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옥

이름오봉옥(吳奉玉 / Bong-wok Oh)
생년월일1968년 7월 8일
출신지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학력태흥초-남원중-포철공고-영남대(중퇴)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2년 삼성 라이온즈 2차 6라운드 지명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92~1995)
쌍방울 레이더스(1996~1999)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1999~2003)
한화 이글스(2004~2006)
1992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오봉옥(삼성 라이온즈)정민철(빙그레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2번
정태영(1990)오봉옥(1992~1994)황두성(199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
최현준(1990~1993)오봉옥(1995)변대수(1997~1999)

1 소개

삼성, 쌍방울, 해태/KIA, 한화를 거친 전 야구선수. 제주도 출신 첫 프로야구선수이기도 하다. 박경완이 현역시절 잡아본 직구 중 순위권으로 꼽았던 묵직한 돌직구와 출신 지역을 결합한 돌하루방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임팩트 있던 데뷔시즌- 2년차 이후 극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쌍방울, 해태, 한화에서 뛰어서 누적 스탯도 화려하지 않고, 인기도, 유명세도 없지만 실제로 보여준 실력은 꽤 인상적이었던 투수이다. 15년간이나 계속해서 투수로 뛰면서 막판에 엄청나게 방어율이 올라갔음에도 통산 방어율 3점대(3.99)를 기록했다. 그리고 잦은 등판과 연투를 피하지 않아서 488경기나 등판하고 1000이닝 이상을 막아냈다. K/BB 비율 스탯, 투구이닝 등도 준수한 편.

2 선수 시절

원래는 야구선수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취미로 야구 동아리 활동을 한 정도가 전부. 고교 1학년 때 포항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포철공고에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감독이 여행간 학생들 근처로 떨어진 공 좀 던져달라고 했다가 오봉옥이 던진 공이 상당히 멀리까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야구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포철공고로 전학하여 본격적으로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영남대학교에 진학했으나 1학년 때 중퇴하고 프로 진출을 위해 롯데와 MBC에 테스트를 받았다. 배성서 당시 MBC 감독의 배려로 이듬해인 1989년 초 동계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달 징집 통지서를 받아 결국 입대하여 현역으로 복무했다. 제대한 후 1992 신인지명 때 삼성 라이온즈에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프로 입단 첫해 중간계투로 등판해 13승 무패를 기록하여 승률 100%!!로 승률 1위에 올랐다. 참고로 이 시즌에 정말 인생의 모든 운을 다 끌어모은 듯이 운좋게 승리를 까냈다. 지는 경기의 9회 1사 만루 상황에서 나와 공 하나로 병살, 팀은 9회 역전승, 또는 앞서던 경기 불질러서 뒤집혔지만 타선이 역전승을 한다던가 하는 엄청난 강운을 경험했다. 당시 삼성 팀에서도 이런 오봉옥의 징크스를 강하게 의식해서, 접전인 경기, 또는 근소하게 뒤지고 있는 경기에 오봉옥을 승리의 마스코트 격으로 자주 투입했다. 현대 야구의 추격조 에이스 격.

물론 이런 행운도 실력이 뒷받침되었으니 따라왔다. 묵직한 구위로 장타를 잘 맞지 않는데다, 몸이 빨리 풀리고 필요시 3이닝 이상 연투하면서도 구위를 유지한다는 특성 때문에 여러모로 많은 경기, 터프한 상황에 자주 등장했다. 이는 현대 야구에서도 각광받는 '터프 셋업맨'의 개념과 가깝다.

허나 신인왕은 타지 못했는데, 염종석이 200이닝을 던졌고 2점대 방어율에 18승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둔데다가 그 해 염종석의 소속팀인 롯데가 우승하였기 때문. 당시 정민철이나 동봉철도 괜찮았지만, 염종석이 워낙 날아다닌지라...

1995년에는 135⅓이닝을 소화하고 2.90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는 등 개인 최고의 해를 보냈지만, 그해 12월 만취 상태에서 인명사고를 내며 그의 야구인생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2달 간의 구치소 생활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당시 삼성 구단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뭔가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오봉옥을 본보기로 방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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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쌍방울 레이더스 현역 선수시절 그 동안 산속에서 도를 닦다 오셨어요? ㅎㄷㄷ

오봉옥이 입단하였을 적에 삼성의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그런 오봉옥을 영입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마무리 조규제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투수를 준비, 기용하는 극단적인 투수 기용을 보였는데, 오봉옥은 김성근 감독의 취향에 딱 맞는 선수였다. 그런 쌍방울의 투수 체제에서 성영재에 이어 많은 이닝을 책임졌고, 많은 승수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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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해태 타이거즈 현역 선수시절 여전히 산속에서 수련중...

쌍방울의 해체를 앞둔 1999년 4월, 박계원과 함께 송구홍, 박재용의 트레이드 상대로 해태로 이적했다. 이강철이 떠난 해태 투수진의 맏형으로서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팀에 금방 융합할 수 있었고, 당시 투수진이 박살난 해태에서 믿을맨 역할을 착실히 해냈다. 당시 100이닝+10승투수인 곽현희가 6점대 방어율을 찍은 것을 생각해보면, 100이닝을 던지고 3점대 방어율을 찍은 오봉옥의 성적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1999년 당시 해태의 상황을 보자면 해태는 모기업인 해태제과가 1997년 가을에 부도난 이후로 선동열이종범의 임대료로 구단을 운영하던 상황이었고 1998년에 15승을 거둔 이강철과 13승을 거둔 이대진이 동시에 부상으로 이탈했다. 거기에 중무리 투수인 도박 임창용까지 구단의 운영비 마련을 위해서 삼성에 30억원+양준혁+곽채진+황두성을 상대로 팔아버려서 믿을 수 있는 투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100이닝을 던지며 3점대 방어율을 찍었으니 정말이지 대단한 성적.

게다가 1999년은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였다. [1] [2] 이 해 우승팀인 한화 이글스정민철구대성을 빼면 3점대 방어율의 투수는 없었다. 이런 리그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오봉옥은 상당히 좋은 투수였다.

해태 역사상 마지막 원정경기였던 2001년 7월 26일 사직 롯데전에서 선발 등판, 4회까지 6대 2로 앞섰다. 해태 역사상 마지막 승리투수가 될 뻔했으나 5회에 조경환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좌절, 결국 그경기는 7:7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에도 KIA에서 중간계투로 활약하다 2003년에 부진을 겪고, 이듬해 한화로 이적했으나 계속 하락세를 탄 끝에 2006년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어째서인지 마구마구 같은 게임에서는 상당히 평가가 짜다. 아무래도 선수 본인이 두각을 드러낸 시기가 길지 않은데다가 여러팀을 떠돌았던 탓에 인지도도 낮은 편인 것이 저평가에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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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KIA 타이거즈 현역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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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한화 이글스 현역 선수시절

3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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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제주도로 돌아가 현재 제주 제일중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4 연도별 성적

  • 투수 기록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2삼성 라이온즈38126⅔1302-3.551147864
19933874⅓277-3.39723843
19941933043-6.82461713
199539133⅓695-2.901175499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6쌍방울 레이더스33135⅓974-3.061146286
19972255⅓772-5.20682943
19982788⅔260-5.681084644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9쌍방울 / 해태48116⅓698-3.401186580
2000해태 타이거즈48113⅓47882.8610055110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1KIA 타이거즈50106⅓5514
(5위)
04.741044080
20024054⅓13033.31622633
200344⅔00005.79742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4한화 이글스4060⅓52025.97702731
2005404332325.65542224
200621⅔000010.80412
통산4881146⅔636856153.991158564754
  • 타자 기록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6쌍방울 레이더스11.0000000000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2000해태 타이거즈11.0000000000
통산22.0000000000
  1. IMF 경제위기 당시 야구공 납품업체들이 도산하면서, KBO는 결국 훨씬 조악한 야구공을 공인구로 쓰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 공의 실밥 마감이 엉망이라, 반발력이 지나치게 좋았다, 선수들도 다들 이 공을 '뻥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문제있는 공인구는 1년간 유지되었고, 결국 역대급 타자들의 기록을 양산되고, 시즌 후 공인구 규정이 강화되면서야 이 타고투저가 끝난다
  2. 이부분은 KBO가 IMF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타고투저를 유도하기 위해 저질공인구를 묵인했다는 의혹이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