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留平
(?~272)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으로 유찬의 아들이자 유략의 형제이다.
263년에 촉이 위나라의 공격을 받자 손휴의 명에 따라 남군의 주적을 찾아가 군대가 나아갈 방향을 상의했으며, 264년 4월에 육항, 보협, 성만 등과 함께 파동의 나헌을 공격하지만 6개월 동안 3만의 군사로 2천을 못 이겨 265년 7월에 호열의 원군이 오자 퇴각한다.
266년에 육개는 제사 지낼 때를 노려 손호를 죽이기 위해 손호를 호위할 사람으로 정봉을 추천했는데, 손호는 이를 거절해 유평을 임명했다. 육개는 아들 육위를 시켜 유평을 설득하지만 유평은 육위를 보자마자
들돼지가 정봉의 진영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흉악한 징조입니다.
라고 하며 즐거워 하자 육위는 차마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 돌아가 육개에게 설명하자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271년에 손호가 건업 서쪽에서 놀면서 지내자 정봉, 만욱과 함께 손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들끼리 정무를 보기로 약조했는데, 이 일이 손호에게 알려져 272년에 잔치에서 손호가 내린 독주를 마시게 된다.
다행히 이 때는 해독약으로 죽음을 면하지만[1] 분노와 불안으로 1개월 후에 사망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호한테 간언하다가 죽는 역할로 나온다.
1.1 미디어 믹스
삼국지 13 |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며 능력치는 평범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0/69/72/62. 간언을 하는 역할 때문인지 지력이 더 높으며 혼란도 보유하고 있다. 단 모략계 병법 숙련도는 0. 이 외에는 분투, 몽충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5/70/67/57/62에 특기는 치안, 일제 2개.
삼국전투기에는 유략과 동일하게 히컵으로 나오지만 2편의 모습으로 투구를 쓰고, 키가 더 작다.
2 후한 말의 인물
劉平
생몰년도 미상
평원군의 백성으로 유비는 공손찬 밑에서 원소와 대결해 전선을 맡아 거듭된 전공으로 평원령으로 승진했다가 평원상이 되었는데, 유평은 평소에 유비를 깔보면서 그 아래에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문객을 보내 유비를 찔러 죽이게 하는 암살 시도를 했지만 문객이 차마 유비를 찌르지 못하고 그 일을 유비에게 털어놓고 떠났다고 한다.
조일청은 유평과 유자평을 동일인물로 보았는지 유평과 유자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략에서는 유자평이 유비를 천거했지만 유평이 유비를 찔렀다고 말해 어째서 상반된 것이며, 유비가 옛 친구로부터 환심을 잃은 것인지 또는 혹시 다른 사람인 것인지 등의 의문을 나타냈다.
기록에는 백성으로 나와있지만 문객을 보내 유비에 대한 암살 시도를 한 것으로 볼 때 평원군의 호족으로 추측하는 의견도 있다.
2.1 미디어 믹스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황실의 종친으로 나와 공손찬이 유비를 소개해주는데, 인망이 높은 유비의 출세에 대해 시기해 욕하다가 자객을 보냈다. 유비가 공손찬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를 찾아가서 죄를 물을 수 있도록 소개장을 줬으며, 유비가 찾아오자 발뺌을 하자 호위병들에게 지시해 자신을 보호하게 했고 유비와 싸우다가 불리하자 돈을 얼마든지 줄테니 자신을 보호하라고 해서 호위병들에게 싸우게 한다.
유비가 이들을 물리치고 관우, 장비가 유평을 죽이려고 하자 유비가 말렸으며, 자신에게 아무런 위해도 입히지 않고 용서하자 자신을 잘못을 뉘우치면서 유비에게 사과해 다시는 엉뚱한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한다. 관우와 장비는 유평을 함부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 공손찬에게 끌고 갔다가 유비가 말리는 바람에 근신 처분만 받는 것으로 끝난다.- ↑ 만욱은 술을 건네주는 사람이 독을 덜어냈기에 살아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