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

戰後世代
Post-War Generation

1 개요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를 일컫는 말.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한국전쟁 이후, 유럽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세대가 이에 속한다. 다만, 전쟁 이후 경제난이 한창이던 때에 태어나 고생한 세대는 넣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쟁이란 게 난리 중에서도 큰 난리에 속하다 보니, 전쟁을 겪은 사람들과 겪지 않은 사람들 간의 세대 차이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학에서도 이 두 세대 간의 갈등을 주제로 삼는 작품이 많다. 대체적으로 전전(戰前) 세대[1]와는 달리 전후 세대는 비교적 전쟁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면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전쟁이란 게 종전 이후에도 해당 사회에 여러 가지 악영향(경제적 손실, 사회적 불안감 등)을 끼치기 때문에 전후세대들 중에는 전쟁 당시의 적대국과 재대결을 펼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나온다.

그러나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의 경우 전쟁의 공포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전 의식이 강한 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쟁 당시의 적대국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까지 모두 잊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들 앞에서 전쟁 당시의 적대국에 대한 얘기, 그것도 그 국가를 찬양하는 얘기를 했다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보통 이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그런 적대감마저 누르기 때문에 반전 의식이 강한 편이다. 한마디로 애들은 싸워도 아무런 사회적 제재를 안 받아봤으니 뭐만 있으면 쌈박질이지만 싸웠다가 빨간줄 그이고 합의지옥을 봤던지, 아니면 들어서 알고 있는 어른들은 큰일이 있어도 주먹을 쥐지 않는것이다

하지만 전전세대는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전방에 있든 후방에 있든 윤리 의식이 약한 편이며,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범죄든 눈 하나 깜빡 않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전쟁 때의 논리를 평화로운 시기에도 적용하는 사람도 있다.

2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

전쟁 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출생자 733만명을 가리킨다.[2] 특히 58개띠가 유명한 편이다.

이 세대의 사람들은 대학 진학률은 높지 않았지만[3] 자녀들이 대학을 가는 2009년에는 남녀 모두 80%를 넘기게 되었다. 이들이 공고상고 출신의 엘리트들이 회사 임원이나 은행 임원으로 분포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3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Baby boomers.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4] 소련을 넘어뜨리고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호황을 이끌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때 아이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어떤 병원에선 복도에서 분만을 했을 정도다. 다만 세대 권역이 굉장히 넓어서 앞의 사람(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데 비해 뒷세대들은 징병제 폐지로 군대에 안 가기도 했다. 히피들의 상당수가 베이비부머들과 겹치고 펑크도 많다.

2010년대 들어서 일단 은퇴하고 있는데 사실 상당수가 은퇴를 미루고 있어 미국의 취업난을 가중시키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지탱하던 각종 연금 등도 이들이 빠지면 엄청난 손실이 예정된다고 할 정도. 코난 오브라이언은 2011년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식 강연에서 베이비부머들 덕분에 졸업생들의 취직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5] 뭐, 그래도 한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양반이다 그래도 뒷세대의 인구수가 되는 편이니...

4 일본의 단카이 세대

団塊の世代(だんかいのせだい)

일본에선 1차 베이비붐 세대라 하는데 종전 후인 1947년부터 1949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1947년에 267만8792명, 1948년에 268만1624명, 1949년에 269만6638명이 태어나 3년 동안 806만명이 태어났다. 다만 타 국가와는 다르게 베이비붐은 3년 정도로 짧게 끝났기 때문에(좀 넓게 봐도 1953년생부터는 출생자수가 200만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6] 베이비붐 세대에 끼어들지 못한다.)[7] 한국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전체 인구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386세대와 비슷한 점이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사회운동의 동력으로 단카이세대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다만 대학 진학률이 15% 수준이라 모든 단카이 세대가 전공투 등의 활동에 동조했다고 보기는 어렵고,[8] 이들이 본격적으로 유권자가 된 이후에 자민당의 득표율이 상당히 떨어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다란 정치적인 변혁이 일어났던것도 아니다.[9] 비권에 해당하는 논뽀리도 많았고. 다만 다른 세대에 비해 리버럴한 경향이 비교적 강하기는 하며 아사히 신문을 많이 읽는다.[10]

1980년대에 회사의 중간관리직에 오를 시점에 이들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겪었다. 구매력도 갖춘 나이대에 버블까지 겹쳐서 소비는 실컷 해본 세대이고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면서 일본의 쇠락과 우경화를 바라보게 되는 세대도 되었다.
  1. 전쟁 전에 태어나서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
  2. 다만 공식기록상 한국의 최대 출생자는 1971년생들이다. 1970년부터 공식집계를 냈기 때문. 1971년생은 약 100만을 넘겼다. 황정순이 태어난 1925년에는 80만명이 태어났다고 한다.
  3. 통계청에 따르면 1979년에 남성 29%, 여성 20% 수준이었다. 그 뒷세대긴 하지만 진학률에서 그리 큰 변화는 없는 386세대의 경우 대학생이 아닌 사람이 많아 386세대 담론이 엘리트적이란 얘기도 있다.
  4. 이 시절에 미국의 신생아 숫자는 연간 400만을 넘었다. 참고로 2010년대 기준으로 미국의 출생아수는 300만명대 정도의 수준(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5. 오브라이언 본인도 1963년생으로 베이비부머의 끝물이다.
  6. 이후에 1971년부터 1974년생까지 출생아수가 다시 200만을 넘기게 되었다.(이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을 2차 베이비부머, 베이비붐 에코세대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후에는 출생아수는 대체적으로 꾸준히 감소되고 있는추세이고 2000년대 중반에 출산율이 저점을 찍은 이후에도 이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7. 1949년부터 시행된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매우 단시일내에 떨어졌다. 1950년대 후반 들면은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은나라는 헝가리 정도 수준일 정도
  8. 사실 이건 386 세대도 어느정도 마찬가지인게 1980년대에는 한국의 대학진햑률이 30%는 커녕 10% 후반-20%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수준이라서 대학에 간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9.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지방선거에서 혁신지자체장이 상당히 탄생하기도 했고, 자민당이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지만 야당들이 (따로 놀아서 정권이 교체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그나마 당시 유일하게 정권교체 기회가 있었던 1980년 중참의원 동시선거도 오히라 수상 사망으로 날려먹었다.
  10. 예를 들자면 14년 도쿄지사 선거의 경우 좌파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60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