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자니 데이비드 데이먼(Johnny David Damon) |
생년월일 | 1973년 11월 05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포트라일리, 캔자스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2년 드래프트 1라운드 35번 |
소속팀 | 캔자스시티 로열스(1995~2000) 오클랜드 어슬레틱스(2001) 보스턴 레드삭스(2002~2005) 뉴욕 양키스(2006~2009) 디트로이트 타이거즈(2010) 탬파베이 레이스(201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2012) |
2000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도루왕 | |||||
브라이언 헌터 (시애틀 매리너스) | → | 자니 데이먼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
2000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득점왕 | |||||
로베르토 알로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 자니 데이먼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알렉스 로드리게스 (텍사스 레인저스) |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리드오프 중 한 명으로, 통산 성적은 .284/.352/.433 2769안타, 235홈런 408도루.
2 선수 생활
1992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지명되면서 프로 선수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태국 출신으로 아버지가 군복무 도중에 만나서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군 주둔지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와서 야구를 하면서 제법 괜찮은 실력을 보이면서 이미 인정받았다.
캔자스시티에서는 유망주로 마이너에서 성장하다가 1995년에 이르러 데뷔하게 되었다. 1996년부터 풀타임으로 나가기 시작, 꾸준히 성적을 끌어올리면서 2000년에는 아메리칸리그 도루왕과 득점왕에 오를 정도로 수준급의 리드오프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소속팀인 캔자스시티는 이미 안습한 상황이었고, 곧 FA가 되는 젊은 리드오프를 잡을 능력은 없었다. 마침 영건 3인방을 내세워 월드시리즈에 도전하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그를 주목했고, 결국 2000시즌 종료 후, 4각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로 건너갔다.
그러나 오클랜드에서는 기대 이하였다. 타율도 많이 내려갔고, 무엇보다 빌리 빈이 제시한 머니볼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출루율이 높은 타입도 아니었고, 도루를 많이 하던 젊은 시절의 데이먼과 도루는 곧 아웃을 늘릴 위험성이 높은 플레이로 인식한 당시 빌리 빈 체제와는 상극이었다. 결국 딱 1년 뛰고 그냥 FA로 나갔고, 오클랜드도 굳이 썩 잘 한 것도 아닌 데이먼을 잡기 위해 무리하려 하지 않았다. 마침 에이전트가 모든 구단의 악몽인 스캇 보라스인지라...
보스턴 레드삭스와 4년 계약을 맺고 합류한 후, 그럭저럭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7차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쐐기 만루홈런을 치는 등,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데 앞장선 것. 타격도 적당히 3할 언저리를 칠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건강한 편이라서 빠진 경기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 큰 장점. 하지만, 이미 캔자스시티 시절의 그 많은 도루와 정교한 컨택까지는 아니라서 보스턴도 4년 계약이 종료된 2006년, 그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먼이 선택한 행선지는 바로 뉴욕 양키스.
그러나 이 선택은 별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는데, 이미 저주가 풀려 우승에 대한 감흥이 사라진 보스턴은 가거나 말거나 식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1] 데이먼의 아버지는 보스턴에게 이제부터 데이먼의 저주가 시작될 것이라는 악담을 남겼지만, 보스턴은 데이먼이 이적한 이듬해인 2007년 우승해 버렸다. 어쨌든 뉴욕 양키스에서도 꾸준히 3할 언저리를 기록하면서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고, 2009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본인의 두 번째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하지만 양키스도 꼭 데이먼을 잡아야 할 이점을 느끼지는 못했고, 결국 2009년 시즌이 끝나고 다시 FA로 풀렸다. 데이먼의 자리는 더 젊고 장타력이 있는 커티스 그랜더슨을 트레이드 해서 메웠다. 이것의 또다른 원인은, 데이먼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소녀어깨기 때문이다. 외야 송구가 너무 나빠서 중견수는 커녕 좌익수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수비구멍이었기 때문에 뉴욕 양키스에서도 외야수비 해결책이 없어서 그냥 포기한 것이다. 이 때문에 탬파베이 레이스로 오고서부터는 지명타자나 땜빵 좌익수 역할정도로 역할은 축소된 상태다. [2]
참고로 보삭스 시절에는 머리와 수염을 정말 덥수룩하게 길러서 예수, 동굴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양키스 입단과 함께 양키스의 규율[3]로 인해 깨끗하게 면도해 버렸다.
그랜더슨을 내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데이먼을 원하면서 2010년 뛰었는데,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271 .355 .401 8홈런 51타점 11도루) 양키스에서 보여준 정도의 장타력은 역시 구장빨인게 드러난데다 그렇다고 꼭 붙잡고 싶지는 않은 성적. 결국 1년 계약 후, 다시 FA로 풀려 탬파베이 레이스로 이적했고, 여기서도 또 나쁘지는 않지만 굳이 잡고 싶지는 않은 성적을 냈다. 뭐, 팀 연속 출루기록도 깼지만, 어차피 탬파는 유망주를 적극 기용하는 것이 더 나은 팀이라서... 사실 원래 매니 라미레즈의 부록으로 입단한 것인데, 정작 매니는 약빨다가 걸려서 퇴출당해 은퇴했고, 데이먼만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니.. 2011시즌 탬파베이에서 16홈런 73타점을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또한 베테랑이라고 해봤자 이제 갓 서른인 제임스 쉴즈나 카일 판스워스 뿐이고 대개가 모범생 꼬맹이들 일색인 탬파베이의 클럽하우스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으로서 팀 케미스트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리더와 같은 역할을 했다.
2011년 이후 새 팀을 찾지 못하며 백수가 될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그래디 사이즈모어가 부상을 당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외야 공백을 메꾸기 위해 데이먼과 계약하였다. 그외 트레이드 거부권과 사이즈모어의 복귀 시점에 옵트아웃을 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알려졌다. 거기에 안 그래도 좌타자 일색인 라인업에 케이시 코치먼과 함께 좌타자로서 합류해 불안함을 보였는데...
2012시즌엔 64경기동안 46안타 .222 .281 .329 4홈런 19타점 4도루의 끔찍한 성적을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소녀어깨를 과시하며 공수 양면에서 인디언스의 짐덩이가 되고 있다. 결국 사이즈모어가 복귀하지도 않았는데 지명할당 조치가 내려졌다.
어머니가 태국인이라, 태국 대표팀으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다. 그러나 태국이 본선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광탈하면서 그걸로 끝(...). 데이먼은 메이저리그에 돌아오고 싶어했지만 2013시즌 이후로는 새로운 팀을 찾지 못했는데, 공식적인 발표만 없었다 뿐이지 사실상 은퇴했다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3 선수로서의 평가
리드오프로서 하나하나의 능력이 탑 수준은 아니지만 반대로 말하면 모든 부분에서 고른 기량을 갖춘 정상급 리드오프.
수준급 주루능력에 출루율도 괜찮고, 장타력도 뛰어났으며 16년간 매해 140경기 이상을 출장할 정도로 정상급의 내구력을 갖춘 선수였다. 폭발력이 있지는 않아서 커리어 동안 200안타는 딱 한 번(2000년)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대신 풀타임을 시작한 1996년 이래 안타 갯수가 140개 밑으로 내려간 시즌은 단 두 번, 그나마도 초년병 시절인 1998년과 만 39세 시즌이었던 2012년이 전부일 정도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빠른 발 덕에 수비 범위도 넓었지만, 어깨가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에 그의 수비력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렸던 편.
그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FA 계약을 맺을 때, 그를 두고 "리키 헨더슨보다 더 낫다."라는 개드립말을 한 적이 있는데, 데이먼이 준수한 선수라고는 해도 역대 1위인 1,406개의 도루를 필두로 통산 출루율이 4할이 넘어가고 홈런도 297개나 날린 역사상 최고의 1번 타자에 들이댄 건 무리수였다. 참고로 데이먼의 통산 출루율은 0.352, 통산 도루는 408개다. 통산 홈런도 235개로 커리어 초기 카우프만 스타디움을 쓴 것치고는 애매한 정도.
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일단 2012년까지 누적 안타 개수는 2769안타로, 이는 2013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역대 5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다만 그 외에는 딱히 두드러지는 성적이 보이지 않으며 골드글러브나 실버슬러거도 하나 없고 올스타 출전도 고작 2회에 불과한데다 여기에 2013년 이후로 괴물같은 성적을 낸 선수들이 계속 명예의 전당 후보로 오를 예정이라 사실상 입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가 쿠퍼스타운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3000안타를 채우는 것뿐이었지만, 결국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누적이 조금 모자란 선수가 노장선수로 들어서면서 누적을 채우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4]
5 기타
영화 머니볼에서 피터 브랜드가 빌리 빈에게 세이버매트릭스를 설명하면서 보스턴으로 이적한 자니 데이먼을 대차게 까는 씬이 있다. 1번타자로 좋은 선수고 도루도 잘하지만, 고액연봉을 받을 만한 정도는 아닌데 거액을 주고 데려간 보스턴이 멍청하다는 식.[5][6][7]
- ↑ 그렇다고 팬들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고, 오면 야유로 보답했다. Johnny Demon이라 부르기도 했다.
- ↑ 사실 원래는 칼 크로포드가 이탈한 후 매니 라미레즈가 DH, 데이먼이 좌익수로 낙점되었다. 하지만 매니가 약물 스캔들에 또 휩싸여서 은퇴해버렸고, B.J. 업튼을 트레이드한 후 데스먼드 제닝스를 중견수에 기용하겠다는 계획도 업튼의 트레이드가 실패로 돌아가며 제닝스가 좌익수, 데이먼이 DH로 밀려나고 말았다. 나이가 들었다고는 하나 DH로 밀린건 팀 사정에 의한 원인이 크며, 소녀어깨를 제외하면 좌익수 수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 정확히 말해서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만든 규율이다. 스타인브레너는 오직 콧수염 외에는 그 어떤 장발과 수염도 금했다.
- ↑ 프레드 맥그리프가 비슷한 케이스인데, 통산 500홈런까지 불과 7개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급격히 찾아온 노쇠화를 이기지 못한 채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 ↑ 한글 대사 - 데이먼의 후임을 찾아요? 보스턴 레드삭스는 쟈니 데이먼을 연봉 750만 가치를 가진 스타로 보지만 전 그런 시각이 야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훌륭한 수비수 겸 1번 타자죠 도루도 잘하고...하지만 레드삭스가 주기로 한 연봉 750만의 가치가 있을까요? 천만에요 야구계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갇혀 있어요. 까놓고 말하면 전 데이먼을 내보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 ↑ 근데 정작 그 세이버메트릭스로 보았을 때 데이먼은 보스턴에서 4년간 bWAR 16.4를 기록, 1 bWAR가 당시 기준으로 300만 내지 400만$의 가치가 있다고 보면 3100만$의 몸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맹활약을 보였다.
피터 브랜드 야알못 인증 - ↑ 사실 이때 당시엔 이들도 UZR 등의 수비범위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UZR이 주목받게 된건 몇년 이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