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이한위/이사.jpg | |
이름 | 이한위(李漢偉) |
출생 | 1961년 6월 17일(전라남도 광주시) |
본관 | 전의 이씨 |
학력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 |
데뷔 | 1983년 KBS 10기 공채 탤런트 |
경력 | 2008년 SBS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남자조연상 |
씬 스틸러의 끝판왕
내가 누군지 안위? 이한위다! 이한위다!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중학교 때 자신의 적성을 발견했다. 이후 조선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3년 KBS 공채 10기 탤런트에 합격함으로써 연예계에 입문했지만, 작품섭외를 받기 힘들어, "일단 방송사 출근 -> 배역 구하기"의 일상을 오랫동안 반복하면서도 단역을 전전했다고 한다.[1] 배우 생활 10년이 넘도록 무명으로 지내며,[2] 이런저런 배역 가리지 않고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쌓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과정에서 같이 고생하는 다양한 신인 연출자들[3]과 친분을 쌓거나,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늘어나, 90년대 중후반부터는 조금씩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하는 횟수가 늘었다고 한다.
1985년에 방영된 KBS 드라마 별을 쫓는 야생마를 통해 본격적으로 데뷔했고, 1998년에는 상영되었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4]를 통해 영화배우로도 데뷔하게 된다.
2006년, 개봉된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성형외과 원장 이공학 역을 맡아 열연, 데뷔 21년 만에 전국구 스타 배우로 떠오르게 되었다. 현재는 주로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1996년 이후 한 해에 4개 이하의 작품을 한 경우는 한 번도 없으며[5], 주택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을 때도 은행에서 이한위의 금전적 능력을 믿고[6] 여신을 제공해주었을 만큼 뒤늦게 생활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2008년에 불멸의 이순신의 분장사였던 최혜경과 결혼했으며, 나이 마흔 여덟에 첫 애가 태어난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세 자녀를 두고 있다.[7] 자녀들을 제대로 부양하려면 적어도 일흔까지는 꾸준히 돈을 벌어야 한다고.
어머님은 내 며느리에서 박봉주 역을 맡았다.
서민적인 마스크로 정육점 주인, 시장 옷가게 주인 등 주로 소시민 역할을 많이 연기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무풍지대 같은 드라마에서 날카로운 카리스마와 액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 후술되어 있지만, 극화의 "비중 적은 배역"이라도 맡기까지 2년이 걸렸다.
- ↑ 배역이 안 들어와 생활비 문제가 있을 때는, 먼저 상경해 직장이나 개인사업 등으로 자리잡은 친구들의 신세를 진적도 많았다고 한다.
- ↑ 조연출, 보조연출자들
- ↑ 태권도장을 하는 한석규의 오랜 친구로 등장한다.
- ↑ 2006년과 2007년에 했던 작품이 34개이고, 2011년과 2014년에 했던 작품이 36개이다.
- ↑ 구체적인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한위라는 사람이 나이 60이 넘어도 소득을 확보해 대출금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금융상품이었다는 후문.
- ↑ 그전에 이혼을 한번 했고, 지금 부인은 19살 연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