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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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姜成求
MBC 기자, MBC 사장, 전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국회의원.

2 약력

1940년 9월 12일 경기도 수원군(현 화성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에 MBC에 기자로 입사했다.

1976년에 해설위원이 됐으며, 1981년에는 보도 부국장, 1985년에 보도국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5월에 땡전뉴스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득렬 대신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가 되었다. 이때는 KBS가 정권의 나팔수의 이미지로 고전하던 시기라서, MBC가 반사이익을 보면서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40프로를 넘나들었다.[1][2] 물론 MBC도 군사정권 당시 보도지침에 따라서 충실하게 땡전뉴스를 했지만, KBS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색채가 옅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3]

1988년 11월 추성춘에게 뉴스데스크 메인앵커 자리를 넘겼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MBC의 사장을 맡았다. 후임자는 이득렬.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아서, 오산시화성군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2002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노무현, 정몽준 대선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약칭 후단협)를 조직했으나, 정작 본인은 중간에 한나라당으로 이적해버렸다(...). 이때문에 철새정치꾼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 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화성시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탈당과 이적,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찬성 때문에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운동 대상자로 지목했다. 결국 강성구 본인이 38.3%, 열린우리당 안병엽 후보가 45.6%를 득표하면서 7.3%차이로 패하고, 그대로 정계은퇴했다.

2013년 11월에는 화성 남양동 모 식당에서 주차문제로 시비를 벌이다가 식당주인을 폭행했으며, 동시에 음주운전까지 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뉴스데스크 메인앵커 시절 지금도 회자되는 방송사고내 귀에 도청장치 사건에서 침착하게 대처해서 호평을 받았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오산시,화성군)새천년민주당-당선 (1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화성시)한나라당- (38.3%)낙선
  1. 지금 5% 전후에서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놀고있는걸 생각하면 저때가 MBC 뉴스의 전성기였다.
  2. 물론 당시는 케이블TV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지금과 일률적인 시청률 비교는 힘들다. 하지만 당시 뉴스데스크가 KBS 9시 뉴스를 압도적으로 찍어누른 1등이었다는건 명백한 사실이다.
  3. 일례로 김영삼은 군사정권 시절부터 뉴스는 MBC만 본다는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