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울트라맨 에이스/초수 & 괴수 & 우주인 일람
신장 : 199센치미터
체중 : 88킬로그램
출신지 : 사이몬별
무기 : 텔레파시, 머리에서 쏘는 쇼크광선
1 개요
울트라맨 에이스의 등장 우주인. 등장 에피소드는 52화.
고향별이 야플에게 침략당하고 우주 곳곳을 방랑한다고 알려진 우호적인 우주인으로 그 일족이 야플에게서 도망치던 중 지구에 오게 되었다.
지상에 내려왔을 때 울트라 형제 놀이를 하던 어린이들에게 괴수 취급받으며 괴롭힘을 당했지만 호쿠토 세이지에게 발견되었고 이에 TAC에서 사이몬 성인을 보호하게 되었으나 동시에 최강초수 점보킹이 나타나 사이몬 성인을 넘기지 않으면 파괴와 학살을 멈추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TAC은 마을의 안전을 위해 사이몬 성인을 넘겨주려고 했으나 울트라 형제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사이몬 성인과 화해하고 친구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모습을 본 호쿠토 세이지의 설득에 점보킹를 맞서 싸우기로 마음 먹게 되고, 호쿠토는 지상에서 아이들과 사이몬 성인을 지키기 위해 투지를 불태운다.
2 충격적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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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토 세이지여,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느냐? 호쿠토 세이지:야플!? 야플:잘 알고 있구나. 점보킹을 조종하고 있는 건 바로 이 몸이다. 야플:보기 좋게 걸려들었구나.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변신하는 게 어떤가? 호쿠토 세이지... 아니 울트라맨 에이스! |
쇼와 울트라 시리즈의 최종 보스 | ||||
제3작 돌아온 울트라맨 | → | 제4작 울트라맨 에이스 | → | 제5작 울트라맨 타로 |
2대 젯톤,촉각우주인 배트성인 | → | 이차원 초인 야플 (최강초수 점보킹) | → | 우주어부 벌키 성인&해수 사메쿠지라 |
호쿠토와 아이들에게 접근해서 우호관계를 맺은 사이몬 성인은 악마의 화신인 동시에 에이스의 영원한 숙적 야플이었다.
텔레파시를 통해 정체를 알게된 호쿠토는 TAC 건을 들어서 쏠려고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아이들에 의해 저지되었는데 이것 또한 야플의 계획이었다. 호쿠토 이외의 사람들은 사이몬 성인이 야플이란 사실을 몰랐고 특히 아이들하고는 친구가 될 정도로 사이가 좋아진 상태였는데 만일 그 상황에서 사이몬 성인을 쏘게된다면 호쿠토는 아이들의 선의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는 꼴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야플의 진정한 목적은 인간, 특히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선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없애버려 울트라맨 에이스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말살시키는 것.
하지만 호쿠토는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로[1] 사이몬성인=야플을 쏴죽이고, 곧이어 에이스로 변신해 점보킹을 쓰러트리고 지구의 아이들에게
"상냥한 마음을 잃지 말아줘. 약한 사람을 생각하고, 서로 도와주자.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려는 마음을 잃지 말아줘. 설령 그 마음이 몇 백번이나 배반당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라는 마지막 부탁[2]을 남기고 지구를 떠난다.
각본가 이치카와 신이치가 마지막으로 집필한 울트라 시리즈의 각본인데 재미있는 점은 전작 돌아온 울트라맨 31화 천사와 악마의 사이에서많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단 점이다. 우주괴인 제란 성인 참고.
한편 에이스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주위에서 믿음과 신뢰를 받지 못했고 그럼에도 그것들을 꿋꿋하게 이겨내서 야플과 초수들을 모두 물리쳤지만 결국엔 쓸쓸하게 자기 갈 길을 간 모습은 끝까지 이해받지 못하고 소외당한 호쿠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과 시간이 지나면서 극중, 현실할 것 없이 점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상냥함이 증발되어 가는 현상을 두고 야플의 숙원대로 되어간다며 일부 팬덤에서는 본 최종회를 특촬 역사에 길이남을 배드 혹은 새드 엔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본작의 세계관을 계승한 울트라맨 뫼비우스에서 에이스의 마지막 대사는 2번이나 언급이 되고 본작의 주제가 우정과 믿는 마음 이란 점으로 에이스의 소원은 33년이 지나서 이루어져 호쿠토의 마음이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