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시절 모습
지금은 무척 무서운 인상의 아주머니가 되었다. 원판불변이라고 지금도 예쁜 얼굴이긴 하나 무섭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1]
목차
1 소개
구 소련, 그리고 우크라이나 리듬체조계의 레전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생년월일 | 1958년 1월 11일 |
출생지 | 우크라이나 키예프 |
이리나 이바노브나 데리우기나(Irina Ivanovna Deriugina, Іри́на Іва́нівна Дерю́гіна).
현재는 어머니인 알비나 데리우기나와 함께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국가대표 헤드코치를 맡고 있다.
수상 경력은 아래와 같다.
- 1977년 바젤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1위, 리본 1위, 후프 2위, 볼 2위
- 1979년 런던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1위, 곤봉 1위, 리본 2위, 볼 3위
- 1978년 마드리드 유럽선수권 개인종합 2위, 볼 1위, 줄 2위, 리본 2위
구 소련 출신으로는 리듬체조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2연패를 한 유일한 선수였고 1970년대 최고의 미녀 선수로 시대를 주름잡았다. 1982년에 은퇴한 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헤드코치를 맡고 있다.
2 리듬체조 스타일
드라마틱한 음악과 그에 혼연일체되는 안무, 그리고 극적인 표정연기 등 소위 '우크라이나식 표현법' 의 창시자이다. 그때문인지 상당히 까다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는데 그 까다로움이 난도나 실시를 볼 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선수의 체형을 볼때만 해당된다(...) 현재 러시아 헤드코치인 이리나 비녜르가 유연성 덕후라면 데리우기나는 체형 덕후라고 볼 수 있겠다.[2][3]
이리나가 체형 덕후인 점을 증명하는 증거로 데리우기나 스쿨의 학생들을 들 수 있다. 어머니인 알비나 데리우기나와 함께 운영하는 '데리우기나 스쿨' 은 어느 정도 체형이 안 되면 아예 입학이 불가능하다. 설사 입학하더라도 아름다운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전성기 시절[4] 이 클럽의 에이스 선수들은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이 마른 몸매에 키는 죄다 180cm에 육박했다.[5]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연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리듬체조계의 추세에 따라 선수들의 평균 신장도 많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75cm이다. 은퇴한 안나 베소노바나 알리나 막시멘코도 174cm였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나 리잣디노바, 빅토리아 마주르, 아나스타샤 물미나, 엘레오노라 로마노바 등도 마른 체형에 키가 큰 편이다.
한국의 리듬체조 유망주 선수인 천송이 선수가 데리우기나의 간택을 받아 우크라이나에서 전지훈련을 받고 있다. 천송이 선수 또한 174cm의 키에 상당히 마른 체형으로 역시 체형 덕후인 데리우기나의 안목을 볼 수 있다.
가장 완벽한 발레리나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들 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볼쇼이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hyperextended knee와 발. 이게 바로 데리우기나가 원하는 체형인데 이건 연습으로는 만들기 힘들고 타고 나야 한다. 한마디로 이미 주니어때부터 다리, 발 모양이 평균 미달이면 다이어트고 뭐고 하기도 전에 탈락.
사실 볼쇼이나 마린스키같은 러시아의 유명 발레 아카데미 에서도 10살 남짓한 신입생들을 받을때 체형과 유연성 검사를 하고 뽑는다. 데리우기나는 이걸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발레는 유망주가 체조에 비해 넘사벽으로 많기 때문에 상관 없지만 리듬체조 인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신입생 수급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참고로 리듬체조 선수들의 훈련 일정중 하나인 발레 수업 (bar class)을 엄청나게 빡세게 시킨다. 얼마나 시키는지 데리우기나 출신 선수들은 하나같이 발레댄서들같이 무릎이 심하게 뒤로 휜 다리를 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hyperextended knee). 리잣디노바와 대부분 러시아 선수들의 팡셰할때 축다리를 비교해보면 극명한 대비를 느낄 수 있을듯. 거기에 연습하는 동영상들 보면 다들 turnout도 180도의 완벽한 각도이다. 사실 데리우기나 스쿨 전성기 시절 출신 선수들을 보면 유연성이나 근력이나 발레댄서들에 근접하다. 현제 트랜드에 맞는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거지 사실 데리우기나 스쿨 학생들 수준 유연성 수준이 발레댄서들에게 요구되는 레벨에 가깝다 [6] 오죽하면 키가 너무 커서 발레스쿨 못들어간 발레 유망주들이 데리우기나 스쿨로 간다는 말도 있었을까.
2.1 우크라이나식 리듬체조
전체적으로 볼 때 1990년대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데리우기나는 아름다운 를르베[7]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다. 이런 점이 위에서 말한 키 크코 마른 체형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피봇을 돌 때 축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편이라[8] 링이나 백스플릿 등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다만 고관절 유연성만큼은 좋아서 점프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한다. 하지만 또 등 유연성이 부족해서 백벤드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 대체 어쩌라는 걸까
또다른 특징이 있다면 러시아나 벨라루스 선수들은 매 시즌 몇몇 안무를 재탕하고 그 안무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마디로 음악이 마음에 안들면 시즌중에 바꿔도 무리가 없는 루틴)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안무 재탕이 드물다. 루틴은 음악을 먼저 고른 뒤에 만들어지고 음악과 안무의 혼연일체를 강조하는 편이라 음악에 딱딱 맞는 리스크를 선호하면서 관객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경우가 많다. 특이하게도 안무 재탕은 안하지만 잘 빠진 루틴이 나오면 다른 후배 선수가 그대로 물려받는 일이 많다. 최근(2016)엔 물미나가 리잣디노바의 2013년 세선 종목 금메달을 땄던 "월광" 후프 루틴을 물려받아 쓰고있는중. 여러모로 루틴을 그냥 경기용으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작품 취급을 하며 안무 스타일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리고 갈라 연습도 단체팀과 함께 합동으로 자주 하는지라 상당히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데리우기나 출신들이 안무를 대중 친화적으로 잘 짜고 음악도 잘 고르지만 직접 보면 사실 그렇게 빨리 움직인다는 느낌은 받기 힘든데 점프할때 제외 이유는 첫번째로 위에 말했듯이 높은 를르베를 유지하면서 난도를 하느라 그렇고 두번째로는 모든 동작을 딱딱 끊어서 하는걸 좋아한다. 이게 어떤 말이냐면 러시아나 벨라루스 선수들을 보면 피봇을 마무리 하는 동작 이후에 상체 움직임이나 안무 등등을 추가해서 동작과 동작의 사이가 비지 않게 하는데 이걸 안좋아하는 체조 팬들도 있다. 피봇의 실시가 좋지 않았을 경우 (회전이 부족한 경우나 축다리가 흔들린 경우 등등) 추가된 안무가 안좋은 실시를 가리기 위한 치팅을 하는걸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9]
데리우기나를 위한 변명을 해 보자면 사실 데리우기나 스쿨은 20년 전만 해도 독창적인 예술성과 우월한 신체 이외에도 굉장히 깨끗한 실시로 유명했다(!) 애초에 실시가 시망이면 올림픽 우승자를 여러명 배출했을수가 없다. 96년 올림픽 우승 할때까지 세계 대회들에서 독주한 세레브리얀스카야나 비트리첸코는 당시 기준으로 높은 난도와 정확한 실시로 포디엄에 자주 올랐다. 특히 세레브리얀스카야는 정말 정석적인 올드스쿨 데리우기나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연속 립도 사실 베소노바 이전에 이 선수의 전매 특허였다. 한마디로 96년 이후 쿼드에서 룰이 바뀌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당시에 요구되던 난도들은 전부 정석적으로 수행 했다. 수행이 시망이 되기 시작한건 카바예바 등장 이후 안하던 고난도 신체난도를 점수 따기위해 반강제로 루틴에 넣기 시작 하면서부터다.
베소노바는 구 체점 시기에 주니어였고 당연히 바티르쉬나나 카바예바와 같은 유연성 훈련은 받은적이 없다.[10] 그런데 팡셰 피봇, 아치턴 등등의 유연성이 요구되는 기술들을 다른 선수들이 너나 할것 없이 들고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루틴에 넣고 수행은 시망이 되는 것. 거기에 높은 를르베까지 해야 하는데...
그나마 막시멘코 세대 부터 시작해서 주니어때 유연성을 위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팡셰나 백스케일 피봇 등등 높은 신체난도가 요구되는 기술을의 실시가 좋아진 편이다. 무려 링피봇을 하는 선수도 보인다!
선수들이 실시가 좋을때는 좋지만 컨시스턴시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건 사실 러시아도 탑 선수 몇명 빼면 해당되는 이야기라서.... 데리우기나 스쿨 전성기에는 전부 리저브 수준에서 끝났을 선수들인데 우크라이나의 선수 풀이 러시아에 비교가 안될 많큼 작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도 대회를 나갈 수 있다 (...)
이런 스타일의 리듬체조를 거의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고집하고 있어서 안나 베소노바 이후로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잘 안 나온다. 그나마 2013 쿼드 이후로 신체난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다시 빛을 보고 있다. 그리고 찾아온 크림 반도의 역습
그리고 새로운 쿼드 3년차인 지금까지 리잣디노바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선수가 없다는것이 안습한 현실이다.
거기다 2016년 올림픽의 예선을 겸하는 2015년 세계 선수권의 개인종합에서 올림픽 직행 커트라인인 15위 안에 리잣디노바밖에 못 들면서 우크라이나 리체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개인전에 두명의 선수를 보내는걸 실패했다. 망했어요 올림픽 트라이얼이라고 해서 추가적으로 몇 명 더 뽑긴 하지만 15위 안에 동일 국가 선수가 있다면 트라이얼 자체를 못나간다는 규칙때문에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자동 탈락. 데리우기나의 결정인지 누구의 결정인지 모르겠지만 팀 결선에서 성적이 더 좋았던 로마노바 대신 마주르를 개인 종합에 내보냈는데 23위를 하며 올림픽 탈락. 경험이 더 많은 마주르가 긴장하지 않고 잘 하리라고 생각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패착이 되었다.그렇게 몸매랑 외모 따지는 사람이 이번에는 왜 로마노바를 안 내보냈을지 의문 (거기에다가 이제 로마노바는 러시아로 귀화해서 내보낼수도없다....)
하여간 리잣디노바가 은퇴할 리우 이후로는 패망이 가시화 될것같다. 다행히 아직 은퇴 얘기는 안나오는중
3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전성기와 몰락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초반에는 우크라이나가 리듬체조계의 1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11] 당시 데리우기나 스쿨과 우크라이나 체조협회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덕분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우크라이나 출신의 선수인 알렉산드라 티모셴코와 옥사나 스칼디나[12]를 발 빠르게 독립국가 연합 리듬체조 대표로 등록시키는 등 러시아를 관광 보낸 적이 있다.[13]
이렇게 러시아에게 굴욕을 주던 데리우기나였지만 이리나 비녜르가 1990년대 중반에 러시아 리듬체조 헤드코치로 들어오면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리나 비녜르의 무지막지한 영향력 때문도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데리우기나 본인의 삽질 때문이었다.
3.1 2000년 유럽선수권 편파판정 논란
데리우기나는 원래 본인의 미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는 설령 자신이 직접 키운 제자거나 자국 선수라 해도 과감히 버렸다. 덕분에(?) 데리우기나가 심판으로 활동할 당시 피해를 입은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올레나 비트리첸코였다. 이 선수가 키도 작은 편[14]에 체형도 마른 편이 아니라서 데리우기나는 비트리첸코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데리우기나는 의도적으로 비트리첸코의 점수를 낮게 주기 시작했다.
이런 삽질(...)이 대대적으로 터진 게 2000년 자라고사 유럽선수권이었다. 다른 심판들과 담합해 비트리첸코의 점수를 노골적으로 낮게 준 것이다. 이 결과로 비트리첸코는 별 실수도 없었는데 개인종합 16위로 경기를 마쳤다.
3.2 비하인드 스토리
사실 이 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세레브리안스카야와 비트리첸코의 어머니[15]에 관련한 신경전이 크게 한 몫 했다.
비트리첸코의 어머니인 니나 비트리첸코가 유럽선수권 심판에 배정되고 세레브리안스카야가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세레브리안스카야의 어머니인 류보프 세레브리안스카야가 '내 딸의 라이벌을 딸로 둔 사람이 공정한 심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럴 바에는 공정성을 위해 나도 심판을 보게 해달라' 라며 항의를 했으나 이 항의는 기각되었다.
결국 세레브리안스카야는 어머니의 건강 악화를 핑계로 세계선수권을 포함한 모든 국제대회에 불참하고 그 길로 은퇴해버렸다. 라이벌이 없어진 올레나는 그 후 승승장구하고 니나 비트리첸코는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리듬체조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데리우기나가 의도적으로 올레나의 점수를 누르면서 니나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2000년 유럽선수권에서 대대적으로 터진 것이다.
비트리첸코에게 16위를 준 것은 앞으로도 올림픽 출전권과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모두 안정권으로 발탁되는 국내대회 2위 안에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3위 권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보통 올림픽이나 유럽선수권은 국가당 두 명씩 출전하기 때문.
3.3 결과
결국 경기 결과에 관중들이 분노하여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데리우기나는 FIG에 제소되어 중징계를 받았다. FIG에서는 심판인 벨라루스의 나탈리아 스테파노바, 오스트리아의 가브리엘르 스터머, 라트비아의 갈리나 마리나, 독일의 우르술라 솔렌캄프, 러시아의 나탈리아 라치신카야 그리고 데리우기나에게 1년간 심판 정지 및 사라고사 심판 26명 전원에게 다음 올림픽 심판 정지 징계를 내렸다. 당시 FIG의 기술위원장인 마담 아브루치니는 데리우기나에게 무기한 영구 징계를 내렸으며, 2008년 올림픽 직전에도 FIG 회장에게 서면상으로 데리우기나의 복귀를 막아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리듬체조 내에서의 우크라이나의 권력은 상당히 축소되었다. 하지만 안나 베소노바를 올림픽 2연속 동메달리스트로 만드는 등의 영향력은 아직 남아있다.
어머니의 과욕으로 인해 올레나는 심판들의 눈 밖에 나버려 결국 은퇴했다.[16] 한편 니나는 딸이 은퇴한 후에도 코치직과 심판직을 계속 맡았다.
역설적이게도 지도자들끼리는 그토록 척을 진 사이였지만 비트리첸코의 제자들도 데리우기나의 제자들처럼 마른 몸매에 뛰어난 미모를 가진 선수들을 선호하는 스승의 취향을 보여주는 외모를 가졌다. 그 때문인지 많은 선수들이 은퇴한 후에 대만이나 일본에서 CF 모델로 활동했다.[17]
4 기타
참고로 화가 나면 매우매우매우 무서운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열리는 리듬체조 갈라쇼 때마다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뒤집어 엎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버리겠다고 난리치는 걸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매번 메달 딴 러시아 선수들이 쩌리되고 우크라이나 갈라가 되어 버린다
디나모 키예프의 축구 선수이자 훗날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올레흐 블로힌과 결혼했다가 1990년대에 이혼했다. 딸 이리샤 블로히나가 있는데 상당히 미모가 뛰어나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4살 때부터 데리우리나 스쿨에서 리듬체조를 배웠고 엄마 데리우기나의 다큐멘터리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하지만 딸이 당연히 리듬체조를 할 것이라는 데리우기나의 기대와 달리 이리샤는 리듬체조 선수가 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모녀 사이가 한동안 좋지 않았던 듯하다. 팬들은 데리우기나가 딸에게 쏟을 애정을 베소노바에게 다 쏟았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직전 FIG 회장에게로 온 투서로 인해 데리우기나가 유럽선수권 징계와 올림픽 영구박탈에 이어 세계선수권 심판 자리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하고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FIG의 회장이자 패널 의장인 브루노 그란디는 데리우기나의 심판 참여불가 기간이 끝나는 2008년에 또다시 2016년까지 심판 불가 선언을 내렸던 것이다. 15년 이상 올림픽 심판으로 참가하지 못하면 난도 개정 시즌을 4시즌 이상 놓치기에, 사실상 영구박탈이나 다름없다. 비녜르의 경우 순순히 사과 서한을 보냈으나, 데리우기나는 사라고사 이후 자신이 또다른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제시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내렸다는 이유로 격하게 항의하며 FIG에 우크라이나 법정에서 보자는 선전포고를 날렸기에 결과는 더욱 나빴던 것이다. 블로힌에게 미녀 스타들과의 스캔들이 많았던 것도 어머니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이후로 어머니는 난도, 딸은 안무로 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부모들은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옛날처럼 적대적이지는 않으며 딸이 부모 사이를 오가며 축구와 리듬체조 영역에서 각각 도와주고 있는 사이다.
데리우기나가 안나 베소노바를 처음 맡았을 당시 베소노바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베소노바의 치맛바람에 고생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18] 그 데리우기나를 고생시킬 정도면 베소노바의 독한 성격이 누구한테 물려받은 것인지 이해가 간다
딸인 블로히나와 함께.
참고로 데리우기나의 딸인 블로히나와 베소노바의 가정배경은 상당히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공통점은 리듬체조 세계선수권 2회 연속 우승자인 어머니와 축구계 스타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19] 그러나 블로힌은 가정보다 선수로서의 경력을 중요시하여 외국으로 떠난 반면 베소노프는 딸과 아내와 떨어지기 싫어서 외국 리그도 마다하고 우크라이나에 머물렀다는 차이점이 있다. 덕분에 부모와 갈등이 있었던 블로히나와 달리 베소노바는 안정적이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성격은 왜
- ↑ 단적인 예로 2012년 리듬체조 결선을 네이버에서 중계할 때 데리우기나와 알리나 막시멘코가 키스 앤 크라이 존에 함께 앉아있는 모습을 카메라에서 비춰주었는데 중계창 코멘트란에 '저 아줌마 젊었을 때 엄청 예뻤을 듯', '근데 무섭게 생겼다', '저 선수 경기 끝나고 맞을 듯'(...) 등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사실 막시멘코가 경기에서 수구를 떨어뜨린 후라 평소보다도 열 받은 표정이기도 했다.
- ↑ 유연성과 체형 모두 리듬체조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자질이다. 현 리듬체조 규정상 유연성 좋은 게 훨씬 유리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유연성과 체형 모두 갖춰야 된다는 것이다. 알리나 카바예바가 대단한 이유가 남다른 유연성으로 불리한 체형을 극복했다는 것이고 예브게니야 카나예바가 대단한 이유가 유연성과 완벽한 체형을 모두 갖춘 선수라는 것이다.
- ↑ 물론 비녜르도 체형을 상당히 보는 편이다. 다만 유연성을 최우선순위로 놓고 본다.
결국 리듬체조 잘 하는 애들 중에서 체형 예쁜 애들만 살아남는다 - ↑ 즉 1980년대에서 1990년대.
- ↑ 1996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예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야도 키가 178cm였다.
- ↑ 발레댄서들이 유연하긴 하지만 리체선수들처럼 백벤드 하고 이런 레벨의 유연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컨토셔닝에 가까운 유연성은 기피하는게 대부분.
- ↑ 발레와 리듬체조에서 까치발로 서면서 다리를 지탱하는 자세를 를르베라고 한다. 사실 리듬체조 선수라면 모두 아름다운 를르베를 위해 신경을 쓰지만 데리우기나가 유독 많이 따지는 편.
- ↑ 빅토리아 마주르 등 1994년 이후에 태어난 선수들은 유연성이 좋은 편이다.
문제는 이 선수들이 전부 주니어거나 시니어 1~2년차라는 거 - ↑ 마문의 2013년 루틴들이 이런 이유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 ↑ 사실 비트리첸코는 우크라이나 선수 치고 등이 상당히 유연한 선수였다. 작은 키였지만
작아도 168cm. 다른 선수들이 170 후반이라날렵한 몸을 이용한 다이나믹한 루틴으로 유명했는데 데리우기나는 그런 스타일이 클래식하지 않다고 싫어했다고 한다 (....) 한마디로 비녜르랑은 달리 미래를 못 내다본 데리우기나의 패착 - ↑ 불가리아는 비앙카 파노바의 은퇴 이후 이렇다 할 선수가 안 나오면서 거의 세력을 잃어버렸다.
- ↑ 2014년 8월에 은퇴한 러시아 선수 다리아 스밧코프스카야의 어머니이다.
- ↑ 이때 피해를 본 선수가 바로 전설적인 선수 옥사나 코스티나이다. 소련 붕괴 전에도 데리우기나 세력에 밀려서 심판 판정이나 대회 참가 등에서 많은 피해를 봤다. 올림픽이 끝난 후 티모셴코와 스칼디나가 은퇴하자 브뤼셀 세계선수권에 참가해 최초 전관왕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해에 남자친구의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 168cm였다.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 선수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다(...)
- ↑ 두 선수의 어머니들 모두 국제심판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 ↑ 올레나는 후에 자서전 및 인터뷰에서 '너무 힘들었다. (중략) 세레브리안스카야와 나는 친자매 같은 사이였는데 결국 데리우기나에 의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엄마나 코치보다 먼저 알려주는 사이였다' 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 ↑ 축구 선수 안정환의 '꽃을 든 남자' CF에 나온 동유럽 미녀 병풍들이 바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다. 그 중 가장 인기있던 모델은 라리사 바쿠로바. 10년간 데리우기나 스쿨에서 활동한 바쿠로바는 은퇴후 '리샤' 라는 애칭으로 대만에서 에스티로더 모델로 활동했다.
- ↑ 빅토리아 베소노바 역시 리듬체조 선수 출신이었고 데리우기나와 동시대에 활약한 선수로 단체전 세계선수권 2회 우승팀 멤버라 그다지 꿀릴 것도 없었다. 주니어 시절 내내 딸이 연습하는 데에 찾아왔다고 한다. 딸과 마찬가지로 선수 시절 빼어난 미모로 유명하기도 했다.
- ↑ 사실 블로힌이 베소노프보다 조금 더 화려한데 이쪽은 무려 발롱도르 수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