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렬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자. MBC 기자로 입사, MBC 전 사장,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2 약력

1939년 5월 7일생으로, 한양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에 MBC에 입사했다. 1974년 가을부터 1987년 4월 30일까지 12년 반 동안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1]

당시 최장수 앵커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후배 앵커인 엄기영(1989.10.09.~1996.11.08, 2002.1.1~2008.2.1)이 기록을 경신했다. 1980년대 평일 뉴스데스크 영상을 찾아보면 앵커는 항상 이득렬 앵커였다. 그렇다보니 땡전뉴스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옆 동네 박성범도 그랬다.

1987년 워싱턴 지사장으로 보직이동 되었으며, 1996년에는 강성구 사장[2]의 후임으로 취임하여 1999년까지 MBC 사장을 맡았다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영입되었다.

그러다가 1999년 말 당시 여당이 추진하던 신당에 영입되어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을 지역구 출마가 유력했지만 본인이 출마를 고사했고[3] 그 해 5월 한국관광공사 사장에서 물러나 개인 방송 프로덕션을 운영했다. 10월부터는 프리랜서 자격으로 MBC 초대석 이득렬입니다.를 진행하였다.

평소 간경변을 지병으로 앓고있었는데, 아내와 여행을 떠났다가 휴게소에서 사먹은 밤때문에 식도정맥류가 파열되었고, 도로 정체때문에 구급차가 늦었으며, 이로 인해 응급처치가 늦어져, 결국 2001년 2월 24일에 세상을 떠났다.

3 어록

훌륭한 앵커는 몇 세기에 한 번 태어난다. 그만큼 훌륭한 앵커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므로 앵커들은 훌륭한 앵커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2010년,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 백지연이 다른 역대 앵커들에게 말할 때 세상에 알려졌다.

몇 마디 아름다운 말보다는 한 마디 진실이 뉴스에서는 제일 중요하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떠납니다.

-1987년 4월 30일, 뉴스데스크 마지막 진행, 클로징 멘트.

4 여담

  • 김주하 기자가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할 때에[4], 10년 이상 MBC를 먹여살릴 얼굴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리고 뉴스데스크 진행 시작한지 10여 년 뒤에 MBN으로 이적했다. 오오 대예언자 오오
  • 뉴스를 마칠때면 "오늘 뉴스데스크 여기서 전부[5]마치겠습니다."라는 말로 항상 클로징을 했다.
  1. 하순봉은 70년대 말 진행. 기간이 겹치니 확인바람.
  2. 공교롭게도 뉴스데스크 후임앵커가 강성구 기자였다.
  3. 사실 이득렬 본인이 땡전뉴스를 비롯하여 5공 시절 친정부 논조를 방송에 내보낸 대표적인 인물이었던데다 공기업 사장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치권에 영입된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기 때문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4. 김주하는 아나운서로서 MBC에 입사했다. 김주하 항목 참조. 이후 기자로 보직 변경.
  5. 이전 버전에서는 모두라고 적혀 있었다. 40주년 특집 뉴스데스크에서 전부라고 클로징을 했다고 언급하였으므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