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ere Soldiers
1 소개
2002년감독 랜들 월리스, 멜 깁슨 주연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할리우드 전쟁 영화.
베트남 전쟁 초기의 격전 중 하나인 이아드랑 전투를 소재로 하였다. 주인공인 할 무어 중령 본인이 퇴역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군기자 조셉 겔러웨이와 함께 쓴 소설인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감독 랜들 월리스는 브레이브 하트의 각본으로 멜 깁슨과 인연을 맺었으며, 둘이 잘 맞았는지 멜 깁슨 감독의 2016년작 전쟁 영화 핵소 리지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두 전쟁 덕후가 또
2 시놉시스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베트남의 지형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헬기 강습을 통한 전투를 펼치기로 한다. 그리고 이 시험 전투의 책임을 하버드 석사 출신의 전략가인 할 무어 중령에게 맡긴다. 그러나 임무 수행지인 아이드랑 계곡에 대한 사전 검토에 들어간 그는 이곳이 10여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리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자기 생애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를 출전에 대비해 아내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무어 중령[1].
1965년 11월 14일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무어 중령은 제7연대 1대대를 이끌고 아이드랑 계곡에 도착한다. 하지만 계곡 주변을 점령한 북베트남군은 아군보다 5배 이상 많은 대규모 정예 부대였고, 선발대가 모두 희생당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1대대는 보급을 헬리콥터로만 의존한 채 격전을 벌이게 된다.
1965년 11월 15일 월요일 오전 2시 30분.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이 가능한 험준한 협곡,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부상자들마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하나 둘 그 목숨을 잃어간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깊은 밤, 적진에 버려진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곳에서 모두 동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한편, 전쟁 리포터로 전지에 들어온 조 갤러웨이의 카메라에는 젊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들이 담겨지고, 그는 더 이상 카메라가 아닌 총을 들고,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 전장을 뛰어다니게 된다.
1965년 11월 16일 오후 4시 05분.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월맹군은 공포에 빠진 미군들을 포위해 들어가자 상부는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어 중령 혼자 본대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무어 중령은 부하들을 내버리고 혼자 도망치고 전장을 등질 수 없다며,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우를 외친다. 곧바로 공군의 어마어마한 지상 폭격이 감행되고, 월맹군의 추격로는 봉쇄되지만, 폭격지 좌표의 오차로 인해 무어 중령의 소대도 폭격의 화염에 희생된다.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처참한 상황. 그러나 전세는 조금씩 미군편에 유리해지기 시작한다.
1965년 11월 17일 오전 1시 00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 작전을 간파하고, 이를 교란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고,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어 중령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들이 살았건, 죽었건 내 뒤에는 아무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3 트리비아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는 미군 찬양 영화가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이미 멜 깁슨은 미국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노골적으로 미국 만세를 드러낸 영화 패트리어트에 출연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미국판 배달의 기수로 간주되기도 했다. 가령 영화처럼 최후의 총검돌격으로 미군이 결국 고지를 점령하는 일은 실제로는 없는 이야기. 다만 전쟁의 참혹함과 부하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긴 하다.
하지만 미참전용사 커뮤니티에서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종군기자로 그 자리에 있었던 조 갤로웨이(할 무어 장군과 원작 책을 같이 썼다)는 75% 정도는 맞고 25%가 허구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이 정도면 놀라운 편.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처럼 영화적 가치로써는 훌륭한 영화지만 미군을 너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여서 참전용사들에게는 비판 받은 작품들과 비교가 된다. 하지만 이아드랑 전투에 참전한 몇몇 참전용사들은 영화와 책에 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너무 할 무어 시선으로 표현한 영화라고.
다만 이런 정신승리임에도 흥행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7500만 달러 제작비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7800만 달러 흥행을 버는데 그쳤고 해외 흥행도 합쳐야 5천만 달러도 되질 못했다.
영화 극초반에는 베트남군의 기습에 털리는 프랑스군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프랑스 국기가 달린 나팔을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프랑스 군인들을 처형하라 명령하는 응우엔 중령의 모습이 인상적.
영화를 보면 출동하기 전 무어 중령이 자신이 속한 부대가 7연대이라는 것을 알고 노골적으로 불편해 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미군의 끔찍한 흑역사 중 하나로 인디언 전쟁 당시 리틀 빅혼 전투가 있는데, 이 전투에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가 이끄는 7기병연대는 아메리카 원주민 수우 족 전사들에게 포위당해 사실상 전멸했다. 7기병연대가 후에 임무성격이 비슷한 헬리콥터 강습부대로 재개편되었으며[2] 미군 역사상 가장 처참한 패배를 당한 바로 그 부대를 지휘하라고하니 아무래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참고로 7연대는 우리나라와 매우 인연이 깊은 부대인데, 7연대 2대대는 바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
7연대 4대대는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 항공여단 소속의 기병대대로 전차-장갑차-정찰헬기로 무장된 일종의 장갑강행수색대대이다.
영화에서 북베트남군 지휘관인 '응우엔 후 안' 중령 역은 베트남 배우인 돈 중(Don Duong)이 맡았다.[3]
응우엔 후 안은 무어 중령에 비해 출연 비중은 적지만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베트남군을 지휘하며 무어의 부대를 곤경에 넣는 등 작지 않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그런데 원래 베트남에서 한국의 안성기급 국민배우 지위에 있었던 돈 중은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베트남에서 수년간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응우엔 후 안이 전장에 버려진 성조기를 나무가지에 꽂으며 전쟁이 계속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것을 베트남 공안 당국에선 미군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했다는 것. 이 여파로 결국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마비로 쉰다섯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전투의 거의 마지막에 미군들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고 그 직후에 UH-1 건쉽이 미니건으로 지원 사격을 날리는 장면은 픽션이다. 할 무어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 상황에서 때맞춰 온 공군의 폭격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영화의 극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전투 중 너무 뜨거워서 발사할 수 없는 상태인 박격포를 무어 중령과 다른 군인들이 오줌으로 식히는 장면이 유명하다.
원래는 식수까지 포에 뿌려가며 사격을 강행했는데 물도 떨어지자 무어 중령이 "그럼 오줌으로라도 식혀!"라며 직접 허리띠를 풀고 시범을 보여서 포반 대원들도 뒤따라서 오줌을 눈다.
멜 깁슨 외에도 우리에게는 필 콜슨 요원으로 친숙한 클라크 그레그가 대위 역할로 등장한다.
초반 무어 중령과 새로운 부하들의 첫 대면시 가장 첫줄 좌측에 있던 장교. 전투가 시작된 직후에 무어 중령 옆에서 본부와 무전연락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여 헬기로 후송되나, 자리가 모자라다는 말을 듣고 양보하려 했다가 그 직후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외에도, 멜 깁슨이 대대장으로 부임한 대대의 주임원사 역으로 샘 엘리어트가 나오는데, 1년후인 2003년 헐크(영화)에서 썬더볼트 로스 장군 역을 맡게 된다. 마블 코믹스 등장인물 둘이나 등장.
전쟁이 끝나고도 20년이 흐른 1994년, 각각 육군 중장과 대장으로 퇴역했던 두 지휘관은 그 격전지에서 만나, 당시 전투를 이야기하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