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병역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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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예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1 개요

한국 스포츠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미필 후배가 군 필자 선배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이다.

자신은 이미 병역혜택을 받거나 아니면 이미 갔다 온 상태로 선수 생활을 하는 등 본인의 군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동료 선수들이나 후배 선수들에게 올림픽 동메달 이상, 혹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도와 동료 선수들에게도 병역혜택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축구, 야구 등 팀 단위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일이며, 단체전이 있는 경기에서도 해당된다.[1] 이 '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병역혜택을 받은 경우는 브로커라는 말보다는 면제로이드라는 표현을 더 쓴다.

2 명단

참고로 여기서 나온 나이는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시점의 나이를 가리킨다.

2.1 야구

보면 알겠지만 모두 각 팀의 레전드들이다.

2.1.1 박찬호

한국 야구계 면제로이드 초대 대표 겸 한국 야구 역사상 제 1호 합법적 병역브로커의 2가지 위엄을 동시에 충족시킨 선수. 브로커계의 원조 대부 당시 LA 다저스의 잘나가는 선발투수였던 박찬호는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본인도 구원하고, 동료들도 구원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이 대회부터 프로선수 참가가 허용이 되었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아시안 게임 개최가 야구 비시즌인 12월에 하는 덕택에 박찬호나 서재응[2] 등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참가가 가능했었다. 이때 박찬호는 예선전 대만 5이닝 1실점 승리, 두 번째 대만 예선에서 1.2이닝 무실점, 마지막 일본과의 결승전은 7이닝 1실점으로 깔끔하게 승리!

이후 2001 시즌이 끝나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 FA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리고 그가 퇴물이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그는 브로커계의 대부가 되었다. 오랜만에 2006년 WBC에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 방어율 0에 3세이브를 기록하며 WBC 4강 신화의 주역이 되었다. 다들 박찬호의 체인지업 위력이 떨어져서 고전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체인지업으로 상대가 박살났다. 일본과의 예선 2라운드에서는 선발투수로 등판, 5이닝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다. 4강 신화로 인해 많은 후배들[3]이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후 장출혈로 고생하지만, 2008년 친정인 LA 다저스에서 구원 투수로서 부활에 성공,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여 쏠쏠한 활약을 펼친다. 꿈에 그러던 월드시리즈 무대에도 올랐으나, 팀은 뉴욕 양키스에 패배하여 우승반지는 얻지 못하였다.

참고로 박찬호는 1994년 미국으로 갈 당시 대학생이였던 관계로 본래는 입영대상자였으나 국가에서 대승적 차원으로 보내줬고, 4년만에 이를 몇배로 갚았다. 병무청 : 아, 박 선수. 좀 봐주지.... 2012년에 은퇴하시면서 병역 브로커 업무도 같이 마무리했다. 하지만 지도자로 나가게 되면??

2.1.2 이승엽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무너뜨리는 결승 2타점 2루타도 쳐 냈고,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을 침몰시키는 투런, 멕시코전에서도 결승홈런, 미국전에선 전해 사이 영 상 투표 2위를 기록한 돈트렐 윌리스로부터 기선을 제압하는 선제 솔로홈런 등을 날리며 일약 합법적 병역 브로커로 등극하게 된다.[4] 큰 대회에서 이승엽에게 홈런 맞은 투수들은 그 이후부터 맛이 간다 카더라.[5] 그가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시드니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 보면 당시 기준으로 24세. 초대인 박찬호보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승엽의 출생 연도가 더 늦었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존재감을 발휘한 시점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조별리그에서는 죽도록 삽을 펐지만[6] 한일전 준결승전에서 전주 이씨이와세 히토키로부터 8회말 역전 결승 투런포를 작렬[7], 팀의 6:2 승리에 일조, 군대 안 간 선수들의 병역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다![8] 이에 그치지 않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1회초 선제 투런포를 작렬하여 대한민국의 전승 금메달에 큰 공을 세웠다. 이점엽 전설

참고로 이승엽 본인은 경북고등학교 시절 입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군대 면제를 받았다. 그래서 좌완 투수로 입단했다가 타자로 전향한 것.김승관 지못미

2002년 한국시리즈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임팩트 덕분에 큰 경기에 강한 사나이라는 위엄쩌는 타이틀과 함께 하이라이트 장면의 메인을 독식하긴 하지만, 홈런왕/타점왕을 차지했던 2006년 WBC와 MVP를 차지했던 2012년 한국 시리즈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 큰 대회에 강한 해결사보다는 그냥 공갈포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0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이상훈을 상대로 동점 쓰리런을 작렬시키기 전까지는 타율 1할을 기록하며 극도의 부진에 빠졌었고[9] 2008년의 경우 일본/쿠바전의 홈런을 제외하면 국민들은 물론 감독마저 똥줄을 타게 할 정도로(...) 깝깝한 공격력을 보여주었다.[10] 그러다보니 반농담 반진담으로 뜬금포 하나 치고 이대호김현수같이 대회에서 꾸준히 잘 쳐준 타자들을 전부 공기로 만들고 본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말이 돌 정도.[11][12] 하지만 비록 공갈끼가 강한 건 사실일지언정 그의 홈런이 가장 극적인 순간에 승부의 축을 아군쪽으로 돌려 승기를 잡게 한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 예선전에서 양학하다가 본선에서 삽질하느니 예선에서 삽질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잘하는 게 더 낫긴 하다. 예선에서 삽질해대면 연막효과도 있고 하니까...

사실 이 주장이 말도 안되는게 국대 타율 2할 8푼에 국대 최다 홈런 최다 타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베이징에선 삽펐지만 나머지 국대에선 최고의 타자였다. 게다가 베이징에서도 준결승과 결승이라는 큰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홈런을 두 방 날렸으니 밥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타이중 참사 당시에도 타율 4할을 기록하며 이대호와 함께 유이한 타자 까방권을 얻었었다.물론 직속 후배님께서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다분노한 선배들과 네티즌한테 발리는 바람에 다른 타자들도 자동 까방권을 얻은건 넘어가자

2.1.3 구대성

2000년 당시, 타자 쪽에 이승엽이 있다면 투수 쪽에는 구대성이 있다. 투수부분에서 고향팀에서 은퇴한 원조 병역브로커의 뒤를 잇는 2번째 합법적 병역브로커로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3,4위전의 수훈공신. 대표팀 선수들의 카지노 출입 파문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데다, 본인은 담에 걸려 팔을 제대로 뻗기 힘든 상황. 하지만 구대성은 괜찮다고 하고 등판했으며[13] 무려 156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승을 일궈냈다. 그분이 생각난다 이로 인해 그의 별명은 일본킬러가 되었다.[14] 사족으로 구대성 본인은 96년에 MVP까지 받고 시즌후 입대하였으나 허리 디스크로 면제판정 받았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31세. 이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참가해서 활약했다. 배영수 사주해서 이치로 맞춘 건 덤

2.1.4 이종범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의 주역 중 한 명. 1970년생이었고 당시 나이 36세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타율과 많은 안타를 뽑아내며 팀 공격을 이끌었으며, 일본과의 예선 2차전에서 결승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이 결승 2루타로 우리나라는 WBC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었다. 아래 동영상 참고.

참고로 아는 사람은 알지만 이종범 본인은 방위병으로 복무해 받아 데뷔 3년차이던 1995년 홈경기에서만 주로 뛰었다. 본 명단에 올라간 야구선수 중 현역과 방위를 통틀어 유일하게 군복무를 했던 경험이 있던 선수. 그리고 야구 선수 중 가장 늦은 나이에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되었다.

2.1.5 정대현

허구연이 말하길, "고의 싱볼 투수".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9회말 1사 만루, 한점차의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라와서 그림 같은 따불 푸레이를 만들었다.
위 영상 하나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야구팬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이라 임팩트가 오래 남아 있지만, 이 경기는 금·은메달을 다투는 결승전이었고 사실 병역혜택은 이미 확보해둔 상태였기는 하다.[15]

참고로 정대현 본인이 2000 시드니 올림픽을 통해서 병역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기자들조차도) 실은 그 전에 이미 군 면제를 받은 상태였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30세.

2.2 바둑

2.2.1 이슬아

최연소 합법적 병역 브로커+합법적인 여성 병역 브로커

1991년 생으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불과 19세. 여성으로서는 이효정의 뒤를 이은 두번째 합법적 병역 브로커이다.

박정환 8단(현 9단)과 출전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녀 페어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서, 93년생인 박정환 9단에게 군면제를 선사하였다.

2.2.2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 단체전 금메달로 이전에 이미 병역을 마쳤거나 특례를 받은(최철한은 청각장애 1급(오른쪽 귀가 청력상실)) 위 세명을 제외한 강동윤, 박정환, 조한승이 새로이 병역혜택을 받게 되었다. 특히 조한승은 현역 군복무 중 소속 부대의 배려로 한국대표 선발전 및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 획득, 제대 후 남은 복무기간을 바둑기사 생활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이창호가 35세, 이세돌이 27세, 최철한 25세. 이 세 사람, 브로커가 된 나이가 점점 내려간다??

2.3 그 외

2.3.1 홍명보

선수/지도자로서 모두 달성한 케이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수비수로 나섰고, 대한민국 4강 신화의 주역이었다.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는 대한민국이 16강에 올라가게 되자,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선수들 병역에 관해 논의했고, 국가에서는 콜을 외치며 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해 주었다.#[16] 그리고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성공한 후의 그의 표정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이후 홍명보는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쌓았고,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 2번최초 4강 진출인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브라질에게 탈탈탈지긴 했지만 사상 최악의 데스매치 한일전에서 2:0 완승,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사상 최초의 메달을 획득하게 되었다. 특히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문한 이등병의 편지 복창이 주효했다고 한다.[17]

한편, 축구의 경우는 출전이 없는 선수는 메달을 따도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18] , 3,4위전에서 유일한 비출전 선수인 김기희를 후반 44분에 투입, 모든 선수들에게 동메달+병역특례를 선사했다! 빛보다 빠른 4분 하지만 당시 홍명보 감독은 김기희를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고.#

파일:Attachment/kihee kim.jpg
이런 짤도 있다.
45분: 이병 김기희
46분: 일병 김기희
47분: 상병 김기희
48분: 병장 김기희

출처 LTE 김기희

다만 홍명보 감독 본인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병역 생활을 했었다.(4대 독자여서 6개월만 복무) 이후 포항에 입단해서 커리어는 모두가 아는 대로. 선수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것은 33세 때, 43세 때에는 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되었다. 그러나 45세 때에는...

그런데 홍 감독님, 올림픽 당시 반일로이드면제로이드를 섞어서 마시라고 선수들에게 지시했던데요? 그거 쓸만합니까?? |마라도나가 빙의되더라구요. 당연하죠!!

2.3.2 이효정

이 쪽 분야에서는 드물게 이분은 여성. 일명 브로커계의 대모(代母).

배드민턴 선수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용대 선수와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 금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신백철 선수와 혼합복식에 출전하여 또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참고로 27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합법적 병역브로커가 되셨다. 이렇게 2년만에 두 선수에게 금메달을 하사(?)했으나, 현재는 나이+결혼을 이유로 국가대표 은퇴. 대모님대부님이 사리진 현재는... 이제 누가 이 역할을 해주지?

2.3.3 이형택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테니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병역 특례를 받은 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도 남자 테니스 단체전 금메달의 주역이 되어 전웅선, 정희석, 안재성 등 후배들의 병역 특례를 이끌어냈다.

다른 종목만큼 알려진 종목이 아니지만 국내 테니스의 사정상 개인 ATP 투어 랭킹보다는 데이비스컵 한국 대표팀 셔틀, 국내 챌린지 대회 흥행카드 등 어른의 사정으로 인한 국대 에이스 역할을 오랫동안 할 수 밖에 없었던 개인 실력으로 따지면 비운의 선수.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나이는 25세.

2.3.4 이승훈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추월에서 공공의 적러시아디펜딩 챔피언 캐나다를 잇따라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하여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김철민, 주형준의 병역 특례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 특히 준결승 상대였던 캐나다와의 경기는 초반 불리함을 딛고 후반에 스퍼트하드캐리를 내면서 역전승을 거둔 경기이기도 하고, 또한 캐나다는 동계 올림픽 남자 팀추월 디펜딩 챔피언이었었기에 더 의미가 깊다. 이승훈 본인 또한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5000m와 아슬아슬하게 동메달을 놓친 10000m의 아쉬움을 만회하는 데 성공하였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된 이승훈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27세.

참고로 이승훈은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4년 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10000m 금메달, 50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특례를 확보했다. 즉 본인은 면제로이드를 복용하고 시혜자가 되어버린 셈.

2.3.5 이현일

본인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배드민턴 단체전 금메달을 통해 병역 면제를 받았다. 원래 단식 전문이라 병역 브로커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고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던 상황이었다. 여기서 끝났다면 이 항목은 만들어 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단체전 단식의 구원투수로 호출되어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한다.

8강전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5게임 마지막 단식 주자로 나가 승리하여 팀을 4강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인 중국전에서도 1, 2게임을 이긴 뒤 3, 4 게임을 내리 내주며 쫓기던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와 중국 선수를 2:0으로 잡으면서 금메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단체전 우승으로 인해 현재 복무중인 고성현과 아직 미필인 김기정, 김사랑, 이동근, 전혁진까지 무려 5명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한편 결승전 당일에 전역해 혜택따윈 없는 손완호와 유연성에겐 조의를...

35세의 나이에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되어 한방에 5명의 병역 문제를 해결해줬지만 이번엔 진짜로 이제 은퇴하면서 합법적 브로커직에서 물러났다. 대부님대모님이 사리진 현재는... 이제 누가 이 역할을 해주지?

2.3.6 이광종

28년만에 아시안게임 축구에서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끈 감독 게다가 무실점 전승우승으로 단 한 번도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 모든 상대를 이겼다! 그 결과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모두 병역 특례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이광종호참조
  1. 배드민턴, 탁구, 펜싱 등.
  2. 당시는 뉴욕 메츠 더블A 마이너리거.
  3. 오승환, 김태균, 이진영, 정성훈, 최희섭
  4. 이 대회에서 이승엽은 5홈런 10타점으로 홈런-타점왕을 모두 먹었다. 흠좀짱
  5. 물론 마쓰자카는 이후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이와세 히토키일본 통산 세이브 1위의 일본 대표 마무리 투수다. 이와세는 2008년 후반 부진하긴 했지만 그리 큰 부진도 아니다. 다만, 2006 WBC 때 이시이 히로토시(도쿄대첩의 원흉)나 돈트렐 윌리스를 생각해 보면...
  6. 승부치기에 들어간 중국전 끝내기 안타를 쳤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일본 팀을 묻어버리려는 생각에 너무 깊게 삽질을 했다는 말도 있었다. 아니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던가.
  7. 처음 맞았을 때 넘어가리라 생각한 사람은 적었다. MBC의 한광섭 캐스터도 우측에 높이 떴다며 반쯤 포기했는데 옆에서 누가 자꾸 크다고 소리 지른다.허작두?
  8. 류현진, 장원삼, 이용규, 김현수, 윤석민, 99.9한기주, 강민호, 이대호, 이택근, 고영민, 권혁, 김광현, 정근우, 송승준.....어마어마하게 많다. 이승엽의 역전 투런 한 방에 병역 봉인 해제. 그 중에는 2006년 도하 참사를 겪은 멤버들이 많다.
  9. 반대로 마해영은 코시에서 본즈놀이를 하고 있었다.
  10. 게다가 2013년 한국 시리즈 역시 마지막의 극적 동점 적시타를 치기 전까지는 삼팬들 마저도 돌중일, 이승엽 왜 쓰냐? 라고 깔 정도.
  11. 게다가 이승엽이라는 대타자가 가지는 상징성이 워낙에 큰 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도 있다.
  12. 심지어는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9회말에 극적인 병살타로 국가대표팀이 우승했을 때 뛰다말고 우승 볼 챙겼다고 치사하다고 놀림받기도 한다.
  13. 구대성 항목을 참고하자. 뒷이야기가 심히 흠좀무하다.
  14. 사실 프로 이전 아마시절 때부터 이미 일본킬러로 이름나 있었다.
  15. 이전 경기였던 일본전에서 9회 2아웃에 이용규가 플라이 아웃잡고 주저앉으며 감격한 걸 생각하면 알기 쉽다. 참고로 이 모습이 일본측에서는 상당히 인상깊었다는 후문.
  16. 이로인해 박지성, 설기현, 이천수, 이영표, 송종국 등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17. 데스매치 한일전 끝나고 또 불렀다고 한다. 그 때는 신나서 그랬겠지
  18.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 종목은 단 1초라도 실제 경기에 출전해야만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