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FC 뉘른베르크

2016-17 독일 2. 분데스리가

1860 뮌헨
(1860 München)

뉘른베르크
(Nürnberg)

뒤셀도르프
(Düsseldorf)

드레스덴
(Dresden)

보훔
(Bochum)

뷔르츠부르크
(Würzburg)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아우에
(Aue)

브라운슈바이크
(Braunschweig)

빌레펠트
(Bielefeld)

우니온 베를린
(Union Berlin)

잔트하우젠
(Sandhausen)

장크트 파울리
(St. Pauli)

카를스루에
(Karlsruher)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퓌르트
(Fürth)

하노버
(Hannover)

하이덴하임
(Heidenheim)
1.FC 뉘른베르크 공식 엠블럼
1.FC 뉘른베르크
1.FC Nürnberg
정식 명칭1. Fußball-Club Nürnberg Verein für Leibesübungen e. V.
창단1900년
소속 리그독일 2. 분데스리가(2. Bundesliga)
연고지바이에른뉘른베르크(Nürnberg)
홈 구장프랑켄 슈타디온(Frankenstadion)
48,548명 수용
회장마르틴 바데어(Martin Bader), 랄프 워이(Ralf Woy)
감독르네 바일러(René Weiler)
애칭Der Club(The Club; 우리 식으로 말하면 클럽 그 자체)
Die Legende(전설)
Der Altmeister(과거의 챔피언)
Der Ruhmreiche(영광스러운 팀)
공식 홈페이지[1]
우승 기록
1. 분데스리가
(9회)[1]
1920, 1921, 1924, 1925, 1927, 1936, 1948, 1961, 1968
DFB-포칼
(4회)
1935, 1939, 1962, 2007

독일의 리즈 유나이티드


1 개요

독일 2. 분데스리가의 축구 클럽. 클럽 자체는 종합 스포츠 클럽이라서 핸드볼, 아이스하키, 롤러 스포츠, 하키, 수영, 복싱, 테니스 팀도 보유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축구 클럽에만 한정 짓기로 한다.

독일 축구의 초창기를 지배했지만 현재는 평범한 수준으로 전락한 팀. 그래도 유서 깊은 명문이기 때문에 팬 수는 많다. 팀의 최대 라이벌은 1910년대와 1920년대 패권을 겨룬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지만, 이쪽도 1990년대 접어들면서 2부 리그에서 허덕이고 있으니... 분데스리가 출범 후의 최대 라이벌은 오히려 바이에른 뮌헨인데, 이는 같은 남독일 지역에 위치했고, 또 분데스리가 출범 전까지는 감히 들이댈 수 없었던 바이에른 뮌헨이 어느새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성장한 것에 대한 미묘한 감정 때문이다.


2 역사

뉘른베르크의 90년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0년 제작)

1900년 지역 젊은 청년들이 영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스포츠, 축구를 시작하면서 처음 클럽의 시작을 알렸다. 초기 독일 축구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는데, 1918년 7월부터 1922년 2월까지 104경기 무패 기록을 세웠고, 1920년대 독일 챔피언십에서 5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위세를 떨쳤다. 그래서 이 시기에 붙여진 별명이 Der Club, 우리 식으로 하면 클럽 그 자체다.

1930년대 나치의 출현 이후에는 다소 전성기가 지났지만 그래도 간간히 우승을 차지하고, 지역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가 출범하기 3년 전에도 독일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역시 위세를 드높였다. 당연히 분데스리가 출범과 함께 합류한 16개 팀이 포함되었다.

1967-68 시즌 분데스리가 합류 후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초기 중위권에서 빌빌대던 뉘른베르크는 이 시즌 개막 5주부터 선두를 달리더니 종료 때까지 선두를 굳게 지키면서 리그를 지배했다. 그.런.데....

1968-69 시즌 강등을 당했다. 승부조작과 같은 일로 강등당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성적이 부진해서 강등당했다. 여기에는 당시 감독인 막스 메켈이 팀의 우승에 기여한 노장들을 내치고, 어린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가 실패하면서 빚어진 참극이었다. 그리고 이 것을 끝으로 뉘른베르크의 전성기는 완전히 끝났다.

이 뒤로는 한 마디로 그냥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엘리베이터 팀이었다. 간신히 어느 정도 분데스리가 1부 무대에서 다시 성과를 낸 것이 1987-88 시즌의 5위였고, 그 전까지는 2부 리그에서는 좀 했지만, 1부에서는 형편없는 팀이었다. 이유는 갑작스런 강등에 따른 재정적인 위기와 한계 때문이었다.

특히 93-94 시즌엔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있었는데, 32라운드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인 헬메가 코너킥 혼전 상황에서 우겨 넣으려고 한 공이 골라인을 넘지 않았음에도 골로 인정되어 버린 것. [당시 영상]그리고 20년 후 이 골이 재연되었다..
당시 강등 싸움을 하고 있던 뉘른베르크는 이 날 패배로 큰 타격을 입자 재경기를 요구했고, 결국 결정되어 33, 34 라운드 사이에 재경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0:5로 더 큰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의 라운드에서도 연이어서 대패하면서 결국 강등. 여기서 더 안습인 것은, 잔류 꼴찌 팀과 승점은 같았지만 득실이 부족했다. 결과론이지만 바이에른과의 재경기를 하지 않았으면 강등을 피했을 가능성이 좀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

2000년대에도 그 양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가 2006-2007 시즌에는 리그 챔피언 슈투트가르트를 꺾고 DFB 포칼 우승에 성공하며 오랜만에 트로피를 차지했다. 2007-2008 시즌 UEFA 컵 조별 라운드에서 에버튼, 제니트와 같은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위로 토너먼트 라운드에 진출해서 포르투갈의 강호 벤피카에게 아쉽게 패하며 떨어졌다. 그러나 유럽 대항전의 선전과는 반대로 리그에서는 지난 시즌의 단단했던 수비가 무너지며 강등권을 전전했고, 체코의 장신 공격수 얀 콜레르를 겨울 이적 시장에서 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16위로 강등당했다.

2008-2009 2부 리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분데스리가 16위 팀 코트부스와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러 승리하며 1년 만에 재승격에 성공했다. 2009-10 시즌 전반기 3승 3무 11패에 그치며 강등권을 전전하자 미하엘 외닝 감독이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디터 헤킹 감독이 선임되었다. 후반기에는 레버쿠젠의 24경기 무패 행진을 끊는 등 전반기보다는 나은 경기력을 보였고 16위로 이번에는 강등을 피하기 위해 2부리그 3위 아우크스부르크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홈 어웨이 모두 승리를 거두며 잔류에 성공했다.

2010-11시즌엔 일카이 귄도간과 메멧 에키치 등의 활약에 힘입어 분데스리가 6위로 마무리했다. 귄도간, 에키치를 도르트문트, 베르더 브레멘에 내준 2011-1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10위, 중위권으로 마쳤다. 2012-13 시즌 전반기가 끝난 후 디터 헤킹이 펠릭스 마가트의 후임으로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그 뒤를 이어 미하엘 비징어가 후임 감독이 되었는데 2012-13 시즌엔 헤킹 감독의 공백을 잘 메워 지난시즌과 같은 순위인 10위로 마쳤다 .

그러나 13/14시즌 리그 8경기에서 5무3패에 그치고 홈에서 함부르크에 0:5로 대패를 당한 후 비징어 감독은 경질되었다. 비징어의 후임으로 부임한 게르트얀 베어벡 감독도 반등을 만드는 데 실패한 후 17차전까지 전반기 0승 11무 6패로 강등 하위권에 처졌다. 그나마 승점이 11점으로 같지만 득실이 앞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를 제치고 17위를 기록 중이다. 브라운슈바이크는 3승 2무 12패, 18위 꼴지. 설마 1승도 못하고 강등당하나 후반기 첫 경기에서 호펜하임을 4:0으로 잡고 초반 5경기에서 4승1패를 기록하며 전망을 밝게 했으나 그다음 12경기에서 1승11패에 그쳤다. 마지막 7경기는 모두 전패... 전반기 11무 6패, 후반기 5승 12패, 전반기에는 승리가 없고, 후반기에는 무승부가 없다. 결국 뉘른베르크는 2009/10 시즌 승격 이후 5년 만에 다시 강등되었다.

2015/16 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상대는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경기 전 충격적인 뇌종양 판정을 받고도 출전한 프랑크푸르트의 주장 마르코 루스의 자책골로 1:0으로 앞섰으나 후반전에 실점하면서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원정 다득점 원칙 때문에 좀 더 유리한 상황.

결국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후반 21분 세페로비치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얻어맞고 패배하면서 승격이 좌절되었다. 원정골을 넣어 유리한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시즌 내내 공격력이 강점인 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제 실점 전까지 라인을 내리고 수비만 하는 극도로 소극적인 전술을 펼치다가 철퇴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실점 이후 공격적인 교체와 전술변화를 통해 다급하게 동점골을 위해 공세를 퍼부었으나 결국 동점을 만들지는 못했다.

3 과거 주요 선수

  1. 1920~1961년의 8회 기록은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 독일 챔피언십 우승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