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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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 지명

고대 그리스에서 아시아라고 불렀던 지방. 오늘날로 따지면 터키 영토에 해당하는 반도이다. 과거에 아시아는 소아시아(Asia Minor, Μικρά Ασία)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소아시아는 현재의 터키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점점 넓어져서 유라시아에서 유럽만 뺀 나머지 지역을 다 지칭하는 말로 바뀌어 버렸다.

세계사 교과서 등에서는 소아시아(小ASIA - Μίκρα ασία)라고 나오는 반도 지역이다. 과거에는 아나톨리아 전체를 아시아라고 불렀으나, 로마 시대에 이르면 아나톨리아와 소아시아가 구분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아나톨리아'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동쪽'을 의미하는 Ανατολή(아나톨리)에서 비롯되었다. 북쪽에는 흑해, 서쪽에는 에게해마르마라해, 남쪽에는 지중해와 접하고 있다.

지중해 인근에서도 손꼽히는 풍요로운 지역으로, 동로마 제국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천 년 세월을 버텨냈고 현대 터키도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국가일 정도이다. 단, 아주 오래 전부터 문명을 꽃피운 지역 특성상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 부존량은 매우 적다.

1.1 역사

아나톨리아의 역사 - 상고대 / 고대 / 중세 / 근현대
ANADOLU TARİHİ
Η ΙΣΤΟΡΊΑ ΤΟΥ ΑΝΑΤΌΛΙΑ
상고대고대
미탄니 제국히타이트신 히타이트아시리아메디아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헬레니즘
제국
헬레니즘
국가

(안티고노스, 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아탈로스,
비티니아, 갈라티아,
폰토스, 카파도키아,
파플라고니아 등등)
로마 제국
프리지아리디아
히타이트[[리디아|리디아, 리키아, 카리아, ]]
미케네
문명
그리스 (이오니아 / 도리아 / 에올리아)
아나톨리아의 역사 - 상고대 / 고대 / 중세 / 근현대
ANADOLU TARİHİ
Η ΙΣΤΟΡΊΑ ΤΟΥ ΑΝΑΤΌΛΙΑ
중세근현대





비잔티움
제국
트레비존드 제국



영국 - 이태리 - 그리스터키
공화국
라틴 제국비잔티움
제국
비잔티움







오스만
제국
니케아 제국오스만
셀주크 제국룸 술탄국몽골 제국일 칸국투르크멘
공국들
투르크멘
공국들
앙카라 정부
일 칸국아르메니아
소 아르메니아맘루크공국들프랑스

1.1.1 고대

한반도의 약 3.5배 정도 되는 드넓은 영토에 오래전부터 식량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고, 그리스, 페르시아, 러시아를 잇는 초원무역로와 비단길이 지나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땅으로 여러 문명이 흥망했으며, 철기시대를 연 히타이트 왕국이 이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고대로부터 중요한 지역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차탈회윅(Çatalhöyük)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이 야훼의 명령을 받기 전에 살던 땅은 이곳의 동남부에 위치한 하란(Harran)이었다. 이곳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로 사이좋게 교회와 모스크가 들어서 있다.

히타이트 왕국이 멸망한 뒤에는 아시리아, 리디아, 메디아 등의 뒤를 이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이 차지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이후에는 헬레니즘 국가들이 이곳에 위치하였으며, 페르가몬 왕국 등이 유명하다.

1.1.2 중세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동방 속주가 되었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아나톨리아 지방은 제국의 인적/물적 중심지가 되었다. 테마 제도하에 주요 테마가 거의 이 지역에 다 몰려 있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제국이 일시 단절되고 라틴 제국이 들어섰을 때,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삼은 니케아 제국이 일어나 제국을 부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아나톨리아를 투르크 계열 국가들에게 빼앗긴 뒤로 제국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동로마가 아나톨리아 수복에 썩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하도 반란이 많이 난 탓이 크다. 그리고 오히려 성지인 안티오키아의 수복에 관심을 두었는데, 군사 요충지인 아나톨리아 없이 그게 될 리가 없다.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은 무역으로 충분히 벌 수 있었으며, 실제로 만지케르트 이후의 콤네노스 왕조 시기에 제국의 경제력은 절정에 달했다.

다만 동로마 제국이 자주 반란이나 쿠데타를 일으키던 군사 귀족들이 다시 세력을 키우는 것을 경계하여 아나톨리아 내륙의 수복에 소극적이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는 하나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만지케르트 전투의 패배로 아나톨리아를 상실한 이후, 그 탈환이 중요한 과제로 다뤄진 시기는 소위 콤네노스 의 제위 기간인 1081년~1180년의 100년인데[1]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은 분명 국력, 경제력, 문화적 역량 모두 유럽-지중해-근동의 최강국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강대국이기는 하였으나, 군사적 측면에서는 그렇게까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아나톨리아 내륙에 자리잡은 셀주크계 룸 술탄국을 보더라도 (대체로 동로마 제국이 국력면에서 우세한 입장이기는 하였으나) 간단하게 제압할 정도로 만만한 적수는 아니었고, 동로마 제국의 역사 내내 제국을 괴롭혔던 양면 전선 문제는 이 당시에도 여전했다. 즉, 제국의 서방과 북방을 위협하는 노르만족이나 헝가리, 페체네그족 등을 일단 제압해 놓지 못하면 동방의 대 이슬람 전선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었던 것.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상대하기는 어려운 나머지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을 명분삼아 서유럽 세력까지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 당시 동로마 제국의 입장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등장한 십자군 세력에게 있어서 아나톨리아 내륙은 중근동의 대도시이자(막대한 전리품) 5대 총대주교좌 도시(예루살렘 뿐 아니라 여기도 성지)라는 강력한 유인을 가진 안티오키아에 비해 전혀 매력적인 목표가 아니었고, 따라서 동로마 제국이 '자국의 안정과 국방력 확보를 위해' 아나톨리아 내륙의 수복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취했다면 십자군으로써는 딱히 그에 협력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알렉시오스 1세의 치세 초기, 극도로 위태로워진 제국의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일단 경제의 중심지인 아나톨리아 해안지역 수복을 우선시하고, 서유럽 세력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안티오키아 수복을 그 다음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딱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콤네노스 황제들이 아나톨리아 수복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마누엘 1세 치세 말기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 이르기까지, (그 노력이 충분했는가, 즉, 군사적 요충지인 아나톨리아 내륙의 수복의 가치에 걸맞게 우선시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으나) 아나톨리아 수복 자체에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을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1.1.3 근현대

로마 제국이 물러난 자리에는 각종 투르크계 군소 세력이 난립하다가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통일했다. 현재는 터키 공화국의 영토이다. 터키어로는 그리스어의 '아나톨리아'를 음차해 아나돌루(Anadolu)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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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중매체의 아나톨리아

묘하게 엄청난 곳이다.

  1. 만지케르트 전투 이전에는 아나톨리아를 잃지 않았으니 수복할 필요가 없었고, 마누엘 1세 사후 알렉시오스 2세안드로니코스 1세의 제위기간 및 앙겔로스 왕조 치세에는 국정의 혼란으로 고토 수복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었으며, 그나마 1204년 제 4차 십자군에게 수도를 빼앗기고 나서는 영토 탈환은 커녕 안 망하는 게 용한 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