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秋戰國時代
1 중국 역사의 시대적 구분
중국의 역사 中國史 | ||||
기원전 1600 ~ 기원전 206 | 기원전 206 ~ 907년 | |||
907년 ~ 1644년 | 1616년 ~ 현재 |
중국의 역사 기원전 1600 ~ 기원전 206 | ||||
기원전 1600 ~ 기원전 1046 | 상(商)은(殷) | |||
기원전 1046 ~ 기원전 256 | 주(周) | 서주(西周) | ||
동주(東周)/춘추전국(春秋戰國) | 춘추(春秋) | |||
전국(戰國) | ||||
기원전 221 ~ 기원전 206 | 진(秦) 후초(後楚) |
중국의 역사 | |||||||||
주 | → | 춘추전국시대 | → | 통일 진 | |||||
춘추시대 | → | 전국시대 |
기원전 770년 경 주가 견융의 공격을 받아 천도한 뒤(동주시대)부터 기원전 221년 진(秦)에 의해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국하게 될 때까지의 시기. 참고로 은, 주의 경우 은과 주가 성읍 국가 수준에 머물렀고, 다른 국가들이 존속하면서 은/주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통일 국가라고 보는 시각은 약하다. 영역으로 보아도, 양쯔강 이남을 비롯한 넓은 지역이 아직 은/주 질서의 산하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였다.[1] 또한 황제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진시황 대의 이름으로 '통일 제국'이라고 하면 짤없이 진나라 때부터를 지칭하는 말이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을 형성했던 시대. 그러니까 남들은 천년 뒤에 나올까말까한 것들이 이 시기에 다 나와버리고 중국의 근간을 형성하였던 시대라는 소리다(...)키도 늦게 크는놈이 많이 큰다더니 서양 역사로 치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사상 발전 정도가 춘추전국시대의 사상 발전 정도와 쌍벽을 이루는 수준이라고 평가된다.
이 시기를 크게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는데, 대체로 진(晉)이 한, 위, 조의 3국으로 나누어진 때나 제에서 역성혁명이 일어난 때, 혹은 월이 오를 멸한 때 등을 경계로 구분한다. 이러한 경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공화 원년으로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 까지를 동주시대로 칭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주 대의 천하 질서가 무너지고 각지의 소국들이 성장하며 중국을 분점했다가 다시 통합되는 시기이다. 춘추시대에는 형식적으로나마 동주에 충성을 바치는 제후들이 많았고 전반적으로 서주 시대의 질서도 유지되어 왔다. 이 시기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존재가 패자로, 천자에 의해 주도되던 군사적 동맹인 회맹 등을 자신이 주도하며 중국의 세력가로 떠오른다.
하지만 전국시대는 그딴 거 없고 배틀로얄의 향연이었다. 하극상이 난무하여 능력있는 놈이 살아남는 시대였고, 이 때문에 전국시대는 '하극상의 시대'라고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주 대의 봉건제는 철저히 파괴되었고, 대신 각지에서 변법을 통해 군현제적 질서 및 편호제민지배체제, 군주독재체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고사성어를 배운 사람들은 알 수 있듯 윤리적으로 상당한 헬게이트였는데, 이 시대의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중국이 맞나(...)' 싶은 사건이 많이 나온다.우리가 알던 중국이 어떤데? 당나라 시대 이후의 에피소드와 춘추전국시대의 에피소드를 아무거나 하나씩 찝어서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엄청나다. 이 문서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춘추전국시대는 윤리적/사상적으로 역동을 거듭하던 헬게이트 시기였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중국의 역사 시대 중 가장 많은 고사성어를 배출한 시기이기도 하다.(…) 너무 쓰레기 같은, 아니 그냥 쓰레기보다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바람에, 천재적인 인간들이 죄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쓰레기 같은 일이 빈번한 세상이 없어질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엄청난 사상을 여러개 만들어 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헬게이트를 극복하기 위해 제자백가의 수많은 사상들이 대두된다.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에는 정치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어, 한자 문화권의 학문의 발달 방향 자체를 라틴어 문화권과 다른 방향으로 돌려 놓은 시기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사상이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었다는 것은 각지에서 정국을 운영하기 위한 다양한 인재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말로, 실제로 사회의 유동성이 큰 시대였던 만큼 사(士) 계층이 정치의 기반 세력으로 뚜렷해졌다.
이민족들의 활발한 유입으로 '중국'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 상주 시대에는 '중국'이 중심국가였던 즉 상, 주 한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의미 그대로 가운데(中)에 있는 나라(國)라는 뜻. 실제로 당시의 지도를 살펴보면 상/주의 영역을 중심으로 하여 제후국이 그 주위를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러싼 이유는 당연히 이민족 들러부터 천자를 보호하는 것이며, 그래서 제후국을 번국(藩國)이나 번병(藩屛)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관계는 이후 한반도나 베트남등의 주변 국가들과의 조공/책봉에 전용된다. 중국 한족 왕조가 지고 들어갈 때도 몇번 있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는 중국의 범주가 하나의 세계(天下)로 전환되어 넓어졌다. 그 결과 본래는 황하 인근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던 이민족 국가 초, 오, 월, 진 등도 스스로를 '중국'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여 중원으로 활발히 진입했다. 이러한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되자 '중국 통일'에 대한 열망이 나타나기 시작해, 마침내 진의 통일로 발현되었다.
군사적 차원에서도 귀족들만이 참여했던 전차전과 청동기 시대를 넘어, 백병전이 전쟁의 주요 양상이 되고 철기 시대로 진입한 것이 이 시대로 알려져 있다. 무기뿐만 아니라 농기구 차원에서도 철제 농기구가 미흡하나마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도전, 포전, 원전 등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한편으로 후에 중국으로 편입된 이민족 외에도 주변 이민족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던 시기가 이 시기였다. 고조선을 미흡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는 첫 시기가 이 때이고, 고대 중국의 숙적 흉노 또한 이설이 많으나 전국시대 후기에는 그 세력이 완연해졌다.
결국 이 시대에 나타난 변화들은 19세기까지의 중국 및 동아시아 사회 질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몇몇 변화는 중국뿐 아니라 지금의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통일관념 및 중국 신화의 역사화(역사공정과 연결) 등 무수히 많으며 한국의 경우도 이 시기의 편호제민지배채제는 현재 주민등록제도로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주나라의 수많은 제후국들 중, 춘추시대까지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살아남아 있던 나라들의 이름은 이후 중국사에 명멸하는 수많은 국명들의 기원이 되었으며, 혹은 그 나라들이 있던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 예를 들면 산동성 일대를 노(魯), 산서성 일대를 진(晉), 섬서성 일대를 진(秦)이라고 하는 것이다.
각지의 국가가 성장하여 대두되고 일원적인 패권이 없어 치고 받는 싸움이 계속된 시기라는 의미에서, 어떤 분야에 수많은 사람 혹은 팀들이 나타나 무한히 경쟁하는 시기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걸그룹과 2007년 3.3 혁명 이후의 스타판. 3.3 혁명 이후 본좌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여 스타판을 지배한 프로게이머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후 2010년 들어 이영호, 이제동의 리쌍이 리그가 종료될 때까지 스타판을 양분하지만.
1.1 관련항목
2 게임
1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전략 웹게임. 제작은 QQ메신저로 유명한 텐센트사가 제작했다. 한국 서비스를 앞두고 한국 서비스 광고모델에 한국의 소설가 이외수와 자국의 레이싱 모델 미녀를 동원했다고 한다(...). 2011년 12월 오픈베타 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