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전국시대)

중국의 역사
춘추전국시대통일 진

1 개요

전국시대에 등장한 나라로 초창기의 수도는 안읍(安邑)이며 후기 수도는 대량(大梁).

본래 진(晉)나라의 일부였지만 진문공 때 공신인 위주[1]의 후손인 위씨가 조씨, 한씨 등과 함께 주(周) 왕실로부터 공인받으면서 진(晉)의 영토를 분할하여 세운 나라로 전국 7웅 중의 하나이며 춘추전국시대 때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전국시대 초기에는 자하, 오기, 서문표 등을 기용하여 서하 지방을 빼앗고 중산을 멸망시켜 영토를 확장하는 등 전국시대 초기에 국력이 가장 강성하였다. 군사적으로도 오기가 훈련시킨 정예 중장보병 무졸(武卒)이 유명했다. [2]위혜왕 시대에 하서를 진(秦)에게 빼앗기면서 수도 안읍의 방어가 어려워져 대량(大梁)으로 천도한다. 이 때문에 이 나라를 양(梁)나라라고도 한다.

황하의 평야지대에 나라가 위치하여 인구가 많고 부국강병의 제반 조건들이 마련되었지만, 평야지대였기 때문에 외침에 불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혜왕(양혜왕) 때 잇따른 패전으로 하서지역 등 방위에 필요한 지역들을 상실하였고 이로 인해 나라가 위축되었다. 진(秦)의 영원한 호구 이후의 왕위쟁탈전은 가뜩이나 어려운 위나라의 국력을 스스로 소모하는 꼴이 되었으며 결국 기원전 225년에 진(秦)에게 멸망한다.

2 역대군주

2.1 삼진 분립 전 (진나라 신하)

  • 무자(武子) 주(犨) - 필만(畢萬)의 손자이자 망계(芒季)의 아들.
  • 도자(悼子) 과(顆) - 무자의 아들. 결초보은 고사로 알려져 있다.
  • 장자(莊子) 강(絳) - 무자의 아들.
  • 헌자(獻子) 서(舒) - 소자의 아들.
  • 간자(簡子) 취(取) - 헌자의 아들.
  • 양자(襄子) 만다(曼多) - 간자의 아들.
  • 환자(桓子) 구(駒) - ? ~ 기원전 425년. 양자의 아들.

2.2 삼진 분립 후

  • 문후(文侯) 사(斯) - 기원전 425년 ~ 기원전 387년. 환자의 손자. 기원전 403년 제후가 되었다. 오기를 등용했던 군주.
  • 무후(武侯) 격(擊) - 기원전 387년 ~ 기원전 371년. 문후의 아들.
  • 혜왕(惠王) 앵(罃) - 기원전 370년 ~ 기원전 319년. 무후의 아들. 맹자의 첫 편에 등장하는 양혜왕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361년 대량으로 천도하였고 기원전 344년 칭왕.
  • 양왕(襄王) 사(嗣) - 기원전 319년 ~ 기원전 296년. 혜왕의 아들.
  • 소왕(昭王) 속(遬) - 기원전 296년 ~ 기원전 277년. 양왕의 아들.
  • 안리왕(安釐王) 어(圉) - 기원전 277년 ~ 기원전 243년. 소왕의 아들.
  • 경민왕(景閔王) 증(增) - 기원전 243년 ~ 기원전 228년. 안리왕의 아들.
  • 가(假) - 기원전 228년 ~ 기원전 225년. 경민왕의 아들. 진나라(秦)의 수공으로 수도 대량이 함락당하여, 삼진(三晉) 가운데 마지막으로 멸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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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주의 할아버지 필만은 원래 희씨로 주문왕의 15남 고가 봉해진 곳으로 서융에게 망한 (畢)나라의 후손이었다. 바로 위의 위(魏)나라를 진나라가 멸망시키고 위만에게 봉토로 하사해서 씨를 위씨로 고쳤다.
  2. 사기에서 무졸은 진나라 예사(銳士)에 버금가며 제나라, 조나라보다 우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