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의 주요선거 | |||||
종류 | 대통령 선거 (대선) | 국회의원 선거 (총선) | 지방선거 (지선) | 재ㆍ보궐 선거 (재보선) | 국민투표 |
최근 선거 | 18대 2012년 12월 19일 | 20대 2016년 4월 13일 | 6회 2014년 6월 4일 | 2016년 2016년 4월 13일 | 1987년 1987년 10월 27일 |
차기 선거 | 19대 2017년 5월 9일 | 21대 2020년 4월 15일 | 7회 2018년 6월 13일 | 2017년 4월 2017년 4월 12일 | (예정없음) |
대한민국 국회의원 총선거 | ||||
1954년 5월 20일 | ← | 1958년 5월 2일 | → | 1960년 7월 29일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 →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1 개요
1958년 5월 2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87.8%를 기록했다.
2 배경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정적 과반을 확보하여 숫자놀음사사오입 개헌으로 3선에도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이었으나 1957년부터 미국의 원조가 감소하기 시작해[1] 원조에 의존하고 있던 경제조차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경쟁률은 3.2대 1이었으며 지난 총선보다 더 안정되었으며 참가한 정당과 사회단체는 총 14개이다. 또한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에 따라 38선 이북 휴전선 이남의 전 지역에 대해 치러진 첫 선거이다. 233석이 정원이며 과반 획득을 위한 의석수는 117석이었다.
3 결과
자유당이 과반을 얻었으나 126석으로, 지난 국회보다 비율이 줄었다.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무소속 의원 수는 26명으로 현저히 줄었다. 반면 조병옥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총 80석을 차지하여 어느 정도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원내 정당은 자유당, 민주당, 통일당[2] 3개 뿐이었다. 요약하자면 양당제의 경향이 나타난 첫 선거.
여촌야도 현상은 더욱 뚜렷해져 자유당은 서울특별시에서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서울의 16개 의석 중 여당 자유당이 획득한 의석은 단 1곳. 민주당이 14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해 굴욕을 면치 못했으며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서울의 민심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음을 의미했다. 다만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남과 호남에서 자유당이 앞섰기 때문에 최종 의석 수는 꽤 차이가 났다.[3]
전라남도 보성군에서는 자유당 안용백 후보가 닭죽 사건이라는 부정선거를 일으켰다가 당선무효가 되기도 했다. 근데 재선거 때 또 자유당 후보인 황성수가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