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鄭泰守
1923년 8월 13일 ~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기업인이다.

1923년 경상남도 진주군에서 태어났다.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사직하고 한보그룹을 설립하였다. 건설업, 그 중에서도 아파트 건설로 돈을 많이 벌었다. 한보그룹이 건설한 아파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은마아파트가 있다. 미도아파트도 한보가 지은 것.

이후 사업을 확장하고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당진제철소 건설, 제약업 진출(상아제약), 수서지구 개발 등을 주도하였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가 났다. 이는 1997년 외환 위기를 야기하였다. 이후 당진제철소는 현대제철에 인수되었다. 수서지구 개발 과정에서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개발이권 명목으로 로비를 벌인 이른바 수서 비리사건을 일으켜 문제가 되었다. 사과상자를 뇌물의 상징으로 만들어준 주범이라고 한다.
1997년 5월 공금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한보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이때 한보 리스트가 정치사회상에 회자되기 시작하였고 정태수 리스트와 관련된 많은 정치인(권노갑, 문정수 등)들이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되기도 하였다.
또한 정태수가 청문회 과정에서 깃털이니 몸통이니 얼토당토 않은 변명을 한것 역시 국민들에게 공분을 일으켜서,[1] 당시 이 청문회는 판관 포청천을 패러디한 당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풍자되기도 하였다.

이후 5년 5개월을 복역하다가 2002년 10월 고혈압과 협심증을 이유로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2005년 강릉영동대학(이 역시 정태수가 재단을 세웠다)의 교비 72억원을 횡령하여 또 잡혔고,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심 재판 도중 2007년 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그대로 해외로 도피했다. 그 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상태. 관련기사. 나이를 고려하면 이미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
  1. 이건 정태수가 아니라 한보리스트에 올랐던 홍인길의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