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신인드래프트 | |||||
1991년 시즌 | → | 1992년 시즌 | → | 1993년 시즌 |
1 개요
1992년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91년 11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팀 | 1차 지명자 |
롯데 자이언츠 | 강성우(경남상고-단국대, 포수) |
빙그레 이글스 | 지연규(북일고-동아대, 투수) |
삼성 라이온즈 | 김태한(대구상고-계명대, 투수) |
쌍방울 레이더스 | 방극천(전주고-원광대, 투수) |
태평양 돌핀스 | 정민태(동산고-한양대, 투수) |
해태 타이거즈 | 박재홍(광주일고, 투수) |
LG 트윈스 | 임선동(휘문고, 투수) |
OB 베어스 | 손경수(경기고, 투수) |
3 2차 지명
1991년 11월 20일 서울특별시 KBO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대학교 졸업 예정자, 실업팀 소속 선수들, 고교 졸업 후 1년이 지난 선수들까지 모두 123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3.1 지명방식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1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라운드에 제한은 없지만,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꼴찌팀은 1라운드에서 2명을 지명한다.
3.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라운드 | OB | 쌍방울 | LG | 태평양 | 롯데 | 삼성 | 빙그레 | 해태 |
1 | 이상현 (보성고-인하대, 투수) | 임창식 (동산고-경남대, 투수) | 차명석 (성남고-건국대, 투수) | 장광호 (동산고-인하대-한국화장품, 포수) | 가득염 (대전고-동국대, 투수) | 동봉철 (신일고-중앙대, 외야수) | 김재성 (경남고-경성대, 투수) | 김병조 (유신고-성균관대, 내야수) |
권명철 (인천고-인하대, 투수) | ||||||||
2 | 안경현 (원주고-연세대, 내야수) | 양준혁 (대구상고-영남대, 내야수) ※ | 민원기 (강릉고-홍익대, 투수) | 서정민 (유신고-홍익대, 외야수) | 박계원 (부산고-고려대, 내야수) | 김정민[2] (경남고-동아대, 포수) | 김홍집 (경남고-동아대, 내야수) | 박재용 (신일고-단국대, 외야수) ※ |
3 | 박철홍 (신일고-고려대, 투수) ※ | 유태영 (북일고-한양대, 내야수) | 노종우 (명지고-원광대, 투수) | 류영환 (세광고-경남대, 내야수) | 김상현 (경남고-동아대, 투수) | 박철희 (북일고-단국대, 내야수) | 김일혁 (인천고-인하대, 외야수) | 김태동 (광주상고-단국대, 내야수) |
4 | 장원진 (인천고-인하대, 외야수) | 우효동 (경남고-경성대, 외야수) | 김유진 (충암고-단국대, 투수) | 장덕영 (경북고-영남대, 외야수) | 김미호 (인천고-인천전문대, 내야수) | 한기철 (북일고-단국대, 외야수) | 신일호 (경남고-경성대, 내야수) | 김상엽 (유신고-홍익대, 내야수) ※ |
5 | 허영철 (배명고, 외야수) ※ | 최봉언 (포철공고-영남대, 투수) ※ | 김상모 (대구상고-홍익대, 포수) | 이상현 (부산고-경성대-상무, 내야수) | 전승식 (충암고-경희대, 외야수) ※ | 강두곤 (부산고-경남대, 내야수) | 장명덕 (부산상고-중앙대-한국화장품, 내야수) ※ | 패스 |
6 | 한국일 (대구고-계명대, 외야수) ※ | 임홍철 (영흥고-계명대, 투수) ※ | 임수혁 (서울고-고려대, 포수) ※ | 패스 | 이요섭 (선린상고-건국대, 투수) | 오봉옥 (포철공고-영남대 중퇴, 투수) | 서석기 (강릉고-경성대, 포수) | 패스 |
7 | 패스 | 이재원 (충암고-동국대, 투수) ※ | 김현호 (인천고-단국대, 내야수) ※ | 패스 | 박지환 (북일고-영남대, 내야수) | 김태룡 (청주고-계명대, 내야수) | 패스 | 패스 |
8 | 패스 | 김현철 (경북고-계명대, 내야수) ※ | 조만형 (동대문상고-원광대, 내야수) | 패스 | 배숙현 (배명고-경희대, 투수) | 패스 | 패스 | 패스 |
9 | 패스 | 패스 | 김정준 (충암고-연세대, 내야수) | 패스 | 최민호 (부산공고-홍익대, 투수) | 패스 | 패스 | 패스 |
10 | 패스 | 패스 | 조병일 (배명고-인천전문대, 외야수) | 패스 | 황석호 (경북고, 내야수) | 패스 | 패스 | 패스 |
4 드래프트 평가
- 롯데 자이언츠 : 이름으로 기름을 넣을 수 있는 투수와 강성우, 박계원을 얻었다. 이 세 명은 1990년대 내내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미래의 롯데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특히 가득염은 2007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후, 2010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수확은 (별도의 지명 절차가 필요 없는 고졸 연고 입단이었지만) 바로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을 수상하고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의 V2를 이끌었던 염종석이다.
- 빙그레 이글스 : 다 망했다.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그나마 1차 지명자인 지연규가 별 활약을 못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선수생활을 했다. 사실 빙그레의 최대 수확은 이 해 고졸우선지명으로 입단하여 향후 빙그레-한화의 우완 에이스로 활약한 정민철이다.
- 삼성 라이온즈 : 1차 지명으로 김태한을 얻었고, 한 때 삼성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다 저니맨으로 이팀 저팀 옮겨 다녔던 외야수 동봉철까지 얻었다. 하위 픽으로 얻은 제주도 출신 투수 오봉옥이 뜻밖의 수확이라 볼 수 있는데, 데뷔 첫 해인 1992년 13승 무패라는 성적을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리 승수-무패를 기록한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1995년 만취 상태에서 인명 사고를 내면서 방출당하는 바람에 오봉옥이 삼성에서 활약한 건 4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 이후로는 쌍방울 레이더스-해태-KIA 타이거즈-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하며 2006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 쌍방울 레이더스 : 별 재미를 못 보았다. 양준혁은 쌍방울의 지명을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했다가 방위병으로 전환되어 복무한 뒤, 1년 후에 삼성 유니폼을 입으면서 닭을 놓쳐버린 꼴이 됐고, 나머지는 소식조차 없을 정도로 했다.
- 태평양 돌핀스 : 향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인 정민태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장광호가 김동기와 박경완 사이를 잇는 포수로서 어느 정도 모습을 보인 정도밖에 없었다.
- 해태 타이거즈 : 쌍방울과 마찬가지로 닭 쫓던 개 집 쳐다본 케이스. 박재홍은 해태 입단을 거부하며 연세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이후에도 해태 입단을 거부하는 바람에 해태는 울며 겨자먹기로 최상덕+현금을 받는 대가로 박재홍을 현대 유니콘스에 넘겨준다. 그리고 박재홍은 데뷔 첫해에 30-30 클럽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호타준족으로 거듭난다. 거기다가 좌타자 난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박재용이 실업야구 포스틸에 입단하면서 이번 신인 드래프트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망했어요.(박재용은 2년 뒤 다시 해태에 지명된다.)
- LG 트윈스 : 향후 셋업맨이라는 보직을 만든 차명석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별 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는데, 특히 임선동은 일본진출 실패로 인해 LG 프런트와 앙금만 쌓이다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 후 포텐이 터졌다. 2차 6순위로 故 임수혁을 지명하기는 했으나, 임수혁이 상무에 입대하여 지명권을 포기했다. 임수혁은 2년 후 롯데의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다.
- OB 베어스 : 권명철과 안샘, 그리고 장승질을 얻었다. 다만 권명철은 제대로 활약을 펼친 건 1993~1995년의 세 해 뿐이었고, 이후 이팀 저팀 옮겨 다니다가 2003년에 친정으로 돌아와 2004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안경현과 장원진은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OB-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발돋움한다. 1픽 손경수는 홍익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자기관리 실패로 인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이모저모
- 당시 대학 최고 타자였던 양준혁이 2차 지명에 나오게 되자, 2차 지명에서 첫번째 지명하게 된 OB가 양준혁에게 백지수표까지 제시하며 양준혁을 지명하려 했다. 그러나 양준혁은 삼성과의 약속 때문에 상무행을 고집했고, 결국 OB는 양준혁의 지명을 포기했다.
- 이처럼 양준혁의 상무행이 이미 파다하게 퍼진 후라 2차 지명 당일 8개 구단 모두 1라운드에서 양준혁을 지명하지 않았는데, 쌍방울이 2라운드에서 양준혁을 지명했다. 이에 대해 쌍방울에서는 양준혁이 상무행을 주장한다고 애초에 지명을 포기하는 것은 프로구단의 태도가 아니지 않느냐며 입단하면 좋지만 입단하지 않더라도 손해볼 건 없다고 했다.
- 양준혁의 사례뿐만 아니라 당시 다른 신인들도 계약금을 더 받기 위해 상무 입대를 빌미로 구단과 신경전을 벌였다.
돈 안 주면 나 군대간다정민태, 임창식, 임수혁 등이 이런 사례였는데 임수혁은 결국 상무행을 선택했다. 임수혁은 전역을 앞두고 열린 199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3]
- LG에 9라운드 지명된 김정준은 김성근 당시 삼성 감독의 아들이다. 애초에 아버지인 김성근 감독조차 프로에 갈 실력은 아니었다고 할 정도라서 김성근 감독을 의식한 '인질'이 아니냐는 세간의 억측이 있었다.
- 롯데에 10라운드 지명된 황석호는 1991년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 서울출신 대형 고졸 신인투수를 둘러싼 LG와 OB의 눈치작전 속에서 지명에서 제외된 덕분에 조성민은 대학 졸업후 아무런 문제 없이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LG의 지명을 받은 임선동은 해외진출을 놓고 LG구단과 법정공방까지 가는 진통 속에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LG 구단과 앙금을 쌓게 된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홍익대로 진학한 손경수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대학을 2년만에 중퇴하고 OB에 입단하지만 계약금은 경기고 졸업 당시 제시받았던 금액에 한참 못 미치는 7,800만원이었고 그나마 아버지는 수술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 홍익대 측에서 프로아마 협정을 들고 나오면서 태클을 걸어 손경수는 당장 1군 무대에 설 수 없었고, 결국 사생활 문제가 발생하며 1995년에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임의탈퇴 공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