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龍-RON-. 국내판은 RON을 YONG로 고쳐서 발매.
1 개요
무라카미 모토카가 1991년부터 2006년까지 쇼가쿠칸(小学館)에서 연재한 장편 역사 만화. 전 42권 완결.
국내에도 학산문화사를 통해 전권이 정식 발매되었으며, NHK 위성 제 2 텔레비젼에서 일부분이 TV 드라마화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반, 1929년에서부터 시작해 17세의 주인공 오시코지 류의 시점으로 당대의 시대상과 국제 정세, 일본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 초반부에는 류가 무술전문학교에 다니며 검도인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묘사되며, 중반 이후에는 그의 결혼과 기업 경영, 아내의 영화인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만주국의 패망에 얽힌 사건으로 아시아 각국을 떠도는 모험을 겪게 된다.
주인공 오시코지 류의 모델은 사카모토 료마로 알려져 있는데, 본래 일본의 재벌 가문 상속자로 부유한 환경에서 살아온 입장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일본인으로서의 의식보다는 중립적인 국제인으로서의 입장을 강조하는 인물이며, 자신의 혈통이 중국과 일본의 혼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여러 사건들을 겪은 이후로는 일본인 오시코지 류(押小路 龍)가 아닌 중국인 이용(李龍)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나이토 다카하루, 아마카스 마사히코, 주은래 등의 실존인물들이 등장하며 다른 매체에서 흔히 접하기 힘든 만주국의 시대상이나 당시의 영화 제작[1]과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 역사물로서도 흥미롭다. 또한 사실적인 표현 때문인지 그림체와는 달리 수위가 상당히 높다.
'龍'이라는 제목이 붙은 까닭은 주인공인 오시코지 류(龍)의 초반 별명이 '서쪽의 용'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류와 의형제를 맺게 되는 재일 조선인 김승룡, 역시 그와 의형제가 되는 중국인 이문룡 등, 등장인물 중 이름에 龍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화가 무척 훌륭한 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연상케 하는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인 극화체이며, 특히 지나가는 컷에서도 배경 묘사를 빠뜨리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 당시 아시아 각국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참고로 저 재일조선인 승룡이 만주에서 마적으로 활동하다가 김일성이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 존재한다. 직접적으로 김일성이라 불린다고 표현된 것이 한컷인 걸로 봐선 문제가 되어 수정하는 과정에서 남은 듯. 원작 안에서 묘사되는 김승룡은 상해임시정부를 거쳐 소련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백두의 용'이란 별칭으로 게릴라 활동을 펼치는데 이름을 '김영웅'으로 개명하고 애꾸눈이 되므로, 김일성을 모티브로 했다는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등장인물
- 오시코지 류
- 타쯔루 테이
- 코스즈
- 오시코지 카즈마
3 극우성 논란
종종 일본 만화로써는 드물게 올바른 역사인식이 엿보이는 개념작으로써 한국과 중국에 대한 반성적인 인식이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이와는 정 반대로 솜씨 좋게 숨겨져 있을 뿐 실상은 노골적인 극우성을 가진 만화라는 평가도 있다.
이 작품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초반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인 오시코지 류가 괴롭힘을 당하는 재일 조선인들에게 무릎을 꿇고 대신 사죄하며 "약자를 돕고 거만한 자를 혼내주는 것이 무사도의 의미라면, 오늘날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자랑하는 무사도의 본래 뜻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이야기하는 등, 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반대로 이 작품이 심각한 극우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양심적 면모가 단지 주인공의 개인적 면모일 뿐이고, 작품 전반의 역사관은 일본 우익사관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양심적인 주인공을 통해 일본 극우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양심적 제국주의'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3.1 만주국 문제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의 주동인물들의 목표는 만주국을 좋은 나라로 발전시키고 가꾸어 나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제국주의적인 침략자로 군림하려 드는 일본군 수뇌부와 심한 알력을 보인다. 따라서 얼핏 볼 경우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은 악독한 제국주의자에 맞서는 정의롭고 영웅적인 인물들로 오인될 만 하다.
하지만 만주국은 본질적으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그 영토의 일부를 강점한 뒤 세운 괴뢰국가고, 따라서 만주국 문제에서 유일한 정의는 만주국의 소멸 뿐이다. 이에서 벗어나서, 만주국의 유지를 전제로 하는 모든 주장은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주인공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일본군 수뇌부 및 일본 정부의 입장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들의 입장차란 그저 침략으로 세워진 괴뢰국가의 바람직한 운영방향을 둘러싼 노선 갈등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 내내 주인공은 만주국을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고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원래 거기 살지도 않던 일본인들이 일본의 침략 이후 우르르 몰려들어 땅과 공장, 자본, 정부의 고위직까지 모두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망상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살던 집에 갑자기 깡패가 쳐들어와서 집을 빼앗더니 '우리 싸우지 말고 조화롭게 어울려 지내자. 이 방은 내가 쓸 테니 저 방은 네가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양심적인 것일까? 요컨데, 주인공의 주장이란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떠들던 오족협화의 왕도낙토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반대의견을 하나 피로하자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일본인에다 아무리 나름의 정의감을 가졌다해도 일개 민간인이라는 점이다.
만주국 자체가 중국에게 있어, 세계사에 있어 얼토당토않은 괴뢰국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주인공이 무조건 만주국을 부인하고 작품내에서 만주국 붕괴라도 획책해야 극우물이 아닌 것인가? 주인공은 일, 중,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하지않으며 그 와중에 일본국내에서건 만주국에서건 특고를 비롯한 권력층과 그 하수인들에게 밉보이고 핍박을 받는다. 이렇게 반대파를 무단으로 찍어누르지않으면 유지도 되지못하는 거지같은 체제라는 점을 작품 내에서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옹호해야할 만주국의 황제 푸이를 대하는 일본군의 태도부터 거만하고 건방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즉 일본과 관동군 스스로도 이른바 '오족협화' 는 커녕 만주국을 일개 식민지 취급한다는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뿐인가, 중국전선에서 민간인 학살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화를 하려면 이런 장면을 빼는게 가장 편하지 않았을까?
(주인공이나 주변인물이 '난 살인 못해' 라고하면서 회피한다해도 이미 학살을 지시할 정도의 정신나간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게 된다!)
실제역사를 참조해보면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 주재하는 일본인중에서도 깨어있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주어진 여건하에서 조선인이나 중국인에게 부당한 행위를 자제하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일한 예를 들면 후세 다쓰지같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도 식민지 조선에서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일본 관료였으니 아무리 선행을 베풀어도 위선이고 교묘히 자신을 감춘 제국주의자들이라고 욕을 먹어야 할까?
작품 자체가 실제 역사에 기반한 내용으로, 이미 주어진 환경(만주국 건국) 안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온갖 고생을 다하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당시 피해자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역사를 보여주긴 해도 '잘 포장된 극우물'이라고까지 폄하당할 정도는 아니다.
3.2 묘사의 편향성 문제
3.2.1 일본과 중국간의 묘사 편향
작가는 항일 폭탄 테러에 휘말려 가족과 생명을 일은 가련한 소녀와, 그 소녀의 죽음에 분개하여 항일주의자인 중국인 친구에게 '항일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까지 희생시키는 것이 너희가 말하는 정의냐'고 분노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몹시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격분하는 주인공이 일본 제국주의에 기생해서 중국인을 침탈한 일본 기업 간부 출신임은 잠시 잊더라도) 당시 일본군이 중국에서 밥먹듯 저지르던 학살행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묘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류과 문룡이 중국 대륙을 떠도는 과정에서 상부의 명령을 받아 이들을 처형하려던 일본인 병사는 결국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들을 살려주는 선량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 직후 등장하는 다른 중국인들은 류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고서도 약점을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류를 죽이려 하며, 장난삼아 문룡에게 독만두를 먹이는 배은망덕하고 악랄한 인물로 묘사된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약한 누군가를 집단괴롭힘 하는 장면이 작중에서 자주 나오는데, 그 가해자가 일본인인 경우 주인공이 왜 그것이 잘못인지 설명해주면 말 없이 돌아가는 데 비해 가해자가 중국인인 경우라면 강력한 힘으로 억누르지 않는 이상 결코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꼭 중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작품 자체가 일본의 범죄를 숨기는 데는 참 꼼꼼하고 다른 국가의 범죄를 비판하는 데는 참 성실한 작품이다. 예를 들어, 40여권 내내 단 한번도 다뤄지지 않던 민간인 학살 장면이 처음 묘사되는 것이 종전 직전 만주로 진공해 온 소련군 병사에 의한 일본인 학살이다.
애초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은 잘못하면 무지하고 교활한 악당이고, 잘 해봐야 나름의 신념을 가졌지만 모순과 단점도 가진 인물 정도로 묘사되는 데 비해, 일본인들은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는 선량하고 현명한 사람들이다. 실제 역사 인물의 예를 보더라도 스탈린, 모택동, 등소평, 장칭 등을 냉혹비정하고 교활한 인물로 표현한 것 자체는 실제로 그러했으니 상관없다고 보더라도... 기타 이키나 아마카스 노부히코, 이시와라 간지 같은 막장인간들은 정신병자나 다름없는 반인륜적 범죄자들이 나름의 혜안과 신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 데는 별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3.2.2 일본인에 대한 묘사 편향
이런 묘사의 편향성은 일본인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세계대공황으로 인하여 격심한 불황을 겪은 30년대 일본에서 대중의 불만에 편승한 포퓰리즘적 정치 세력은 극우파와 좌파 양쪽 모두에서 나타났지만 작가는 별 근거도 없이 공산주의자들은 흑심과 사리사욕을 숨기고 대중을 선동하는 악당들로 묘사하는 데 비해 극우파는 우국충정을 가진 지사들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편향된 인물 묘사의 가장 큰 수혜자로 작품 후반 주인공의 가장 큰 후원자인 아마카스 노부히코를 들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아마카스는 오시코지 류와 타쯔루의 후원자이며, 만주국을 진정한 국가로 거듭나게 하려는 영웅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아마카스는 권력을 등에 업고 날뛴 정치깡패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아마카스의 가장 큰 도덕적 문제로 꼽히는 아마카스 사건에 대한 작가의 왜곡과 미화는 실로 치졸하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해당 사건의 경우, 사건 당시에도 어린아이까지 죽였다는 이유로 엄청난 도덕적 지탄을 받았던 이 사건에 대해 작가는 그저 아마카스가 "그 아이만은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눈물섞인 항변을 했다는 데까지만 보여주고, 그 뒤에는 아마카스가 아이들을 귀엽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묘사한다면, 당연히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로써는 '아마카스는 아이들을 죽일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고 여기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에서 그 아이, 당시 7살이었던 타치바나 소이치는 대체 왜 죽은 것인가?
뿐만 아니라, 아마카스 사건의 희생자였던 일본 무정부주의의 거두 오스기 사카에의 죽음 역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오스기 사카에의 조카였던 당시 7세의 타치바나 소이치 살해에 대해서는 억지스럽게 옹호하고 미화하면서도 오스기 사카에의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변명도 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지만... 사실 오스기 사카에는 자기 자신이 한국 독립운동가들과 같은 조직에 몸을 담고 그들을 후원한 적도 있었고, 그의 한국인 제자 중에서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람도 있는 인물이다. 즉, 한국의 독립을 지지한 양심적 일본인의 표상이라 할 만한 인물인 것.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써 이런 인물을 살해한 정치깡패가 바로 아마카스다.
당시 일본 공산당에 대한 작가의 평가가 이상할 정도로 박한 것 역시 어찌보면 굉장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작중에서 협잡꾼, 모리배, 비겁자, 사기꾼 정도로 폄훼당하고 있는 일본 공산당의 경우, 당시 일본 국내 정당중 유일하게 제국주의 정책을 반대하고, 20년대 타국 공산당과의 교류에서 당의 공식적인 입장이 조선의 (자치도 아니고) 독립 지지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정당이며, 제국주의화되는 일본 정부에 맞서다 심한 탄압을 받고 지하정당화할 수 밖에 없었던 정당이다.
결국, 일본인에 대한 작가의 왜곡에는 기묘한 일관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전반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정책의 지지자들은 영웅적인 인물료 묘사된 데 비해, 일본 국내에서 제국주의에 반대한 양심적 인물들은 비겁한 찌질이로 매도당하고 있는 것.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이 작품이 상당히 노골적인 극우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은 상당한 정당성이 있다. 특히, 한국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반성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작가지만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노골적인 역사왜곡과 극우적 미화를 저지르고 있다고 봐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