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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範
1905년 10월 30일 ~ 1968년 07월 04일
1905년 10월 30일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에서 태어났다. 출생한 지 1년이 안 되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이후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고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1923년 일본 규슈로 건너가 20년 동안 탄광의 인부로 생활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강원도에서 광산업에 종사하였다.
8.15 광복 후 대동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토목건축, 물류, 철공, 제재 등의 사업을 하였다. 대동공업주식회사 출장소를 부산에 두고 부산시내나 근교에 주둔하는 주한미군 부대의 건설을 도맡다시피 하여 큰돈을 벌었다. 6.25 전쟁 때 장비를 사 모았고, 전쟁이 끝나자 전국의 재해 복구 시설의 절반을 도맡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권에 개입하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봉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경상남도당 부위원장 및 위원장, 대동육영회 이사장, 자유당 중앙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봉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축재 혐의로 기소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한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군-진해시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중도 사퇴하였다.
한편 창원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하여 산하에 창원대산고등학교, 창원중학교, 창덕중학교, 창원진전중학교 등을 세웠다. 그리고 부산동주학원 이사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