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映画 / 邦画
1 개요
일본은 흔히 애니메이션 및 특촬물 대국으로 유명하지만 극영화에서도 만만찮은 공력을 보유하고 있다. 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한 소위 뉴웨이브 감독들이 일본 사무라이, 찬바라 영화나 문예 영화에 열광했던 것이 좋은 예다.
일본은 연간 영화 제작 편수만 따져도 미국와 인도에 이어 3위를 차지, 세계 3대 영화 대국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역사도 길어서 1896년에 영화가 들어오자마자 얼른 자국영화를 만들 정도이다. 이 시절 만들어진 영화들은 필름이 사라져 사진이나 기록같은 자료만 남아있지만 1900년대에 나온 무성 흑백영화 자료가 여럿 남아있다. 그리고 이미 20세기 초반에 촬영 스튜디오를 소유한 메이저 영화사, 닛카츠가 설립됐을 정도이다. 당시 미국에서도 촬영 스튜디오를 소유한 영화사는 극소수였다. 1958년엔 관객 11억으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영화 관객 수는 점점 하락하여 1970년엔 2억 5천만 수준으로 떨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1억 중반대로 관객 수는 인구가 1/3 수준인 한국과 비슷해졌다. 한국은 2015년에 연간 관객 수 2억 1729만명 기록. 그러나 일본의 표 값이 비싼 관계로 관객 수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영화 시장 규모는 세계 3위이다. [1]
그런 평가에 걸맞게 실제로 매년 엄청난 편수의 영화들을 찍어내고 있으며, 아카데미 영화제와 칸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적지 않은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아카데미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해왔으며, 가장 최근의 사례로 2009년에 《오쿠리비토(굿 '바이)》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 애니메이션이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국내 영화들이 매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도전하고 있지만 후보작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일본 영화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부분. 배우 부분에 있어서도 상당히 앞서 있어서, 1958년에는 우메키 미요시가 영화 《사요나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일본 최초는 물론이고 아시아 배우 최초의 수상이었다.
일본 영화의 걸작으로는 단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가 첫 손가락으로 꼽힌다. 본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걸작이기도 하며, 서부극, 범죄물 등 장르 영화에 끼친 혁신성으로는 가히 《시민 케인》을 형용해도 좋을 정도. 또한 세계적인 사무라이 붐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황야의 7인으로 해외에서 서부극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으며, 이 황야의 7인은 또 다시 2016년에 매그니피센트 7으로 리메이크되었다. 픽사의 《벅스 라이프》는 기본 얼개를 이 작품에서 오마주했다. 그 외에 1962년작 하라키리(영화) 역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일본문화를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밖에도 고바야시 마사키, 오즈 야스지로(1903.12.12~1963.12.12)나 미조구치 겐지(1898~1956)같은 흑백 예술영화 거장들을 비롯한 예술 영화로도 알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2 시장 규모
일본 내 영화 시장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표가 가격이 꽤 나가는데 인구도 많고 저작권 개념이 자리 잡혀있어 바로 옆나라 한국이나 중국처럼 불법 동영상이나 DVD로 인한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렌탈 시장의 수요도 꾸준히 있는 편이어서 2차 시장 규모도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편당 동원 관객 수는 한국보다 적지만 1인당 관람료가 1,800엔 선을 유지중이다. 환율에 따라 한화로 16,000원에서 20,000원 정도. 도쿄의 푯값은 평균 25000원 수준. 물론 여러가지 할인제도나 극장별 할인을 실시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최신 개봉영화를 1,000엔 이하로 보는 것은 불가능. 도쿄 시내 햄버거 가게의 시급이 대략 900엔 정도이니, 아르바이트 2시간 하면 영화 1편 볼 수 있어서 싼 것처럼 보이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전체를 아울러 보면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많이 비싼 편이다. 우리도 2시간 알바해야 영화 볼 수 있잖아!? 대신 몇 천 원이 남지
또한 한국처럼 특정 블록버스터 화제작에 과도한 쏠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큰 파이를 비교적 다양한 작품들이 고르게 차지하고 있어 선진적인 시장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한때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 만화계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 영화인들에게 일본의 수익구조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수요 역시 지대하여 시네콘이라고 불리는 멀티플렉스 극장만큼 독립영화, 비주류영화 전용 소극장관도 어떻게든 유지를 하고 있다. 운영 자체는 그럭저럭 규모 있는 기업이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일본 영화시장은 음악시장처럼 미국 다음으로 최고인 영화시장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3 일본 영화의 문제점
세계 3위와 매해 400편이 쏟아지는 양적 우수성은 놀랍지만, 일본의 고질적 문제인 갈라파고스화는 여기서도 심각하다.
대조적으로 일본의 영화 팬들은 오늘날의 자국 영화를 외면하는 경향[2]이 있다. 이것은 작품성을 갖춘 감독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선전하던 과거와 달리 1980년대부터 시작된 가벼운 상업성 영화나 아이돌 영화들이 범람하면서 영화계 전체적인 작품의 질이 크게 낮아진 탓이 크다. 그리고 일본의 영화 제작 구조상 문제와 스폰서들의 압박이 큰 편이라 어지간한 명감독이 아니고선 감독들이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우며, 그 때문에 작품성 훼손이 빈번하다.
일본 영화 제작은 투자자들이 모인 제작위원회가 주도하고 감독은 제작위원회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돈을 댄 여러 투자자의 간섭이 심하니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고 영화가 흥행해도 기획의 성공이지 감독의 이름은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인데 감독이 힘이 없으니 고만고만한 영화만 나오고 뛰어난 명작이 나오지 않는다. 또 영화 관람료가 1800엔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비싼데도 제작비는 매우 인색해서 감독이나 배우, 스탭들에 대한 보수는 매우 낮다. 하지만 연간 400편이나 찍어내어 말하자면 양으로 질을 메꾸는 셈. 인도 발리우드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건 영화계의 질적 반전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그리고 방송사들이 영화 제작시장에 뛰어들면서 TV 드라마의 극장판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는데 검증된 작품의 영화화는 확실한 수익모델이 될 수는 있지만 방송사와 스폰서의 압박을 견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1985년부터 일본 영화의 자국 시장 점유율이 50%가 붕괴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의 압박으로 2002년에는 자국 시장 점유율이 27.1%까지 추락하는 몰락을 겪었다. 동일 시간대에 한국 영화는 1999년 《쉬리》 이후 중흥기를 맞으며 이후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나들어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영화인들이 부러워했을 정도. 애니깽 사태로 인해 막장으로 된 대종상 영화제를 보면서 한국 영화를 비웃던 것도 이제는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추세가 바뀐 것은 만화 원작의 블록버스터들이 대거 제작된 2006년부터로 다시 21년 만에 자국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었으며 2012년에는 65.7%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국내 흥행과 달리 해외 흥행은 부진하고 원작 만화 측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영화의 화법이 아닌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화법을 펼친다는 비판도 있다.
외국 영화의 개봉이 수개월 뒤에나 이루어진다는 점도 일본 영화계에서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아직까지 외국 영화가 직배되지 않아 할리우드 대형작품도 몇 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 한국에서는 상영관이 사라질 시점에서야 일본에서 개봉한다.
또 만화 원작 영화가 증가하면서 실사화 블록버스터의 실패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만화 원작 영화 중에서 《얏타맨》(2009)이나 《SPACE BATTLESHIP 야마토》(2010) 정도만이 흥행했고 《캐산》(2004)은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이전에 흥행에 실패한 《데빌맨》(2004)이나 《큐티하니》(2004)는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였으나 2013년 들어서 제작비가 80억 엔에 달하는 《갓챠맨》이나 제작비가 30억엔인 《캡틴 하록》(2013) 같은 블록버스터들이 흥행에 줄줄이 실패하면서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우리나라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같은 대실패작을 보면 이건 놀랍지도 않지만 영화계에 타격은 더 컸나 보다 들어간 돈 규모가 다르니까 당연하지
2015년 8월 1일 동명의 인기 만화 원작으로 1부가 개봉한 《진격의 거인》은 전, 후편 각각 50억 엔으로 합계 100억 엔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 1부 32억 엔, 2부 15.3억 엔으로, 총 제작비가 30억 엔 정도로 배급 극장과 수익을 나누는 것을 고려하면 매출 60억 엔을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지만 적자를 보고 말았다.
만화 원작 영화 및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다. # 2015년 상반기 영화 탑 10중 절반 이상이 애니메이션.아니 그전에 영화 퀄리티가 애니메이션을 따라가야 이런 일이 안생기지
도에이나 쇼치쿠, 도호 같은 (보통 3대 일본 영화제작사 취급받는) 유서 깊은 제작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기존 영화사들이 촬영 스태프를 동원해주는 인력회사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해서 그렇다. 1960년대 TV 보급과 함께 일본 영화업계의 위기가 시작됐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TV 방송국과 합작을 시작, 자금을 지원 받으면서 숨통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좋지만 문제는 영화사들이 다른 자금원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방송국의 지원에 기대버리면서 차츰 영화 제작의 주도권을 뺏기기 시작해 급기야 상술된 스폰서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지경까지 내몰린다. 그러니까 감독이나 각본가의 자유로운 발상에서 영화 제작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 만화가 히트쳤으니 실사영화를 만들면 팔릴 것 같다, 혹은 우리 회사 드라마의 극장판을 만들자와 같은 투자자의 발상에서 영화 제작이 가능해지는 풍토다.
그나마 호러 장르의 경우엔 일본 영화의 소구력도 상당히 강력하다. 메이저 영화에 비해 감독이나 각본가의 재량이 넓게 주어지는데 보통 스폰서가 뭘 만들자고 구체적으로 고집하는 게 아니라 ' 이만큼 예산을 줄 테니 호러 하나 만들어보지? ' 라는 식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공포를 워낙 그로테스크하게 잘 뽑아내는 것도 있고, 특유의 음침한 이미지와 정서가 한국 호러물과는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일단 호러 강국으로 통한다. 한국에 특히 잘 알려진 작품은 링 시리즈, 주온 시리즈, 착신아리 시리즈 라든지 과거 저예산 일본 호러들도 비공식 상영회로 많이 접하했으며 국내에 소개된 일본 영화들 중 공포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일본은 엽기적인 나라"라는 선입견이 더욱 두터워지기도 한다.
현재 한국에 수입되는 장르의 주류는 코미디물, 멜로물, 일상물 내지 극장판 애니메이션 위주다. 기타노 다케시로 대표되는 야쿠자물도 소개되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를 제외하면 국내에 알려진 네임드는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기타노 영화도 한국에선 대중성이나 흥행과 거리가 멀다. 1997년 그가 감독한 영화 《하나비》가 공식 개봉작 1호로 개봉할 당시 화제를 모았는데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법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개봉하니 관객은 텅텅 비었고 되려 취재하러 온 일본 기자가 더 많았다는 당시 영화지 월간 키노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다케시 일족의 미이케 다케시도 해외에서 제법 선전하는 감독이지만 스폰서의 간섭에 학을 떼는 사람이라 B급 컬트 영화만 줄창 만들어 대면서 컬트영화 감독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래도 2013년에 감독했던 대작 액션영화 《짚의 방패》는 13억 엔이나 되는 수익을 거둬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미이케가 바라는 결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 관객들에겐 일본 영화는 "연기가 너무 오버스럽다", "소재가 너무 만화적(비현실적)이다" 등의 편견이 있는 편으로 2010년대 들어 만화 원작 영화의 제작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편견이 강화되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의 대국이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영화 CG는 퀄리티가 낮아서 일본 블록버스터 영화는 기대를 접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원작 작품은 정말로 웬만하면 보지 말자. 눈 버린다 (단, CG 등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드라마 장르는 예외.) 원작파괴는 기본이고 등장인물들의 재현도도 코스프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3] 특히 애니메이션의 그림에 익숙해져 있다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쇼크는 말할 것도 없다. 애니메이션과 영화2D와 3D는 엄연히 그 차이가 크므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영화로 구현할 때는 그에 어울리는 재해석이 필요한데, 일본 영화에서는 단순히 등장인물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최대한 닮아 보이게만 표현하기 때문에 어색함을 피할 수 없다. 이의 가장 대표적이자 최근의 예가 바로 애니로는 명작 of 명작이었지만 영화로는 혹평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4월은 너의 거짓말.다만 자신들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하나 둘 쌓아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구급으로 메이저한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과 달리, 일본 영화는 어째 자국만 벗어나면 영 힘을 못 쓰는 이상한 실정이다. 90년대 말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 그렇잖아도 기반이 약한 한국 영화계가 만화업계처럼 일본에 잠식당하리라는 엄살이 팽배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넘사벽으로 안 먹힌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그나마 가장 선전한 축에 들어가는 《러브레터》의 동원 관객 수가 전국 140만 명 정도였고 이후로 전국 100만 관객을 넘긴 실사영화가 아예 없을 정도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301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약 200만명 이상 추정. 2002년 당시만 해도 서울 관객 집계만 이뤄졌기에 서울 관객 93만 관객을 토대로 전국 200만 정도로 추정할 뿐), 벼랑 위의 포뇨(125만) 정도밖에 없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전개가 느린 이유도 있고, 일본 배우들의 표현 방식이 한국인들에게 굉장히 이질적인 탓도 크다. 개그나 위트 신에서의 정서적 괴리가 너무 커서, 한국 관객들로서는 도저히 웃음의 포인트를 캐치할 수 없다(…). 같은 아시아권인 홍콩 영화가 이미 60년대부터 꾸준히 상영했고 국내 정서와도 잘 맞아 제법 대박을 거두던 점과 아주 대조적이다.
게임 감독 코지마 히데오도 영화를 어릴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고 원래는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위에서도 거론되었다시피 일본 영화 자체의 한계를 느껴 게임업계로 전향했다. 그리고 게임의 탈을 가장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도 비슷한 이유로 애니계로 뛰어들었다가 명성이 쌓이고 난 뒤 간간히 만들 정도로 확실히 안 좋은 실정이다.
일본 영화계의 실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영화계에서 종사하는 영화 감독의 경우는 해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을 만큼 대작을 내놓아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던가, 아니면 감독 외에 다른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해야 하고 배우의 경우는 연기력을 인정받아서 TV드라마로 진출해서 떠야 한다. 적어도 일본 영화계에서 감독이나 배우로 일하면서 먹고 살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다. 소위 아트하우스쪽 감독들은 아예 프랑스 같은 해외 자본 투자를 받는 경우도 많다. 일본 내에서도 그럭저럭 흥행이 되는 고레에다나 미이케를 제외한 카와세 나오미, 구로사와 기요시, 고바야시 마사히로, 후카다 코지 모두 유럽쪽 자본의 투자를 받아 최근작을 완성했을 정도.
실제로 일본 영화계의 암울한 상황은 내한했던 여러 일본 영화 관계자들이 실토한 바 있다. 최근에는 오다기리 조, 니시지마 히데토시 등의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일본 영화계의 힘든 현실을 언급했다. 국내에선 그나마 우익이란 점으로 알려진 일본 원로배우 쓰가와 마사히코의 평을 참고.
그나마 2010년 기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국제적으로도 주목 받는 감독이라면 고바야시 마사히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노 시온,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야마다 요지, 나카시마 데쓰야, 츠카모토 신야, 미이케 다카시, 카와세 나오미 정도가 있다. 다들 나이가 40을 넘어섰다는 건 잊자
4 국제 방화(邦画)?
1970년대에는 유럽과 합작하는, 정확히는 일본이 돈을 대고 유럽은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이른바 "국제 방화(邦画)"라는 묘한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여기서 방화라는 것이 국산 영화라는 뜻의 일본 용어.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쓰던 용어[4]였으나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이런 국제 방화들은 우리나라에도 유럽 영화로 수입되어 그런대로 흥행하기도 했다. 《라스트 콘서트》, 영화판 《베르사이유의 장미》, 《별이 된 소년》, 《필링 러브》 등이 이런 영화다. 단 진정한 의미로 투자만 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소니 픽쳐스.- ↑ 2014년 기준으로 일본의 영화 시장은 20억 달러, 한국은 16억 달러 규모.
- ↑ 90년대 후반 일본 영화감독들을 취재하던 월간 키노 인터뷰에 나온 기타노 다케시는 1998년 당시, "요즘 일본 젊은이들이 본 일본 영화라면 《모노노케 히메》 뿐인 걸요?"라고 자조적인 말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한국 기자 질문에 "일본 영화를 무시하니까요."라고 답변했다.
- ↑ 이는 한일 양국에서 올라왔던 뮤지컬 《데스노트》를 예시로 들 수 있다. 한국판에서는 캐릭터의 외형을 재현할 때 흑발의 라이토와 금발의 엘 등 여러 재해석을 곁들였지만, 일본판에서는 원작 그대로의 재현을 중점에 뒀다.
- ↑ 80년대만 해도 MBC에서 토요방화라는 코너로 주말 오후에 한국 영화만 틀어주던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