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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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6
김회성(金會成 / Hui-sung Kim)
생년월일1985년 12월 4일
출신지대전광역시
출신학교대전신흥초 - 한밭중 - 세광고 - 경성대
포지션3루수, 1루수
투타우투우타
체격190cm, 95kg
프로입단2009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한화 이글스)
소속팀한화 이글스 (2009~2011)
경찰 야구단(2012~2013) (군복무)
한화 이글스(2014~현재)
응원가한명숙 - 노란 샤쓰의 사나이[1]
김태우 - High High[2]
2012년 KBO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홈런왕
문선재(상무 야구단)김회성(경찰 야구단)최승준(LG 트윈스 2군)
한화 이글스 등번호 5번
백승룡(2005~2008)김회성(2009)이양기(2011~2014)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김사연(2008)김회성(2010~2011)임익준(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임경훈(2013)김회성(2014)박한결(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6번
이창열(2014)김회성(2015~ )현역

1 소개

한화의 전갈

한화 이글스 3루의 중고 내야 32살짜리유망주. 부상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다가 군 복무 후 서서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타자전갈이다.

190cm의 거구에서 나오는 파워 하나는 진퉁으로 2012년 안타 7개(...)중 3개가 2루타, 2개가 홈런으로 방망이에 공을 맞추면 장타를 뽑아낼 능력이 있으며, 선수 본인도 성실하고 꾸준히 노력하기에 현장에서는 나름대로 기대치를 걸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또한 장신을 이용하여 1루, 3루 수비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다만 잔부상 이 많은데다가 은근히 발도 느리고 파워와 정확히 반비례하는 컨택이 평가를 죄다 깎아먹고 있다. 무엇보다 뇌와 몸이 따로 노는 플레이가 약점.

호수비를 하거나 타격을 잘 하면 회정이라고 불리지만 못 할 때는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회충이라고 까인다. 2015년의 희한한 플레이로 잘하든 못하든 전갈, 스콜피온 킴이란 별명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2 프로 이전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라면서 대전신흥초 - 한밭중[3]을 졸업하고 공주고에 진학했으나 속초상고로 전학을 가게 되고, 속초상고에서 또 다시 청주세광고로 전학을 가는 등 이리저리 옮겨 다녔으며, 그 과정에서 유급까지 했다. 세광고 졸업 후에도 지명을 받지 못해 경성대학교에 입학했다.[4]

경성대학교에 들어가서도 1, 2학년 당시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하고, 그나마 몇 번 주어진 타석에서도 거의 안타를 치지 못하면서 쩌리로 남았으나, 3학년에 올라가면서 파워 포텐셜이 폭발, 1년동안 7개의 홈런을 치면서 단국대학교 나지완(11개)에 이어 대학리그 홈런 2위를 차지했다. 특히 대통령기 대회 준결승에서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면서 파워를 과시해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때 경성대학교에서 함께한 선수 중 한 명이 한동민이다. 다만 경성대 시절 커리어 하이였던 3학년때도 타율은 .233으로 컨택과 선구안에 분명한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4학년 때 타율이 .177로 다시 떨어지고, 당연히 홈런도 2개로 감소하면서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청권 팜이 흉작인 이 해에 크게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는 없었다. 북일고의 에이스인 고원준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의 전학생이었기에 애초에 한화의 1차 지명 대상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5][6] 사실 김회성도 공주고-속초상고-세광고로 전학을 2번이나 경험했고 유급 이력까지 있던 선수이다. 이 때문에 한화 구단 측에서 KBO에 유권 해석을 요청했고, KBO에서 1차 지명이 가능하다고 해석해서 승인이 떨어지자 최종적으로 1차 지명하게 된다. 고원준이 지명 안되고 김회성이 지명됐던 차이점은 고원준은 제주제일중에서 중3 때 전학을 왔고, 김회성은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라 온 연고지 출신 선수이기에 그렇다. 게다가 김회성이 입학한 공주고나 마지막으로 전학한 세광고한화 이글스 관리 하의 지역 연고 고등학교다 보니 태클을 걸 일이 없었다.

공주고의 에이스인 조득주가 언론에 언급되기도 했으나 한화 이글스 스카우터진은 고려하고 있지 않았고, 소문에 따르면 단국대학교에서 4학년 당시 4할을 친 외야수 이종환[7]과 김회성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회성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고,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종환의 입장에서는 불운하게도 이미 1년 전에 박상규를 지명하면서 외야수 상위지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무엇보다 팀의 주전 3루수인 이범호FA를 앞두고 있던 기한이 1년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며 팀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3루수도 없었다. 결국 스카우터들은 김회성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종환은 2차 지명에서도 안 뽑았다.

이런 팀의 선택에 팀의 핵심인 주전 3루수를 잡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논란을 사게 되었고, 이후 이범호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다가 실패하여 귀국한 후 한화로 돌아오지 않고 KIA로 이적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한화의 3루는 답이 안 나오게 된다. 1차 지명자로는 성적이 모자라는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따로 1차 지명자가 될 만한 성적을 낸 다른 선수도 없었기에 사람들이 금방 수긍했다.

결국 1차지명이 확정되고, 계약금 1억원을 받으면서 프로에 입문하게 된다.

3 프로 입단

2008년 대학리그 일정을 끝내자마자 한화에 합류했는데, 합류하자마자 연습경기때 손등에 공을 맞아서 손가락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면서 순탄치 않은 프로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2009년 스프링캠프 당시 투수의 공에 손목을 맞아서 며칠간 훈련을 못하기도 했다. 이후 올라오는 뉴스기사들에 꾸준히 부상에 관해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09, 10시즌 내내 잔부상에 많이 시달린것 같다.

3.1 2009 시즌

이범호가 부상당하면서 1군에 콜업되었으나, 지옥같은 3루 수비28타수 4안타 타율 0.143이라는 극악한 성적을 보여주며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2군으로 돌아갔다.

3.2 2010 시즌

1년 만에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팀에서 그에게 보내는 기대치를 알 수 있게 만들었고(...) 주전 유격수였던 송광민이 3루수로 전향,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푸쉬를 받으면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으나, 3루수를 보던 송광민영장을 받아 시즌 도중에 현역으로 군입대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급히 콜업되어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올리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비가 너무 지옥이었고(...), 타격도 부진해 17타수 무안타라는 기록을 남기고 내려가야 했다. 원래 컨택과 선구안이 좋지 않았던 타자였는데 이 당시에는 심지어 부상까지 있어서 방법이 없었다.

이후 한화는 이여상오선진, 전현태 등의 유망주를 동원해서 3루수 구멍을 막아보려 했지만 모조리 실패하고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던 손지환을 영입해서 간신히 시즌을 마치게 된다.

3.3 2011 시즌

이 해에도 어깨부상을 입으면서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했다(...). 시즌초에는 이여상오선진이 3루에서 먼저 두각을 드러내는 바람에 두 사람의 경쟁에 밀려 1군에 콜업되지 못했으나, 오선진정재훈의 공에 손등을 맞아 사실상 시즌 아웃되면서 내야 백업으로 본격적으로 기회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화 팬들은 지옥같은 수비와 끔찍한 타격을 보기 시작했다.

마당히 백업이 없던 한화의 내야진 여건상 어쩔 수 없이 1군에서 꾸준히 1, 3루의 백업으로 선발 및 교체로 간간히 출장했으나 정말 많은 사람들의 복장을 뒤집어놓는 한해를 보내게 됐다. 이해 주전 3루수였던 이여상은 3루수로 꾸준히 출장하면서도 강습타구에 적응하지 못해서 3루 라인선상에 오는 타구는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유격수인 이대수와 3루수인 이여상이 모두 수비 범위가 좁아서 3-유간의 타구는 거의 안타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회성의 수비는 이여상의 수비보다도 더 심각해서 사람들의 뒷목을 잡았다. 타격? 타격의 경우에는 일단 맞추면 2루타 이상은 보장하는 장타력을 보여줬다. 물론 그게 공을 방망이에 맞췄을 경우라는게 문제지만.

이 지옥같은 수비 중에서도 6월 7일 LG 트윈스와의 경기가 백미였는데, 정원석의 컨디션 난조로 대타로 1루수에 기용되었는데 이병규의 평범한 1루수 앞 땅볼을 잡고 제 자리에서 공을 던지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병살이 될 타구를 무사 1, 2루로 만들어줬고, 결국 이 에러로 인해서 그때까지 점수를 내주지 않고 있던 안승민 2점을 내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 날 한화 내야진은 극도로 1루쪽으로 공이 가지 않게 주의했는데, 심지어 2사 1루 상황에서 2루수 앞 땅볼을 잡은 한상훈이 던지면 쉽게 잡을 수 있는 1루쪽으로 공을 던지지 않고 이미 주자가 거의 들어와 박빙인 2루에 던지고, 희생번트 타구를 잡은 투수가 1루가 아니라 2루 선행주자 아웃을 시도한다거나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자신의 주 포지션이 아니라지만 기본적으로 전 포지션이 가능한 내야수가, 내야수비 중 가장 쉽다는 1루수에서 이 어처구니 없는 수비실책을 저지르는 것에 당시 경기를 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 시즌 초, 역시 수비 문제로 2군으로 내려간 김강과 함께 신나게 까였다.

이러한 끔찍한 실력에 디시인사이드의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감독이나 투코들의 문제점을 하나씩 선정한 '2011 한화 이글스 최악의 조합'에서 김회성 그 자체가 최악으로 선정되었다. 이럴수가 다른 선수들은 한부분만 최악인데...

그래도 꾸준히 기용되자 조금씩 성적이 향상되기 시작, 가뭄에 콩나듯 안타를 치기 시작하더니 8월 13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 8:3으로 뒤지던 9회말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창훈을 상대로 좌월 솔로 홈런을 치며 프로 데뷔 후 72타수만에 첫 홈런을 기록했고, 8월 2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청주 구장 경기에서 이여상대신에 3루수에 선발 출장하여 데뷔 후 무실점이던 용병 저스틴 저마노에게 3점 홈런을 뽑아내는 거포 본능을 뽐냈으나 투수진이 무너지는 바람에 묻혔다. 하지만 파울 타구를 끝까지 따라가며 슬라이딩 캐치까지 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3.4 군 복무

2011 시즌이 끝난 후 상무경찰청에 지원했고 상무에 1차 합격, 이후 경찰청에 최종 합격했다.[8]

2012년 2할 후반대의 타율과 홈런 18개로 남부, 북부리그 전체를 통틀어서 2군 홈런왕을 기록. 2013년에는 타율은 괜찮은데 허벅지 부상 때문에 장타가 확 줄어서 시즌 중반까지 홈런이 거의 없다가 후반기에 좀 쳐서 최종성적 84경기 0.315, 0.423, 0.483에 홈런 7개를 기록.

경찰청에 있던 2년 간의 기록은 분명히 2군을 대표하는 타자로 좋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전역 이후 긁어 볼 만한 로또로 생각되면서 일말의 기대를 가지게 됐다. 다만 이미 프로 1년차였던 2009년부터 2군에서의 성적은 좋았고, 삼진의 개수가 볼넷 개수의 2배에 육박한다는걸 보면 1군에서 먹힐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에 여지가 있는 편. 게다가 프로 입단 후 건강하게 1년을 보낸 시즌이 군대에서 보낸 2012 시즌이 유일하다는 점도 불안요소이다. 또 입대 이전에 1군에서 적응을 못했던 탓이었던지 기초적인 플레이에도 실수를 했던 수비가 나아졌을지도 두고봐야한다.

어쨌든 일단 전역해서 1군에서 뛰어 봐야 알 수 있을것이다. 2011년 너무 삽질을 했고, 어느덧 나이다 30대를 바라보는 나이라 유망주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처지라 사람들이 기대와 관심을 안 줬는데, 의외로 프로 입단 이후 100타석도 기용되지 않은, 한번도 제대로 긁어보지 않은 로또에 가깝다.

일단 현장의 기대는 큰편인데 경찰청에서는 공격과 수비 양쪽에서 좋아졌다고 자평하고 있다고 하며, 소속팀인 한화 코칭 스태프쪽에서도 2012년 주전 3루수였으며 2013년에는 부진으로 내야 백업을 맡았던 오선진, 2군에서 차기 주전 유격수로 키우면서 긴급상황시 내야 백업으로 올라오던 하주석까지 전부 몰아서 상무에 보냈는데 김회성에 대한 기대치도 이러한 과감한 군 입대 결정에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3.5 2014 시즌

정규시즌 들면서 일단 주전 3루수로 기용되고 있다. 다만 타선이 많이 좋아진 편이라 주로 7번에 배치되고 있다.

4월 2일 대전 삼성전에서 배영수를 상대로 시즌 마수걸이 홈런이자, 경찰청에서 복귀한 후 첫 홈런을 터뜨렸다. 이 홈런은 송광민이 동점 3점 홈런을 치고 나서 바로 친 백투백 홈런이다. 이후 팀의 타선이 터지면서 한화는 어제의 거짓말같았던 역전패를 만회하는 승리를 거뒀다. 이날 호수비도 보여주며 자신을 어필했다.

4월 8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7회 상대선발 찰리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8회에는 만루 찬스에서 깔끔한 2타점 적시타를 기록, 3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이틀후인 10일에는 에릭 해커를 상대로 3호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수비, 타격 전부 입대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말했던 긁어보지 않은 로또가 터졌다고 봐도 되는 수준.

이후 활약에 힘입어 5번 타자로 배치되었으나 부진, 한화 5번타자는 누가와도 부진 6번 타순으로 변경되었고, 4월 15일 KIA전 임준혁 을 상대로 깨끗한 좌중간 솔로 홈런을 뽑아내었다. 4호 홈런.

현재 꾸준히 괜찮은 수비를 보여주었고 팀내 최대 홈런 기록자이나, 득병 기질이 심해서[9] 19일 LG 트윈스 전에서 7회 1사 1, 3루 상황에서 김회성 대신 김태완이 대타로 들어서는 등[10] 확실한 믿음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일단 주자시에 타율을 끌어올려야 전체적인 타율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22일 코칭스탭에서는 김회성의 허리가 조금 문제가 있는 상태이며, 그 때문에 풀 시즌 선발은 힘들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당분간 송광민과 계속 교체 출장할 예정. 홈런 페이스만 끌어올려주면 이범호 이후 계속 갈증에 시달린 3루수 거포의 등장이였지만 안타깝게 되었다.

24일 두산과의 홈 경기에서는 6회 2사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투입되어 약간 행운이 깃든 2타점 적시타를 쳐냈다. 게다가 8회에도 적시타를 치면서 대타로 출전하여 2안타 3타점을 올리는 고효율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5월 7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 2회에 시즌 5호 홈런을 터뜨렸다. 잠실에서 밀어쳐서 담장을 넘긴 홈런이기에 더 특기할만한 사항.

5월 9일 KIA와의 홈 경기에서 12회의 연장 끝에 1경기 5삼진을 기록하였다. 펜타삼진 이는 1985년 해태 김무종의 기록을 30년만에 타이한 한 경기 최다 삼진 기록이다.

5월 27일 NC와의 홈경기에서 송광민이 거하게 실책을 저질러 비자책 5점을 이동걸에게 선사한 5회부터 투입, 4타수 3안타로 시즌 첫 3안타 경기를 선보였다. 3안타 중 2개가 2루타로 장타력은 확실히 보장받는 모습이다. 물론 팀은 18점을 내주며 맥없이 패배했다.

6월 26일 롯데전에서 적시타를 치고 담 증세가 오면서 경기 초반에 교체되었다. 결국 안되겠다 싶었는지 28일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임익준이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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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후에는 김성근 감독과 함께 마무리 훈련을 했고, 거기서 1,000개 이상펑고를 잡아 냈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에게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는 등 성실하고 좋은 자세를 보여주어 김성근 감독이 오히려 놀랐다더라.[11]

김성근 감독은 “김회성 같은 아이는 처음이다. 내가 여기 온 지 3일 만에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전에 있던 SK에서는 선수가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는 데 2년이 걸렸다”며 “도화지에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아이다. 이 백지 같은 아이에게 무슨 색깔을 그려줘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김회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다. 타고난 하드웨어와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며 꽤 공들이는 듯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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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훈련 당시 어두워진 야구장에서 혼자 남아 훈련 중 쉬는 모습. 인생짤

3.6 2015 시즌

해당 항목으로.

초반 심각한 삽질로 욕을 바가지로 먹었으나, 이후 나름대로 쏠쏠한 장타를 선보이며 마크 레이놀즈 마냥 공갈포라도 날린다며 칭찬받았다.

3.7 2016 시즌

어깨부상 재활로 인해 전반기를 뛰지 못하고, 후반기에 대타로 간간히 나서는 중.

9월 11일 대전 Sk전에서 2:5로 뒤지고 있는 4회말 2사 만루상황에서 대타로 출전, 투수 켈리를 상대로 센터 담장을 넘기는 역전 만루포를 쏘아올렸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이 끝났다. 자랑이던 장타율도 확 줄었고. 물론 표본이 적어 비교하긴 뭐하지만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건 사실이다.

4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타율 낮은 거포 유형의 선수.

일단 장타력은 확실히 있다. 통산 타율이 2할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통산 장타율은 4할을 넘길 정도로 안타 중에서 장타의 비율이 높다. 문제는 그놈의 컨택인데, 타율 커리어 하이가 .236(...)일 정도로 영 좋지 않다.[12] 표본이 많지는 않으나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도 타율은 2할 초반대에서 형성되는 편. 단 나름대로 선구안은 있어서 출루율은 타율을 감안하면 그렇게 낮지는 않다.

수비의 경우 군 제대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여럿 뒷목잡게 하는 수준이었으나 2015 시즌부터는 그럭저럭 쓸만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9한화 이글스2028.14342001304.214.250
20101117.00000000002.000.105
20113749.14373026508.327.263
2012경찰청에서 군 복무
2013
2014한화 이글스59140.236338161821018.436.321
201583225.20947102163536238.484.321
20162845.2009001812011.267.345
KBO 통산(6시즌)238504.198100233256877281.405.306
  1. (오빠야 나온나) 김회성~ 핸썸가이~ 김회성~ 워어어어~ 김회성~ 나는 좋아~ 김회성~ 맘에 들어~(x2)
  2. 한화 핸섬가이~ 이글스 김회성~ 이글스의 승리 위해 파이팅~ 한화 핸섬가이~ 이글스 김회성~ 이글스의 승리 위해 날려버려라~
  3. 연기자 송중기와 동기다.
  4. 경성대학교는 지방대라고 무시되기 쉽고, 실제로 서울의 명문대에 비하면 중량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경성대학교 야구부도 1981년 창단해, 전국대회 우승도 자주한 네임드 있는 강팀.
  5. 이후 2차 지명에서 1라운드에서 고원준을 뽑을 기회가 있었으나, 3년간 투수를 탈탈 털어먹은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이 즉전감 대졸을 원한 결과 원광대학교의 우완 파이어볼러로 평가받은 투수 구본범을 뽑게 된다. 결국 고원준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6. 여담으로 이후 2, 4, 5라운드에서도 대졸 투수를 뽑고 6라운드에서도 대졸 타자인 김강석을 뽑으면서 7명의 신인 중 6명을 대졸을 지명해 즉전감을 건지려고 시도하나, 결국 백업으로라도 뛴 선수는 황재규 단 1명에 불과했으며, 황재규조차도 혹사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2010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복귀했지만 2015년에 임의탈퇴 공시됐다.
  7. 이종환은 천안북일고 출신이라 1차 지명이 가능했으나 프로에 지명되진 못했고, 이후 나지완의 소개를 받아 신고선수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2015년 5월 6일 트레이드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결국 김회성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8. 이희근김강상무에 합격했으며, 구본범허유강경찰청에 합격해서 동시에 입대하게 됐다. 재미있게도 이 중 김강을 제외한 전원이 입단 동기이다. 다만 김강상무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2차드래프트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되어 한화 이글스를 떠난 후 입대했다.
  9. 22일기준 4홈런 모두 솔로 홈런, 무주자시 타율은 .321로 수준급이나 주자있을시 .091... 심각하다. 득타율은 .182. 정과학에 이은 김과학으로 초특급 승진?
  10. 심지어 이 때 김태완은 2스트라이크 이후 3점 홈런을 때려내며 한화의 대표 거포 대타임을 증명하였다.
  11. 지옥훈련을 겪으면 질문을 할 생각조차 안 날 정도로 힘들고, 또 궁금하더라도 그 카리스마에 쉽게 질문을 던지는 선수도 거의 없다고 한다.
  12. 사실 대학 시절에도 컨택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