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략

1 삼국시대 오나라의 동해태수

留略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으로 유찬의 아들이자 유평의 형제.

252년에 제갈각의 명으로 동흥에 쌓은 큰 제방의 두 성 중 하나인 동성을 지켰으며, 서성을 지킨 전단과 함께 호준제갈탄의 공격에 저항해 위군은 제갈각, 유찬, 여거, 당자, 정봉 등이 이끄는 군대에 패한다.

255년에 손준풍조를 위위, 오양을 광릉태수, 유략을 동해태수에 봉해 광릉에 성을 쌓으려고 했는데, 모두가 이 곳에는 성을 쌓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았지만 오직 등윤만이 불가능하다고 진언했다. 결국 손준은 무시하고 이 일을 밀어붙였지만 모두의 예견대로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어 축성은 실패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손권이 죽었을 때 오나라를 공격한 사마소군을 상대로 정봉의 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역할로 나온다.

1.1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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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평범한 무관, 통솔이 70대긴 하지만 받쳐주는 다른 능력치, 특기가 부실해서 효용도는 별로 높지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2/70/56/53. 분투, 제사, 몽충을 가지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런데로 괜찮은 무장.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2/68/59/49/52에 특기는 꼴랑 일제, 기염 2개.

삼국지 12에서는 짤렸다가 대전판에서 부활.

삼국전투기에선 아버지 유찬드래곤 길들이기의 스토이크로 등장하면서 유략은 자연스럽게 히컵으로 패러디 되었다.

2 삼국시대 오나라의 영릉태수

劉略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오나라의 영릉태수로 유영의 동생으로 형이 광릉 사람이기 때문에 이 쪽도 광릉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영릉태수로 일하다가 임지에서 사망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형 유영의 평판을 듣고 손권이 등용을 시도하다가 병을 핑계로 거부한 유영이 동생 유략의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가 꾀병인 것이 들통나서 한동안 손권에게 체포되었다.

그래도 유영이 재능에 따라 겸양할 줄 안다면서 사람들에게 좋게 평가를 받은 엄준과 친했기 때문에 엄준 덕분에 엄준은 관직에 면직되는 대신 유영이 사면받았다고 하며, 적어도 손권이 오왕이 되고 황제로 칭했다는 기록 뒤에 나오기 때문에 삼국이 정립되고 손권이 황제를 칭한 229년 이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3 삼국시대 오나라의 남해태수

劉略
(?~279)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로 남해태수를 지냈다.

수윤 휘하에서 사병대장을 맡은 곽마가 수윤의 질병으로 인해 수윤을 대신해 남쪽으로 내려가 이민족을 회유하던 와중에 수윤이 사망했는데, 279년에 손호가 조세를 부과하려는 것으로 인해 곽마가 사병들을 모아 하전, 왕족, 오술, 은홍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면서 여러 곳을 공격했고 오나라에서는 등수에게 1만의 병력을 줘서 동쪽 길로부터 곽마를 토벌하도록 보냈다가 왕족에게 막힌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곽마에게 공격받은 오나라의 군사들은 제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으며, 곽마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유략은 살해당했다.

곽마가 이끄는 군사들 중에서 누구에게 공격당한 것인지 나오지 않았지만 곽마가 오술을 남해태수에 임명한 것으로 볼 때 오술의 공격으로 죽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