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삼국지)

1 張光

진서 「나헌등전(羅憲等傳)」
나헌등수마륭호분오언장광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자는 경무(景武).

강하군 종무현 사람으로 신장은 팔 척이고 목소리가 아름다우며, 어려서 군의 관리가 되어 가문에 내려오는 부곡을 통해 아문장이 되었다. 279년부터 오나라를 정벌할 때 공을 세워 강하 서부도위가 되었다가 북지도위로 옮겨졌다.

사마륜이 관중도독이 되어 저, 강과 반목하면서 태수 장손이 죽고 군현의 관리와 선비 중에는 온전한 자가 드문 사태가 벌어지자 장광은 백여 명과 함께 마란산 북쪽에서 적에게 백여 일간 포위당했으며, 장광은 병사들을 힘써 어루만지고 때로는 기병을 보내 적을 격파했지만 병사들은 적고 길은 멀어 병사들이 서로 나뉘어 적에게 살해당했다. 사마융이 색정과 장수와 병사들을 보내서 맞이했고 장광은 군을 들어 슬피 울고 장안으로 돌아갔는데, 장광은 사마융으로부터 포위가 되어 단절돠었음에도 싸운 것을 표창받아 신평태수에 임명되고 고취가 더해졌다.

옹주자사 유침이 밀조를 받고 무리를 모아 사마옹을 공격하려고 하자 장광은 병사를 일으켜 그를 도왔는데, 유침이 이 일을 진주자사 황보중에게 위임했다가 관서의 대족이었던 황보중이 장광을 경시하고 그의 꾀를 많이 쓰지 않다가 사마옹의 군대에게 격파되어 붙잡혔다. 사마옹이 병사를 일으킨 것을 추궁하자 유옹주(유침)가 내 천한 헤아림을 쓰지 않은 것이 대왕(사마옹)이 오늘을 얻은 까닭이라고 하자 사마옹이 이를 장하게 여기면서 연회를 열고 장광은 우위사마 되었다.

진민이 반란을 일으키자 305년에 장광은 순양태수, 능강장군이 되어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형주로 가서 토벌했으며, 형주자사 유홍으로부터 공경을 받아 중시되어 남쪽 초나라의 뛰어난 자라 칭해졌다. 강하태수 도간이 진민과 장기에서 싸움을 벌이려고 할 때 심양태수 피초를 통해 파견되었다가 피초 등이 적과 교전할 때 복병을 일으켜 적을 격파했으며, 유홍으로부터 그 공을 표창받아 재관장군, 양주자사가 되었다.

파서태수 장연이 한중에 들어가 성고를 지키면서 주위를 약탈하는 등정을 토벌하려다가 등정의 거짓 항복에 속은 것과 동시에 등정이 이웅과 결탁하면서 장연이 물러나고 태수 두정충이 위흥으로 달아났으며, 양주장사 장은도 벼슬을 버리고 달아나는 상황이 되어 장광은 다다를 주를 얻지 못해 위흥에서 멈추가 여러 군수들과 공모해서 나아가 주를 취했다.

두정충을 통해 장연이 적에게 금은을 받고 나아가 토벌하지 않고 병사가 느슨해져 한중을 잃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해 장연을 꾸짖고 죽인 뒤에 조리돌림을 했으며, 거칠고 잔악한 것을 편안히 어루만져 백성을 기쁘게 하고 한중의 적을 공격해 진압했다.

이 때 왕여가 이연, 양무 등과 함께 심양의 삼천여 가구를 가지고 한중에 들어가려고 하자 장광은 참군 진막에게 황금에서 무리를 이끌고 그들을 막게 했지만 진막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인해 이연을 받아들이도록 권하자 그 말에 따라 이연을 받아들여 성고에 있게 했다. 그런데 지낙이 이연의 물품을 빼앗기 위해 장광에게 이연의 무리가 농사를 짓지 않거나 병기나 잡는다면서 그들의 뜻이 알기 어려우니 가려서 취해야 한다고 하자 장광은 그 말을 믿었는데, 진막이 무리를 보내 이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장광은 저왕 양무수에게 군사를 구걸해 그 아들인 양난적이 파견되어 도움을 받았는데, 양난적이 재물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했고 양무가 양난적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양난적이 말로만 장광을 돕고 안으로는 이연에게 동조하게 되었다. 이연이 이끄는 군사가 진막을 죽이는 등 적의 기세가 강성해졌고 장광은 영성을 여름부터 겨울까지 굳게 지키다가 병이 났는데, 보좌하는 관리와 백성들이 위흥으로 퇴각할 것을 권했지만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도 도적을 제거하지 못했다면서 싸우기를 고집했다.

그러나 음성이 끊겨 죽으니 이 때의 나이는 55세였으며, 그가 죽자 백성들이 슬피 울고 먼 곳이 애석하게 여겼다.

2 章誑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허탐 휘하의 사마로 유비장비를 남겨 하비성을 지키게 하고 원술과 회음의 석정에서 싸울 때 장비가 조표를 죽이자 허탐의 지시로 여포에게 갔다.

여포에게 장비와 조표가 다투다가 장비가 조표를 죽인 일로 성 중에 혼란이 일어나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단양병 천 명을 백문성 안에 주둔시켰다면서 군사를 서쪽으로 보내면 단양군들을 통해 성문을 열어 내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자 여포가 새벽에 도착해 날이 밝자 단양병이 성문을 열어 여포의 군사가 하비성을 함락시켰으며, 장비의 군대를 격파해 유비의 처자식, 군자, 부곡, 제장들의 가족 등을 노획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광이 하는 역할을 조표가 보낸 사람이 여포에게 성의 상황을 알려 내통한 것으로 나오며, 삼국지평화에서는 장본(張本)으로 조표의 사위로 나와 조표의 지시로 여포에게 성의 상황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