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

남당의 역대 황제
2대 원종 이경3대 후주 이욱남당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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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이욱(李煜) (937년~978년, 재위:961년~975년)

오대십국시대의 십국이었던 남당의 3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촉의 마지막 황제 유선과 함께 후주라 불리운다. 조광윤이 송제국을 건국하고 세력을 떨치자 이에 겁먹은 이욱은 당제국에서 강남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가 아닌 국주(國主)를 자처했으나 송태조 조광윤에게 나라가 멸망당했다. 멸망 직전에 조광윤에게 신하를 보내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천하를 갈라서 다스립시다.' 라고 말하자 조광윤은 '외간남자가 내 침대에서 코골며 자는 것을 어찌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라고 화내며 이를 거부하고 남당을 멸망시켰다.

결국 남당은 망하고 개봉에 끌려와서 살다가 성질 더러운 송태종 재위 기간에 생일에 고향을 그리워 하는 '우미인'이란 시를 지었다 격노한 송태종에게 독살당했다. (毒)이 너무나 독하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온몸이 우그러지면서 피를 토하고 폴더폰마냥 어깨엉덩이가 붙어버렸다고 한다.

일단 황제로서의 능력은 실격자로 국정을 제대로 살피는 것보다는 문학작품을 짓고 부르는데 더 열중했다. 때문에 시인으로서는 일류급이었지만, 황제로서는 삼류라는 평가조차 과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황음무도하거나 자신의 취미를 위해 백성을 혹사시키거나 가혹한 징세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욱이 사망한 것을 들은 옛 남당 백성들이 매우 슬퍼하였다고 한다.

원 부인인 소혜황후 주아황과 결혼해서 10년을 살았는데, 부인이 병석에 눕자 이를 간호하러 온 동생인 주여영과 눈 맞아 부인이 죽은 후, 동생과 재혼했다.[1] 그래서 언니를 흔히 대주후(大周后)라고 하고, 동생을 소주후(小周后)라고 한다. 동생인 소주후의 운명은 나라의 망국과 함께 비참해지는데, 야사에 따르면 송태종이 자주 소주후를 궁궐에 불러 겁탈했다고 한다. 이를 안 이욱이 분노하자, 그 때문에 송태종이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야사의 진실 여부는 차지하고, 부인인 소주후는 이욱이 독살된 후, 곧 세상을 떠난다.

2 예술가

예술가 황제로 송휘종 조길과 함께 이름이 높고, 예술 때문에 나라를 망친 황제로 또 함께 이름이 높다. 남당의 수도인 금릉성이 포위된 마당에서도 문학작품을 짓고 노래부르는 데 열중할 지경이었으니...

그러나 송휘종이 천부적인 예술가적 재능을 지닌 황제로서 자기 취미를 위해 백성들을 혹사시킨 반면에, 이욱은 자기 취미를 위해 혹독한 징세를 하거나 백성을 동원시키지 않고서도 예술적인 면에서 일대 종가를 이루어 송대 문학가 4인방을 꼽으면 꼭 들어갈 정도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래서 당대 서적에서도 황제로 태어나지 않고 문학가로 태어났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송나라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송대 문학가 4인방에 들어갈 정도로 문학에 있어서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했는데 그 중 '사(詞)'[2] 의 명인으로 유명하다. 훗날 송나라에서 태동하게되는 송사(宋詞)에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전기에는 황제로 기세등등하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기에 화려하고 로맨스있는 문학을, 후기에는 개털리고 망국의 군주로 유폐생활을 해야했기에 절절하고 감성있는 문학을 창작했는데 인간의 흥하고 쇠함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이욱의 작품은 후기작은 최고품으로 치며, 전기작도 고급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비록 자기는 몸이 우그러졌지만 말이지...

아래가 바로 문제가 된 우미인(虞美人)이라는 사(詞)이자 이욱이 후기에 지은 문학이다.

봄꽃과 가을 달 언제 다하려나(春花秋月何時了)
지난 일 얼마나 그리운지.(往事知多少)
작은 누대 어젯밤 또 봄바람이 불었는데(小樓昨夜又東風)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차마 옛 땅으로 고개 돌릴 수 없었네.(故國不堪回首月明中)

조각한 난간 옥으로 깎은 섬돌 아직도 있으련만(雕欄玉砌應猶在)
아름답던 얼굴만 세월 따라 변했구나.(只是朱顔改)
그대에게 묻노니 품은 수심 얼마인고.(問君能有幾多愁)
봄 강물 동쪽으로 흐르는 만큼이라네.(恰似一江春水向東流)

절절하기 그지없다.

아래는 잘나가던 시절에 지은 시 일곡주(一斛珠) 위와 비교해보자.

아침 단장 막 마치고(晚妝初過)。
침단향을 은은히 발랐네.(沈檀輕注些兒個)
임을 향해 붉은 혀 살포시 드러내고(向人微露丁香顆)
한 곡조 맑은 가락 읊조림에(一曲清歌)
앵두 입술 잠시 벌어진다.(暫引櫻桃破)

비단 소매 촉촉이 적시니 옅은 홍색 비끼고(羅袖裛殘殷色可)
잔은 깊은데 감긴 겉옷 좋은 술에 더럽혀 있네.(杯深旋被香醪涴)
비단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니 교태로운 모습 한없어라.(繡床斜憑嬌無那)
붉은 실을 씹다가는(爛嚼紅茸)
웃으며 임을 향하여 뱉네.(笑向檀郎唾)

신기하게도 글을 쓸 때 이 아닌 비단김밥말듯 말아서 글씨를 썼다고 한다. 아래 나오는 어필이 영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붓을 사용하지 않고 이 정도로 쓰는 일 자체가 매우 힘들다. 그냥 붓으로 써라....

파일:Attachment/이욱/(19)오대 남당 후주 이욱 어필.jpg

이욱의 어필
  1. 언니와 동생의 나이 차이는 정확히 14세 차이라고 한다.
  2. 한문 문체의 명칭. 중국 당대에 발생하여 송대에 성행하였던 시와는 형식과 풍격이 다른 운문이다. 중국 근세에 유행하던 서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