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울리" 회네스 (Urlich "Uli" Hoene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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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52년 1월 5일 |
국적 | 독일 |
출신지 | 서독, 울름 |
포지션 |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
신체 조건 | 181cm |
유소년 클럽 | VfB 울름 (1959~1965) SSV 울름 1846 (1965~1970) |
소속 클럽 | FC 바이에른 뮌헨 (1970~1979) 1.FC 뉘른베르크 (1978~1979, 임대) |
국가 대표 | 35경기 5골 |
부상으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비운의 선수였으나 행정가로서 바이에른 뮌헨을 현재 위상의 클럽으로 만들어낸 장본인
그러나 현재는 경쟁팀의 에이스까지 영입하면서 탈세를 덮으려 했으나 실패한 범죄자
1 개요
동생 디터 회네스와 함께 팀의 레전드 공격수로 추앙받는다. 현역시절엔 주로 공격수였고, 100m를 11초에 주파해 "총알탄"이라 불리며 분데스리가에서도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선수 중 한명이었고, 이런 주력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파괴적인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득점 자체는 압도적으로 많진 않지만 당시 뮌헨과 독일대표팀에는 스코어링을 전담하는 "폭격기" 게르트 뮐러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득점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어도 그의 활약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짧은 현역기간이었지만 107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무릎부상을 끝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27세의 너무도 이른 나이에 은퇴한 비운의 재능이기도 했다.
은퇴 이후 행정가로 반평생을 바치며 팀의 재정적인 부분에서의 발전에 지대한 공언을 했고, 사실상 현재 바이에른 뮌헨을 직접 두 손으로 일군 장본인이다. 그러나 말년은 정말 좋지 못한데 13-14시즌 도중 개인 재산 탈세 의혹이 제기되었고, 회네스는 이를 자수했으나 공판에서는 실형이 선고되었다. 회네스는 항소를 포기하고 1심을 받아들여 뮌헨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현재 금고형에 처해져있다. 팀 업무를 위해 감옥 밖으로 출입하는것이 허락되었지만 거주 자유가 없으며 뮌헨 교도소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항목에 취소선이 그어진 이유도 회네스가 명예의 전당 자리를 스스로 반납할 의사를 밝혔기 때문.
2 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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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71시즌, 데뷔하자마자 31경기 8골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DFB-포칼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8시즌간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하며 8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그 중 72,73,74 분데스 3연패와 74,75,76 유러피언 컵(現 UEFA 챔피언스리그) 3연속 제패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뮌헨의 첫 유럽 제패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결승전 재경기에서 환상적인 역습으로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4대0 대승을 이끌었다. 그밖에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72년 A팀에 콜업되어 유로 1972와 1974 FIFA 월드컵 서독 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 최고의 유망주의 현역시절은 매우 험난했다. 위의 프로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현역으로 뛴 기간이 굉장히 짧다. 74-75 유러피언컵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에서 전반 막판에 당한 무릎인대 파열로 선수생활에 치명적인 위기가 닥쳤다. 당시 회네스의 나이는 불과 24세였다.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재활에 매진했으나 결국 끝끝내 기량을 되찾는데 실패하며 1.FC 뉘른베르크 임대를 끝으로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만다.
3 보드진으로서의 행보
은퇴한 바로 그 해(1979년), 회네스는 구단 역사상 최연소인 27세의 나이로 바이에른의 이사 자리에 앉았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는데, 75-76 유러피언 컵을 끝으로 유럽대항전에서도 힘을 점점 잃었고, 분데스리가의 패권도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함부르크 SV에게 내주고 있었다. 70년대 불의 시대를 함께한 멤버들도 속속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옮겨갔고, 구단은 750만 마르크에 달하는 빚더미에 앉아있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회네스는 미국의 스포츠 클럽들의 구단 운영을 벤치마킹했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수입의 다변화였다. 당시 바이에른은 구단 수입의 85%를 관중 수입에 의존하고있었기 때문에 관중석 절반정도가 지붕에 덮여있지 않은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의 구조 특성상 비라도 내리면 관중석이 텅텅 비었고, 이는 수익에 직격탄이었다.
회네스는 주변 기업들과의 스폰서쉽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구단 팬샵도 열었다. 이 또한 미국 스포츠 클럽들의 마케팅에서 배워온 것인데, 당시 회네스는 "바이에른이 우표나 엽서 쪼가리 팔던 조그만 매장을 갖추고 있던 시절, 미국 농구/야구 팀들은 구단 전용숍에서 티셔츠나 스카프, 모자, 가방 등을 팔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회네스는 곧장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겼고, 구단 로고가 들어간 각종 스포츠 용품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어느 구단이나 흔히 갖추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유럽에선 매우 생소한 "팬샵"을 도입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TV 중계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중계권료 확보에 힘썼으며, 여러 큰 기업들과 스폰서십 체결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으로 바이에른은 구장 입장료 수익이 전체 매출 대비 15~20%대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재정 문제가 해결되자 바이에른의 성적도 차츰 상향되었고, 80년대에는 10번중 7번을 바이에른이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렸을 정도로 활약했다. 회네스가 현역시절에 들어올린 타이틀은 고작(?) 8개였지만, 그가 보드진이 된 후 바이에른은 40개가 넘는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유럽대항전에서의 부진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준우승 4회, UEFA 컵 우승 1회 등을 기록하며 차츰 씻어나갔다. 30여년을 넘게 재직하는 동안 구단 매출은 20배 이상 증가했고, 현재 전세계 브랜드 가치도 2013년 한때에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2015년 현재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3위를 기록중이다.
여타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조하면 여러 일화를 더 읽을 수 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21688851)
4 탈세 혐의와 실형
그러던 2013년, 스위스 개인 비밀계좌에 엄청난 금액의 현금을 탈세중이라는 기사가 속속 퍼지기 시작했고, 마리오 괴체가 바이아웃으로 영입될때도 회네스의 이러한 탈세 기사를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클럽 수뇌부회의에서는 즉각 해명을 요구했고, 회네스는 420M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대해 세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을 시인했다. 팀의 자금을 빼돌린 것은 아니고 개인 사업을 하다 불어난 돈이었는데 회네스는 이 미신고수입에 대해 자수하고 세금을 납부하면 벌금형에 머물 줄 알고 이를 실토했으나 검사의 생각은 달랐고, 결국 기소되어 2014년 3월 14일 뮌헨 지법 공판에서 3년 6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회네스는 이에 항소하지 않기로 하고 뮌헨 회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2015년 1월부터 바이에른 뮌헨 유스 팀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실제로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 독일에는 'Freiganger' 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는 낮에는 교도소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하고 저녁과 밤은 교도소로 돌아와야 하는 제도이다. 울리 회네스는 이 제도를 이용하여 바이에른 뮌헨 유스 팀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바이에른 뮌헨은 35m 정도를 투자해 유스 팀을 완전히 개혁할 예정이다.
현재 울리 회네스가 물러난 바이에른 뮌헨 수뇌부는 카를 호프너 회장과 칼 하인츠 루메니게 CEO가 사실상 권력을 잡고 있지만 오히려 이 둘은 얼굴 마담이며 아직 울리 회네스가 실세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5 기타
디터 회네스와는 형제 관계이다. 형제가 나란히 한 팀의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는 셈.
6 경력
6.1 우승 기록
- FC 바이에른 뮌헨 (1970/71 - 1978/79)
-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 유로 1972 우승
- 1974 FIFA 월드컵 우승
- 유로 1976 준우승
6.2 리그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69/70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0 | 0 | 1 | 0 | 0 | 0 |
1970/71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1 | 6 | 6 | 0 | 7 | 0 |
1971/72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4 | 13 | 5 | 3 | 8 | 1 |
1972/73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4 | 17 | 6 | 3 | 6 | 2 |
1973/74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4 | 18 | 4 | 2 | 10 | 6 |
1974/75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28 | 8 | 3 | 1 | 7 | 3 |
1975/76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17 | 4 | 5 | 1 | 5 | 1 |
1976/77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27 | 9 | 4 | 4 | 8 | 0 |
1977/78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30 | 11 | 2 | 0 | 6 | 1 |
1978/79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분데스리가 | 4 | 0 | 2 | 0 | - | - |
1978/79 | 1.FC 뉘른베르크 | 독일 분데스리가 | 11 | 0 | 1 | 0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