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스 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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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너선 에드워드 소크(Jonas Edward Salk)
국적미국
생몰년1914년 10월 28일 ~ 1995년 6월 23일


진행자 :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권자는 누구입니까?(Who owns the patent on this vaccine?)"

소크 박사 : "음, 사람들이겠죠. 특허는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Well, the people, I would say. There is no patent. Could you patent the sun?)"

1950년대 초, 온 나라에 소아마비 전염병의 위기가 닥쳤다.
in the early 1950's the polio epidemic hurled a nation into crisis.
소아마비는 어린아이들이 대상이었다. 국가가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고심하자, 한 과학자가 이에 대한 답변과 백신을 전달했다.
polio targets children. desperate for a solution a nation rallied together a scientist answered the call and delivered the vaccine.
소크 백신은, 소아마비 박멸을 위해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the salk vaccine is used worldwide to eradicate polio.

평생을 바쳐 소아마비의 백신을 완성한 사람. 그리고 그 백신을 통해 얻을 수 있던 모든 이익을 포기하고 인류의 건강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인류의 위인.
위대한 군인은 인류의 평화를 지키지만, 위대한 의사는 인류의 건강을 지킨다.

20세기 최고의 위인 중 한 명

이 분의 연구와 헌신으로 현재 WHO를 통해 보급되는 소아마비 백신의 공급 단가는 단돈 100원에 불과하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소아마비 환자는 백신 출시 이전의 1% 이하 수준으로 감소했다. 덕분에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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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학연구자와 바이러스학자로, 소아마비 백신을 처음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914년 10월 28일, 뉴욕의 가난한 유대인 부모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반적인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소크가 성공하는 것을 보기로 결정했다. 그가 13살이 되었을때 지역 영재들을 위한 공립학교인 타운샌드 해리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성적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이후 뉴욕시립대에 진학해 공부를 하던 그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의사가 되길 바라는 그의 어머니의 뜻에 따라 결국 의사로 진로를 잡게 된다. 뉴욕시립대를 졸업한후 그는 뉴욕의과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에 재학하면서 소크는 내과의가 되기 보다는 연구를 하기로 하였다.

1947년 피츠버그의과대학 연구실에 들어간 그는 1948년, 소아마비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3 소아마비 백신 개발

우선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자면 소아마비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문제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는데 소크 백신이 개발되고 배포된 1955년 이전에는 매년 소아마비에 걸리는 아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나 1952년은 미국 역사상 전염병이 가장 심각하게 발생한 해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 질병으로 고통받았는데, 한해에 58,000건의 소아마비가 보고 되었고, 3,145명이 사망하였고 21,269명이 마비가 되었다. 2009년 PBS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당시 분위기는 "원자폭탄을 제외하고도, 미국은 소아마비에 떨고 있다." 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그 결과, 과학자들은 소아마비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미칠 지경이었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는 소아마비의 희생자 중 하나이며[1] , 백신을 만들기 위한 기금을 설립하였다.

역사학자 윌리엄 오'넬은 "전염병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평할 정도였다.

"도시 지역의 시민들은 매해 여름 이 끔찍한 방문자에 대해 공포에 떨고 있다."

이 때문에 소아마비 백신의 필요성은 크게 대두되었고 국가적으로 소아마비 백신 개발 사업에 대한 지원이 대폭 증가하던 시기였다. 1948년, 조너선 소크는 소아마비 국립재단으로 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연구에 몰두했고 장장 7년간 소아마비 백신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피츠버그 연구실에서 개발을 진행하던 그는 백신개발에 성공하게 되었고 1953년 11월에 최초 임상시험을 실시하게 되었다.[2] 이후 1954년, 20,000명의 의사와 공중 보건 관계자, 64,000명의 학교 직원들과 220,000명의 자원봉사자들, 1,800,00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임상테스트를 시행했다.

그리고 1955년 4월 12일, 소아마비 백신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4 태양에도 특허를 붙일 겁니까?

1955년 4월 13일자 주요 신문 1면타임지 표지에 실린 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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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 27일 아이젠하워로부터 메달을 수여 받는 조너선 소크

1955년 4월 12일, 소크가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이 효과가 있음을 공표하는 기자회견이 미시간 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망 10주기인 이날 라디오로 송출된 소아마비 백신 발표를 접한 엄청난 수의 미국인들이 환호를 질렀고, 당시 미국의 모든 사람들이 소크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발표 직후부터 그는 전국적인 지지를 받으며 백악관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인류의 은인"으로 기리는 '미국 대통령 자유훈장' 및 의회로부터 '의회 황금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 때 백신 개발로 인해 수많은 제약회사에서 그에게 특허를 양도하라는 제안을 했는데, 만약 조너선 소크가 이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다. 당시 그가 특허를 양도했다면 지금까지 벌어들였을 돈이 무려 70억 달러, 한화로 약 8조 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일을 하면서 버는 돈으로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며 제약회사들의 꿀 같은 제안들을 단칼에 거절하고 소아마비 백신을 무료로 풀어버렸다! 결과 소아마비 백신은 전세계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혜택을 보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진정한 과학자와 의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이후 그는 <Global Citizen Festival>라는 TV 인터뷰에서 백신의 특허권을 누가 갖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여기서 그는 유명한 대답을 하게 된다.

"글쎄요, 아마도 사람들이겠죠. 특허 같은 건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Well, the people, I would say. There is no patent. Could you patent the sun?)"

이 발언으로 인해 그는 진정으로 대인배임이 인증되었다. 신약개발에 쓰이는 비용과 시간을 따진다면 신약 특허 포기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더 중요시한 그의 선심 덕분에 소아마비 백신은 값싼 가격에 팔리며 전세계에 널리 퍼졌고 오늘날 소아마비가 세계에서 종적을 감추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연간 35,000여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나오던 미국의 경우, 백신 배포 2년만인 1957년에 소아마비 발병이 이전 대비 90%가 감소되었으며 1979년에는 공식적으로 "미국에서는 더이상 소아마비가 발병하지 않는다."라고 퇴치판정이 내려졌다. 전세계적으로 따져봐도 오늘날 소아마비 발병건수는 무려 99%나 감소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만 토착성 바이러스로 인한 발병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5 이후

소아마비 백신 이후 그의 다음 목표는 에이즈 백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995년 6월 30일, 그는 80년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후 엘 카미노 국립공원에 안장되었다.

6 트리비아

  1. 39살에 소아마비 진단을 받았다.
  2. 참고로 최초 임상실험 대상자는 조너스 소크 본인이었다.
  3. 애기장대의 유전자에 T-DNA를 넣어 만든 녹아웃 돌연변이들에 이런 번호를 부여했다. 원하는 유전자와 어떤 돌연변이인지 확인하고 주문하면 미국에서 종자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