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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5년 7월 30일, 미국의 유명한 노동 운동가 지미 호파(Jimmy Hoffa, 1913. 2. 14 ~ ?)[1]가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 2016년 기준으로 이 사건이 일어난지 무려 41년이나 지났지만 수많은 썰들과 음모론들만 난무할 뿐 범인이 아직도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다. 2012년 3월 25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을 소개한 바 있다.
2 지미 호파는 누구인가?
지미 호파(Jimmy Hoffa)의 본래 이름은 제임스 리들 호파(James Riddle Hoffa)로 1913년 2월 14일에 미국 인디애나 주 브라질[2]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노동 운동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한 때는 17세 때였던 1930년으로 창고 종업원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가 창고 종업원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대공황의 원인은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과 넘치도록 많은 잉여 생산품 때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는 기업을 지원하는 데만 열중할 뿐 일반 서민들을 지원하는 일은 게을리 했다. 그 탓에 1930년대 미국에서는 노동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지미 호파가 노동 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도 시대적인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20세 때였던 1933년에 트럭 운전노동자 파업 운동에 동참하면서 노동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그 때부터 노동조합에 뛰어들었고 1957년에 전미트럭운송노조인 팀스터스(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의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71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협상력으로 많은 노동자들의 우상이 되었으며 그가 팀스터스의 위원장을 역임하는 동안 10만 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은 무려 23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정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데 미국 내 전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하기보다는 자기 노조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데 급급했다. 그는 자기 조합에 이익이 걸린 일이라면 정말 물불을 안 가렸는데 협박과 폭력 행위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마피아와 결탁하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는 그에게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했는데 1967년 마피아와의 결탁, 공금 유용, 카지노 운영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복역한 지 3년 만인 1970년에 가석방되었고 향후 10년 동안 조합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 뿐인 맹세였고 호파는 다시 노조 위원장 자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1975년 7월 30일에 디트로이트에서 행방불명되어 4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건의 전말을 알 수가 없다. 법적으로는 1982년에 사망처리 되었다.
3 실종
그렇게 미국의 전설적인 노조 위원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지미 호파는 1975년 7월 30일 오후 2시 반,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마쿠스 레드 폭스(Machus Red Fox)라는 레스토랑의 지하 주차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호파의 지인들 말에 따르면 이 날 그는 마피아 두목 안소니 지아칼로네(Anthony Giacalone)와 안소니 프로벤자노(Anthony Provenzano)와 만날 계획이었다고 한다. 프로벤자노는 팀스터스 뉴저지 지부의 회장을 맡고 있었고 호퍼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하며 사실상 팀스터스에서 2인자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라 한다.
사건이 있었던 1975년 7월 30일, 그 날 오후 2시에 호퍼는 디트로이트의 마쿠스 레드 폭스에 도착해 30분 정도 기다렸으나 어느 누구도 오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몇 분만 더 기다렸다가 안 오면 나도 그냥 가야겠다."고 전화로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호파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남편의 목소리였다. 호파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어느 트럭 운전수였다. 그는 호파가 1975년 산 머큐리 마르퀴스 브루엄에 타고 있었는데 호파의 차가 레스토랑 주차장을 빠져 나오려 할 때 자신의 트럭과 접촉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 때 그는 호파의 차를 보았는데 호파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다른 누군가가 옆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들 옆에는 샷건 혹은 라이플로 보이는 총기류가 회색 담요에 덮여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호파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인 가장 마지막 순간이었다.
저녁이 되어도 호파가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는 경찰에 호파가 실종되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호파의 1974년 산 폰티악 그랜빌 차량을 마쿠스 레드 폭스 레스토랑에서 잠기지 않은 상태로 발견했다. 그러나 그의 차에는 호파의 흔적이나 호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줄 단서가 하나도 안 남아 있었다. 호파가 실종된 직후부터 몇 년 동안 지속해서 FBI를 포함한 많은 사법당국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별 다른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동 운동의 대가 지미 호파는 1975년 7월 30일 그 날 이후로 종적을 감추었고 실종된지 만 7년이 지난 1982년 7월 30일, 결국 법적으로 사망 처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실종되고 41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도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4 용의자
4.1 마피아
경찰은 당초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미 호파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마피아 두목인 안소니 지아칼로네와 안소니 프로벤자노를 강력하게 의심했다. 본래 지미 호파는 팀스터스의 영향력 증대를 위해 마피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지아칼로네와 프로벤자노는 이 팀스터스와 매우 밀접한 사이였다. 그런데 평소 지미 호파는 거침없는 성격으로 유명해 마피아들을 마치 자신들의 하수인처럼 부리며 사사건건 그들의 행동을 간섭하고 다녔다고 하며 팀스터스와 관계를 맺고 있던 마피아들은 조합원들의 연금을 빼돌려 자신들의 사업자금으로 유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문제 때문에 겉으로는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사이가 단단히 틀어져 있던 사이였다는 것이다. 지미 호파는 마피아들이 팀스터스의 충견으로 있어주길 바랐던 모양이지만 지미 호파를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상당히 마피아들을 두려워하고 있어 마피아들은 팀스터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에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다녔던 지미 호파가 출소해 다시 팀스터스의 위원장에 취임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마피아 측에서는 이 참에 눈엣가시로 보였던 호파를 암살하기로 결심했고 그를 약속 장소로 유인한 다음 살해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지아칼로네와 프로벤자노는 호파가 실종되었던 1975년 7월 30일 그 날, 호퍼와 만나기로 약속한 적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결정적으로 7월 30일 그 날에 두 사람에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 결국 그 둘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4.2 팀스터스 간부들
또 다른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바로 팀스터스의 간부들이었다. 지미 호파가 복역 중일 때 팀스터스는 새로운 위원장으로 프랭크 피츠시몬스를 선임한 상태였다. 그런데 1970년 호파가 출소하고 다시 위원장 자리에 복귀하려 했다. 호파의 영향력은 아직도 팀스터스 내에서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이는 피츠시몬스와 그를 따르는 간부들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호파가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어 있을 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에게 로비를 하여 호파의 출소를 방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파는 4년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되었고 다시 위원장 자리에 돌아오려 했다. 아직도 팀스터스에서 전설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던 호파는 조합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현 위원장 피츠시몬스와 그를 따르는 간부들은 위협을 느꼈고 호파가 위원장 자리에 복귀하기 전에 먼저 손을 써서 제거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에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이 지미 호파의 측근이었던 처키 오브라이언이라는 인물이었다. 즉, 팀스터스 간부들이 호파의 측근 오브라이언을 매수해 그를 디트로이트로 유인했고 살인 청부업자를 시켜 호파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실제 호파의 마지막 모습을 본 목격자들은 호퍼가 오브라이언의 차를 타고 있었다고 진술했고 오브라이언의 차 시트에서는 의문의 혈흔이 발견되었다. 이에 경찰은 처키 오브라이언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처키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혐의를 극구 부인했고 1975년 7월 30일 그 날 자신이 차를 몰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 차에 호퍼를 태운 적은 없다고 발뺌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발견된 혈흔은 사람의 피가 아니라 생선의 피였다고 진술했다. 1975년에는 미국에서도 아직 DNA 감정 기법이 도입되지 않아 차 안의 피가 정말로 호퍼의 피가 맞는지 입증할 수가 없었고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오브라이언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들의 혐의점을 잡아내지 못한 미국 경찰들은 이 사건을 미제로 덮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지미 호파는 시신도 발견되지 못한 채 실종된지 7년이 지난 1982년에 법적으로 사망처리 되었다.
5 지미 호파의 혈흔 발견
그런데 지미 호파가 실종되고 26년이 지난 2001년에 DNA 감정으로 처키 오브라이언의 차에서 발견된 혈흔을 조사해본 결과 그 피는 오브라이언의 진술대로 생선의 피가 아니라 실종된 호파의 피였음이 드러났다. 결국 오브라이언의 진술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오브라이언은 계속해서 자신의 무고함을 털어놓았고 DNA 증거물 만으로는 오브라이언을 기소하기에 한계가 있어 결국 이번에도 사건을 덮을 수밖에 없었고 사건은 계속 미해결 상태로 남게 되었다.
6 현황
일단 현재 미국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물증과 목격자가 없어 그것들이 발견되지 않는 한 영원히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건이 일어나고 무려 41년이나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범인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완전범죄라고 봐야할 것이다.
한편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었던 마피아 두목 안소니 지아칼로니는 2001년에 사망했으며 안소니 프로벤자노 역시 1988년에 사망했다. 이들 둘에겐 더 이상 사건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한편, 호파의 유가족들은 호퍼가 법적으로 사망처리 되고 5년이 지난 1987년에 FBI에 수사 기록을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국 법원에서는 수사 기록 공개를 불허했다고 한다.
미국서는 공구리당해서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도시전설이 퍼진 상태다. Mythbusters에서는 돼지 사체로 실험해서 "공구리를 당하면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눈치 못채는게 불가능하다. 설령 눈치 못챈다 해도 초음파 촬영으로 시체를 찾을수 있다." 는 결론을 내고, 공구리를 당해 시체가 묻혀있다고 전해지는 한 야구장에 초음파기기를 가져가 전체를 다 뒤졌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이와 별개로 외계인이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는 브루스가 첫 기적을 일으킬때 사용됬다. 경찰견에 대해 취재하다가 신에게서 받은 기적의 힘을 사용해 경찰견이 지미 호파의 시체를 찾게 했다. 웃긴 건 혹시라도 지미 호파인걸 확인 못할까봐 옆에서 각종 의료기록문서들도 같이 나오게 했다.