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6-17 독일 1.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도르트문트라이프치히레버쿠젠
마인츠묀헨글라트바흐바이에른볼프스부르크
브레멘샬케 04아우크스부르크잉골슈타트
쾰른프라이부르크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
헤르타 BSC호펜하임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F조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도르트문트
(Dortmund)
스포르팅 CP
(Sporting CP)
바르샤바
(Le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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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BV Borussia Dortmund
정식명칭Ballspiel-Verein Borussia 1909 e. V. Dortmund
(구기 클럽 보루시아 도르트문트)[1]
창단1909년 12월 19일
소속리그독일 1. 분데스리가
연고지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도르트문트 (Dortmund)
홈구장지그날 이두나 파크 (81,264명 수용)[2]
애칭Die Borussen (프러시아인),
Die Schwarzgelben (검노랑), BVB (베파우베)
슬로건Echte Liebe[3]
공식 웹 사이트[1]
라이벌FC 샬케 04 (FC Schalke 04) - 레비어 더비[4]
FC 바이에른 뮌헨 (Bayern München) - 데어 클라시커[5]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Borussia Mönchengladbach) - 보루센 더비[6]
구단주라인하르트 라우발 (Reinhard Rauball)
회장한스-요하임 바츠케 (Hans-Joachim Watzke)
단장미하엘 초어크 (Michael Zorc)
감독토마스 투헬 (Thomas Tuchel)
주장마르셀 슈멜처 (Marcel Schmelzer)
부주장로만 바이덴펠러 (Roman Weidenfeller)
우승 기록
독일 챔피언십
(3회)
1956, 1957, 1963
1. 분데스리가
(5회, ★★)
1994-1995, 1995-1996, 2001-2002, 2010-2011, 2011-2012
DFB-포칼
(3회)
1965, 1989, 2012
DFL-슈퍼컵
(6회)
1989, 1995, 1996, 2008(비공식), 2013, 2014
인터컨티넨탈컵
(1회)
1997
UEFA 챔피언스 리그
(1회)
1997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1회)
1966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안드레 쉬얼레 (André Schürrle)
(2016년, From VfL 볼프스부르크, 3000만 유로)
최고 이적료 방출마츠 후멜스 (Mats Hummels)
(2016년, To FC 바이에른 뮌헨, 3800만 유로)
최다 출장미하엘 초어크 (Michael Zorc) - 463경기 (1981~1998)
최다 득점알프레드 프라이슬러 (Alfred Preissler) - 168골 (1946~1950 & 1951~1959)
영구결번12[7]

꿀벌 군단

2010년대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베스트팔렌의 자존심

전 세계에서 경기당 평균 관중이 가장 많은 축구 클럽

1 소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속한 도시 도르트문트를 연고로 하고 있는 분데스리가에 속한 축구 클럽. 바이에른 뮌헨과 더불어 분데스리가를 양분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도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에 버금가는 실력을 뽐내고 있다. 홈구장인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는 매번 80,000명 이상의 관중이 찾아들어 평균 관중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레알 마드리드를 능가하는 세계 1위다.[8] 그러나 표값이 싸기 때문에 입장 수익이 그렇게 세지는 않아 마드리드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입장수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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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전국 챔피언십 경기를 보기위해 찾아온 보루시아 팬들의 모습. 예나 지금이나 도르트문트 팬들은 클럽에 대한 충성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2 팀 스타일

위르겐 클롭 감독의 지휘하에 조직적이면서 체계적인 팀 컬러로 공격, 수비를 가리지 않는 강한 압박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스피드를 살리는 공격축구를 구사했다. 80년대 AC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아리고 샤키의 샤키이즘을 계승, 발전시켜 수비라인을 높게 올리고 수비진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공을 빼앗기는 즉시 상대편 선수들을 4면으로 강하게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하며 보통 게겐 프레싱[9]이라 불린다. 조직적으로 훈련된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경이적으로 간격 유지가 잘 되는 편인데, 보통 25m를 유지하며 오차가 거의 없이 공간을 점유한다. 아스날과 자주 비교되는 편이지만 점유전략 면에서 아스날과는 다른 클롭만의 스타일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강한 압박을 유기적으로 사용하므로 공수 모두 활동량이 매우 높다. 하지만 압박과정에서 라인을 매우 끌어올리기 때문에 뒷공간이 자주 노출되는데, 주전 센터백인 마츠 후멜스, 네벤 수보티치 모두 발이 느린 편이어서 도르트문트의 실점 장면은 대부분 뒷공간 노출에 의한 실점이다.

클롭이 떠나고 새로 부임한 토마스 투헬 감독은 기존의 게겐 프레싱에 자신만의 유연한 전술 운영[10]을 첨가시켰다. 키워드는 역습보단 지공. 확실히 게겐프레싱에 비해 공격 속도는 늦어졌으나 세밀한 패싱을 통해 점유율과 효율성을 높이며 공격을 전개한다. 하지만 후방 빌드업이라든지 또는 상대의 공격진영에서부터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방식은 게겐프레싱을 그대로 계승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15-16 시즌 분데스리가 1R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전.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보면 안다.]


3 역사

3.1 노란 바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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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창단한 젊은 청년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1909년 12월 19일 트리니티 유스의 불만이 많은 18명의 젊은이들에 의해서 창단되었다. 도르트문트에는 성당을 중심으로 한 지역 클럽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그들은 지역 청년들의 진취적인 바람을 다 수용할 수 없었고, 18명의 젊은이들은 트리니티 유스를 떠나 구기 클럽 보루시아 1909 도르트문트(Ballspiel-Verein Borussia 1909 e. V. Dortmund)를 창단하였다.

그렇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란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들의 축구 클럽을 갖게 된 젊은이들은 향후 차분한 걸음으로 명문 클럽으로의 도약을 꿈꿨다. 보통 젊은 혈기에 의해 건설된 클럽 대부분은 곧바로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전력 보강을 시도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도르트문트는 전국 리그(지금의 분데스리가)에 참여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대신 지역 리그에 주로 참여해 명문 클럽으로 가는 초석을 닦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결정은 젊은 혈기에 치우치지 않고 차분히 클럽의 미래를 건설하고자 했던 마음에서 나온 것이였다.[11][12]

물론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작용하기도 했다. 언급했던 도르트문트는 젊은이들에 의해 창단된 클럽인데, 그러다보니 재정적 자립도가 약할 수밖에 없었고,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클럽을 만들었던 탓에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또 창단 후 10년 정도가 지난 1920년대에는 적극적인 스폰서 유치로 인한 클럽의 덩치 키우기에 도전했으나, 이 역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참담한 실패만 맛본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당시 도르트문트의 도전은 클럽 파산 위기의 원인이 되는데, 자칫 클럽이 사라질 수도 있었던 극심한 재정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처음 그들이 보여준 진취적 바람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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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문트의 초창기 홈 경기. 슈타디온 로터 에어데[13] 모인 많은 도르트문트의 홈 팬들

지역 주민들은 극심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도르트문트를 그대로 망하게 두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젊은 사람들이 올바른 축구 클럽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던 그들의 건강한 초심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르트문트의 팬들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건강한 클럽을 만들어주길 당부하며 도르트문트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그런 서포터들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은 도르트문트는 클럽의 간판을 내려야 할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큰 위기에서 벗어난 도르트문트는 본격적으로 비상을 준비했다. 20여 년 동안 지역 리그에서 갈고 닦은 실력에다 큰 실패로 인한 교훈, 여기에 지역민들의 깊은 사랑까지 두루 얻은 도르트문트에게 성공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그들을 괴롭혔다. 1930년대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을 뒤흔든 나치즘때문이었다. 극도의 전체주의 정당이었던 나치즘은 독일 내 모든 스포츠 및 운동 단체들에게 “우리의 목표에 맞게 팀을 운영하라”라는 간결하면서도 섬뜩한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정권 선전 도구로 스포츠를 이용한 것이다.

이는 축구 클럽인 도르트문트도 예외일 수 없었다. 도르트문트는 나치즘의 그런 권고를 무시해 당에 가입하지 않는 등 항전의 자세를 취했고, 그런 도전은 성난 나치즘으로 하여금 클럽 경영진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큰 생채기를 남기게 하고 말았다. 이후엔 클럽 내부에서 나치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작업이 계속됐고, 그렇게 색출된 사람은 공개 처형을 당하는 등 클럽 내 어두운 그림자가 계속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게 팀이 커다란 혼란에 흔들렸으니 선수들은 물론 도르트문트를 응원하는 팬들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도르트문트에도 희망의 빛이 깃들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도르트문트는 나치즘 초창기 가입을 거부하고 항전했다가 클럽 경영진이 송두리째 바뀌어 나치즘 신봉자들이 클럽의 실권을 장악하게 됐는데, 바로 이 문제가 세계대전 종료 후 연합군들에게 또 다른 명분을 제공했다. 연합군은 당시 독일 내 나치즘의 잔재를 몰아내는 데 힘을 쏟았는데, 클럽 경영진과 직원 대부분이 나치즘이었던 도르트문트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클럽이 해체당한 것이다. 다행히 주변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클럽들과 합병해 그럭저럭 명맥은 이어갈 수 있었지만, 원하지도 않았던 나치즘으로 인해 수십 년의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3.2 독일을 물들인 노란 바람

하지만 그러한 위기는 도르트문트를 강팀으로 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1940년대 말 도르트문트는 이전과는 몰라보게 강한 팀으로 발전했다. 이유는 연합군에 의한 강제 해체 후 클럽 합병 때문이었다. 당시 도르트문트는 주위 두 개 클럽과 합병에 가까운 상생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연합군의 제재 후 도르트문트 출신의 경영진들이 가장 빨리 현장 1선에 복귀해 팀을 재건시켰고, 이 과정에서 세 팀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팀을 재창단할 수 있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팀 전체의 전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고 아울러 베스트팔렌주는 물론, 전국 리그에 나가서도 손색없는 전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

한층 높아진 전력을 보유하게 된 도르트문트는 그때 당시 베스트팔렌 지역 최강으로 꼽히던 샬케04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레비어 더비라 불리며 독일 내 최고의 더비 매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 바로 이 시기다. 그렇게 승승장구를 시작한 도르트문트는 1947-48시즌 샬케04를 물리치고 베스트팔렌 지역을 대표해 전국 챔피언십[14]에 참가하게 됐다. 처음으로 전국 대회의 맛을 알게 된 도르트문트는 다음인 1948-49시즌에도 베스트팔렌 지역을 대표해 전국 챔피언십에 출전했는데, 이때는 결승까지 오르는 괴력을 발휘하며 그 이름을 독일 전역에 알렸다. 그렇게 조금씩 베스트팔렌 지역을 넘어 독일 전역에 존재감을 과시하던 도르트문트는 꾸준한 강세를 보였고, 결국 1955-56시즌에는‘도이치 마이스터’란 이름 아래 창단 첫 독일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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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56시즌 우승후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리는 알프레드 프라이슬러

다음 해 디펜딩 챔피언의 자격으로 출전한 1956-57시즌 또 한 번 결승전에 진출했고 함부르크와의 맞대결 끝에 4-1이란 넉넉한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 대회 2연패란 금자탑을 세웠다. 이후 1962-63시즌에는 퀼른을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3-1로 승리하며 대회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참고로 이 대회는 1963-64시즌부터 시작된 분데스리가 전 마지막 전국 챔피언십이었는데, 도르트문트는 대회의 마지막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미를 장식한 클럽으로 남게 됐다. 베스트팔렌 지역에서만 조용히 불던 노란 바람이 마침내 전 독일을 물들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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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64시즌 마지막 전국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는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모습

이 때에 도르트문트는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 출전하여 우승하게 되는데, 이 우승은 독일 클럽이 유럽 대항전에서 거둔 첫 우승이 된다.


3.3 첫번째 몰락

분데스리가 출범 후 도르트문트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도르트문트는 당시 팀 내 넘버 원 골잡이였던 프리드헬름 코니츠카를 선두에 내세워 유수의 강호들과 대등한 싸움을 했고, 젊은 청년들의 혈기에 의해 창단된 축구 클럽은 나치즘과 세계대전이란 후유증을 잘 이겨내고 독일 내 명문 클럽으로 빠르게 자리 잡는듯 했다.

그렇게 순조로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도르트문트는 처음 맛보는 성공에 취해 방만한 클럽 운영을 하게 되는데,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과 분데스리가에서의 선전으로 지금껏 만져보지 못했던 막대한 자금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성공에 눈이 먼 클럽 경영진은 쓸데없는 지출과 무작위 선수 영입을 일삼아 순식간에 금고를 바닥냈고, 도르트문트의 재정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아직까지 경험한 적 없는 재정 위기와 마주친 도르트문트는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이 자금이 바닥난 팀을 떠났고, 그것이 직접적인 충격파로 작용해 성적까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거의 매년 분데스리가에서 두 자릿수 승수 이상을 기록하며 베스트팔렌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 클럽으로 이름값을 했던 도르트문트였지만 1970-71시즌엔 간신히 10승을 기록하며 13위로 급락하는 충격을 맛봤다. 그 다음 시즌인 1971-72시즌에는 6승을 올리는 데 그치며 급기야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직면했다. 2부 리그에서 혹독한 수련을 쌓은 끝에 1976-77시즌 다시 1부 리그로 돌아왔지만, 이후엔 항상 중위권에 턱걸이 하는 것에 머물며 초창기의 명성을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당시 독일은 바이에른 뮌헨을 중심으로 유럽을 제패했고 월드컵에서도 잇달아 좋은 성적을 기록해 전성기를 맞았는데, 도르트문트만은 그런 행복한 나날들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런 도르트문트에게도 1974년 서독이 개최한 월드컵은 어느 정도 콩고물을 떨어트려줬다. 도르트문트가 월드컵 개최 도시로 선정되어 5만 4천석의 신구장 베스트팔렌 슈타디온을 신축하게 된 것이다. 물론 멋들어진 홈 경기장을 새로 받았다고 해서 당장 도르트문트가 재기한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창단 초기 몰락해가던 도르트문트를 구했던 지역 주민들의 사랑은 여전했고, 그 사랑이 채워질 수 있는 드넓은 홈 경기장을 가졌다는 것은 도르트문트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도르트문트는 어렵게 주어진 그 발판을 허투루 밟지 않았고 1989년 클럽 역사상 두 번째 DFB-포칼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3.4 유럽에 퍼지는 노란 바람

DFB-포칼과 독일 슈퍼컵을 차지하며 더블을 달성한 도르트문트는 본격적인 비상을 시작했다. 1991-92시즌 명장 오트마르 히츠펠트를 감독으로 선임, 스위스 최고의 스트라이커 스테판 샤퓌자 등을 앞세워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차지한 후 1992-93시즌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권위 있었던 UEFA컵에서 준우승[15]까지 달성하게 된다. UEFA컵에서의 선전으로 독일축구협회는 이례적인 상금 2억 5천만 마르크[16]를 도르트문트에게 지급했는데, 이 돈으로 도르트문트는 빅 클럽으로의 도약에 가속을 붙일 수 있게 됐다. 독일축구협회는 이 돈을 도르트문트에 지급하며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팀에게 주기 위해 마련한 포상금이다”라고 밝혔는데, 1970년대 유럽을 호령한 바이에른 뮌헨 이후 독일 클럽들이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자 당근으로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뜻밖의 거액을 손에 쥔 도르트문트는 이전처럼 방만한 운영으로 거액을 날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1970년대 겪어야 했던 암흑을 경험 삼았기 때문인데, 도르트문트는 적절한 투자로 유망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동시에 클럽의 재정 자립도를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해 거액을 계획적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위르겐 콜러, 외르크 하인리히, 마티아스 잠머, 안드레아스 묄러 등 당시 유럽 축구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선수들을 대거 영입할 수 있었고, 이들을 바탕으로 하여 도르트문트는 유럽 무대에 본격적인 명성을 알리기 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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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5시즌 우승후 마이스터샬레를 들고 있는 안드레아스 묄러(왼쪽)와 마티아스 잠머(오른쪽)

그중 절정은 1994-95시즌부터 1996-97시즌까지였다. 히츠펠트 감독은 특유의 뚝심 있는 지도력으로 도르트문트를 조직적으로 강한 팀으로 조련시켰는데, 개인보다 팀을 더 중시했던 그의 지도 철학은 많은 스타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르트문트가 잡음 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큰 힘을 보탰다. 스타 플레이어와 조직력을 두루 갖춘 도르트문트는 해당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전국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분데스리가 정상 등극은 처음이었는데, 다음 시즌인 1995-96시즌에도 분데스리가 정상에 서며 리그 2연패를 달성한다. 같은 기간 독일 슈퍼컵까지 휩쓴 도르트문트는 2년 연속 더블이라는 진기록까지 달성하며 독일 최고 클럽으로 급부상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정점에 있는 업적은 1996-97시즌 달성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도르트문트의 이 대회 우승이 특히 더 깊이 뇌리에 남았던 것은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마주친 상대가 4년 전인 1992-93시즌 UEFA컵 결승에서 패배를 안겨준 유벤투스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벤투스는 프랑스 아트 사커의 지휘관인 지네딘 지단이 이끌고 있었는데, 도르트문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3-1로 승리하며 4년 전 UEFA컵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는 동시에 클럽 역사상 최초로 빅 이어까지 품는 영광을 안았다. 더해 그해 겨울에는 남미 클럽 우승팀과 격돌하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남미 챔피언 크루제이루(브라질)를 격파하며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당시의 도르트문트는 인기, 자금력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맞설 수 있었던 유일한 클럽이었다.


3.5 두번째 시련과 재건의 길

독일을 넘어 유럽을 점령한 도르트문트의 앞날에는 창창한 빛만 있을 것 같았다. 한두해 반짝이 아닌 꾸준한 성적을 내주고 있었고, 열광적인 팬들이 있어 성적에만 집중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도르트문트는 그대로 리즈 유나이티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클럽의 계속된 성공에 고무된 클럽 운영진들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는데, 바로 독일 축구 클럽들 가운데 최초로 주식 시장[17]에 상장을 시도한 것이다. 보다 투명한 클럽 운영을 위한 도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도전은 또 한 번 구단 경영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무리한 주식 상장으로 구단 재정에 또 한 번 흑풍이 불어 닥친 것이다. 주식상장을 위한 무리한 투자는 커다란 적자란 차가운 현실로 이어졌고, 이는 1990년대 팀의 돌풍을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다시 이탈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경영난을 겪은바 있는 도르트문트는 꽤 현명한 대처를 할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번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더했기 때문이다. 홈 경기장을 매각해야 했고 선수단의 주급을 모두 20% 이상 삭감해야 하는 등 위험 수위가 달랐다. 더해 토마스 로시츠키, 얀 콜러, 크리스토프 메첼더 등 몸값이 비싼 선수들을 팔아야 했다. 이런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2005년에는 다시 한 번 클럽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18] 베스트팔렌 슈타디온이란 멋드러진 홈 경기장의 이름이 지역 보험 회사의 이름을 딴 지그날 이두나 파크로 바뀐 것도 막막한 구단의 경영난을 타파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물론 도르트문트는 클럽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던 시기에도 한 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1-02시즌의 일이었는데, 레버쿠젠을 시즌 막바지에 따돌리고[19] 클럽 역사상 여섯 번째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속설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20][21] 하지만 도르트문트의 영광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으며, 그 후 2003-04시즌 챔피언스 리그 예선에서 벨기에의 브뤼헤 FC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중요한 수입원이었던 챔피언스 리그 수입이 끊겼고, 설상가상으로 독일 최대의 미디어 그룹이던 키르히 그룹이 파산하여 TV 중계권료도 끊기고 만다. 주식 상장으로 번 돈은 챔피언스 리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선수 영입하는 데 쓴 상태에서 기껏 영입한 주전 선수들이 줄부상을 끊었으니, 미래는 불보듯 뻔했다. 게다가 시즌 초반 주축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신음하며 제대로 베스트 라인업을 짜기 어려워 리저브팀과 유소년팀에서 선수를 끌어올려야 했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가운데에서도 분전하여 리그 6위로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사이에서도 잠머는 대리석과 같다며(...) 경직된 전술구사에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도 실패하였기 때문에 여론은 잠머에게 좋은 상황만은 아니었다. 결국 2003/04 시즌을 끝으로 도르트문트 감독직에서 경질된다. 잠머의 후임으로 2년 전 UEFA컵에서 준우승의 쓴맛을 안겼던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가 부임하였다.

이후 한동안 도르트문트에는 꿈도 희망도 없어 보이는 시즌의 연속이었다. 2005-06시즌에는 2부 리그로 추락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며, 심지어 2007-08시즌에는 13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다. 클럽은 2005년 파산위기를 맞이하고 11유로에 달했던 클럽의 주식 가치는 80% 가까이 폭락했고, 선수 연봉은 20% 삭감해야 했다. 재정난으로 2006년 팀내 최고 유망주 다비드 오동코어레알 베티스로, 핵심 선수인 토마시 로시츠키아스날 FC로 이적시켜야 했다. 2007년에는 핵심수비수 크리스토프 메첼더를 이적료 없이 레알 마드리드로 넘겨주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 팬들은 열렬한 성원을 꾸준히 보내주었고 구단 역시 [뼈를 깎는 재정 개선 노력]을 진행했다.[22] 그런 노력이 계속되고 있던 와중, 재도약의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도르트문트는 2007-08시즌 DFB-포칼컵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격돌했는데,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바이에른 뮌헨이 이미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한 상태라 운 좋게 UEFA컵 출전권을 따냈던 것이다. 오랜만에 UEFA컵 출전권을 손에 쥔 도르트문트는 회생의 실마리를 잡았고, 2008-09시즌부터 40세의 젊은 위르겐 클롭 감독을 선임하여 재기를 노렸다.

2008-09시즌 분데스리가에서 6위를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인 클롭은 빼어난 전술적 능력은 물론이고 그라운드 위에서의 열정적 세리머니와 뛰어난 입담으로 선수단을 완벽히 장악했다. 그리고 스타 선수 영입과 유망주 발굴도 균형감 있게 진행하며 1990년대 유럽을 강타했던 노란 바람을 다시 일으킬 준비를 착실히 수행했다.

그 결과 2009-10시즌엔 도르트문트를 5위권에 진입시켰고 그 다음해인 2010-11시즌에는 루카스 바리오스, 카가와 신지, 누리 사힌, 네벤 수보티치 등 여러 유망주들이 포텐을 터트리면서 24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다. 2위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승점차는 무려 12점차. 시즌 막판 흔들리기는 했지만, 결국 32라운드에서 분데스리가 정상에 도르트문트의 노란 깃발을 꼽으며 7번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레버쿠젠이 준우승하자 스벤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 라스를 놀렸다 카더라.]

9년만의 우승이고, 지옥같던 암흑기의 종료를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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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루카스 바리오스, 마르셀 슈멜처, 마츠 후멜스,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2010-11시즌 우승 축하 퍼레이드


3.6 클롭과 함께, 보루시아! 다시 한 번 일어서다

3.6.1 2011-12 시즌

11-12 UEFA 챔피언스 리그 32강에서 아스날 FC, 올림피아코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조를 이뤄 해볼만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올림피아코스에게 3:1, 마르세유에겐 3:0으로 원정경기에서 모두 참패했다. 아스날과 안방 경기에서 1:1로 비기고 가장 약체로 평가받던 올림피아코스를 안방에서 1:0으로 이겼을 뿐.결국 1승 1무 4패로 조 꼴찌로 탈락했다.

11-12시즌은 전반기 초반 6경기에 2승1무3패에 그치는 부진을 겪으며 순위가 많이 떨어졌었으나[23] 전반기 막판 11경기 8승 3무 성적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맹추격하여 3점 차이가 난 상태에서 전반기를 마쳤다. 거기에 챔피언스리그 탈락으로 유로파리그도 참여하지 않기에 후반기에 바이에른과는 달리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기 최종전 프라이부르크 원정에서 4:1 승리를 시작으로 24라운드 홈에서 마인츠를 2:1로 이기기 까지 8연승을 달리며 1위 자리를 바이에른으로부터 빼았았다. 그 사이 바이에른은 묀헨글라트바흐와 레버쿠젠에 패하고, 함부르크와 프라이부르크에 비기는 등 주춤하면서 승점차가 7점 차로 벌어졌다.

연승행진은 의외로 치열하게 잔류를 위한 경쟁을 하고 있던 승격팀 아우크스부르크 원정에서 0:0으로 비김으로써 8경기에서 막을 내렸다. 같은 라운드 바이에른은 홈에서 호펜하임을 7:1로 이김으로써 승점차는 5점으로 좁혀졌다. 26,27라운드에서는 각각 베르더브레멘에 홈에서 1:0 승리, FC쾰른 원정에서 6:1 대승을 거두며 승점차를 유지했다. 28라운드 슈투트가르트와의 안방 경기에서 난타전 끝에 4:4로 비겼고 다음날 바이에른이 뉘른베르크 원정에서 추가시간 결승골로 승리하며 도르트문트와 뮌헨의 승점차는 3점으로 좁혀졌다. 29라운드에서 도르트문트는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3:1로 이기고, 바이에른은 홈에서 구자철이 골을 넣은 아우크스부르크에 2:1로 승리하며 승점차는 여전히 3점. 4월 11일 30라운드 도르트문트 안방경기를 통해 분데스리가의 우승의 향방이 가려지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로벤이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레반도프스키가 결승골을 넣어 바이에른을 1:0으로 이기면서 승점을 6점으로 다시 넓혔다.[24]

그 후 샬케 원정에서도 2:1로 이기고 그날 바이에른이 홈경기에서 마인츠에게 비기는 바람에 8점이나 승점이 벌어져 사실상 리그 우승이 거의 확정되었다. 결국 한국기준 4월 22일 일요일.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홈경기에서 2:0으로 이기며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남은 경기에서 카이저슬라우테른 원정에서 5:2로 승리했고, 프라이부르크와의 최종전 홈경기에서 4:0으로 이겼다. 분데스리가 최종 기록은 25승6무3패 승점 81점으로 분데스리가 최다승점 신기록을 세웠다.[25] 아울러 5월 12일 베를린에서 열린 포칼 결승에서 레반도프스키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바이에른 뮌헨을 5:2로 격파하고 23년만의 우승을 차지, 더블을 달성했다.


3.6.2 2012-13 시즌

12~13 챔피언스리그에서는 Death조에 들어가서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AFC 아약스와 한 조에 속해있다. 1차전 조별리그 야약스와의 홈경기에서 1:0승리를 거뒀다. 2차전에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이기고 있었으나 후반 83분 핸들링 반칙으로 인해 마리오 발로텔리의 패널티킥 동점골로 1:1로 비겼다. 3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에서는 2:1승리하면서 조선두에 올라섰다.

12-13 시즌 첫 경기인 베르더 브레멘과의 안방경기는 2:1로 이기면서 첫 시작을 끊었다. 뉘른베르크 원정에서 1:1로 비겼지만 곧이어 레버쿠젠을 안방에서 3:0으로 이기면서 상위권에 도약. 리그 3연패를 향하여 길을 가고 있었지만, 4차전 원정에서 강등권에 빠져 있던 함부르크 SV손흥민에게 2골을 허용하며 2:3으로 함부르크의 시즌 첫 승 제물이자 첫 시즌 패배를 당했다. 이 패배로 승점 7점으로 4위로 추락했다. 그 후 바이에른 바이에른과 프랑크푸르트가 4연승으로 12점으로 1, 2위를 기록 중인데 5차전 프랑크푸르트 원정을 3:3으로 비겼다. 그 다음 6차전인 묀헨글라트바흐와의 안방경기를 5:0으로 이겼으나 7차전 하노버 96원정을 1:1으로 비기면서 여전히 리그 4위를 기록중이다. 레버쿠젠과 하노버가 1점으로 추격 중인 상황.

이 뒤로 리그 2위까지 올라섰으나 26차전까지 1위인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차가 17점이나 벌어져서 사실상 리그 우승은 힘들어졌다. 나머지 8경기를 다 이기고 바이에른이 연패하면 모를까. 하지만 25차전까지 21승 3무 1패라는 압도적인 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바이에른이 그럴 가능성이 적어보인다. 여담으로 21차전 안방에서 벌어진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도 손흥민에게 또 2골을 허용하면서 1:4 참패를 당하면서 12~13시즌에 손흥민에게 4골이나 헌납했다.

최근 유로파에서 분데스리가의 강세가 이어지고, 챔스에서 바이에른의 강세가 이어지면서 그 바이에른도 꺾은 도르트문트가 챔스에서 쉽사리 거꾸러지는 걸 보면 도르트문트는 리그 중시라는 인식이 한국에 있는데주로 토토쟁이들 사이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도르트문트가 챔스에서 약한 이유는 리그 위주라기보단 그냥 스쿼드가 얇아서...챔스 선수 명단을 보면 그 주간의 상황을 보면 대개 최선으로 여겨지는 카드를 선택하곤 한다. 다만 스쿼드의 한계상 카드 트러블, 부상 등이 있으면 주중 경기 여건상 체력문제까지 겹쳐 전력이 심각하게 약해지면서 자동적으로 떨어지는 것일 뿐이다.[26]

2012년 10월 25일에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조별리그 D조 3차전 홈경기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선제골과 마르셀 슈멜처의 결승골을 앞세워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전반 36분 제바스티안 켈이 페페의 패스를 가로채 넘겨준 공을 레반도프스키가 오른발 슛으로 마무리해 기선을 제압했고, 2분 뒤 호날두에게 만회골을 내주었으나, 후반 19분 마리오 괴체의 크로스를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가 쳐낸 것을 슈멜처가 차 넣어 결승골을 만들어냈다.이어 4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경기에서는 2:2로 비겼다. 결국 4승 2무 무패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면서 샤흐타르 도네츠크와 격돌하게 되었다. 2013년 2월 14일(한국시각)에 레반도프스키의 람각을 사용해 수비 2명을 날려서 일단 2:2로 비겼다. 그리고 3월 6일 안방에서 열린 2차전은 3: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8강에 진출했다.

15일에 가진 8강 조추첨에선 말라가 C.F.와 맞붙게 되었다. 원정 1차전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면서 2차전 안방경기가 유리해졌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4월 10일 열린 2차전, 비록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들이 많았지만 이번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극장경기를 만들어내며 3:2 승리, 극적으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1차전을 0:0으로 마쳐서 그런지 전반전 초반은 양팀 모두 조심스럽게 풀어나가다가 25분 그래도 아직 호아킨 산체스의 선취골이 터지면서 원정골 다득점 원칙에 의해 순식간에 2골이 필요해진 절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이후 패스들이 번번이 말라가 수비진에 의해 끊기면서 답답한 경기양상이 될 찰나, 전반 40분 레반도프스키의 만회골로 그나마 한숨 돌릴수 있었다. 그리고 벌어진 후반전, 서로가 간간히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으나 그때마다 양팀의 골키퍼들의 선방으로 인해 무산되던 도중, 후반 82분 엘리세우의 골로 인해 말라가가 2:1로 앞서가며 멘탈이 하늘나라로 갈 위기에 처했다. 비기기만 해도 탈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추가시간이 될때까지만해도 골이 나오질 않으면서 4강의 문이 닫혀가는가 싶었으나 후반 91분, 혼전끝에 마르코 로이스의 만회골이 터지더니 1분만에 산타나의 극적인 역전골이 들어가며 이번 챔스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 내에서의 심판의 판정은 매우 난감한 수준이었다. 일단 후반전 도중 이미 경고를 한장받은 마르셀 슈멜처가 드로인 상황에서 상대편 수비수인 헤수스 가메스의 목을 고의적으로 비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였으나 경고누적으로 퇴장은 커녕 오히려 가메스에게 경고가 주어졌고[27], 이후에 오프사이드 상황에서 말라가의 2번째 골이 터졌으며, 결정적으로 도르트문트의 결승골 역시 오프사이드 상황에서 나온것이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지만 이번 챔스 8강 경기마다 최소한 한두개씩 논란이 될만한 오심들이 나오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 어찌되었든 이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으니 선수단의 사기는 오를대로 오를듯. 말라가만 불쌍하게 됐다. 슈멜처의 명백한 퇴장감인 행동이 오히려 말라가의 옐로카드란 결과가 되었고 3번째 골은 크로스시점 골시점 모두 오프사이드...

그리고 4강전 상대는 추첨으로 또 레알 마드리드와 격돌하게 되었다. 조예선에서 1승 1무를 거뒀기에 사기가 오른 도르트문트가 자신있을 듯. 그래도 레알이 조예선과 달리 부상선수들이 많이 복귀하였고, 경기 이틀전 팀의 핵심 선수 중 하나였던 마리오 괴체의 바이에른행이 확정되어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4월 25일 벌어진 안방경기 1차전에서 4골을 터뜨린 레반도프스키의 활약으로 호날두가 1골에 그친 레알을 4:1 완승을 거두고 17년만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괴체에 이어 레반도프스키까지 바이에른으로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마냥 기뻐할 수는 없게 되었다...

2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선 수비로 나서면서 팽팽한 경기를 벌이다가 후반 10분 쯤 남겨두고 2골을 실점하여 0:2로 졌지만 끝내 골득실에 앞서 16년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결승전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 영국축구의 심장부인 런던 웸블리에서 독일리그팀끼리 결승을 장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오게 되었다. 올해는 바이에른이 압도적으로 리그를 먹었지만 작년과 재작년에는 도르트문트가 제동을 걸었던적도 있고, 다음시즌 마리오 괴체의 이적 등 근데 괴체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못나올수도 있다는게 함정. 괴체없는 괴체더비 떡밥거리는 풍부한 매치. 올시즌 상대전적은 1무 2패(슈퍼컵, 포칼컵에서 바이에른 승리, 리그 바이에른 홈 경기는 무승부)로 바이에른이 우위지만 경기내용 자체는 대등했다는 평. 일단 챔스 결승에 앞서 양팀은 5월 5일, 도르트문트 홈에서 리그 경기를 펼치게 된다. 이미 바이에른이 우승을 확정지었고 도르트문트도 2위를 거의 굳혔기때문에 양팀다 풀전력으로 나올것 같지 않긴 해도 전초전으로서는 좋은경기가 될듯. 5월 26일 웸블리에서 바이에른과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치뤘다. 엘 클라시코 더비를 꺾고 올라온 데어 클라시커 더비로 화제를 모은 이 경기에서 양팀 모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주었으나 결과는 2:1 바이에른 뮌헨의 승리였다. 대등한 경기였기에 도르트문트 선수들과 클롭 감독의 아쉬운 마음은 더욱 컸을 것이다.


3.6.3 2013-14 시즌

겨울까지 뛰지못하는 피슈첵과 샬케로 이적한 산타나의 대체자로 센터백과 풀백을 모두 소화할수있는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루스를 브레멘에서 영입.
또한 괴체의 대체자로 우크라이나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FC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헨리크 미키타리안을 영입, 프랑스에서 득점 2위를 차지한 공격수 피에르 오바메양을 영입하며 공격진을 강화, 나름 성공적인 이적시장을 보내고 있다.

13-14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선 SSC 나폴리, 아스날 FC, 올랭피크 마르세유와 같은 조를 이뤘다. 1차전 9월 19일에 열린 나폴리 원정에선 1:2로 패했다. 선제골을 먹힌 뒤 클롭 감독은 헐크가 되어(...) 대기심에게 항의를 하다 퇴장을 당했고 후멜스는 부상으로 교체아웃, 바이덴펠러는 페널티 박스 밖에서 손을 써서 퇴장 당하는 등 여러모로 경기가 안 풀린 날이었다. 막판 나폴리 수비의 자책골이 아니었으면 영패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던 경기.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2차전 10월 23일에 열린 아스날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미키타리안의 선제골과 레반도프스키의 결승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클롭 감독의 장기인 게겐프레싱이 돋보인 경기였다.

리그에선 9차전까지 바이에른 뮌헨(7승 2무)에 이어 7승 1무 1패로 2위를 달리며 추격 중이다. 다만 바이엘 레버쿠젠이 7승 1무 1패(골득실 차로 3위)로 추격 중이라 이 2팀과 경기 여부에 따라 리그 우승이 가능할 듯. 그러나...12차전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1-2로 역전패하면서 4점차로 승점이 벌어졌다. 게다가 같은 12차전을 손흥민이 3골 1도움 환상적 활약으로 이긴 레버쿠젠과 같은 28점이 되더니만 13차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안방경기에서 0-3으로 참패하면서 1위인 바이에른과 승점 차가 7점이나 벌어져 리그 우승은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레버쿠젠이 13차전을 이기면서 2위마저 넘겼다. 14차전 마인츠 05 원정은 3:1로 이겼으나 15차전 안방경기인 레버쿠젠 전에서 손흥민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했다. 이로서 10승 1무 4패로 4위 묀헨글라트바흐와 똑같아졌다. 여기서 불행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 경기에서 미들진이 모조리 박살났다. 스벤 벤더가 발목을 밟혀 먼저 실려나갔고 이후 누리 사힌이 공중볼 경합 도중에 착지하면서 잘못 발을 디뎌 부상당했다. 여기에 수비수인 소크라티스 파파스토플로스가 후반 막판에 퇴장당했고 경기 도중 레반도프스키가 경미한 부상을 당해 쩔뚝거렸다. 말 그대로 부상병동의 끝판왕[28]. 그나마 골득실차로 3위를 버티고 있긴 하지만 1위인 바이에른과 10점이나 벌어진 상황이라 우승은 힘들어졌다. 레버쿠젠에게도 6점차로 벌어진 상황.
리그 후반기 개막전은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였는데 1-0으로 앞서다 벤더의 자책골로 동점이 되었고 누리 사힌의 골로 2-1이 되었으나 14-15시즌부터 합류할 지동원(!!)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무승부가 되었다. 허나 이때 챔스 진출권 경쟁팀인 레버쿠젠과 묀헨글라트바흐가 모두 패해 승점차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챔스 4차전에서는 초반 아스날은 슛팅조차 못날려볼정도로 강하게 압박을 가하여 아스날을 압도했으나 도르트문트 선수 실책으로 인해 외질에게 크로스 타임을 내주었고 이것을 지루가 머리에 맞춘것을 아론 램지가 헤딩으로 우겨넣어 먼저 실점하엿고 그 후 단단한 아스날의 수비를 뚫지 못하고 결국 1대0으로 패하여 조별탈락의 위기를 맞게되었다 이 과정에서 레반도프스키의 패널티 논란이있었으나 심판에 따라 불수도 안불수도 있는 수준이었다는 평이고 그전에 레반도프스키가 헐리웃을 하여 심판에게 찍혔다는 평도있다. 나폴리가 마르세유를 잡음으로써 나폴리 전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면 조별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졋다.마르세유 역시 복병이기도 하고...또 안좋은 소식으로 수보티치가 십자 인대가 파열하여 시즌아웃을 당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A매치기간중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슈멜처와 후멜스가 부상당해 사실상 수비진이 초토화되었다(...). 슈멜처는 최소 3주 결장에 후멜스는 2014년 1월까지 결장이라 매우 뼈아프다. 일단 자유계약으로 긴급하게 센터백 마누엘 프리드리히를 영입했지만 바이에른 뮌헨과의 데어 클라시커SSC 나폴리와의 챔스 외나무다리 싸움을 앞두고 날벼락이 아닐수가 없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수비수의 줄부상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오오 찬양하라 클롭 데어 클라시커에서는 마리오 괴체의 활약으로 털렸으나 나폴리를 3:1로 완파[29]하면서 순식간에 조 2위로 상승하여 마르세유전을 이긴다면 16강 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마르세유는 좋은 승점 공급원이죠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최종전, 마르세유 원정경기에서 레반도프스키가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 동점골을 먹혔다. 그리고 얼마 안가 마르세유쪽에서 1명 퇴장을 당해 쉽게 올라가는 분위기가 형성되나 했지만 좀처럼 골을 넣지 못했고, 그렇게 73분까지 답답한 경기가 지속될동안 산파올로에서 나폴리가 아스날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었다는 청천병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급해진 도르트문트는 더 맹공을 퍼부었지만 좀처럼 마르세유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고, 점점 유로파리그 진출티켓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는데...그러나 후반 86분, 도르트문트의 선수이자, 열혈 빠돌이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의 극적인 결승골로 순식간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가게 되었다. 도르트문트의 무승부를 바라고 80분대 초반부터 산파올로 경기장에서 천천히 공을 돌리고 있었던 아스날, 나폴리선수들, 특히 나폴리선수들은 순식간에 맥이 빠져버릴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폴리가 추가골을 넣어 2:0 승리를 거뒀지만 경기는 그대로 종료. 종료 5분전만해도 조 3위자리에 있었던 도르트문트는 순식간에 조 1위 16강 진출티켓의 주인이 되어 엄청난 부상자 속출에도 불구하고 2년연속 죽음의 조를 1위로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고, 16강 진출은 했지만 1위에서 2위로 내려간 아스날은 앞으로의 16강 험난한 대진에 한숨을 쉴수밖에 없었으며, 눈앞에서 16강 진출을 놓쳐버린 나폴리는 망연자실할수밖에 없었다. 조 추첨식 종료 후 상당한 죽음의 조로 관심을 모았던 F조였고, 그 명성답게 마지막 경기 종료직전까지도 감히 진출판도를 예상할수 없을정도로 엄청난 혈전들이 펼쳐졌다. 결과적으로 1~3위 3팀이 승점 12점을 획득하며 서로간의 상대전적과 골득실을 따져야하는 상황까지 왔고, 결국 승자는 도르트문트와 아스날이 되었으며 승점 12점을 기록하고도 탈락, 유로파리그에 나가는 비운의 팀은 나폴리가 되어야 했다.하지만 아스날도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는 바람에 비운의 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16강에서 제니트를 만나게 되었다. 구너들은 그저 웁니다

그리하여 16강전, 1차전 원정 제니트를 4:2로 이기면서 2차전을 여유롭게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2차전 안방에서 제니트에게 의외의 일격을 맞으며 1:2로 패배했지만 8강 진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경기 후반에 슈멜쳐가 부상으로 교체되었고 공격의 핵심인 레반도프스키가 경고누적으로 8강 1차전 결장이 확정되어 걱정거리가 생겼다.

8강전은 레알 마드리드와 리벤지 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리그에선 27차전에 무려 25점이나 승점이 벌어진 바이에른 뮌헨이 리그 최단 우승을 확정지으면서 2위 유지에 매달리게 되었다. 3위 샬케 04와 겨우 1점차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DFB-포칼에선 4강에 진출하여 5위 VfL 볼프스부르크와 맞붙게 되었다. 결승에 올라간다면 결승진출이 유력시되는 뮌헨과 또 맞붙게 된다.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0:3으로 패배하며 4강 진출이 많이 어려워졌다. 벤더,슈멜처,수보티치,귄도간,쿠바 등 주전들의 줄부상에 레반도프스키의 결장으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던 게임이었지만.... 흔들리던 수비쪽에서는 그나마 후멜스와 바이덴펠러가 분투해서 3실점으로 막았고, 공격쪽은 로이스가 사실상 진두지휘해서 찬스도 많이 만들어냈지만 오바메양이 대부분 날려먹어버렸다(...).

2차전 경기에서는 전반 초반 레알에게 PK를 허용하며 허무하게 4강의 꿈이 날아가나 싶었지만 디마리아의 킥을 바이덴펠러가 선방하며 희망을 이어가게 만들었고, 강력한 압박끝에 결국 페페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로이스가 전반 24분 선제골을 득점하다니, 13분후 전반 37분에 로이스가 추가골까지 득점하며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그리고 후반전에는 전반전만큼의 압박은 아니었으나 간간히 오는 공격기회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때마다 미키타리안이 번번이 날려먹어버리며 도르트문트 팬들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결국 더 추가골을 득점하지 못한채 경기는 그대로 종료. 2-0으로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합산스코어에서 2-3으로 밀려 탈락해 2차전에서 선전한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뒤에는 리가 30라운드에서 비록 조기 리가 우승으로 동기부여가 떨어졌다지만 주전을 총가동한 바이에른 뮌헨원정에서 3-0으로 완파하는 저력을 보여줬고, DFB-포칼 4강에서 VfL 볼프스부르크를 2:0으로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DFB-포칼 결승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에게 0-2로 지면서 준우승했다. 2년전과 달리 뮌헨의 더블 제물이 되어버린 셈. 뮌헨이 오심으로 이긴 결승이었다.


3.6.4 2014-15 시즌, Danke! 클롭!

독일 슈퍼컵에서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뮌헨을 꺾고 슈퍼컵 2연패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분데스리가 개막전 홈 경기에서 역대 분데스리가 최단시간 골(9초)을 허용하며 0-2로 패배해 체면을 구기며 리그를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탄식으로 가득찰 시즌을

UEFA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 결과 아스날 FC, 갈라타사라이 SK, RSC 안더레흐트와 한 조가 되었다. 아스날과는 최근 4시즌중 3시즌을 조별리그에서 맞붙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까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치른 조별리그 세 경기 모두를 한 골도 내 주지 않고 승리했다. 챔스 조별리그에서는 나름 선전하고 있으나..

FC 아우크스부르크, SC 프라이부르크를 상대로 이긴 후 마인츠전에서부터 패배를 기록, 샬케 04와의 레비어 더비에서 2:1로 패배하고 하위권인 함부르크 SV와 승격팀 쾰른에게 패배, 이어지는 하노버 96전에서도 패배하였다. 다음 경기는 슈퍼컵 이후의 데어 클라시커이다. 도르트문트가 16위 함부르크와 승점 1점차인, 승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만난 1위 바이에른 뮌헨, 그것도 원정이라 더더욱 앞날이 막막한 상황. 결국 반등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뮌헨과의 경기도 2:1로 패하고 말았다...

도르트문트 선수단의 줄부상[30], 이적생들의 미미한 활약[31] 등이 겹쳐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 주전 선수 마르코 로이스의 재계약이 계속 불발되고 있으니, 지켜보고 있는 보루센들은 그저 착잡할 뿐... 아마 그놈의 바이아웃 조항이 걸림돌이 되는 모양이다.

결국 10차전까지 2승 1무 7패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강등권에 추락했다. 베르더 브레멘: 어서 와, 강등권은 처음이지? 11득점 17실점으로 득실차가 -6이다... 라이벌 뮌헨이 23골 3실점의 막강함을 여전히 자랑하고 있기에 더 안타까운 상황이다. 묘한 것은 정작 챔피언스리그에서는 3경기 9골 0실점이라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 챔스 몰빵 (!?) 일각에서는 이런 성적을 토대로 도르트문트 특유의 게겐프레싱이 도르트문트를 많이 상대해 보지 못한 분데스리가 외부의 팀에게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여러 시즌 동안 계속해서 도르트문트를 상대해본 분데스리가 팀들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겐프레싱의 핵심은 공격진부터 시작되는 강력한 전방압박을 통해 상대의 빌드업을 사전차단하고 볼을 뺏어냈을 때 빠른 역습으로 정비가 되지 않은 상대의 빈틈을 찌르는 것인데 수비라인을 끌어내리고 중원을 두텁게 유지함으로서 압박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32] 물론 지속적인 부상선수들의 발생과 레반도프스키의 대체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는 점[33]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11월 9일, 1경기를 더 치른 VfB 슈투트가르트의 뒤를 이어18개 팀중 18위, 꼴찌를 담당하고 있다.


11월 10일 묀헨글라트바흐 크라머의 자책골로 강등권에서 탈출한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2:0으로 패배, 13라운드 현재 다시 꼴찌가 되었다.

14라운드 홈에서 치른 호펜하임전에 후멜스가 복귀하였고, 귄도간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오바메양이 절정의 컨디션을 보였던 경기. 리그 14위로 다시 올라섰다.

15라운드 헤르타 베를린과의 원정 경기에서 도르트문트에서 뛰었던 율리안 쉬버에게 득점을 허용하며 리그 전반기를 2경기만 남겨둔채 16위(강등권)에 걸쳐있다.

그 와중에 챔피언스리그 16강 추첨 결과 유벤투스로 상대가 결정되었다. 과거 결승에서 이미 붙어본 적이 있고 도르트문트의 우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도르트문트 입장에서는 좋은 기억을 가지고 경기에 임할 수 있을듯.

16라운드 VfL 볼프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앞섰던 경기를 후반 85분에 동점골을 먹히며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감해 암담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17라운드 최하위였던 SV 베르더 브레멘 원정에서 먼저 2골을 실점하고 후멜스가 1골을 만회했으나 결국 1-2 패배, 전반기를 최소 17위로 마치는것이 확정되었고 프라이부르크 결과에 따라서 최하위로 마칠수도 있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다. 그나마 프라이부르크가 2-2로 비겨서 다득점에서 1골 앞서 꼴찌는 모면했지만 이대로라면 챔스권이나 유로파권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강등을 걱정해야할 처지다. 1달여의 휴식기를 잘 살려 뭔가 대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그리고 시작된 분데스리가 후반기. 레버쿠젠과의 일전을 펼쳤다. 아시안컵 일정탓에 손흥민과 로비 크루스를 호주로 보낸 레버쿠젠이 레버아레나에서 도르트문트를 맞이했다. 도르트문트는 휴식기동안 데려온 케빈 캄플을 선발로 넣었다. 결과는 90분간의 기나긴 싸움 끝에 0:0 무승부... 케빈 캄플은 데뷔전인 만큼 그야말로 미친듯이 경기장을 뛰어다녔으며 여러 차례 공격찬스를 만드는 등 나름대로 선전을 했다. 도르트문트는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은 공격을 펼쳤지만 무득점 크리...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역습에 취약했던 점이 약간이나마 견고해졌다는 점 정도이다. 수비에서는 바이덴펠러의 선방과 후멜스의 호수비가 빛났던 경기였다.

결국 지동원이 이적한 아우크스부르크에게 홈에서 1:0으로 졌다. 이로써 최하위로 내려왔다. 답이 없다. 꼴찌가 4위팀에게 1골만 내준건 대단한 선방이잖아? 경기가 끝나고 [팬들이 분노하고 후멜스와 바이덴펠러가 팬들을 말리는 장면이 나왔다.] 바이덴펠러는 무슨 죄냐

그리고 구멍이라고 끊임없이 지적받던 임모빌레를 빼고 치른 프라이부르크전에서 로이스가 선취골을 넣고 오바메양이 그야말로 대활약하면서 3:0 대승을 거두는데 성공한다.

리그 후반부터 임모빌레를 빼니 경기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마인츠전에서 무려 4골을 넣으며 승리하였다.

그 뒤 슈투트가르트 원정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3연승까지 달렸으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유벤투스 원정에서 1:2로 패배했다. 다시 선발로 쓴 임모빌레는 여전히 안좋은 모습이었고, 그나마 도르트문트의 득점도 상대 수비수 키엘리니의 실수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선제골 실점도 바이덴펠러의 실수가 크게 작용했지만... 경기력만 보면 2골 실점이 다행이었던 수준. 게다가 피스첵이 4~6주가 예상되는 부상을 당하는 손실까지 입었다. 그래도 어쨌든 2차전이 홈이기에 반전의 여지는 있긴 하다.

챔스 경기가 치뤄진 후 리그 경기는 무려 샬케와의 레비어 더비. 경기 결과는 놀랍게도 3대 떡. 졌냐고? 이겼다! 이번에도 먹튀 2인방[34]을 뺀 채로 경기를 시작했는데, 시종일관 샬케를 위협하더니 경기 막판에 속사포같은 골을 집어넣으며 승리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내내 부진하던 미키타리안이 드디어 골을 넣었다!!

챔스에선 유벤투스에게 덜미를 잡혔지만 리그 경기만 따져보면 최근 성적이 매우 좋다. 이 모든게 새로 영입해온 공격수들을 사용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는걸 생각해보면 임모빌레와 라모스의 도르트문트 적응기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해도 과언은 아니게 되었다. 안습.

그 후 리그 경기에서 함부르크 원정, 쾰른과의 홈 경기에서 연속으로 0:0 무를 캤다. 슬슬 전반기때로 돌아가는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중.

결국 챔스 16강 2차전 유벤투스와의 홈경기에서 테베즈에게 2골, 모라타에게 1골을 실점하며 0-3 패배, 합계스코어 1-5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덕분에 남은 분데스리가 일정들이 더욱 힘들어 지게 되었다. 가뜩이나 분위기 반전을 노려야할 판에 챔스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사기가 뚝 떨어질 수 있기 때문, 사실상 유로파 진출도 힘들게 되었다.어차피 이번시즌은 강등당할뻔했으니 잔류만하먼 사실상 성공한 시즌

그리고 이어진 하노버 96 원정 경기에선 전반과 후반에 라스 슈틴들에게 두 골을 허용했으나 오바메양의 멀티골과 가가와 신지의 골로 승리했다.

하노버전을 마친 후 리그 후반기 성적이 5승 3무 1패로 꽤 괜찮은 편이다. 챔스 탈락은 털어버리고 리그에라도 계속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유로파 티켓이라도 얻지...

그런데... 앞으로 바이에른 뮌헨, 묀헨글라트바흐와의 경기가 남아있다.아이고 어쩌냐... 이 두 경기를 얼마나 잘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후반기 마무리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4월 5일 벌어진 데어 클라시커. 결과는 36분에 레반도프스키에게 헤더 골을 내주고 전세를 뒤집지 못하며 0:1 패배. 공격진인 오바메양과 로이스는 거센 견제에 꼼짝도 못하고 묶여버렸고, 중원은 맥이 없었으며 제대로 된 공격도 별로 없이 졌다. 후반 교체 투입된 라모스는 역시나 명불허전. 도르트문트 공격에 전혀 녹아들지 못했다.

설상가상 그 뒤의 묀헨글라트바흐전 마저 3:1로 완패하면서 2연패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클롭 감독 눈에 피눈물이... 거기에다가 기나긴 부침에 지칠때로 지친 위르겐 클롭 감독이 사임을 결정해버리는 초특급 비보가 날아들어왔다. 후임으로 토마스 투헬 감독이 들어올 예정이지만 그동안 함께해왔던 클롭 감독을 잘 알기에 돌문은 그냥 초상집 분위기...

그런데 그 뒤로 선수들이 의기투합이라도 했는지, 파더보른전, 프랑크푸르트전에서 연속으로 승리를 챙기는데 성공하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번 시즌 홈 어웨이 모두 패배한 바이에른 뮌헨을 포칼컵 4강에서 다시 만났다. 운명의 포칼컵 4강,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4강전에선 전반에 레반도프스키에게 선제골을 먹히면서 패배하는듯 했으나 오바메양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연장전으로 돌입하게 된다. 케빈 캄플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는 등 악재가 생기기도 했지만 무사히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뮌헨이 4연뻥을 해버렸다!

도르트문트는 마츠 후멜스가 실축한 걸 빼면 전부 골에 성공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은 키커로 나선 필립 람, 사비 알론소, 마리오 괴체가 전부 똥볼을 차면서 분위기가 박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마누엘 노이어를 키커로 세우는 모험을 했는데, 훌륭한 똥볼(...)을 보여주며 4연뻥을 시전하게 되었고, 도르트문트는 뮌헨의 트레블을 잠재움과 동시에 감격의 포칼 컵 결승에 올라서게 되었다. 결승상대는 볼프스부르크.

리그에서는 32차전까지 7위로 올라섰다.포칼컵 우승 여부에 따라 최소한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낼 전망이 있다. 리그 우승후보가 7위라는 게 실패라고 볼 수 있지만 시즌 초반에는 16위 강등권까지 떨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나쁜건 아니다.

리그 막바지가 되면서, 도르트문트의 주요 선수라고 할 수 있는 마츠 후멜스일카이 귄도간 등의 이적설이 계속 나고 있다. 특히 귄도간은 이적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귄도간은 특히 협상 과정에서 현재 마르코 로이스 이상의 주급을 받기 원한다는 주장을 계속 하였고, 이때문에 협상이 난항을 겪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구단은 현재 마츠 후멜스가 받는 주급인 13만 7천 파운드를 제시하였으나 이것을 귄도간측에서 거절, 결국 겨울 이적시장때부터 진행되어 왔던 귄도간과의 재계약 협상은 실패하고 말았다. 귄도간은 오는 2014-2015 시즌이 종료되는 여름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도르트문트는 이번 시즌에서 포칼컵 우승과 유로파리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포칼컵에서 우승을 한다면 자동으로 유로파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도르트문트가 포칼컵 결승전에서 패하게 된다면 분데스리가에서 순위가 유로파 진출권 안에 들어서 가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벌어진 마지막 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 다행히 가가와, 오바메양, 미키타리안의 골로 3:2 승리를 챙겼고 7위를 확정시키면서 포칼컵 우승여부와 상관없이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DFB-포칼 결승은 볼프스부르크에게 1-3으로 완패하면서 4번째 우승에 실패하고 볼프스부르크 팀 역사상 첫 DFB-포칼 우승 제물이 되어버렸다.

경기 내용은 전반 5분만에 오바메양이 발리슛으로 골을 넣으며 기분 좋게 시작하나 했으나 켈의 파울로 인한 프리킥 상황을 시작으로 줄줄이 실점당하며 1:3의 스코어로 전반전을 마쳤다. 전반에 부진했던 두름과 켈[35]이 브와슈치코프스키와 피스첵과 교체됐다. 그런데도 터지지 않는 골. 결국 전반보다 못한 기량을 보이던 로이스를 임모빌레와 교체[36]했으나 역시 차도는 없었고 점수차를 줄이지 못한 채 패배한다.

여담으로 심판의 판정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37] 전반전으로 심하게 관대했다. 전반 내내 거친 몸싸움이 계속 되는데도 그대로 경기를 진행시켰고, 패널티 박스 안의 충분히 논란이 될만한 몸싸움마저 두번이나[38] 무시했다. 또한 쉬얼레가 명백한 반칙을 해서 일단 프리킥인지 패널티킥인지부터 고민해야할 상황에 그냥 쿨하게 경기를 진행시킨다. 그 외에도 돌문의 진영에서 수비를 하던 슈멜처가 명백히 거친 수비로 상대 선수를 넘어뜨렸음에도 그냥 넘어가는 이해 되지 않는 판정을 보였다. 그나마 후반부에 예의상 주는거라해도 과언은 아닌 옐로 카드 몇장을 뿌린 것을 제외하면 논란 상황에서 제대로된 판정은 한 건도 하지 않았다. 에효 말을 말아야지

2014/15시즌 인터뷰 준비 중 2차 세계대전 때 불발한 폭탄이 발견돼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


3.6.5 2014-15 시즌, 부진의 이유는 무엇인가?

클롭감독의 전략은 이전과 같았다. 그리고 그 수가 안 먹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도르트문트는 2014-2015시즌 전반기에 정말 처참하도록 부진했다. 이렇게 도르트문트가 2014-2015 시즌에 부진하게 된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다.

1. 골을 넣어주는 정상적인 공격수가 전반기에 없었다.

2. 수비진의 잦은 실책

3. 공, 수를 연결해주는 플레이메이커가 없었다.

4. 마르코 로이스의 부재

마르코 로이스는 장기 부상, 일카이 귄도간은 원인 미상의 척추질환으로 인해 전열에서 빠지는 등 역습 시 빠르게 공을 배급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미드필더들이 없었다.[39]

1. 14~15 시즌 들어서 도르트문트의 축구가 정말 보는 사람이 TV를 꺼버리게끔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격수 문제일 것이다. 4-2-3-1 포메이션에서 피니셔 역할이자 골 잡이 역할을 해주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도르트문트는 대체자로 세리에 A 득점왕 출신 치로 임모빌레헤르타 베를린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쳐주던 아드리안 라모스를 영입하여 원톱 자리에 세웠으나... 와장창 보이는 족족 찬스를 날려먹으면서 팀의 득점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실점의 리스크를 걸고, 다득점 경기를 유도하는 공격적인 스타일의 팀에서 골을 결정짓는 공격수가 없다는 것은 곧 실점만 주구장창 하고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도르트문트의 공격수는 골을 넣는 역할 뿐만이 아니라 연계가 막혔을 때 직접 연계를 풀며 전개하는 역할도 있었다. 레반도프스키가 이 역할을 제대로 해냈기에 골을 못 넣는 것 그 이상으로 임모빌레와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2. 사실 저번 시즌까지 도르트문트는 득점에 비해 실점이 적은 팀이었다. 오히려 네벤 수보티치마츠 후멜스의 센터백 라인은 분데스리가의 최고 센터백 조합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수보티치가 지난 시즌에서 큰 부상을 입고 장기 부상으로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올 시즌 초 장기 부상에서 복귀한 수보티치가 잦은 실수를 하게 되면서 게겐프레싱의 최대 약점인 상대 역습을 자주 내주게 되었다. 결국 역습에 강한 도르트문트가 오히려 상대의 역습 한방에 허무하게 실점을 내주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40] 결국 팀의 잦은 수비 불안으로 인해 마츠 후멜스같은 다른 센터백 선수의 커버 영역은 자연히 더욱 넓어졌고, 옅어진 수비 라인 사이로 상대 공격수가 마구마구 침투하면서 분데스리가 최상위 센터백 조합이라 칭송 받았던 일명 후멜티치 조합이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이렇게 수비가 위태로워도 북런던의 어느 클럽처럼 누군가가 극한직업 수준의 활약을 하면 커버가 되는데, 로만 바이덴펠러는... 요병재가 아니었다. 골키퍼마저도 이 꼴이니 수비고 공격이고 개작살난건 당연지사. 결과적으로 센터백 라인 붕괴와 그것을 상쇄해 줄 골키퍼의 활약이 없었다.

3. 2선 공격을 책임졌던 가가와 신지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이후 도르트문트의 2선 공격은 마르코 로이스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로이스가 큰 부상으로 인해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되자 도르트문트 왼쪽 윙어 자리는 구멍이 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던 헨리크 미키타리안마저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서 도르트문트의 2선 공격진은 피에르 오바메양을 제외하면 전멸하고 말았다. 여기에 수비형 미드필더를 담당했던 일카이 귄도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척추 질환으로 인해 선수 생명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고, 누리 사힌은 간간히 부상으로 대열을 이탈하였다. 여기에 2014년 11월 중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스벤 벤더 마저 6주 부상을 당하면서 전반기가 끝날때쯤 남아있는 도르트문트의 네임드 미드필더는 14~15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노익장 제바스티안 켈밖에 없었다. 이쯤되면 14~15 시즌 전반기 도르트문트는 역습 상황에서 패스 플레이가 안되어서 못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당장 그라운드에서 뛸 선수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안습.

4. 마르코 로이스는 주축이 다빠진 도르트문트의 에이스와도 같은 존재이며 클롭 전술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거기다가 다른 선수들과의 연계(오바메양이나 미키타리안이라던지)도 로이스가 있어야 살아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로이스가 장기부상으로 결장을 하니 어쩔수 없이 차를 떼고 장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사실상 골도 잘넣는 로이스기 때문에 열심히 사온 개노답 2형제(치로 임모빌레, 아드리안 라모스)가 아무리 삽질해도 공격을 제대로 보좌해주면서 골도 쏠쏠히 넣을 수 있는 로이스의 부진은 뼈아팠다. 유일하게 공격진 중에 로이스의 부재속에서도 제몫을 해낸 선수는 로이스와도 절친인 오바메양뿐... 농담이 아니고 오바메양빼고 아무도 공격을 못했던게 로이스가 없던 전반기의 도르트문트다.

클롭 감독은 전반기 부진을 인정하면서 전반기 휴식기에 팀을 개편하겠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다행히 전반기 종료후 휴식기에서 클롭 감독은 팀을 개편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나온 해결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골 못 넣는 공격수들을 빼고 기존에 오른쪽 윙어로 뛰고 있었던 오바메양을 원톱으로 변경시킨다. [41]

2. 수보티치를 비롯한 주축 수비진들의 실책을 줄인다.

3. 미드필더들의 부상을 잘 관리해서 최대한 빨리 복귀 시킨다.

4. 마르코 로이스가 복귀한다(...).

그 결과 도르트문트는 리그 최하위에서 7위라는 상위권으로 리그를 마감하고 DFB 포칼 준우승을 거둬들였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유벤투스에게 합산 스코어 1:5로 대패 하였으나 올해 도르트문트의 상황을 고려했을때 챔피언스리그 16강은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다음 시즌은 비록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무산되었으나 그래도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이라도 얻었기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시즌이었다.

3.7 투헬의 말벌 군단, 새로운 시작!

클롭 감독 사임 발표 후, 바로 후계자로 낙점되었고, 2015-16시즌부터 도르트문트를 맡게 되었다. 클롭 감독과 똑같은 루트로 왔다.(마인츠 감독➡도르트문트 감독) 전술적으로 단조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클롭 감독과 달리, 전술적 다양함을 구사하는 감독이라 다들 많이 기대한다. 다만, 유럽 클럽대항전에 대한 경험이 전무해서, 이것이 걱정되기도 한다.[42] 그리고 그것은 실제가 되었다.

3.7.1 2015-2016 시즌

3.7.2 2016-2017 시즌

4 현재 스쿼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6-17시즌 스쿼드
등번호국적포지션한글 성명로마자 성명생년 월일신체 조건계약 년도계약 만료비고
1 GK로만 바이덴펠러Roman Weidenfeller1980.08.06190cm, 90kg20022016
3 DF박주호Joo-Ho Park1987.01.16176cm, 73kg20152018
5 DF마르크 바르트라Marc Bartra1991.01.15183cm, 74kg20162020
6 MF스벤 벤더Sven Bender1989.04.27186cm, 80kg20092021
7 MF우스만 뎀벨레Ousmane Dembele1997.05.15177cm, 61kg20162021
8 MF누리 샤힌Nuri Şahin1988.09.05180cm, 73kg20142018
9 FW엠레 모르Emre Mor1997.07.24168cm, 66kg20162021
10 MF마리오 괴체Mario Götze1992.06.03176cm, 64kg20162020
11 FW마르코 로이스Marco Reus1989.05.31180cm, 75kg20122019
13 DF하파엘 게헤이루Raphael Guerreiro1993.12.22170cm, 67kg20162020
14 FW알렉산더 이삭Alexander Isak1999.09.21190cm, 80kg20172022
17 FW피에르 오바메양Pierre-Emerick
Aubameyang
1989.06.18187cm, 80kg20132020
18 MF제바스티안 로데Sebastian Rode1990.10.11179cm, 73kg20162020
21 MF안드레 쉬를레André Schürrle1990.11.06184cm, 74kg20162021
22 MF크리스티안 퓰리시치Christian Pulisic1998.09.18172cm, 69kg20162018
23 MF카가와 신지Shinji Kagawa1989.03.17175cm, 68kg20142018
24 MF미켈 메리노Mikel Merino1996.06.22188cm20162021
25 DF소크라티스Sokratis
Papastathopoulos
1988.06.09186cm, 85kg20132018
26 DF우카시 피슈체크Łukasz Piszczek1985.06.03184cm, 79kg20102018
27 MF곤살로 카스트로Gonzalo Castro1987.06.11172cm, 74kg20152019
28 DF마티아스 긴터Matthias Ginter1994.01.19190cm, 88kg20142019
29 DF마르첼 슈멜처Marcel Schmelzer1988.01.22180cm, 72kg20052021주장
30 MF펠릭스 파슬락Felix Passlack1998.05.29170cm, 74kg20162018
33 MF율리안 바이글Julian Weigl1995.11.08186cm, 71kg20152021
37 DF에릭 둠Erik Durm1992.05.12183cm, 72kg20122019
38 GK로만 뷔르키Roman Bürki1990.11.14187cm, 85kg20152019
39 GK헨드리크 본만Hendrik Bonmann1994.01.22194cm, 80kg20132018
출처 : 영어 위키백과, 마지막 수정 일자 : 2017년 1월 24일


5 스폰서 목록

  • 메인 스폰서
    • 에보닉 - 유니폼 스폰서. 베스트팔렌을 연고로 하는 특수 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 푸마 - 용품 후원사. 독일의 스포츠 브랜드이다.
    • 지그날 이두나 - 구장 명명권 소유. 도르트문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일의 보험사이다.
  • BVB 챔피언파트너
    • 오펠 - 독일의 자동차 회사.
    • 유로윙스 - 터키 항공에서 16-17시즌부터 새로운 스폰서를 맡게 된 독일의 항공사.
    • 브링크호프 - 도르트문트의 맥주 브랜드.
    • 화웨이 - 중국의 전자 회사.
    • 지그날 이두나
    • 슈프리허 - 독일의 식품 기업. 닭고기와 칠면조고기를 취급하는데, 우리나라의 하림과 같다.
    • 슈파르다 방크 - 포츠담에 본사를 둔 독일의 은행.
    • 윌로펌프 - 도르트문트를 연고로 하는 펌프 시스템 제조 기업. 국내에도 진출해서 부산에 공장을 두고 있다.
    • 한국타이어 - 대한민국의 타이어 회사.
  • BVB 파트너

6 이야깃거리

6.1 홈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 참조.
정작 들어가보면 크고 아름다운 구장 규모에 비해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6.2 상징색

도르트문트의 상징색은 노란색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란색인것은 아니였다.
초창기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파란색과 하얀색이 교차하는 세로 줄무늬 상의에 검은색 하의를 착용했다. 그리고 양말은 톡톡 튀는 빨간색이었다. 지금 도르트문트 하면 생각나는 노란색은 유니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클럽이 창단된 뒤 4년 만인 1913년 유니폼에 너무 많은 색이 들어가 있어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지금은 노란색과 검은색만을 사용한, 심플하면서도 힘 있는 클럽의 고유색을 갖게 됐다.


6.3 라이벌

숙명의 라이벌이 있다. 바로 FC 샬케 04

샬케 04와의 레비어 더비는 분데스리가 최대의 축구전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미 레비어 더비는 FIFA 선정 세계 5대 더비에 올랐을 만큼 매우 치열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방을 대표하는 두 광공업도시의 대결로 베스트팔렌 더비라고도 부른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지그날 이두나 파크와 샬케 04의 홈구장인 벨틴스 아레나의 모든 좌석은 매진이 된다. 도르트문트가 8만, 샬케 04가 6만의 관중규모를 가지고 있고, 각각 유럽리그 평균 관중수 1위, 6위일 정도로 팬심도 강력하니 절대 매진이 안 될 수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더비 매치 참조. 레비어 더비가 있는 날이면 그 구장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경찰이 매우 삼엄한 경비를 선다.


6.4 그 밖에

국내 팬들에게 불리는 애칭은 돌문. Stone Door 그래서인지 돌문이라고 검색해도 바로 이 항목으로 올 수 있다.

2008년 이영표토트넘 홋스퍼에서 이적해 왔으나 시즌 중반 부상을 입으면서 많은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이영표는 2009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로 이적하면서 유럽 무대 생활을 접게 된다.

2014년 1월 17일 지동원의 영입이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남은 13-14시즌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보내고 14-15시즌부터 합류한다고. 그러나 주전경쟁에 밀리고, 부상으로 인하여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였고, 결국 2014년 12월 23일 아우크스부르크로 재이적하게 되었다.

2015년에는 박주호가 마인츠에서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이영표의 전 등번호인 3번을 달게 되었다.

손흥민이 이 팀에게 유달리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분데스리가 데뷔 이래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승점을 9점이나 챙기면서 한국 해축팬들 사이에선 최강의 양봉업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잘가요 양봉업자 하지만 2015-16시즌 유로파 리그에서 손흥민은 닌자가 되어, 양봉업자의 칭호를 떼게 되었다.

마르세유와는 소름돋는 평행이론인 관계이다. 2011-12시즌 챔피언스리그 F조에서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을 한게 2년전이던 마르세유가 홈에서 도르트문트를 3-0으로 잡고 원정에서도 1점차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결과로 마르세유는 16강진출후 8강에서 탈락. 도르트문트는 조 꼴지, 같은 조였던 아스널은 16강에서 탈락 했었는데, 2013-14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또 셋이 F조로 모였고 이번엔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을 한게 2년전인 도르트문트가 홈에서 마르세유를 3-0으로 잡고 원정에서도 1점차 승리를 거두며, 그 결과 도르트문트는 16강진출후 8강에서 탈락. 마르세유는 조 꼴지, 같은 조였던 아스널은 16강에서 탈락 했다.[43]그 밖에 소름돋는 공통점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옛 홈구장이었던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는 3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44]이 치뤄졌었는데 도르트문트[45]와 마르세유[46]처음으로 빅 이어를 들었던 결승전 장소는 바로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이였다. 그리고 마르세유는 르 클라시크 라이벌에게 재정이 압도적으로 밀려서 리그 우승도 못하고있고 도르트문트도 데어 클라지커 라이벌에게 재정이 압도적으로 밀려서 리그 우승은 꿈만 같은 상황이다. 더불어 마르세유와 도르트문트는 상대전적에서 서로 7득점 7실점을 했다.

여담으로 나무위키에서 가장 항목이 충실하고 큰 축구클럽중 하나다.위키러들 중에서 도르트문트 팬들이 많은듯.하긴야 현지팬이 저렇게 열광하는데 여기라고 열광안하는게 이상하다.


7 같이 보기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 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1956년11회
2 벤피카
(Benfica)
1961년2회
3 밀란
(Milan)
1963년7회
4 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1964년3회
5 셀틱
(Celtic)
1967년1회
6 맨유
(Manchester Utd.)
1968년3회
7 페예노르트
(Feyernoord)
1970년1회
8 아약스
(Ajax)
1971년4회
9 바이에른 뮌헨
(Bayern)
1974년5회
10 리버풀
(Liverpool)
1977년5회
11 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1979년2회
12 애스턴 빌라
(Aston Villa)
1982년1회
13 함부르크
(Hamburg)
1983년1회
14 유벤투스
(Juventus)
1985년2회
15 스테아우아
(Steaua)
1986년1회
16 포르투
(Porto)
1987년2회
17 PSV
(Eindhoven)
1988년1회
18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1991년1회
19 바르셀로나
(Barcelona)
1992년5회
20 마르세유
(Marseille)
1993년1회
21 도르트문트
(Dortmund)
1997년1회
22 첼시
(Chelsea)
2012년1회


  1. 뒤에 붙는 e.V.는 eingetragener Verein을 줄인 말로, "등록 클럽"이란 뜻이다.
  2. 독일에서 가장 큰 축구 경기장이며, 유럽에서 5번째로 큰 축구 경기장이다
  3. 해석하면 Real Love(진정한 사랑).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팬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의미로 도르트문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4. 독일 내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매치이며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데어 클라시커보다 현지에서는 더 중요히 여기는 경기이다.
  5. 단순한 마이스터샬레를 노리는 순위 경쟁 관계일 뿐이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서로를 라이벌로 취급하고 있지 않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6. 2014년 7월 11일에 85번째 보루센 더비 경기가 있었다. 2016년 기준으로는 90회 정도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더비'에 대해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증한 것으로 봐서 서로 간에 '이 더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신경은 쓰는 것으로 보인다. [#]
  7. 12번째 선수인 팬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해 놓았다.
  8. 카가와 신지가 도르트문트에서 맨유로 이적하여 첫 공식 경기를 뛰었을 때, 해설을 하던 개리 네빌"카가와는 이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뛰어본 적이 없어 무척 낯설 것이다"라는 멘트를 날려 독일 축구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올드 트래포드보다도 크고 EPL 웬만한 경기장의 2배 규모인지라(…). 물론 잉글랜드의 경기장과는 달리 독일의 경기장은 입석이 있다는 점이 크다. 힐스버러 참사 이전 입석이 사라지기 전의 올드 트래포드는 지금처럼 증축이 되지 않았음에도 10만명이 들어가는 경기장이었다.
  9. Gegenpressing. 독일어 Gegen과 Pressing의 합성어로, 해석하자면 근접 압박(Pressing Against)이라고 할 수 있다.
  10. 사실 클롭의 경우 게겐 프레싱이라는 플랜 A는 있었으나 그 다음 플랜이라는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14-15 시즌 도르트문트 부진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투헬의 경우, 정말 전술 옵션을 많이 보유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1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이름 중 "Borussia"의 어원은 팀 결성 당시 그들이 모였던 양조장인 "Borussia Brewery"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이센 왕국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12. 출처 : http://www.bvb.de/eng/BVB/History/1909, "By the way, the name ”Borussia“ is leant from the Borussia brewery on the street Steiger Strasse."
  13. Stadion Rote Erde. 현재는 도르트문트 2군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르트문트 1군이 1974년까지 이 곳을 홈 경기장으로 이용할 당시엔 약 4만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 전용구장이었으나 이후 리노베이션을 통해 육상 트랙이 추가된 오늘날의 종합경기장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육상 경기 수용인원은 2만 5천명, 축구 경기 수용인원은 9,999명이다.
  14. 컵대회, 차후 분데스리가로 개편
  15. 결승에서 유벤투스에 1차전 1-3패(홈) 2차전 0-3패(원정)으로 준우승했다.
  16. 당시 원화 환산 약 140억 원
  17. DAX(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18. 이때 바이에른 뮌헨으로부터 200만 유로를 빌려받기도 했다.
  19. 시즌 종료를 3경기 남기고 레버쿠젠이 승점 5점차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2연패를 당하며 2위로 미끄러졌다. 이때 레버쿠젠은 분대스리가-DFB 포칼-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며 콩레블을 달성하고 말았다.
  20. 마티아스 잠머는 선수 및 감독으로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하였다.
  21. 해당 시즌 UEFA컵 준우승도 기록했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3:2로 패하여 우승에 실패했다.
  22. 재정 개선 + 꾸준한 성적으로 인해 2013년 현재 도르트문트의 수입은 세계 축구 구단중 10위이며(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 기준) 주급제한을 풀고 유스에 대대적인 투자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에 올라왔다. 이렇게 부활한 건 바츠케 회장이 돈을 잘 안 쓰고 쓸 곳에만 쓰며 아낀 것이 크다. 여담으로 14/15시즌이 시작되기 전 챔스 진출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챔스 보험을 들어놨다고 한다. 그리고 성지가 되었다. 여기서도 그의 운영력과 예지력(?)을 엿볼 수 있다.
  23. 6라운드 하노버 96 원정경기에서 1:2로 패배한 후 다음 시즌 4라운드 함부르크 SV 원정에서 2:3으로 패배할 때까지 분데스리가 31경기에서 지지 않았다
  24. 이때까지 이번 시즌 바이에른전 2경기를 모두 1:0으로 이겼다.
  25. 그러나 다음 시즌에 바이에른이 승점 91점을 따내 그 기록을 경신했다.
  26. 이는 분데스리가 팀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특성으로 볼 수 있다. 겨울철 휴식기는 커녕 박싱 데이가 있어 경기를 계속 하는 EPL은 물론, 프리메라리가, 세리에 A보다도 훨씬 긴 분데스리가의 빈터파우제(Winterpause)로 인해 선수들은 다른 어느나라보다 길고 충분한 휴식기를 갖게 된다.(그래서 분데스리가는 각 팀의 전반기와 후반기 전력차가 상당히 심하다. 전후반기의 팀이 서로 다른 팀처럼 보일 정도.) 게다가 리그 경기, 포칼(컵 경기)을 다 합친 경기 숫자도 적다. 두터운 스쿼드 자체가 애초에 리그 경기에는 필요하지 않은 셈. 재정이 남아도는 바이에른 뮌헨 정도라면 챔스를 위한 스쿼드도 마련할 수 있겠지만 다른 팀들이 그럴만한 여유는 별로 없다.
  27. 아마 주심은 가메스가 고의적인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슈멜처를 퇴장시키려 한다고 본듯 하다.
  28. 2013년 12월 8일까지 부상당한 선수들은 마르켈 슈멜처, 마츠 후멜스, 네벤 수보티치, 스벤 벤더, 누리 사힌, 일카이 귄도간, 마르코 로이스...주전 선수 중 7명이 나가리되었다.
  29. 말이 좋아서 3:1이지 레이나가 없었으면 더 큰 스코어로 털었을 경기였다. 그야말로 완전히 압도한 경기
  30. 게겐프레싱이라는 전술이 체력적으로 부담을 주기에 더하다.
  31. 임모빌레와 라모스는 계속 주전으로 기용되고 있으나 그다지 큰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으며, 카가와도 예전 도르트문트 시절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 하고 있다. 긴터는 센터백들의 부상으로 인한 구멍을 메꿔주기는 했으나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지동원은 아예 1군 경기 자체를 뛰지 못 하고 있다. 윤석영도 데뷔전 치른 마당에...
  32.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11월 1일 벌어진 뮌헨과의 리그 경기이다. 뮌헨은 유럽 전체에서도 수비라인을 가장 높게 끌어올리는 팀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비라인 뒷공간이 넓게 발생하게 되고 그 결과 게겐프레싱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어 전반전에 골대를 맞추기도 하고 로이스가 선제골도 뽑아낼 수 있었다. 후반에 뮌헨이 수비라인을 좀 더 후퇴시키고 리베리를 투입하자 압박이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게겐프레싱에 지친 도르트문트는 로베리라는 세계 최고의 크랙의 끊임없는 침투를 견뎌낼 수 없었기에 결국 패배하기는 했지만 이 경기에서의 도르트문트는 공격적으로 나오는 상대에겐 게겐프레싱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33. 임모빌레와 라모스 모두 좋은 활동량과 기회를 골로 만드는 결정력은 가지고 있으나 압박능력이 부족해 도르트문트의 게겐프레싱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지동원은 출전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34. 임모빌레... 라모스...
  35. 두름은 경험부족을 보이며 번번히 수비 실책과 패스 실수를 보였고 켈은 불필요한 신경전과 도발을 하는 등 격앙된 모습이었다.
  36. 로이스도 전반 귀중한 크로스 찬스를 날린 뒤로는 점점 폼이 하락했다.
  37. 이 심판이 그 유명한 슈테판 키슬링의 옆그물 골의 주인공이다.독일 축구협회는 장님도 심판으로 채용하나 봅니다.
  38. 덕분에 야쿱 블라시치코프스키가 심판의 면전에 대고 손가락 두 개를 들어보이며 화를 내기도 했다.쿠바옹이 화낼 정도면... 에휴... 심판이 얼마나 못났길래
  39. 가가와와 미키타리안은 침몰 중이었고... 켈은 은퇴한다고 선언한지라 귄도간과 로이스를 대체할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봐야한다. 멀쩡한건 2선의 오바메양 뿐
  40. 예를 든다면 전반기 도르트문트의 사활이 걸린 데어 클라시커 경기에서도 수보티치가 어이없게 공을 빼앗기고 무리하게 되찾는 과정에서 백태클을 걸어 PK를 내주게 되었고 이 골이 뮌헨의 결승골이 되었다.
  41. 사실 오바메양은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고, 도르트문트에선 윙포워드와 윙어 롤을 소화하고 있었다. 조금 위험한 수긴 하지만 결정력은 임모빌레, 라모스가 더 쓰레기였으므로... 그나마 위안은 오바메양이 생테티엔 시절까지 스트라이커를 소화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42. 클롭 감독도 초반에 이랬다.
  43. 그 외에도 2011-12시즌 F조였던 올림피아코스는 조별리그 탈락 후 유로파 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2년후에 챔스 조별리그를 통과하여 16강에서 리그 7위한 맨유를 만나서 홈에서 열린 1차전을 이겼다가 2차전에서 극적으로 역전패하여 16강에서 탈락했는데, 이때 F조였던 나폴리는 조별리그 탈락 후 유로파 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2년전에 조별리그를 통과하여 16강에서 리그 6위한 첼시한테 홈에서 이기고 원정에서 극적으로 역전패를 당하는 바람에 탈락한적이 있었다.
  44. 이곳에서 첫 결승전이 열렸을 때가 1979년으로 이 때 노팅엄 포레스트가 우승하였다.
  45. 1997년에 이탈리아 클럽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
  46. 1993년에 이탈리아 클럽 AC 밀란을 꺾고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