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키드(William Kidd, 1655~1701)
1 17세기 해적
캡틴 키드(Captain Kidd)로 알려졌으며 실제로 알려진 해적 중에 가장 불쌍한 해적.
1655년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걸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에스파냐 함대를 공격하던 함대의 선원으로 있다가 이후 프랑스로부터 잉글랜드의 식민지를 보호하는 사략선[1]의 선장이 되었다.
이후 1689년에는 서인도 제도에 활동하던 사략함대 "블레스드 윌리엄"의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캐리비안해의 네비스 섬을 점령하고 캐리비안의 영국 지사로부터 프랑스 선단을 공격할 수 있는 나포 면허장을 획득하게 된다. 이후 키드는 이듬해까지 프랑스 범선을 여러차례 공격했다. 그러던중 1691년, 선원들의 반란으로 안티구아 섬에 남겨지게 되자 사략함대 생활에 회의를 느낀 키드는 뉴욕으로 건너가서 미망인과 결혼한 후 월스트리트에서 상인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뉴욕 주재 영국 총독이 선거를 조작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키드는 이를 탄원하기 위해 본국으로 건너갔다. 키드의 이런 행동에 감명을 받은 영국 정부는 그를 다시 사략함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2] 그리하여 정부로부터 "어드밴처 갤리"를 얻고 본격적으로 해적 소탕에 나섰다.
그가 부여받은 임무는 눈에 띄는 모든 프랑스 선박을 공격하고 해적을 소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임무는 그를 후원하는 부유한 후원자들을 위해 값비싼 화물을 약탈하는 일이기도 했다. 해적소탕을 위해 나선 이래 키드는 몇 척의 배를 나포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선원들의 불만과 반란 조짐이 보인 가운데 키드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한 포병을 물통으로 내리쳐 죽이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선원들의 불만에 못이긴 키드는 프랑스 깃발을 단 무굴 제국의 선박을 습격하여 화물 71만 파운드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얼핏 이것은 불법같아 보이지만 그 선박이 프랑스 깃발을 달고 있었고 프랑스군에서 발행한 안전통행권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프랑스 선박을 공격한다는 임무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무굴 제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키드의 이런 행동에 격렬하게 항의하고 배상을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키드에게 불리하게 영국 정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키드를 지원하던 휘그당을 궁지에 몰기 위해서 해적소탕이 미흡하다는 명분으로 토리당이 키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동인도 회사가 키드의 무굴 제국 선박 약탈을 보고하면서 키드는 추악한 해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거액의 현상금이 내걸리게 되었다.
결국 키드는 인도양에서 서인도 제도로 활동 거점을 옮기게 된다. 1699년, 어드밴처 갤리의 바닥이 썩어들어가고 키드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할 작정으로 뉴욕행을 결심한다. 이를 위해 가지고 있던 화물을 모두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팔아 금화로 바꾼 후 작은 슬루프선 한척을 구입하고 나포했던 무굴 제국의 선박은 불태워 가라앉힌 후 협상을 위해 뉴욕 근처의 가디너의 블록섬에 금화를 파묻었다.
그런 후 블록섬에서 협상을 벌여 자신의 누명을 벗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체포되어 1699년 7월 보스턴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듬해인 1700년 2월 본국으로 호송된 키드는 자신은 해적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사략함대로서 활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키드를 이용해 휘그당을 제압하려한 토리당과 궁지에 몰린 키드의 후원자 벨몬트가 합작하여 키드에게 유리한 증거인 항해일지를 태워버리고 무굴제국 선박이 소유한 프랑스군의 안전통행권은 검사가 빼돌려 은닉해버렸다.
결국 키드는 1701년 5월 23일, 해적행위로 사형이 집행되어 죽었다. 사형을 집행할 때 키드의 온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결박한 다음 교수형에 처했는데 참혹하게도 그의 시체는 해적행위에 대한 경고를 명분으로 템즈 이스터리 부두에 수년간 썩어 문드러져 해골이 될때까지 내걸렸다고 한다.
결국 그는 휘그당과 토리당의 권력다툼, 그리고 후원자 벨몬트의 배신으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가 세계 각처에 막대한 보물을 숨겨두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보물이 있다는 곳으로는 노바 스코티아의 한 섬, 머니피트로 유명한 오크 섬(오크 섬의 보물 항목 참조), 그가 금화를 파묻었다고 알려진 뉴욕 근처 가디너의 블록 섬 등이 있다. 또한 그가 남중국해의 한 섬에 보물을 숨기고 보물을 숨긴 선원들을 모두 살해하여 보물의 표지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 이야기는 스티븐슨의 보물섬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또 에드가 앨런 포우의 황금 풍뎅이도 키드의 보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추리 소설이다.
그의 보물에 대한 소문은 우리나라에까지 미치고 있는데 일설에는 그가 제주도 한라산의 백록담 근처에 자신의 보물을 파묻었다는 둥, 혹은 서해안의 한 무인도에 오늘날 시가로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보물을 숨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키드의 일련의 보물 이야기들은 조작되거나 사람들이 지어냈을 공산이 크다. 사실 키드가 그다지 성공적인 해적활동을 한것도 아니었고, 약탈한 배의 화물의 양을 따져봤을 때 그가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에 의하면 카트리나섬 인근 근해 바닷속에서 키드가 불태워 가라앉힌 것으로 알려진 무굴 제국의 선박으로 추정되는 선박의 잔해가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2 어쌔신 크리드 3에서
어쌔신 크리드 3에서는 총알을 튕겨내는 능력을 가졌던 전설적인 해적으로 등장하며, 위에서 상술된 이유로 잡혀 죽게 되었다. 죽기 전, 전설대로 보물을 어딘가에 숨겨두었고, 펙렉에게 장신구를 갖다 바치다보면 키드가 보물섬의 지도를 네조각 내어 자기 휘하의 해적들에게 나눠주었음을 알게 된다. 펙렉이 말해주는 키드의 부관들의 시체들을 찾아가다보면 보물섬이 사실 오크섬이란 것을 알게 되고 그곳으로 찾아가게 되는데 거기서 나온 물건이...
참고로 그가 남긴 기록과 편지들을 보면, 어느날 부터 인가 정체 불명의 적으로 부터 쫓기기 시작하는데 죽인 시체들을 살펴보면 왕의 기록이나 칙명같은건 안 나오고 왠 붉은색과 금색의 십자가 목걸이만 나오더란다. 작중 세계관에서는 그가 가진 유물 때문에 결국 성전기사단에게 붙 잡힌 것 같다. 키드 선장의 보물을 찾으면 주어지는 특전 의상이 키드 선장의 옷인데 허리띠의 버클이 암살단의 문양으로 되어 있으나, 편지에 따르면 이들의 정체를 모르겠다고 하니 그가 암살단일 가능성은 없고, 코너가 따로 달아놓은것 같다.
한편 어쌔신 크리드 4편 에서는 그의 아들인 제임스 키드가 등장한다. 제임스는 아버지와 다르게 진짜 어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