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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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두산 베어스 No.74
유지훤(柳志烜)
생년월일1955년 10월 4일
출신지부산광역시
학력대신초-대동중-대광고
포지션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OB 베어스 (1982 ~ 1988)
지도자OB 베어스 코치(1989)
쌍방울 레이더스 코치(1990)
OB 베어스 코치(1992 ~ 1997)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1999 ~ 2003)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2005 ~ 2009)
한화 이글스 재활군 코치(2009)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2014)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2014 ~ 2015)
두산 베어스 잔류군 총괄코치(2016 ~ 현재)

1 소개

유지현과는 다르다! 유지현과는!


OB 베어스의 유격수,코치 그리고 한화 이글스의 코치. 현 두산 베어스 수석코치. 또한 두산이 우승한 원년, 95년, 01년 그리고 15년 우승 반지를 소유하고 있는 두산의 혼. 롯데의 우승조건이 안경 낀 에이스 우완이라면, 두산엔 유지훤 코치가 필요하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본디 부산 출신으로 박철순과는 어릴 적 한 동네에서 야구를 하며 형동생하던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산지역 네임드 고교에 들어가지 못한 뒤 서울 대광고로 진학했고, 이 후 실업야구 상업은행철도청을 거쳤다.

3 프로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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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고를 졸업한 관계로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서울 지역 선수로 분류되어 OB 베어스에 입단한다.[1]

OB에서는 타격은 떨어지지만[2], 안정감있는 수비로 2루수 구천서와 키스톤 콤비를 이뤘고,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배대웅의 땅볼 타구를 잡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바 있다. 그러나 의욕은 앞서지만 영민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기 때문에 훗날 김광수 등이 성장하면서 주전 자리를 잃었고, 특히 1987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1점 차로 간신히 앞선 9회말 2사 3루 위기에서 김성한의 땅볼 타구를 몸개그하며 내야안타로 만들어 주는 바람에[3] 김성근한테 찍혀 1988년 말 옷을 벗게 된다.

4 지도자 시절

이후 김인식 감독의 부름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가 1993년에 OB 수비코치로 영입되었고, 1995년도에 김인식이 OB 감독으로 부임한 뒤부터 2009년 한화 수석코치에서 해임되기까지 김인식과 운명공동체로 활동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다시피 코치로써의 능력은 최악. 유격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군 전력의 유격수를 못 만들어낸 것은 그렇다고 쳐도, 좋게 말하면 신인 선수들의 군기반장, 나쁘게 말하면 꼰대 역할을 해야 하는 2군 감독이나 수석코치가 그의 주 보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장악에 실패해 두산이 범죄두라는 오명을 쓰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4]주루코치 시절을 빼면 뭘 해도 까이기만 했던 무능한 인물인데 김인식 감독은 이 사람이 뭐가 좋다고 총애했는지 정말 알수가 없다. 2009년을 끝으로 김인식 감독이 한화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세트로 잘렸다.

이후에 쭈욱 야인으로 지내면서 고등학교 후배처럼 잊혀지는 듯 했으나 2013년 2군 재활코치로 친정팀 두산 베어스에 복귀했다.# 그리고 2014년 8월 11일 송재박을 대신하여 1군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2015시즌 김태형 감독이 선임되었음에도 수석코치로 유임되었다.[5]

5 기타

덤으로 90년대 이후 야구팬들은 존재 자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글에 이 이름이 등장하면 유지현의 오타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한순간에 뉴비 인증하는 수가 있으니 몸사리자과거의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자.

안좋은 쪽으로 두개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83년 47타수 연속 무안타, 다른 하나는 86년 기록한 시즌 31실책. 하지만 연속 무안타 기록은 2015년 시즌 NC 다이노스의 손시헌이 48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깨져 통산 2위로 밀려났다(...) 여담으로 무안타 기록으로 꽤나 스트레스 받은듯하다. 기사[6]
  1. 비슷한 케이스로 배명고를 졸업한 박철순도 OB의 지명을 받는다.
  2. 1983년 전설의 47타수 연속 무안타의 한국기록을 세웠다. 2015년 손시헌이 이를 경신. 한때 이승엽 오푼이 시절, 2009년 진갑용의 43타석만의 안타, 이대형의 2010 시즌 등 타자들이 무안타 행진을 이어가면 슬그머니 언급된다. 2011년에는 롯데 이승화가 2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있지만, 기록 갱신은 감독의 꼬장이 만렙이 아니라쉽지 않다.
  3. 여담이지만 그 이전인 9회초 1사만루 찬스에서 어이없는 주루로 한 점을 손해보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당시 2루 주자로 있으면서 구천서의 우전안타 때 홈으로 달렸는데, 3루코치가 1루주자인 이승희를 보고서 멈추라고 하는 것을 잘못 듣고서는 다 들어온 홈에서 3루로 다시 돌아가는 본헤드플레이로 아웃된 것. 게다가 1루주자 이승희도 무리하게 3루까지 뛰다가 아웃.
  4. 1994년 항명사건과 이종민의 전경 살인사건이 그가 수석코치를 할 무렵에 터진 일이다. 결국 1997시즌 끝나고 김광수와 같이 물러나게 되었고, 양승호가 수석코치로 올라섰다. 다만 양승호도 강혁의 음주운전과 정수근의 전지훈련 난동사건 때문에 선수관리 면에서는 비판을 받는다.
  5. 여담으로 김태형 감독과는 띠동갑이다...
  6. 한편으로는 무안타 기록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