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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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1][2]
부자들이 전쟁을 선언하면 죽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 노자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

- 벤저민 프랭클린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 예수 그리스도(마태복음 26:52)

무기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기구다. 자연(物)은 그래서 이를 미워한다. 그러므로 도를 깨달은 사람은 이것을 쓰지 않는다.

夫唯兵者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 노자 도덕경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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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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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反戰主義 , Anti-war[3]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려는 태도나 운동, 사상, 또는 이념. 평화주의와도 어느 정도 뜻이 통한다.[4] 주로 반전 운동으로 대표된다.

2 역사

전쟁이 인간의 욕구에 따른 자연적인 것이라면, 반전 또한 인간의 생명 존중의 본능적 욕구에 따른 당연한 것이기에 역사상으로는 전쟁이 발생한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서구에서는 헤브라이의 예언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사상에서부터 근대 인도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적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동양에서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가 묵자와 그의 가르침을 따른 묵가가 단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묵자 사후에는 학파가 분열하고 타락하면서 되려 침략자를 위해 일하는 씁쓸한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제자백가, 유가, 불교, 도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대다수의 종교와 성인들 치고 반전주의를 주장하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프리카아메리카 원주민 등의 제도화되지 않은 종교나 사상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의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체제에 포섭되어 가면서 전쟁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5]

따지고 보면 전쟁보다 반전주의가 더 역사가 깊고,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전쟁이라고 부르는 대규모의 집단간 살육행위는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문명 이후, 특히 청동기 시대국가계급 발생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만 해도 집단간의 살상이 종종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1 제국주의 시대

그러나 반전주의의 반전 운동이 명확한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즉 제국주의의 시대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반전 운동이 대중 운동으로서 자리를 잡는다.

2.2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서구에서는 기독교가 대중적 반전 운동의 주체였다. 당시 퀘이커, 여호와의 증인, 재림교회, 천주교등 다양한 교파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는 계율에 따라 전쟁을 반대하고 군사훈련에 동참할 것을 거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식민지 피압박 민족의 반제국주의, 민족 해방 운동과 자유주의, 사회주의 세력에 의하여 전개되어 갔다.[6] 이런 정세는 제국주의에 억압되어 온 피압박 민족의 해방 투쟁을 발전시켰으며, 1927년 국제반제동맹(國際反帝同盟)을 결성. 국제적 규모의 제국주의 반대, 민족 독립 지지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1차 세계대전이다. 그 전에도 역사적으로 병역거부자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지만, 미증유의 대살육전을 앞에 두고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에 따라 조직적으로 병역을 거부한 것은 1차대전이 처음이다. 기독교계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재세례파(아나뱁티스트)들에 의해 최초로 주창되었다. [7]

2.3 제2차 세계대전

일본중국 침략히틀러군비 확장에 의해 세계적으로 전쟁의 위기가 닥쳤는데, 이런 상황에서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와 로맹 롤랑(Romain Rolland)[8]의 제창으로 1932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반전대회(國際反戰大會)가 열려 여러 나라에서 2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사상 초유의 국제적 규모의 반전 대회로서, 정당, 사상, 신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반전주의자/평화애호자들이 결집하였다. 이 대회를 계기로 하여 정치적/인도주의적/종교적인 갖가지 반전/평화 운동이 눈앞에 처한 긴급한 과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반전주의/반파시즘으로 단결해 나갔으며, 이러한 운동의 발전은 비록 전쟁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파시즘 타도와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반전 운동 경험과 성과는 전후의 새로운 국제적 조건 아래에서 전후 세계의 평화 운동에 많은 공헌을 했다. 미국의 경우 진주만 공습을 당한 직후 의회의 대일선전포고에서 유일한 반대표 1표가 나왔는데 미국의 첫 여성 국회의원이자 반전주의 의원인 저넷 랭킨이 던진 반대표였다. 그녀는 비난도 받았으나 반전주의의 대표라는 이미지와 함께 "민주주의란 만장일치가 나와서는 안 된다"라는 그녀의 소신은 후대에 인정받아 미국 국회의사당 현관에 동상이 세워지고 지금도 그녀의 뜻을 기리는 사람이 많다. 관련 기사

2.4 현대

2.4.1 베트남 전쟁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공산주의를 부도덕하고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 위협으로부터 미국적 민주주의와 생활 양식을 지켜야 한다고 결의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국제 연합 헌장, 국제법, 국제 조약에 위반되며 미국의 역사적/전통적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그 의문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학자와 지식인들은 1965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 R.A 포크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여 미국의 베트남 개입의 합법성에 대해 조사, 분석하는 위원회인 '미국의 베트남정책에 관한 법률가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위원회는 미국의 베트남 개입이 몇 가지 사항에서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공표했다. 의회에서는 정부의 베트남 정책에 관한 공청회가 열리고, 텔레비전, 라디오 등에서도 갖가지 공개 토의가 행해졌다. 거기에다가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이 강화되고 고엽작전, 손미 학살의 실태가 밝혀짐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의혹은 곧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운동의 움직임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와 데모가 자주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집회는 1969년 10월 15일을 '베트남반전일'로 하여 워싱턴을 중심으로 미국 각지에서 행해진 대규모 베트남 반전 통일 행동이다.

그리고 미 국방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조사, 연구를 하여 무려 47권에 이르는 <미국방부비밀보고(펜타곤 페이퍼)>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그 내용 중 일부가 뉴욕타임스에 의해 폭로되고 만다. 이는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허상을 벗겨내고 실태를 알리는 결과가 되어 안 그래도 거세던 반전 운동이 더욱더 확산된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었는데, 그 결과 시민들의 반전 시위는 미국 정부가 폭격 중지 -> 평화 교섭 개시 -> 미군 철수 -> 전쟁 종결의 순서로 결의를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물론 남베트남이 워낙 답이 안나오는 집단이라 설사 시위가 없었다고 쳐도 최종적으로는 미국이 손을 뗄 수밖에 없었겠지만.

2.4.2 테러와의 전쟁 시대

2001년 9월 11일에 벌어진 9.11 테러의 영향으로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여 일어난 21세기 최초의 전쟁인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어서 일어난 이라크 전쟁. 적어도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는 그나마 좋은 듯...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무리수로 다른 전쟁을 또 일으키려 하자 2003년 2월 15일, 세계 600여 도시에서 1150만여 명이 참여하여 반전 시위를 하였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부시 대통령이 '그딴 거 알 게 뭐야' 하며 다 씹고 일어난 게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이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것이 알려지는 등으로 인해 반전 운동은 더욱더 확산되었다.

3 해당 작품

3.1 영화

3.2 애니메이션

3.3 만화

3.4 게임

3.5 소설

3.6 수필

3.7 특촬물

3.8 음악

4 해당 인물

4.1 동양권

4.2 서양권

5 관련 항목

  1. 이 광고들 모두 광고천재 이태백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 이제석이 만든 광고이다.
  2. 여담이지만 전차의 포신이 실제 전차보다 훨씬 길다.
  3. 이전 문서에는 Pacifism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이는 평화주의를 뜻하는 단어다.
  4. 하지만 반전주의라는 단어는 정확히 평화주의에 대입되지는 않는다. 반전주의는 주로 한국에서만 쓰는 단어이고, 대체로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사상이다. 평화주의는 군대무용론을 포함하고 있지만, 반전주의는 최소한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반전주의자자라고 한다면 군대무용론을 지지하는 것은 필수이다. 속도의 문제일 뿐.
  5. 불살의 대명사인 불교 조차도 왕즉불 사상 등으로 권력의 한 축을 차지하면서 전쟁과 살육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
  6.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사민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상당수의 사회주의 정당 또는 정파들이 "자국 보호"라는 명분 하에 전쟁을 대찬성(...)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전쟁이 끝난 후 이런 움직임은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되고 공산당을 비롯한 더 급진적인 정파들이 출현하는 계기가 된다.
  7. 재세례파는 아미쉬등의 보수적인 계열과 메노나이트 등의 중도파, 그리고 평화주의 내지 민중신학과 결합된 급진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소수의 신자와 신학자, 목회자가 존재한다. 존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을 번역한 김기현 목사가 이 분야의 연구자로 유명하다.
  8. 둘 다 소설가이다. 오오 그것은 세계를 바꾼 소설가 오오
  9. 1993년 독일에서 만든 영화를 뜻한다.
  10. 추후 감독이 우익적 성향을 자주 드러내기는 하였으나, 이 작품 자체만 보면 명백히 반전물이라고 볼 수 있다.
  11. 대부분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반전주의적 성향을 띤다.
  12. 이전까지 그리고 앞으로 나온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달리 전쟁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잔인한 전쟁과 광기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크레딧에서는 전쟁으로 희생된 장병들을 기리는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13. 프롤로그 플레이에서 전투 중 사망 시, 전쟁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내래이션 멘트와 함께 실제 1차대전 참전자의 이름과 생몰년도를 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