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 ||||
1948년 7월 20일 | ← | 1952년 8월 5일 | → | 1956년 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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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2년 8월 5일 6.25 전쟁 도중의 선거로, 총 4명의 후보가 나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이다.
2 배경
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무소속 조봉암, 자유당 이승만, 민주국민당 이시영[1], 무소속 신흥우가 출마했다.
3 과정
전시임에도 당시 한국 인구 2천 만 명 중 유권자가 8백 20만 명인데, 7백 20만 명이 참여(88%)한 선거로써, 역대 세번째로 높은 선거 참여율을 보여주고 있다.[2]
당연히 기호 2번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다른 후보들을 큰 표차로 앞서고 당선되었다. 사실 전시의 경우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집권 여당을 잘 바꾸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를테면 미국의 우드로 윌슨(제1차 세계대전)과 프랭클린 D. 루즈벨트(제2차 세계대전)이 있는데, 이승만의 경우도 일단 이것에 해당된다.
4 결과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 선거 | |||||||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선유무 | |
1 | 조봉암 | 무소속 | 797,504 | 11.4% | 2 | 낙선 | |
2 | 이승만 | 자유당 | 5,238,769 | 74.6% | 1 | 당선 | |
3 | 이시영 | 민주국민당 | 764,715 | 10.9% | 3 | 낙선 | |
4 | 신흥우 | 무소속 | 219,696 | 2.1% | 4 | 낙선 | |
선거인수 | 8,259,428 | 투표수 | 7,275,883 | ||||
무효표수 | 255,199 | 투표율 | 88.1% |
이로써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재선에 성공하며 헌법 개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도 같지만 뭐 알게 뭐야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4.1 뒷이야기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을 중심으로 남부 지역의 대도시에서 이승만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부산, 마산, 광주, 대구, 여수 등지에서 조봉암과 이시영의 득표 합계가 이승만의 득표를 넘었고, 부산 일부 지역에서는 조봉암이, 광주에서는 이시영이 이승만을 이겼다.(!) 경남 지역 전반적으로 이승만의 득표는 전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55% 정도였다. 수도권에서 야권이 득세하는 건 시대를 초월하고, 수도가 어디이든 그 곳은 여당의 무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