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기록매체로서의 종이는 중국 후한시대 채륜이 발명한 것이다. 이후 제지술이 전세계적으로 전파된 것은 1000여년 전이라는 오랜 기간이 지나서 였다. 인류는 기원전 3000년 전후에 문자를 창안했고, 이때에는 쇠붙이와 돌을 비롯 비롯하여 짐승의 뼈와 가죽, 조개껍질 진흙, 수엽 수피등 새기거나 서사 가능한 것은 대부분 기록매체로 활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사용된 기록매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다.
2 동양의 기록매체
2.1 죽간목독
문자를 처음 상용한 초기 중국에서는 귀갑수골[1]이나 쇠붙이, 돌을 사용하여 기록을 남겼다 그후 지혜가 발달하여 저술한 내용을 체계 있게 기록하기 위해 사용한것이 죽간 목독이였다. 죽간이란 죽편[2]을, 목독이란 목편[3]을 말하는 것이다. 이보다 먼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갑골이나 금석에 새기거나 쓴 것은 글자가 하나의 물건에 부속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죽간목독을 책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통념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저에 나무와 대나무느 가장 보편적인 기록매체였으며 사용된 기간도 장구했다. 심지어 이들 종이가 널리 사용된 이후에도 수백년 동안 서사에 쓰였다[4] 나무와 대나무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원인은 현지조달이 가능하고 값이 쌌기 때문이다. 간독이 언제부터 사용되고 언제까지 쓰였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간독의 가장 빠른 기록은 은대의 갑골 복사에 책을 상에 올려놓는 것을 상징하는 글자가 나타나는것으로 보아 죽간은 상고에서 부터 기원후 3,4세기 까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목독의 사용은 한(漢)대의 문헌에서 나타나고 있으므로 훨씬 뒤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2.2 겸백
죽간목독을 널리 사용하던 선진시대에 들어 겸백을 새로운 기록매체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백서라고 한다. 처음에는 의복의 재료인 비단을 그대로로 사용하였으나, 후에는 서사용 겨백을 따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백서는 글의 길고 짧음에 따라 적당히 겸백을 절단하여 서사하고 말은 구너자본 형태로 보관할 수 있으며, 마음대로 펼쳐 나갈 수 있다. 책을 헤아리는 단위로 권을 쓰게 된 것도 이 백서에서 비롯됐다. 또 기록매체로서 겸백은 간독보다 부드럽고 가벼워 서사와 휴대가 편리할뿐 아니라 다른 기록매체에 비해 장기간 보관도 가능하였다.
이와 같이 겸백은 여러 우수성이 있어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가장 바람직한 기록매체였다. 그러나 당시 겸백은 생산량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가격이 비싸 백서가 나온 뒤에도 간채가 도서의 주종을 이루었다. 죽간은 보통 초고를 쓰는데데 사용되고 겸백은 취후의 정보에 사용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태평어람(太平御覽)[5]에 기록된 바와 같이 유향이 서적을 교정할 때 먼저 죽간에다 써서 쓸데없는 문자는 삭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부족한 곳을 보충한 후 흰 비단에 정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3 서양의 기록매체
3.1 점토판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양질의 점토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기록 매체로 사용하였다. 사용 시기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4000~3500년경의 점토 파편이 전해 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2,3세기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수메르인이 설형문자를 처음으로 점토판에 기록한 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4천년 이상 사용되었고, 그 근방 민족의 문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도 크레타와 미케니섬의 미노아 문명권에서도 점토판을 사용하였다.
3.2 파피루스
메소포타미아에서 점토판에 설형문자를 새기던 때에 또다른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의 나일문화권에서는 파피루스 를 이용하여 기록매체로 활용하였다.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가의 비옥한 삼각주에서 많이 자라던 갈대의 일종으로 학명은 'cyper papyrus'다. 오늘날 쓰고 있는 'paper, papier, papel'이란 말은 모두 파피루스에서 나온 것이다.
3.3 양피지
양, 염소, 소의 가죽으로 만든 기록매체이다. 특히 생후 6주 이내의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것은 독피지라고 한다. 양피지는 수세기 경부터 이집트, 팔레스타인, 페르시아 등에서 사용되었다.
기원전 2세기경에 소아시아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에 도서관을 설립하고 그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자 이집트의 프롤레미 왕은 이 도서관이 알렉산드라아 도서관 보다 발전할문화 승리 것을 염려한 나머지 그 당시 널리 쓰였던 기록매체인 파피루스의 추출을 금하였으며 페르가몬에서는 파피루스 대용으로 양피지를 널리 사용 하게 되었다.
3.4 왁스 타블렛
테두리가 있는 목판에 왁스를 채워서 굳은 것 위를 침펜(스타일러스)로 긁어서 글자를 쓴다. 점토판과 사용법이 비슷하지만, 왁스를 50도 정도의 열로 데우면 녹아서 다시 깨끗하게 백지화(?) 할 수 있다는 재활용의 편리함이 있기 때문에 고대에서 중세까지 폭넓게 사용되었다. 이 가열해서 녹이는 과정을 클린 슬레이트, 라틴어로 "타뷸라 라사"라고 부른다.
타블렛 생긴 것이 어쩐지 노트북 컴퓨터나 타블렛 컴퓨터처럼 생긴데다 기입용 펜이 타블렛 컴퓨터용 스타일러스 펜처럼 생겼다보니, 고대 로마 즈음의 그림이나 석상에 왠 타블렛 컴퓨터처럼 생긴 오파츠가 등장하면 십중팔구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