열받은 FDR이 "court-packing bill"[37]을 제정하면서까지 뉴딜 정책을 통과시키려 하였다. 이건 민주당 측에서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의회에서는 둘 다 반대하였다. 오웬 로버츠가 뉴딜에 호의적이었던 The Three Musketeers와 찰스 에반즈 휴즈 대법원장 쪽으로 선회한 시기가 저 court-packing bill을 FDR이 밀어붙이던 때와 맞아떨어져서 로버츠가 친뉴딜 성향로 돌아서기 시작한 최초의 사건이라 여겨지는 West Coast Hotel Co. v. Parrish 사건에서의 로버츠 대법관의 선회는 두고두고 "the switch in time that saved nine"[38]이라고 불리게 된다.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찰스 에반즈 휴즈는 FDR의 법안이 전혀 영향이 없었다며 부정하였지만 1936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압도적인 표차의 재선과 미국인들의 뉴딜 정책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 영향은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휴즈 대법원장도 이 둘을 들면서 보수 성향의 러브콜에 화답하곤 했던 로버츠 대법관을 설득시켰고 이 설득이 처음으로 먹혀들어간 게 워싱턴 주 여성근로자 최저임금법을 합헌 판결 내린 West Coast Hotel Co 대 Parrish 사건이었던 것이다.
  • 찰스 에반즈 휴즈 - 대법원에서의 임기를 두 번 나눠서 수행한 유일한 대법관이다. 1910년부터 1916년까지는 대법관으로 재직했고, 1930년부터 1941년엔 대법원장으로 대법원으로 돌아왔다. 1910년에 대법원장 공석이 생기는대로 대법원장 시켜주겠다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약속했지만 이 약속을 지키면 47세밖에 안 되었던 휴즈가 오랫동안 대법원장 자리에 있을테고, 그렇다면 자기는 영영 대법원장이 되지 못할것을 깨달은 태프트가 말을 바꾸는 바람에 대법원장이 되지 못했고 1916년에 휴즈는 1916년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사임하였다. 2016년 현재까지 휴즈는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대법관 자리를 사임한 유일한 대법관으로 남아 있다. 비교적 고령이었던 민주당 출신 에드워드 더글라스 화이트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이런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우드로 윌슨의 임기가 끝나고 워런 하딩이 임기를 시�작한지 몇 달 뒤에 딱 맞춰서 화이트 대법원장이 사망한(...) 덕분에 태프트는 계획대로(...) 대법원장이 될 수 있었다. 태프트도 완전히 휴즈와 한 약속을 저버렸다고는 하기 어려운 게, 건강상 은퇴를 선언하기 전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가 자신의 후임자로 휴즈를 지명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보장받기 전까진 은퇴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태프트의 바람대로 휴즈가 그의 뒤를 이었고 휴즈는 11년간 대법원장에 있으면서 뉴딜 정책 때문에 첨예하게 갈라진 대법원을 리드하게 된다. 친뉴딜 성향의 대법관 삼총사인 "The Three Musketeers"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대체로 이 셋과 뜻을 같이한 편이다. 윌리엄 렌퀴스트와 더불어 합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한 대법원장 중 하나라고 한다. 휴즈의 자리를 이어받은 할란 피스케 스톤이 대법원장이 되었을 땐 3~40분이면 금방 끝나던 합의 과정을 몇 시간씩이나 질질 끌었다고 한다.
  • 펠릭스 프랭크푸르터 - 사법소극주의(Judicial restraint)를 강조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대법관. 유대인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케이스.[39] 연방항소법원 판사로서의 명성은 대단했지만, 대법관으로서의 프랑크푸르터의 레가시에 대해선 분분한 의견이 있는 편. 사법소극주의에 반대한 대법관들을 대놓고 적으로 취급하면서 편 가르기를 해서 적을 많이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합의할 때도 대놓고 사법소극주의에 대해서 45분씩 강연할 때마다 이념적인 대척점에 있었던 얼 워런 대법관장이나 브레넌 대법관 같은 경우는 아예 회의실을 나가버렸다고도 한다. 이런 접근 방식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본인의 사법철학을 영미법 체계에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
  • 로버트 잭슨 - 프랑크푸르터와 더불어서 사법소극주의를 강조했던 대법관. 휴고 블랙과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 휴고 블랙 - Textualism과 originalism (또는 strict constructionism)[40]을 강조하는 의견을 많이 냈던 대법관.[41] 정치인이었다. 자수성가한 인생사를 보면 야망이 오죽 컸으면 인맥을 넓히기 위해 KKK의 멤버로 활동했었다.[42]
  • 얼 워렌 - 법적 감각은 뒤졌고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다. 대신 캘리포이나 주지사로 활동하면서 기른 리더십 및 자신의 결점을 보완해 줄 브레넌 대법관의 도움으로 역사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을 많기 내릴 수 있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내 생애 가장 큰 실수라고 칭한 인물이기도 하다.
  • 해리 블랙먼 - 미국 사회의 영원한 뜨거운 감자인 Roe v Wade 의견을 집필하였다. 대법원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엔 보수 성향인 렌퀴스트 대법원장과 같은 펴니었지만 (90% 투표 일치율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보 성향으로 돌아서게 된다.
  • 윌리엄 브레넌 -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했던 대법관. 소수와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자주 냈으며, 사형 제도는 위헌이라고 일관적으로 주장해왔다. 이념적인 순수성을 위해서 타협을 거부하는 앤토닌 스컬리아나 클레런스 토마스와는 달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다 얻지 못하더라도 차선책을 위해서 다른 대법관들과 협상을 선호하였다고 한다. 단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사형제도 위헌 판결을 뒤집은 Gregg v. Georgia를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death penalty 관련된 어필이 기각될 때마다 서굿 마셜과 함께 기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썼다고 한다. 서굿 마셜이 쓰고 브레넌이 서명하거나, 또는 그 반대. 하도 성향이 같아서 그런지 일각에선 "브레넌-마셜 대법관(Justice Brennan-Marshall)"이라고 묶어서 불렀다고 한다. 얼 워렌이 대법원장과는 죽이 잘 맞았던 대법관으로, 합의 이전에도 어떤 식으로 다른 법관들을 설득할지 미리 만나서 전략도 짜고 했다고 한다. 얼 워렌은 자신이 법적 감각에선 브레넌이나 프랭크푸르터에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으면서도 성향이 비슷한 브레넌에게 자주 의지한 것. 이래서 워렌이 있는 동안 브레넌의 별명은 "연방 대법원장 대행(Deputy Chief Justice)"였다고 한다.
  • 서굿 마셜 - 최초의 흑인 대법관.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였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화도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자세한 내용은 린든 존슨 항목을 참조.
  • 포터 스튜어트 - 포르노가 연관된 케이스인 Jacobellis v. Ohio 사건에서 쓴 보충의견 중 한 라인인 "I know it when I see it"으로 유명한 대법관이다. "Hardcore pornography"를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힘들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한 라인으로, 이 라인에 대한 위키 페이지도 따로 있을 정도이다. 재임 기간 내내 중도 성향을 유지한 대법관이다.
  • 존 폴 스티븐스 - 행정법 Chevron deference를 창시한 것으로 유명함.[43] 종종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주 냈음. 또한 존 폴 스티븐스는 중도보수에서 시작했다가 진보쪽으로 옮겨간 케이스다. 법원에 있다 보면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성향이 바뀌게 된다고 하면서, 열린 마음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소수 인종 우대 정책에도 반대하는 의견을 내다가 나중에 가서는 찬성 쪽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표현의 자유에 관련해서는 대체로 수용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애국심에 관련된 케이스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특이한 스탠스를 가진 대법관이기도 하다. Flag burning을 금지하는 법도 제1수정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해왔다.[44] 그리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대치되는 상황, 측 federalism 관련 사건에서는 일관적으로 연방정부의 편을 들어주었다.
  • 샌드라 데이 오코너 - 최초의 여성 대법관. 중도보수 성향의 대법관이었다. 단 affirmative action에서는 호의적인 입장이었기에 이를 반대하는 대법관이 여럿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affirmative action이 오코너가 있는 동안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합의 중에도 극보수 성향의 앤토닌 스컬리아가 affirmative action을 강하게 비판했을 때도 "니노(앤토닌의 애칭), affirmative action이 아니었으면 난 여기 없었을 거야"라며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후임에도 보수적인 성향의 대법관이 자신을 잇길 바래서 공화당 대통령이 있을 때 은퇴하고 싶다고 밝혔으며, 본인 자리는 여성 대법관이 물려받길 바란다고 했지만 결국엔 새뮤얼 얼리토가 이어 받았다.
  • 워런 버거 - 얼 워런 버거 얼 워런의 후임자였다. 자신의 서열을 이용하여서 자신이 원하는 사건의 다수 의견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투표할 때 자신의 의견을 숨기려 들었고, 나중에 자신의 포지션을 바꿔가면서까지 다수의견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쓰려고 하는 바람에 (서열에선 대법원장이 무조건 제일 위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수에 있으면 집필자 지정권은 대법원장이 갖게 된다) 다른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으로서 존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중 "I know it when I see it"으로 유명한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이 버거 대법원장을 특히 싫어했다고 한다. 게다가 합의도 효율적으로 진행하지 못해서 비판받았다.
  • 윌리엄 렌퀴스트 - 제 16대 대법원장. 자주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고, 스컬리아보다는 덜했으나 쌀쌀맞고 차도남스러운 판결문을 많이 내렸음. 후임자 존 로버츠 대법원장에 의하면 법을 공부하지 않은 시민들도 읽기 쉬운 의견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이었지만 리더쉽은 뛰어났던 대법원장이었다. 다수의견을 컨트롤하고 다른 대법관들이 원하지 않는 케이스를 다른 대법관들에게 넘기고 좋은 케이스만 자기가 가져가는 치사한(...) 행동으로 미움을 산 전임자인 워런 버거와는 전혀 달랐다. 자신이 소수파에 있더라도 자신의 서열을 이용하여 다수파를 컨트롤하려 들지도 않았으며, 집필자 지정에 있어서도 각 대법관이 의견 집필할 기회를 줄 때도 최대한 공평하게[45] 했으며, 합의 때도 모든 대법관이 한 번씩 의견을 말하기 전까진 두 번 이상 말하는 걸 금지할 정도로 공정성에 있어서는 칼 같았다고 한다. 대법관들이 합의할 시간을 너무 짧게 준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렌퀴스트는 차도남 같이 "오랫동안 떠들어 봤자 의견 바꾸지도 않을 게 뻔한데 질질 끌어봤자 무슨 소용임"하며 쿨하게 짤라버렸고, 이로 인해서 합의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념적으론 극보수였지만 성격은 꾸밈없으며 느긋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이념을 넘어서서 다른 대법관들과 잘 어울렸고, 의견 집필 과정에서 한 대법관이 반대하는 대법관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인 메모[46]를 보낸 걸 알게 되었을 땐 감정 상하지 않게 다독이고 타이르는 등 리더십 하나만은 대법원장 중 가장 뛰어났다고 봐도 손색이 없다. 해리 블랙문 같이 의견 쓰는데 시간을 질질 끄는 대법관도 렌퀴스트가 대법원장이었을 때는 데드라인에 맞춰서 써야 했다고 한다. 구술변론 때도 변호사에게 불 꺼지면 바로 짤라버리는 등 가차 없었단다. 이런 쪽에서 좀 더 관대한 현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는 대조적이다. 이념적으론 반대편에 있는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은 윌리엄 렌퀴스트를 "자신이 같이 일한 대법원장 중 가장 성공한 대법원장"이라고 평했다. 자신이 성향으로 따지만 얼 워런 대법원장과 더 맞았지만 말이다. 본인도 어떤 대법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효과적인 관리자(administrator)로 기억되고 싶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렌퀴스트의 대법원장 지명이 (대법관으로 있다가 대법원장으로 올라갔다) 통과되었을 때 이념에 상관 없이 모든 대법관들이 이를 환영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임자가 눈엣가시 같은 워런 버거였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 앤토닌 스컬리아 - 연방 대법관 중에 클레런스 토마스와 함께 강경보수로 평가받던 인물. 30년 가까이 재임하면서 대법원 보수의견의 대들보, 기둥 역할을 해 왔었다. 재판연구관(판사보좌관, law clerk)을 뽑을 때 학벌을 많이 보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47] 금태섭 변호사의 말(저서 '디케의 눈'에서 인용)에 따르면 미국 로스쿨의 최종보스 격이라고 한다. 강경 보수 성향이면서도 판결문에서 나오는 논리력이 대단해서 반박하기조차 만만치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2015년 동성결혼판결 반대의견이나 King v. Burwell 사건 반대의견은 법적 논리력은 없고 화가 나서 ranting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한 법 교수도 스컬리아와 저런 의견을 읽고 저게 쿨하다고 생각하면서 저런 스타일을 따라하는 학생들이 걱정된다는 우려를 SCOTUSblog에 표현한 바가 있다. 또한 2015년 12월 9일에 열린 Fisher v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라운드 2 구술변론에서도 흑인들은 좀 랭킹이 낮은 (slower-track) 학교에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식의 발언을 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2월 12일 밤 또는 13일 새벽(현지시각)에 갑자기 별세하였다. 사망 원인은 취침 도중 일어난 심장마비.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누군가 스컬리아를 살해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일어나고 있는데[48], 일단 유가족들은 음모론 자체를 부정하였고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미 의회 의원들과 대법관 담당 의사(Attending Physician)인 브라이언 모나한은 스컬리아는 여러 건강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밝혔다. 비만부터 시작해서 수면무호흡증(sleep apnea), 고혈압, 만성 폐쇄성 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관상동맥질환(coronary artery disease), 퇴행성 관절염(degenerative joint disease), 당뇨병 등을 안고 있었고, 찢어진 어깨근육을 수술로 치료하기엔 몸에 무리가 갈 것이라 판단되어 재활하는 수준에서 끝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수면무호흡증과 관상동맥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을 위험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흡연자이기도 하였다. 자세한 기사는 여기서 읽어볼 수 있다(영문)
  1. "during good Behavior(선한 행동을 하는 한)" 라고 미 헌법 제3 조에 규정되어 있다.
  2. 이 종신임명규정(Tenure)은 대법관 뿐 아니라, 연방판사 전원에게 적용된다.
  3. 그후 오바마 대통령이 매릭 갈랜드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Acting)한 상태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인준을 거부중에 있다.
  4. 오바마가 임명한 첫번째 대법관으로 최초의 히스패닉계 법관이다.
  5.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무부 송무차관으로 재작했다.
  6. 경제 문제에서는 보수, 사회 문제에서는 진보적 성향이라는 평가가 많다.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법관으로 보수진영에서는 배신자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최근에는 진보성향에 가까운 판결을 내린다. 대표적으로 동성결혼 금지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7. 훗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워렌 대법원장을 임명한 것을 인생 최악의 멍청한 결정이라고 회고했다..
  8. 로버츠가 대법원장이기 때문에 로버츠가 대법원장으로 재임한 기간에 내린 판결들은 "Roberts Court(로버츠 법원)"의 유산(legacy)으로 여겨진다.
  9. 물론 법관의 성향에 대한 논란과 법원의 위치에대한 대중의 시선에 대해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상통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의 차이가 대조적인 것이다.
  10. 예전에는 주로 낙태 및 동성결혼이었고 지금은 총기규제, 오바마케어, 어퍼머티브 액션 등이 있다. 이것들은 현재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는 중이다. 2015년 10월에 시작한 개정기에는 오바마케어 (Zubik v. Burwell), 이민법(정확히 말하자면 오바마 정부의 불법이민자 추방을 지연시키는 행정명령에 반발한 주 정부 사이의 갈등이다. 사건 이름은 United States v. Texas), 어퍼머티브 액션 (Fisher v. University of Texas II), 오바마 정부의 Clean Power Plan 이 넷이 가장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밥 맥도널 전 버지니아 주지사가 연루된 사건인 McDonnell v. United States도 뜨거운 감자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다.
  11. 4-4인 경우 사건이 올라온 법원의 판결이 그대로 affirm된다. 단, 새로운 판례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12. 중도성향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보수주의자. 로버츠 대법원장도 꽤 보수적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지만, 토머스하고 얼리토가 극보수이기 때문에 로버츠 대법원장이 온건성향인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Citizens United 사건, 그리고 투표권리법(Voting Rights Act)의 제4b조항을 위헌판결 내린 Shelby County v Holder(셀비 카운디 대 홀더) 사건의 다수에 대법원장이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큰 법의 조그만 한 조항을 위헌판결을 내린 게 무슨 문제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게 4b조항이라는 것이다. 투표권리법에는 역사적으로 투표권리에 있어서 차별을 해 온 주 또는 카운티의 경우 투표권과 관련된 법을 발효하고자 할 때 연방 법무부에게 미리 허가(pre-clearance)를 받아야 했다. 이는 투표권리법 특별 조항(special provision)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4b는 어떻게 저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는 카운티 및 주를 선정하는가를 공식을 명시한 조항이다. 즉, 이게 없다면 특별 조항에 있는 모든 법 자체를 적용할 수 없는 투표권리법의 척추 또는 심장과도 같은 조항이다. 즉, 이게 위헌판결이 났기 때문에 남부 주들이 논란이 되는 Voter ID 법(가난한 사람들, 노인들, 학생들, 소수인종들 같이 투표소에 필요한 ID를 얻기가 쉽지 않는 이들을 투표하기 어렵게 하려는 보수 측의 전략이다.)을 맘대로 통과시켜도 연방 법무부에선 제동을 걸 수가 없게 된다는 것. 성향에 맞춰 5-4로 결정된 이 사건 덕분에 투표권리법은 사실상 식물인간이다.
  13. 당연 보수주의자들은 대법원장에게 통수맞았다는 반응을 보였고, 2012년 오바마케어 보험의무가입 여부 판결을 내고 나서는 로버츠 대법원장 위키 페이지가 반달크리를 먹었다. 배신자 로버츠라던지, 겁쟁이 로버츠라던지(...). 이건 2015년 6월 26일에 주 동성결혼 금지법 위헌 판결 다수의견을 쓴 케네디 대법관도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다.
  14. 일부 한국 언론에서는 합헌 여부라고 적었지만, 이건 2012년 NFIB v. Sebelius 사건과는 달리 법문 해석(statutory interpretation)이 중점이었기 때문에 합헌 여부를 가린 것이 아니다.
  15. 이건 보수 성향의 변호사인 테드 올슨의 한 마디로 반박이 가능하다: "권리장전은 투표에 붙이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You don't put the Bill of Rights to vote.) FauxFox News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 안 되는 개념인이다.
  16. 일부 보수적인 법관들, 특히 스컬리아는 오리지널리즘의 신봉자로서, 그 법논리에 따르면 수정헌법 14조내에 문언상 존재하지 않는 동성결혼의 '권리'는 헌법이 쓰여졌을 당시에 Founding Fathers는 수정조항 14조를 썼을 당시에 동성결혼의 '권리'를 염두해두고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헌법적 권리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스컬리아 대법관은 이 논리를 들어서 수정조항 제14조는 여성을 차별로부터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17. 동성결혼 반대의견을 단지 징징글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악의적인 해석이다. 일부 보수적인 법관들은 수정헌법 14조 내 문헌상 존재하지 않는 동성결혼의 '권리'는 헌법적 권리에 속하지 않는 것이며 각 주에서 스스로가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즉, 동성결혼 반대 대법관들과 찬성 대법관 및 테드 올슨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헌법해석 방식에(법적 보수냐 진보냐 여부에 따라(judicial conservative vs. judicial liberal)) 대한 차이에 기인한다. 정치적 보수/진보와 법적 보수/진보는 차이가 있다. 2010년에 은퇴한 전직 대법관 존 폴 스티븐스만 봐도 이념적으론 진보로 평가받지만 본인은 judicial conservative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18. 윗 주석에 대한 반론: 헌법적 권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각 주가 민주적으로 해결하게 놔 두었어야 한다는 의견을 독설로 치부하는 게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남부 주에서 시민권법이 시행되었을 당시 흑인 상대 인종차별을 유지하고자 했을 때 다수의 백인이 썼던 주장이 바로 로버츠 대법원장의 반대의견 (및 대법원에서 뒤집힌 제6항소법원 다수의견)의 핵심, 즉 민주적인 절차에 붙여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라면 "분리하되 평등한" 인종차별 정책 위헌판결을 내린 Brown v. Board of Education도 부정하는 꼴이 된다. 민주적인 절차에 붙여지지 않았으니까. 인종차별 철폐에 반대한 남부 백인들이 주권리(States' rights) 및 민주적인 절차라는 미명하에 반대했기 때문에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states' rights"라는 문구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문구 중 하나이다. 실제로 주권리민주당/딕시크랫이 민주당에 맞서서 독자적으로 대통령후보를 낸 적도 있고 말이다. 헌법학자 한 명은 민주적 및 정치적인 절차가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민중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할 때, 특히 소수의 권리가 침해당한 경우에는 사법부가 이걸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역사는 반복한다.
  19.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보수성향이지만 진보성향의 대법관인 소토마요르와 케이건 대법관 지명에 찬성표를 던지 몇 안 되는 공화당 의원 중 하나였다.
  20. 상고한 쪽 30분, 반대쪽 30분으로 철저하다. 시간 지나면 자동으로 마이크 꺼진다. 대법관과 문답하는 시간 포함으로 30분씩이니 매우 짧다. 이건 항소심도 마찬가지이다. 단, 2015년 4월 29일에 열린 Obergefell v Hodges 사건의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1시간이 아닌 2시간 30분 가량의 구술변론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한 구술변론에 두 가지 이슈(동성결혼 금지법의 위헌 여부, 그리고 동성결혼이 합법인 주에서 이루어진 동성결혼을 합법화가 되지 않은 주에서 인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의 여부)를 커버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장의 재량에 따라서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오클라호마 독극물 주입 사형 방식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Glossip v Gross 사건이 그 중 한 예. 위헌이다 아니다 여부를 가지고 대법관들이 하도 말을 많이 해서 (그리고 자기네들 사이에서도 언쟁이..) 합헌을 주장하는 오클라호마 주 송무차관이 자기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더 준 케이스. 물론 형평성을 위해서 위헌을 주장하는 측 변호사에게도 변론할 시간을 더 주었다. 구술변론 때도 분위기가 험악했고, 판결선고 시에도 말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수준이었으니 뭐.... 얼리토 대법관이 다수의견을 발표한 뒤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브라이어 대법관이 각각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었으며, 스컬리아 대법관은 "브라이어 대법관이 '사형은 위헌일 듯 싶음'"이라고 한 의견에 답을 할 필요가 있을 듯"하면서 이에 질세라 자신의 보충의견을 벤치에서 읽었다. 반대의견을 읽는 건 그렇다고 치지만 두 개의 반대의견이 벤치에서 읽히고, 무려 보충의견까지 벤치에서 읽히는 건 극히 드문 사례이다. 스컬리아는 대통령의 휴회임명권을 둘러싼 NLRB v. Noel Canning 사건 의견 발표시에도 "다수의견이 결론에 도달한 이유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보충의견을 벤치에서 읽기도 하였다. 결과론적으로는 9-0이었지만 법적인 논리에선 5-4로 결정난 케이스로, 이유에서 첨예하게 대립한 사례이다. 일부 언론에선 말만 보충의견이지 거의 반대의견 같이 들렸다고 평했다고 한다.
  21. 구술변론이 끝나는 4월 이후부터는 휴정하기 전까진 목요일에 이루어진다.
  22. 보안관(Marshal) 맞다. 죄수 호송, 도주차 체포, 법원 계호등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법정경위직이라 하는데 이름 그대로 법정만 지키는 눈빛이 무서운 아저씨이다. 법정경위직의 경우 방청객중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거나 핸드폰 보고 있으면 비호처럼 날아와 옆에 서서 째려본다. 방청객 중 조폭이라도 눈 못 마주친다.
  23.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전임자였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고수한 규칙. 또한 의견 집필에 있어서도 모든 대법관이 한 번 씩 의견집필을 하기 전까진 어느 누구에게도 두 번 이상 집필자를 지정하지 않을 정도로 공정하게 합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렌퀴스트 밑에서 일을 했었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24. 대법원장의 경우 얼마나 그 자리에 오래 있었나 여부에 상관 없이 최고서열자여서 대법원장이 다수에 있을 경우 대법원장이 집필자를 지정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서 투표 시 자신의 의견을 바꿈으로써 다수의견을 자기 뜻대로 컨트롤하려고 했던 워런 버거 대법원장을 다른 대법관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겼다고 한다. 게다가 매주 이루어지는 합의도 제대로 리드를 하지 못해서 비효율적인는 리더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덤. 후임자인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합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소수에 있더라도 전임자처럼 자신의 서열을 이용해서 다수파를 컨트롤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이념적으로 강경보수였던 렌퀴스트와 정 반대편의 이념을 가지고 있던 대법관들도 렌퀴스트의 대법원장 임명을 환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5. 스컬리아는 이걸 보고 가짜 사법소극주의(faux judicial restraint)라고 비꼰 바 있다.
  26. 다수: 케네디, 로버츠, 토머스, 브라이어, 얼리토. 반대: 스컬리아, 긴즈버그, 소토마요르, 케이건. 굵은 글씨로 쓰여진 대법관은 의견 집필자이다. 수정 4조 관련 사건에서는 로버츠 대법원장-브라이어 대법관-얼리토 대법관 콤보(+가끔씩 토머스나 케네디가 끼기도 한다)가 심심찮게 보이는 편이다.
  27. 케네디가 작성한 판결문의 마지막 문단은 요즈음 미국에서 결혼 서약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28.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해체되기 전까진 프린스턴 측에서도 골칫거리로 여겼다고 한다.
  29. 반대의견을 벤치에서 읽는다는 건 다수의견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걸 의미한다.
  30. Roger Brooke Taney. 테이니라고 발음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발음은 터니라고 한다.
  31. 대법관 중 가장 늦게 들어온 대법관. 합의 때 문 열기, 합의 내용 기록, 투표 기록, 티/커피 준비 등 잡일(...)을 해야 한다.
  32. 휘트먼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로스쿨에 합격했으나 돈이 없었기에 일하면서 다닐 수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했다.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서 워싱턴 주에서 뉴욕까지 기차에서 양들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갔다. 뉴욕에 도착해선 동전 몇개 밖에 없어서 fraternity(대학 친목조직) 형의 집에서 자야했다.
  33. 그러나 Griswold v. Connecticut에서 그는 결혼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Marriage is a coming together for better or for worse, hopefully enduring, and intimate to the degree of being sacred.”
  34. 윌리엄 O. 더글라스, 펠릭스 프랭크퍼터, 로버트 잭슨, 휴고 블랙의 인생을 노아 펠드먼의 Scorpions이 흥미롭게 다룬다.
  35. 반면 뉴딜을 합헌 판결 내리려 했던 리버럴한 성향의 대법관 셋(벤자민 카르도조, 루이스 브랜다이스, 할란 피스케 스톤)은 "The Three Musketeers"라고 불렸다고 한다.
  36. 동료 대법관인 피어스 버틀러와 윌리스 반 데반터 또한 반유태주의자였다. 대법원에 유태인 너무 많이 임명하지 말라고 대통령에게 서한까지 보내기까지 했다. 이 둘과 맥레이놀즈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본인의 반유태주의를 겉으로 나타내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37. 나이가 많은 대법관 한 명 당 대통령이 공석 여부에 상관없이 대법관을 최대 6명까지 추가 임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 즉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을 더 앉혀서라도 뉴딜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한 것이다.
  38. 미국 격언인 "A stitch in time saves nine"을 살짝 바꾼 말이다. 미리 한 번 꼬매면 나중에 아홉 번 꼬맬 필요가 없다는 맥락의 격언으로 문제가 생기기전에 미리 막는 게 낫다는 뜻이다. 합헌여부부터 의심되는 저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딱 맞춰서 친뉴딜 성향의 판결을 내놓았으니 "9명의 대법관을 구한" 스위치라고 보여진 것이다.
  39. 공부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이후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40. 일부 학자는 블랙을 originalist라고 보는 거에 반대하기도 한다. 단 권리장전을 쓰여진 그대로("literal")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strict constructionist"라고 분류되기도 한다. Originalism과 strict constructionism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앤토닌 스컬리아 전 대법관은 자신은 originalist이지 strict constructionist는 아니라고 밝혔었다) 이거에 대해 안다면 추가바람
  41. 저 두 사법철학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지지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휴고 블랙은 리버럴 성향으로 분리되었다는 건 아이러니.
  42. 후에, 특히 대법원이 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을 다룰 때 이 과거를 정리하느라 고생이 심했다.
  43. 정작 본인은 당시에 Chevron이 그렇게 큰 획을 그을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하버드 로스쿨에 방문했을 때 말했었음.
  44. Texas v Johnson 사건 구술변론에서도 Johnson 측의 변호사가 나왔을 때도 화가 나는 걸 숨기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본인이 2차 세계대전 베테랑이었던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45. 의견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대법관이 있을 경우엔 어느 대법관에게도 집필할 권한을 두 번 주지 않았고, 이 원칙도 자기 자신에게 칼같이 적용했다고 한다
  46. 보안을 위해서 내부 메일 시스템을 쓴다고 한다. 합의 과정과 의견 집필은 발표 이전까지 철저한 비밀에 붙여진다. 로클럭이 발표 이전에 의견에 대해 미리 불었다가는 사실상 법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는 수준의 징계가 내려질 정도이다.
  47. 그는 아주 솔직하게 학벌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By and large, I’m going to be picking from the law schools that basically are the hardest to get into. They admit the best and the brightest, and they may not teach very well, but you can’t make a sow’s ear out of a silk purse. If they come in the best and the brightest, they’re probably going to leave the best and the brightest, OK?” 그러나 사실 학벌은 대법관이 되기 전 하버드 로스쿨 학장이었던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이 제일 많이 보는 것 같다. 재임 후 2015년까지 케이건이 임용한 24명의 재판연구관 중 1명 빼고 모두 하버드, 예일 혹은 스탠포드 로스쿨 출신이었다. 옛날에 호러스 그레이 대법관과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은 오로지 하버드 로스쿨 출신만 재판연구관으로 선발했었다.
  48. 대체로 Drudge Report 같은 보수언론에서 나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